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잼버리부터 박연진, 본디까지! 2023년 떠오른 '이것'

전지적 <코스모> 시점에서 2023년 한 해를 되돌아봤다. 올해의 챔피언부터 광고, 감독, 원작, 유튜브, 졌잘싸, 무리수, 히로인, 폭스, 팝업 스토어, 위기, 심지어 올해의 왜 저래까지. 요모조모 뜯어가며 상찬하고 비판하고 참견해본 한 해의 결산!

프로필 by 이예지 2023.12.05

15 올해의 무리수 잼버리 K-POP 콘서트

역대급 태풍이었다는 카눈에 국격까지 쓸려 나간 듯했다. 부실 운영으로 행사 내내 파행이 이어지더니, 마무리라도 아름답게 하려고 사활을 걸었던 잼버리 K-POP 슈퍼 라이브 콘서트도 모두에게 상처만 남겼다. 국민들은 드디어 청소년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내심 안도했지만, 전 세계 매체들은 엉망진창이었던 행사를 K-POP 스타로 입막음해보려는 한국 정부를 향한 조소와 비판을 쏟아냈다. 그뿐인가. 3일 만에 급조한 무대에서 제대로 된 리허설도 못 한 채 프로 정신을 발휘하는 아이돌을 보며 팬들은 애간장이 녹았다. 게다가 이 무리한 콘서트는 프로축구 K리그1 경기에 영향을 미쳤고, 10억을 투자해 ‘양탄자’라며 호평 일색이었던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는 잡초밭으로 전락해 많은 축구팬들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TV에는 화려하게 나온 폐영식 불꽃놀이가 정작 객석에서는 천장에 가려 볼 수 없었던 것처럼, 누구를 위한 행사였을까? 행사 비용에 대한 잡음은 아직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16 올해의 광고 지그재그

“저 타투는 뭐야?” “다이어트한 거 맞아?” “적당히 좀 하지, 너무 말랐어.” “팔자 좋다. 맨날 여기저기 나다니고?” 가수 백예린과 아이브 리즈, 유튜버 원지·해쭈, 배우 신예은, 모델 배유진을 향해 불편한 참견이 쏟아진다. 그런 시선에 주눅 들기는커녕 당당하게 맞선 6인의 여성이 “제가 알아서 살게요!”라고 말하는 순간 통쾌함을 느낀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몸이 말라서, 마르지 않아서, 몸에 타투가 있어서 등 이유를 막론하고 매 순간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 시대 여성의 마음을 대변하는 강력한 카피로 지그재그 광고는 올해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광고가 온에어된 후 지그재그의 DAU(하루 동안의 순수 이용자 수)는 110만 명을 넘어섰고, 신규 가입자는 전주 대비 43%, 첫 구매자 수는 51%가 늘었단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오지라퍼들이여, 더는 철 지난 드라마의 후진 대사처럼 ‘나’다운 게 뭐냐는 질문도 평가질도 그만 넣어두길. 알아서 ‘사고’ 나답게 ‘살’ 테니!
 

17 올해의 이름 박연진 

“연진아, 나 지금 되게 신나.” 올해 넷플릭스에서 역대 비영어권 흥행 순위 5위에 이름을 올린 최고의 화제작 <더 글로리>를 논하자면, 그 어떤 것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악역 ‘박연진’의 이름이다. 학교 폭력 피해자 ‘동은’이 가해자 연진에게 서간문 형식으로 증오의 감정을 고백한 내레이션이 밈이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 김은숙 작가가 세공한 입체적인 캐릭터들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송혜교의 연기와 불꽃처럼 악독한 임지연의 연기가 숨을 불어넣었고, <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 아젠다를 단숨에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올해의 이름은 단연 박연진이다. 그냥 박연진이 아니라, 피해자의 생생한 목소리로 호명하는 가해자의 이름인 것이다.
 

18 올해의 3일 천하 본디

인스타그램 천하가 드디어 끝나나 싶었다. 올해 1월 별안간 등장한 본디는 그 시절 아바타와 미니룸을 꾸몄던 ‘싸이월드’를 닮아 있었으며, 내가 MZ세대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2023년식 새로운 기준으로 보였다. 출시 4개월 만에 누적 다운로드 수 500만 회라는 기록은 짧은 시간 내 얼마나 강력한 파급력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그런데 지금, 본디를 사용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예견된 결과일지 모르겠다. 친구의 방에 놀러 가 메모를 쓰고 나오는 건 일촌의 미니홈피에 일촌평을 남겼던 경험과 별반 다를 것 없을뿐더러, 3D 아바타를 구현하는 만큼 앱이 무거워 메신저로 쓰기에도 불편했다. 거기에 앱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개인 정보가 유출된다는 소문까지 떠돌았으니 쓸 이유를 찾기 어려웠을 터. 결국 본디는 3일 천하로 막을 내렸고, 본디 속 망망대해를 떠다니던 우리는 다시 인스타그램에 닻을 내렸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 우린 정말 인스타그램 없는 세상에선 살 수 없는 걸까?
 

