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신작입니다. 아이가 유괴된 경찰이 아이를 찾기 위해 인신매매범에 맞서는 범죄 스릴러 〈리미트〉의 주인공으로 나섰어요. 이 영화를 택한 이유가 있나요?
어떠셨어요? 어제 언론 시사회를 했는데 기자님들이 잘 봐주신 것 같더라고요. 저는 범죄 스릴러를 너무 좋아하는데, 이런 영화는 대체로 남자들이 주연이잖아요. 근데 이 영화는 경찰, 범죄자, 흑막까지 전부 여자니까 너무 반가운 거예요. 안 할 이유가 없었죠!
남자 버전으로는 익히 봐왔던 이야기인데 여자들이 하니 새롭고 짜릿했습니다. 배우 문정희, 진서연과의 합은 어땠나요?
물 만났죠. 너무 좋았어요. 저희 연기 때문에 NG 한 번 난 적 없을 정도로 다들 신나서 했어요. 셋 다 초면이었는데 합이 어쩜 그렇게 좋은지. 영화 찍으면서 친해졌어요. 서연이 아이가 5살이라 제게 육아 팁을 많이 알려주고, 정희 언니는 골든레트리버를 키워 같이 반려견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웃음)
리얼하게 하려고 웬만한 액션은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어요. 촬영할 땐 몰랐는데 숙소에 들어와서 보면 여기저기 멍들고 만신창이가 돼 있더라고요. 그래도 뭐, 죽을 정도로 다친 것도 아니니까.(웃음) 모니터링해보니 몸 던져 연기한 보람이 있었어요.
배우 박명훈과 일대일로 맞붙는 액션 연기는 ‘개싸움’에 가까운 생활 액션이던데, 힘들진 않았나요?
너무 신났죠.(웃음) 서로의 체형과 힘을 아니까 조절하면서 찍어요. 3일간 찍어서 힘들긴 했지만. 근데 여성 배우들도 힘에서 딱히 밀리진 않았던 것 같아요. (진)서연이도 진짜 힘이 세거든요. 흥분한 서연이를 말리는 장면에서 남자들이 전부 나가떨어졌다니까요. 문정희 언니도 어찌나 힘이 센지, 언니랑 액션 신 찍고 나면 승모근이 엄청 올라오더라고요.
드레스 가격미정 에트로. 이어 커프 3만원 레이지던. 반지 (왼쪽부터)28만원, 23만원 모두 타니 by 미네타니. 부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영화 〈반도〉의 좀비 떼들 사이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탈출하는 ‘민정’, 〈군함도〉에서 맞서 싸우는 ‘오말년’도 떠올랐어요. 차기작인 연상호 감독의 〈더 그레이〉에서는 괴물 잡는 특수전담반 팀장으로 나온다고요. 강인한 역할을 잘해내는 비결이 있나요?
‘바꿔’ 여전사 이미지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제게서 강한 모습을 보나 봐요. 실제로는 집에 사람들 초대해 밥 해 먹이는 거 좋아하는 사람인데.(웃음) 강단이 없진 않아요. 마음먹은 건 해내고야 말거든요.
〈헤어질 결심〉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죠. 〈파란만장〉에 이어 박찬욱 감독과 두 번째 영화입니다.
감독님은 믿고 의지하는 멘토예요. 저 결혼할 때도 축사해주셨어요.(웃음) 가수 활동할 때 우연히 사석에서 만났는데 왜 연기 안 하냐 물으시더라고요. 작품이 안 들어온다니까 놀라셨어요. 영화 〈꽃잎〉에서 정말 좋은 연기를 했고 네가 배우라는 걸 잊지 말라면서. 그 말을 듣고 다시 배우를 할 용기를 얻었죠. 그 후 〈파란만장〉부터 시작해 배우 일을 상의해주셨어요.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도 감독님이 추천해주신 거예요. 덕분에 좋은 작품을 찍었죠.
