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선 배우보다 천재 감독으로 유명했다는 조현철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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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선 배우보다 천재 감독으로 유명했다는 조현철

배역마다 놀라우리만치 새로운 얼굴로 변모해 ‘작품마다 초면’이라 불리는 배우. 충무로에선 일찍이 연출로 떡잎을 발산했던 조현철이 티빙 오리지널 <전체관람가+: 숏버스터>의 단편영화 <부스럭>을 내놓는다. 오래 보아야, 가만히 보아야 할 감독의 얼굴로.

COSMOPOLITAN BY COSMOPOLITAN 2022.04.20
 
조현철의 필모에서 〈D.P.〉의 ‘조석봉’ 캐릭터가 빠질 수 없어요. 이후 제안받는 캐릭터나 시나리오에 변화가 있었어요?
예전에는 막내 팀원이나 주인공 친구 역을 많이 제안받았는데 폭이 좀 넓어진 것 같아요. 최근엔 연출할 기회가 많아져서 배우 일과는 조금 멀어진 느낌이에요.
 
그래서 오늘은 감독 조현철을 만나러 왔어요. 감독 8인의 단편영화 제작기가 담긴 티빙 오리지널 웹예능 〈전체관람가+: 숏버스터〉(이하 〈전체관람가〉)에서 〈부스럭〉을 연출했는데, 어떤 영화예요?
친구 커플이 헤어진 후, 그들의 이별 사유를 파헤치려는 과정에서 ‘세영’이 겪는 미스터리한 일을 그려요. 여러가지 주제로 읽힐 수 있는 이야기이고, 약간 돌아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어쩌다 이렇게 약간 ‘돌은’ 영화가 나온 거예요?
한예종 동기 형인 이태안 감독님이랑 공동 연출을 했어요. 영화를 너무 재밌게 만드는 사람이라, 제가 태안이 형 영화를 보고 싶었거든요. 〈전체관람가〉에서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존재들이 좀 더 세상 밖으로 나왔으면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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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의 배우로도 나섰어요. 과거 독립 영화 시절에도 연출과 연기를 겸했는데, 좋은 배우 찾다 없어서 직접 등판한 건가요?
남자 배우한테 쓸 수 있는 예산이 없더라고요. 겸사겸사 직접 출연하는 게 자연스러운 상황이었어요.(웃음) 
 
천우희 씨가 주연을 맡았던데.
2017년에 드라마 〈아르곤〉에서 만나 알고 지냈거든요. 지난해에 우희 씨가 예능 〈바퀴 달린 집〉에 함께 출연하자고 제안했는데, 마침 저도 〈전체관람가〉 제안을 받은 시기였던지라 주거니받거니 섭외하게 됐어요.
 
연출가와 배우 사이로 만나 작업해보니 동료 배우로 만났을 때와 다른 점이 있었어요?
배우로서 갖고 있는 얼굴이 너무 대단했어요. 〈아르곤〉 때는 연기를 함께 하니 실감할 기회가 없었는데, 감독으로서 화면을 모니터링하게 되니 훨씬 더 잘 보이더라고요. 우희 씨는 현장에서 태도는 정말 밝은데 연기에 돌입하면 엄청난 걸 보여줘요.
 
〈전체관람가〉가 관찰 예능이라, 영화 촬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또 수십 대의 카메라가 영화 촬영 현장을 찍는 독특한 그림이 펼쳐졌어요.
관찰 예능에서 연기자들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도 그렇고 엔터 산업 자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짜여진 각본처럼 느껴져서요.
 