19 올해의 헤드라인 교권 하락

학교에선 체벌이 사라졌는데 악성 민원은 늘었다. 교사를 아동 학대로 신고하겠다는 협박성 민원과 그 외 다양한 민원들이 교권 침해의 가장 큰 원인이다. 정서적 학대는 그 기준이 모호해 교사가 아이를 처벌, 훈육하는 것만으로도 위와 같은 민원을 받을 수 있다. 교사가 고소를 당하면 무고함을 온전히 개인의 힘으로 입증해야 한다. 그 때문에 수업에 방해될 정도로 물의를 일으키는 학생이 있어도 교사가 제재를 가하기 쉽지 않다. 이미 오래전부터 교사들은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고통받고 있었지만 ‘서이초 교사’ 사건 전까지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스물네 살의 교사는 이제 세상에 없다. 땅에 떨어진 교권이 바로서지 않는다면, 교육의 미래도 없을 것이다.
 

20 올해의 폭스 덱스

이 남자의 ‘상남자’ 모먼트를 일일이 열거하자면 단독으로 풀 페이지를 할애해도 모자랄 것이다. 포르쉐와 비슷한 속도로 뛸 수 있는 신체적인 매력도 상당하지만 그의 진면모는 사람들 사이에서 빛을 발했다. 바다에서 고립돼 무서워하는 동료를 위해 영하 13℃의 바다에 뛰어들고, 먼저 나서서 생색내거나 자신의 무용담을 펼치지 않고, 단호함과 애교가 공존하고, ‘강강약약’이 몸에 밴 잘생긴 남성. 게다가 이성 앞에서 간혹 뚝딱대기도 하는 모습은 ‘저 남자… 사귀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정작 본인은 아무 의도 없이 행동한다지만, 자고로 사귈 것도 아니면서 설레게 하는 건 유죄렷다. 뭇 여성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으니 올해의 폭스로 선정하는 바다. 
 

21 올해의 승리 LG트윈스 통합 우승

1994년 우승을 마지막으로 29년간 우승 트로피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LG트윈스(이하 LG)가 29년 만에 드디어! 정규 시즌 및 포스트 시즌에서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4년을 제외하고 LG의 성적은 암담했다. ‘꼴G’ 등의 굴욕적인 별칭이 붙을 정도였으니. 1995년, LG그룹 구본무 전 회장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 축하주로 먹겠다고 한 아와모리 소주는 29년째 보관만 하다 모두 증발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1998년 한국시리즈 MVP에게 주려고 구 전 회장이 산 8천만원 상당의 롤렉스 시계는 19년째 금고에 있다. 드디어 그 모든 것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LG가 가을 야구에 진출하면 꼭 꺼내 입어야 하는 ‘유광점퍼’는 품귀 현상을 일으켰고, LG의 우승 소식을 1면에 다룬 <스포츠서울> 신문은 완판되어 중고장터에서 ‘플미’가 붙었다. 이제 LG 팬에게 한 맺힌 29년이란 없다. KBO 최강 팀이라는 타이틀만이 존재할 뿐!
 

22 올해의 팝업 스토어 자크뮈스

수많은 브랜드 팝업 스토어가 넘쳐난 올해, 가장 눈길이 가는 팝업 스토어는 단연 자크뮈스였다. 일찍이 자크뮈스는 세계 곳곳에 브랜드의 세계관이 투영된 팝업 스토어를 꾸준히 전개해왔다. 무인 자판기를 설치한 24/24, 꽃에서 영감을 받은 플라워 숍 ‘Les Fleurs’, 파리 라파예트 백화점의 ‘Jacquemus Obsessions’ 등을 선보였는데, 도시의 분위기에 잘 묻어나면서도 늘 예상을 빗나가는 기발한 아이디어는 자크뮈스다웠다. 올여름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항구 마을, 포르토피노의 팝업에서는 프랑스 리비에라에서 영감을 받은 에테 캡슐 컬렉션을 드라마틱한 디스플레이로 구현했고, 2023년 F/W 컬렉션의 밤비무 가방을 팝업 스토어 그 자체로 구현한 ‘Le Cafe Fleur’는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 상륙했다.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자크뮈스라는 세계는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가 아직 보여줄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다는 걸 알려줬다. 자, 그래서 다음 팝업 스토어는 어디죠?
 

23 올해의 퇴색 강원도 양양

양양은 어떻게 지금 국내에서 가장 핫한 여행지가 됐는가. 군사 지역에 속해 있던 해변을 서핑 전용 해변으로 새단장해 각종 서핑 교육과 축제에 열과 성을 다한 시의 노력은 MZ세대에게 닿았고, 덕분에 ‘서핑의 성지’로 각인되는 결실을 맺었다. 2021년 기준 양양을 방문한 관광객은 50만 명에 육박했고, 30억원의 관광 매출을 내며 지역 경제를 이끄는 역할까지 톡톡히 해냈다. 거기까진 좋았다. 서프보드 위에서 못내 풀지 못한 열정을 해소하기 위해 젊은 남녀들이 유흥을 즐기는 거리, 일명 ‘양리단길’이 조성되면서 재앙은 시작됐다. 밤만 되면 한 쌍의 남녀라도 더 잡기 위해 식당과 술집은 음악을 크게 틀기 시작했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지역 주민이 떠안았다. 주민들에겐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일이었을 거다. ‘불금’의 잔해처럼 거리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들은 또 어떤가. ‘X리단길’이라는 이름을 달고 수많은 관광객을 유입시킨 것에 비해 그것을 관리할 인프라가 부족한 탓이다. 어떤 의미에서건 지금 이 순간도 뜨거울 양양을 ‘올해의 퇴색’으로 명명하는 이유다.

Credit

  • editor 이예지/천일홍/김미나/박한나
  • illustrator 김현주
  • art designer 김지은
  •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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