〈헤어질 결심〉의 ‘정안’은 현실적이며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죠. 이정현이 해석한 ‘정안’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굉장히 계산적인 사람. 거대한 핵 발전소를 버튼 하나로 조정하는 여자잖아요. 가정에서도 똑같이 조정하며 사는 거예요. 자기 매뉴얼이 있어 남편과 성생활도 정해진 횟수만큼 해야 하고, 그게 안 되면 아슬아슬해지는 여자죠. ‘이주임’(유태오)과의 관계를 저는 불륜으로 생각했는데, 감독님은 질투를 유발하기 위한 도구라 하더라고요? 정서경 작가님이 2부는 ‘정안’과 ‘이주임’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해서 기대 중입니다.(웃음)
톱 2백68만원, 스커트 3백48만원 모두 블루마린. 이어 커프 3만원 레이지던. 반지 18만원 타니 by 미네타니.
이정현은 현실에 발을 붙이고 생활력 있게, 악착같이 사는 배역을 잘하는 것 같아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수남’이나 영화 〈범죄소년〉 ‘효승’ 같은 역할요.
실제로 생활력이 강해요.(웃음) 살림하는 걸 너무 좋아해 집이 반짝반짝해요. 쓸고 닦고, 그릇 정리하고, 요리하면서 스트레스 풀거든요. 마트는 세일하는 시간에 맞춰 가고, 쿠폰 있는 거 없는 거 다 쓰고, 리뷰 써서 3백원 할인받으면 희열을 느끼는 타입이에요.
사람들이 저한테 독하대요. 임신하고 14kg이 쪄서 출산하고 3개월 뒤 촬영이 가능할까 했는데 쪘던 14kg을 다 뺐어요.
출산 후 몸 회복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대단해요.
저는 오히려 임신했을 때 제일 답답했어요. 입덧이 너무 심했고 마른 몸에 배만 나오니까 만삭 때는 걷질 못했거든요. 일을 못 하고 침대에만 있으니까 우울하더라고요. 그래서 아기 낳자마자 걸어 다녔고, 빨리 일하고 싶었어요.
이젠 유모차도 번쩍 들고 아기도 한 손으로 안아요.(웃음) 사실 저보다 신랑이 애를 잘 봐서 밤마다 데리고 자고 다 해요. 지금도 신랑이 보고 있어요. 시어머니도 자주 봐주시고요.
드레스 가격미정 모스키노. 목걸이 2천8백만원, 팔찌 6백20만원, 반지 9백95만원 모두 불가리.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엄마가 되니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진 것 같아요. 우선 시야가 넓어졌어요. 〈리미트〉를 임신 전에 찍었거든요. 내가 엄마고 경찰인데 내 아이가 유괴당하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며 연기했는데, 엄마가 돼 영화를 보니 미칠 것 같더라고요. 정말, 아기가 이렇게 예쁠 줄 몰랐어요. 보실래요? 너무 귀엽죠?(웃음)
요즘 Y2K 콘셉트가 유행 중인데, 당시 테크노 여전사로서 활약이 센세이셔널했죠. 그 독보적인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진 거였나요?
제가 콘셉트를 다 잡았어요. ‘와’ 활동할 때 눈이 그려진 부채 있죠? 눈동자 안에 지구가 보이는데, 외계인의 눈이란 콘셉트였어요. 부채도 비녀도 제가 만든 거고 새끼손가락에 마이크 다는 것도 제 아이디어였죠. 사장님이 그 부채는 뭐고 비녀는 뭐냐, 무섭다고 난리가 났는데,(웃음) 이렇게 아니면 안 한다고 밀어붙였어요. 당시엔 SNS가 없어 실시간 반응을 모르니 첫 방송하고 망한 줄 알았거든요? 딱 3일 후에 사람들이 앨범 사려고 줄까지 서고 대박이 난 거예요. 다음부터는 회사에서 저한테 마음껏 하라고 맡겼죠. 철없고 배짱 있던 시절이었어요. 타협도 안 하고 악으로 깡으로 밀어붙였던.
데뷔작 〈꽃잎〉을 다시 보고 왔는데, 최근 그 영화를 다시 본 적 있나요? 어린 소녀가 어떻게 그런 연기를 해냈을까 싶어요.
