몸, 가장 내밀한 나의 공간
」
(미래)톱, 팬츠 모두 가격미정 앤아더스토리즈. 귀고리 가격미정 에이피스.(고권금)톱 6만9천원 마조네 by 하고. 쇼츠 가격미정 레호. 목걸이 1만원대 H&M. 팔찌 23만9천원 포트레이트 리포트.
타투는 하나의 패션이라고 생각하는 타투이스트. “너는 타투를 하는 사람이 왜 몸에 타투가 하나도 없니?”라는 말을 듣고 몸에 하나둘씩 타투를 새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온몸에 타투가 가득해 새 타투를 추가할 자리가 없을 정도다. 예쁜 옷을 입듯, 사람들에게 더 예쁜 타투를 입혀주고 싶다.
② 고권금(29세)
무용과 안무 작업 등, 여러 장르에서 ‘움직임’을 선보이는 퍼포먼서여성과 인간에게 주어진 억압을 몸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몸에 대한 각기 다른 관점을 엮은 에세이집 〈몸의 말들〉의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COSMO 타투와 무용, 둘 다 몸을 매개로 말해요. 상대의 작업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뭐였어요?
고권금(이하 ‘고’) 미래 씨가 몸을 작품이라고 표현하는 방식이 좋았어요. 저처럼 자신의 몸을 표현하면서 스스로 작품이 되든 타인의 몸에 그림을 그리든, 몸이 하나의 작품이 된다는 점에서 통할 것 같았죠.
미래(이하 ‘미’) 저한테 몸은 작품을 그리는 도화지 같아요. 제 몸은 이미 온몸이 타투로 가득 차서 더 이상 그릴 여백이 없지만요. 깨끗이 ‘리셋’하고 새 도화지가 되고 싶은데, 몸은 일생동안 한 번밖에 쓸 수 없다는 점에서 아쉽죠. 무용가에게 몸은 어떤 의미예요?
고 살아 있는 공간이오. 사람들이 이성과 육체를 분리해 생각하곤 하잖아요. 바쁠 때 몸살이 나면 ‘얘는 왜 하필 지금 아프고 난리지?’라는 식으로 몸과 정신을 타자화하곤 하죠. 제가 몸을 인식하는 방법은 몸의 얘기를 듣고, 내 몸 상태를 아는 거예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지하며 살아가는 거죠. 지금 실존하고 있는 것에 실재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 그게 저한테는 몸이에요.
COSMO 권금 씨는 ‘할례’를 주제로 한 무용극인 〈이리코로시기〉를 선보였죠?
고 할례는 이슬람문화권과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전역에서 성년식이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지는 성기 절제술이에요. 그 목적은 여성을 소유하는 데 있죠. 종교적으로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을 죄악이라고 치부해 클리토리스를 자르기도 하고, 순결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소음순을 잘라 성기를 꼬매기도 해요. 많은 여성이 과다 출혈이나 괴사, 질병 등 할례의 부작용으로 목숨을 잃어요. 여성의 몸과 성욕을 억압하는 악습이죠. 할례 생존자를 취재할 때 그들이 “나는 뭔가가 빠져나간 존재고, 신체의 일부가 잘려 나갔기 때문에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라고 얘기하는 걸 듣고 속상했어요. 무엇보다도 여성을 소유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사고 자체가 부조리 같아요. 형태는 다르지만 한국에도 여성을 억압하는 프레임이 없다고 할 수 없고요.
미 할례에 대해 처음 접했는데, 문화에 따라 성기에 칼을 대는 행위가 억압이 될 수도 자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게 놀라워요. 할례는 강제로 자행된다는 점에서 폭력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미용 목적으로 성기에 칼을 대기도 하잖아요. 소음순 수술이나 질 필러 등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요. 물론 의도나 목적에 차이가 있으니 할례와 여성 성형을 똑같이 놓고 바라볼 순 없겠지만요.
고 주위에 은근히 여성 성형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지인이 질염이 심해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소음순이 길어 질염의 원인이 되는 동시에 남자 친구가 징그러워할 수도 있다고 그 수술을 추천했대요. 수술을 하면 애인이 더 좋아할 거라고요. 은밀한 부위를 수술해야 하는 이유가 왜 남자 친구가 돼야 하는지 친구가 너무 화가 나더래요. 더구나 남자 친구는 한 번도 그 부위에 대해 언급조차 한 적 없었으니까요.
미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의 성적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수술을 하는 사람도 많아요. 애인에게 더 사랑받고 싶고,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다만 자의로 수술을 하는 사람조차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성을 고려한다는 건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네요.
