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드라마 〈월수금화목토〉에서 ‘상은’을 중심으로 각각 계약 결혼 관계에 있는 두 커플의 케미가 좀 달라요.
박민영(이하 ‘민영’) 제가 생각했을 때 ‘지호’는 ‘상은’(극 중 박민영이 연기하는 인물)을 불편하게 만드는 남자, 그리고 ‘해진’은 ‘상은’을 편안하게 만드는 남자 같아요.
불편하다는 거, 설렌다는 건데요. 두 분은요?
고경표(이하 ‘경표’) ‘상은’은 음… ‘지호’가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고 싶은 사람이죠.
김재영(이하 ‘재영’) ‘해진’에게 ‘상은’은 인생의 롤모델이에요. 여기까지. 나머지는 스포일러라….
(고경표)티셔츠 36만원 와이프로젝트 by 지스트리트 494 옴므. 팬츠 38만원 존 바바토스. (박민영)드레스 가격미정 발렌티노. 귀고리 가격미정 발렌티노 가라바니. (김재영)팬츠 1백29만원 알렉산더 맥퀸. 목걸이 31만8천원, 반지 34만9천원 모두 포트레이트 리포트. 셔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드라마 소재가 ‘계약 결혼’인데, 어떻게 보면 ‘결혼하라는 등쌀에 시달리는 비혼들’이 주인공이기도 하죠. 결혼과 비혼 사이에서 입장이 어떤가요?
경표 결혼은, 하면 하는 것? 꼭 해야 될 이유는 없고, 살면서 겪은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혼을 하고 안 하고가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재영 원래는 결혼이 너무 하고 싶었거든요. 제 인생의 목표 중 하나였는데,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점점 더 생각이 많아져요.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요.
민영 네. 주변 사람들은 제가 비혼주의일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일을 거의 쉬지 않고 하고 있으니까요.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누군가를 만났을 때 종소리가 울리면 저도 결혼하게 되지 않을까요?
민영 네! 주변에 그렇게 결혼한 커플이 셋 있어요.
신기하네요. 세 분은 그럼 혹시 결혼식에 대한 로망은 있어요? 결혼 생각은 없어도 로망은 있을 수 있잖아요.
민영 하와이 같은 데서 소규모 비치 웨딩 했으면 좋겠어요. 정말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 밤새도록 술 마시고 춤추면서 노는 로맨틱한 분위기요.
경표 로망은 없는데, 친구 결혼식에 가면 울컥해요.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런 건지….
재영 저는 그냥 뷔페 나오는 데서 하면 될 것 같아요.
재영 친구 결혼식 가면 가끔 코스 요리 나오는 데도 있는데, 저는 뷔페가 더 좋아요. 육회 같은 거 잔뜩 쌓아놓는 곳들 있잖아요.
재영 네. 저는 그거면 돼요. 대부분은 신부 입장에 맞춰주는 거죠.
셔츠 가격미정 크리스찬 디올. 스커트 83만9천원 이자벨 마랑 에뚜왈. 롱부츠 1백87만원 세르지오 로시. 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럼, 결혼한다면 상대방을 뭐라 부르고 싶어요?
보통 ‘자기야’ 하다가 아이 낳으면 호칭이 ‘누구누구 엄마 아빠’가 되죠. 드라마 속에서는 서로 뭐라고 부르나요?
민영 유재석 오빠가 그렇게 부르시던데, 참 좋아 보였어요.
이름은 고유한 거니까, 부를수록 애틋한 감정이 생기죠. 세 분은 일상에서 ‘내가 정들었구나’라고 느끼는 때가 언제예요?
경표 거의 같은 친구들인데 좀 많아요. 10명, 많게는 15명?
재영 저는 점점 정들기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새로 만나면 ‘이 사람이랑 내가 친해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아요. 어릴 때는 그냥 모이면 다 잘 어울렸는데….
경표 나이가 들면서 각자 삶의 바운더리가 확고해지잖아요. 어릴 땐 단톡방 하나만 열리면 쉼 없이 떠들었죠.
(박민영)톱 가격미정 아미. 팬츠 1백50만원 로에베. 장갑 가격미정 발렌티노 가라바니.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고경표)카디건 1백99만원 알렉산더 맥퀸 by 무이. 스커트 팬츠 가격미정 듀오. 체인 벨트 1백53만9천원 앤 드뮐미스터 by 아데쿠베. 슈즈 81만원 아미.
민영 그 사람을 떠올렸을 때 잔상이나 잔향이 남아 있으면 정들었다고 생각해요. 사람 관계라는 게 오랫동안 가까웠더라도 틀어질 수 있지만, 미움과 정은 별개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미워서 관계가 끝났을지언정, 그 사람을 떠올릴 때 어딘가 따스함이 느껴지면 그건 정이죠.
경표 노고지리라는 밴드의 ‘찻잔’이라는 노래를 자주 듣거든요. (박민영에게) 방금 말했던 그런 느낌의 노래야. 되게 잔잔해.
그럼, 결혼처럼 누군가와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나요?
경표 전 확실한 신념이 있어요.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기.
재영 그런 거 잘 안 해요. 솔직한 게 좋아요.
경표 전 대부분의 경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일종의 직업병 같은 거예요. 늘 연기하면서 다른 인물을 이해해야 하잖아요. 그 인물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을 스스로에게 입력시켜야 하죠. 평소에 다소 기분 나쁜 일을 당해도 몇 번은 그냥 참다가 어떤 경계를 넘어서면 확실하게 끊는 타입이에요.