연기 학원도 안 다녀보고 한 첫 연기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장선우 감독님 정말 무서웠는데. 당시엔 CG도 특수효과도 없으니까 다 몸으로 직접 부딪쳐야 하는데, 필름 카메라 돌아가는 소리가 굉장히 긴장되거든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으면 대본 던지고, 저는 펑펑 울고. 엄마도 없는 숙소에서 혼자 고민하다가, 영화 속처럼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에 촬영 며칠 전부터 시골에 가서 배회했어요. 할머니들이 진짜 미친 애인 줄 알고 데려다 씻기고 밥 주고 했다니까요. ‘영화 개봉하고 나면 서태지와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겠지?’ 하며 버텼죠.
드레스, 글러브, 타이츠 모두 가격미정 돌체앤가바나.
언니 넷에 막둥이라 옷은 다 물려받고 잘 못 먹어서 키가 자라다 말았어요. 인형을 너무 좋아했는데, 엄마가 저까지 못 사주셨죠. 언니들이 자기 인형 못 만지게 하고, 놀 때도 안 끼워줬어요.(웃음) 그것 때문에 인형 콤플렉스가 생겨 돈을 벌자마자 전 세계에 딱 하나 있는 인형을 모았다니까요. ‘줄래’ 뮤직비디오에 나온 디올 디자이너가 만든 마론 인형도 제 소장품이에요. 어릴 때 한을 풀었죠.
4살 때부터. 마돈나와 마이클 잭슨이 제 영웅이었고, 유치원 때부터 문워크하고 다녔어요. 3000 대 1 오디션을 뚫고 〈꽃잎〉으로 데뷔했지만 그 후엔 귀신 역할만 들어오더라고요. 그러다 가수 데뷔를 했는데, 사실 힘들었어요. 돈 버는 기계처럼 밥도 못 먹고 잠도 밴에서 자고, 당시엔 여자 연예인이 스캔들이 나면 큰일이었던지라 매니저들이 집 앞에서 잠복근무를 했다니까요. 밤에 잠깐 나오기라도 하면 잡아가고. 그런 시기를 보내고, 박찬욱 감독님을 만나 연기를 다시 해보고 싶다는 희망을 가진 거예요.
소녀 이정현에게 지금의 이정현이 한마디해준다면?
저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에요. 일할 때도 육아할 때도 최선을 다하고, 매사에 도덕적이고 싶어요. 분리수거 안 하고 버리는 걸 보면 괴로워요. 요거트 통 하나가 일반 쓰레기통에 있다? 그냥 못 지나치죠.(웃음)
자기 일에 프로페셔널한 것. 구두 하나를 닦아도 번쩍번쩍 광나게 닦는 사람이요.
틸다 스윈튼, 주디 덴치, 귀네스 팰트로, 케이트 블란쳇, 윤여정 선생님. 할머니 될 때까지 연기하는 게 꿈이에요. 주디 덴치처럼 영화 〈007 스카이폴〉의 ‘M’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네요.
한국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윤가은 감독님. 박찬욱 감독님과도 또 하고 싶고, 동네에서 마주치는 봉준호 감독님과도 기회가 되면 좋겠네요.
저는 이경미 감독과 이정현의 만남을 언젠가 꼭 보고 싶어요.
저 이 얘기 많이 들었어요. 이경미 감독님이랑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저랑 친한 (공)효진, (손)예진이랑 일하셨어서 가끔 뵈어요. 같이 하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톱, 스커트, 재킷 모두 가격미정 아미. 슈즈 1백18만원대 세르지오 로시.
더 멋있어지지만 불안해지는 것. 〈리미트〉 같은 여성 원톱 영화가 나오기 정말 힘들거든요. 다행인 건 OTT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배우에게도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어요. 콘텐츠가 다양화되는 흐름을 따라 연출자, 제작자분들께 나이 많은 여성 이야기도 많이 써주시길 부탁드리고 싶네요.
여성 독자들에게 힘이 되는 한마디를 해줄 수 있나요?
어떤 일이라도 마음먹은 게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쭉 하세요. 저 역시 해야겠다 결심하고 밀고 나가니까 끊길 것 같다가도 재개할 수 있었어요. 다만 육아는 정말 주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이는 한 마을이 함께 키운다고 하잖아요? 아빠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가족들도 단합해 도와줘야 해요. 그리고 일을 포기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