고 타투도 남에게 보여지는 거잖아요.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이라면, 타투가 미운 부분을 예쁘게 커버해 내 몸 긍정의 매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미 실제로 흉터 커버 타투를 하는 사람이 많아요. 뺄 수 없는 점이나 보기 싫은 튼 살을 커버하는 사람도 있고요. 장애를 가진 분들 중에 의기소침하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많은데, 외국에는 그런 이들을 위해 타투이스트가 타투를 해주는 프로그램도 있었어요. 타투를 한 이후 자존감도 높아지고 성격도 활발하게 바뀌는 긍정적 변화가 있었죠. 저도 나중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타투를 해보고 싶어요. 타투도 하나의 옷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사람들에게 더 예쁜 옷을 입혀주고 싶은 거죠.
COSMO 으레 몸매가 좋은 사람들만 타투를 할 것 같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몸매가 예쁘지 않은데’ 타투를 해도 될지 고민하는 사람은 없어요?
미 있죠. 한쪽 팔이 두꺼워 얇아 보이려고 타투를 한다는 분도 있어요. 한번은 꽃 타투를 한 고객이 있었는데, 살이 빠진 뒤에 타투가 함께 줄어 쭈글쭈글한 드라이플라워가 돼버렸다며 웃으시더라고요. 하하. 어쨌든 사람의 몸은 변해요. 나이가 들면 살이 쭈글쭈글해지기 마련이고, 타투도 몸과 함께 변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춤도 마찬가지 같아요. 춤을 잘 춰야 사람들 앞에서 춤출 수 있다는 강박이 있지 않아요?
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자기 재생 프로젝트’라는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거든요. 인간의 몸에 기록된 억압과 재생의 움직임을 찾아내고 그걸로 안무 작업을 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사람마다 억압이라 느끼는 기억이 각자 다른데, 그 키워드를 떠올렸을 때 반사적으로 나오는 몸의 움직임을 잡아내죠. 대부분은 몸으로 뭔가를 표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이 많이 참여해요. 꼭 몸을 쓰는 테크닉이 좋지 않아도 돼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움직임이 분명 있거든요. 영화 〈마더〉의 마지막에서 김혜자 선생님이 추는 춤이 아름답듯, 모든 움직임이 의미가 있어요. 제게도 ‘춤을 잘 춘다’는 개념은 여전히 숙제예요.
미 자기 표현을 하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림을 잘 그리고 춤을 잘 추는 사람은 워낙 많죠. 그런데 재능을 소화하고 그 사람만의 느낌으로 만들어가는 게 정말 어려워요.
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표현할 때 솔직해져야 해요. 찌질함, 못난 구석 등, 나의 내면에 있는 깊숙한 것을 드러내길 두려워하지 않고 솔직해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COSMO 보디 포지티브는 몸에 대한 평가를 초탈하는 것도 중요해요. 그런데 무용가는 내 몸이 어떻게 보이며, 어떻게 해야 몸선이 예뻐 보이는지 늘 고민해야 하죠. 타투 역시 어떤 면에서는 ‘내가 내 몸을 꾸미고 신경 쓴다’라는 걸 보여주는 장치라고 생각해요. 둘 다 몸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게 더 힘든 직업이죠.
미 여전히 타투에 대한 보수적인 시선이 남아 있어요. 옛날에는 사람들 시선이 많이 신경 쓰였는데 지금은 딱히 신경 안 써요. 오히려 재밌는 포인트는, 제 몸에 있는 타투들이 ‘미래’의 몸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표식처럼 돼버려서,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졌어요. 하하.
고 사실 저는 “외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나만 생각한다”라는 전제 자체가 잘 이해되지 않아요. ‘나를 위한 것’이라는 개념은 결국 남에게 보여지는 나를 위한 거잖아요. 만약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다면 아무것도 안 하지 않을까요?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고, 그들에게 예쁘다는 얘기를 들으면 좋잖아요. 다만 그 아름다움의 기준이 너무 협소해 문제가 되니, 아름다움의 기준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저는 근육이 생기고 굳은살이 생긴 제 발이 너무 예뻐 보여요. 부단히 연습하고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이니까요. 남들 눈에는 굳은살이 예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자기 확신이 있다는 게 중요하죠. 미래 씨는 보디 포지티브를 뭐라고 받아들이고 있어요?
미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마음먹은 대로 몸을 만드는 건 어렵지만요. 하하. 많이 먹어서 만든 몸도 내 몸이고, 살을 빼서 만든 몸도 내 몸이죠. 원하는 모습과 조금 다르다 해도 우리 몸은 이렇게 만들어져가고 있어요.
고 무조건적인 내 몸 ‘긍정’은 어딘가 퀘스트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사실 우리가 자신의 몸을 매일 사랑할 수는 없잖아요. 몸에 대한 자신만의 심미안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럴수록 어떤 몸이 나한테 맞고 예쁜 몸인지, 몸에 대해 알아가고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