민영 저는 어떤 관계든 의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의리를 편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민영 아, 근데 전 가끔은 그래요. 잘잘못을 따져주는 게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정말 친한 친구가 편들어주고, 자기 일처럼 화내면 기분이 풀릴 때가 있잖아요.
경표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잘못은 스스로 깨달을 거라 생각해요.
반대로 만약 1인 가구로서 평생 혼자 산다면,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경표 친구죠. 저 혼자 산 지 되게 오래됐거든요. 20살 때부터 혼자 살았으니까. 근데 늘 친구가 있었어요. 집 비밀번호 다 공유하고.(웃음) 집이 곧 과방이었죠.
재영 저 역시 친구가 제일 중요할 것 같아요.
민영 네. 태어나서 사는 동네가 거의 바뀐 적이 없어요. 외딴 데에 홀로 떨어진 느낌보다 눈에 익은 곳에서 살면 외로움이 좀 덜하지 않을까 싶어요.
결혼은 인생에서 사건 같은 거잖아요. 각자 살면서 터닝 포인트가 된 사건이 있다면요?
재영 왜 웃어요! 전 요즘 진짜 그 생각뿐이에요. 얼마나 조마조마한데요.
민영 (웃음) 음, 저는 작년쯤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어요. 어떤 목표치를 정하고 달려왔는데, 그 목표를 이루고 나니 급격히 공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쉼 없이 작품에 들어가는 거예요. 가만히 있으면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을까 봐요.
민영 가족들을 위해 산 것 같아요. 이제 나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러면서 독립을 한 것도 있어요.
재영 그런 생각 저도 하게 될 것 같아요. 뭔가 이루게 되면요.
재영 그렇죠.(웃음) 그런 생각 해보긴 했어요. 나중에, 진짜 날 위해서는 뭘 해야 할까 하고요. 집에서 혼자 가만히 있는 시간이 많은 편인데, 머릿속으로는 계속 ‘난 뭘 좋아하지?’ 생각하느라 복잡해요.
민영 씨는 그럼 요즘 스스로를 위해 쓰는 시간이 따로 있나요?
민영 그냥 평소 하나하나 다 저를 위해 쓰려 해요. 먹는 것도 내가 먹고 싶은 거, 나한테 좋은 걸 내가 원하는 시간에 먹죠. 새벽에 갑자기 일어나서 산책 나가고 싶을 때 나가고, 그런 것 하나하나가 저한테는 힐링이더라고요.
그런 마인드니까 워커홀릭으로 살 수 있는 거군요.
경표 전 군대 때 절실히 느꼈어요. 사람이 자유의지를 갖는다는 거요. 군대에서는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식사 메뉴, 일어나고 잠드는 시간까지. 전역한 직후에는 팔을 다쳐서 잠깐 입원까지 했는데, 퇴원하고 보니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좀 다치고 잃어봐야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알게 돼요.
저도 두 달 동안 오른손이 마비된 적 있는데, 그 이후에도 삶은 똑같던데요?
경표 연습이 필요해요. 행복은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 내가 지금 맛있는 걸 사 먹었다면, ‘나 지금 이거 엄청 행복한 거야’ 하고 스스로 느끼는 게 중요해요.
재영 맞아. 사소한 거에 행복하지 않으면 정말 큰 행복이 왔을 때도 못 느껴.
재영 저는 혼자 산 지 4~5년 정도 됐는데, 처음 독립했을 때 서브웨이랑 버거킹에서 연달아 식사를 한 적 있어요. 서브웨이에서 30cm를 먹고, 바로 건너편 버거킹에 가서 또 햄버거를 먹었는데,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사치라고 생각했거든요. 밥 두 번 먹는 거. 오랫동안 생활 다이어트를 하다 보니까….
(김재영)코트 가격미정 보테가 베네타. 니트 베스트 7만5천원 노이어. 가죽 팬츠 44만3천원 막시제이. 반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박민영)튜브톱 드레스 가격미정 메종 마르지엘라. 귀고리 가격미정 알렉산더 맥퀸.
재영 네. ‘이게 바로 행복인가?’ 싶었어요.
민영 (고경표를 보며) 근데, 네 말대로 터닝 포인트에 몸이 아프더라. 그때쯤 저도 이상하게 자꾸 다치고 아파서 거의 매일 입원하고 그랬거든요.
아홉수니, 삼재니 하는 것도 진짜 있나 싶을 때 있죠.
경표 저도 그런 거 안 믿거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제 인생에 그런 시기가 확실히 있었어요. 군 입대하기 한 달 전에 어머니 투병 소식을 알았고, 전역 후 8개월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별의별 일을 다 겪고 나니, 이제 삶에 힘든 게 없어요. 짜증 나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마음을 느끼는 것도 부질없어요. 그냥 지금 행복하면 돼요. 지금도 얼마나 좋아요. 이렇게 오손도손 모여 수다 떨고.
민영 이렇게 차분하고 여유롭게 인터뷰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에요.
너무 진지한 질문만 해서 재미 없었나 싶은데요.(웃음)
재영 에이, 아니에요. 이런 대화가 더 재미있는 거죠.
민영 좋았어요. 맨날 커피만 마시다가 오늘은 전통차 한 잔 마신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