대본 없는 리얼리티 쇼인데도요?
24시간 관찰당하는 가운데, 연기자가 제정신으로 뭔가를 하려면 어떤 역할을 연기한다는 생각으로 임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저도 계속 어떤 역할 놀이를 하고 있었던 거죠. 근데 그게 현실에서도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아요. 모두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잖아요?  문제는 많은 경우 그 역할 놀이가 개인의 정체성을 제한한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우리 모두 사랑을 할 때 한 번쯤은 멜로 드라마 속 주인공의 모습을 모방하잖아요. ‘그게 과연 사랑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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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만 봐도 스태프들이 감독님을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현장에서 어떻게 하길래 싶을 정도였어요.
그냥 제가 좀 타격 있을 정도로 밥을 많이 사줘서… 많이 사줘요….(웃음)
 
역시 비결은 카드 출혈이군요. 반면 현장에서는 꽤 강단 있는 감독이라고 들었어요. 배우와 감독일 때 조현철의 모드가 달라지나요?
확실히 연출이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도 동네 애들 모여서 전쟁놀이 같은 걸 할 때 “너는 여기서 이거 해” 하며 역할을 주는 친구였어요. 권위를 가지고 한 건 아닌데, 돌이켜보면 지금 하는 감독 일과 유사한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낯도 많이 가리고 내성적인 사람인데, 리더 타입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네요.
맞아요. 오히려 연출을 하면서, 제가 어렸을 때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게 됐어요.
 
공개는 〈부스럭〉이 먼저지만 타임라인 상으론 첫 장편영화 〈너와 나〉를 먼저 촬영했어요.
〈너와 나〉는 수학여행 전날 두 친구가 다투고 화해하다 서로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하루에 관한 이야기예요.
 
소녀들의 우정과 수학여행을 소재로 첫 장편을 구상한 계기가 있어요?
제가 주제를 찾아나선 게 아니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찾아온 느낌이에요. 장편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당시의 제 상황이 모여 이 얘기를 할 수밖에 없도록요.
 
어떤 일을 겪었길래요?
2016년 2월에 어떤 사고를 계기로 죽음을 실감했어요. 언젠가는 모두가 죽고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게 될 거라는 것도요. 죽음 앞에서 아름다움과 공포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꼈어요. 그해 4월에 세월호 2주기가 가까워올 무렵 꿈을 꿨는데, 광화문에 있는 애들 영정 앞에서 내가 꿨던 아름다운 꿈 얘기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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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이네요.
제 나름대로 낭만적인 서사를 만든 거죠. 근데 막상 영정 앞에 서니, 그런 생각이 진짜 철없고 허무맹랑하게 느껴졌어요. 정작 애들은 여기 없는데, 꿈 얘기를 해주겠다는 제 감성이 한심해서 깊은 무력감으로 다가왔어요.
 
본인이 할 수 있는 게 영화를 만드는 일이었군요?
저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니까요.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한 건 아니에요. 반드시 한번은 내뱉을 수밖에 없는 얘기였고, 일종의 제 욕망이죠. 사실 저는 5년 동안 계속 이 이야기를 준비했기 때문에 세월호 사건이 저와 가까이 있는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 일이 상당히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워요.
 
곧 관객과 만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데,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상품성과 수익성으로 판단되는 이 판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죠. 하지만 저는 이 영화가 새로운 경향의 대중 서사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상업 영화 연출은 이제 시작이지만 독립 영화 판에서는 뼈가 굵어요. 영화 한 지 10년이 다 돼가는데 의외의 인맥이랄까, 친한 영화인 동료 있어요?
대부분 작가, 연출자예요. (박)정민이랑도 친하고.
 
박정민 씨는 “조현철이 너무 천재여서 조현철 때문에 연출 안 하고 연기만 하기로 결심했다”라는 말을 한 적도 있죠. 고등학교와 대학교 모두 동창인데, 둘은 어떤 친구였어요?
정민이는 옷을 잘 입었어요. 학교 다닐 때 자기를 엄청 잘 꾸미는 친구였죠. 저는 거의 숨어 지내는 학생이었고요. 자기가 더 잘나갔으면서 저한테 자꾸 천재라고….(웃음)
 
이력도 다양해요. 독립 영화 〈영아〉에서 김고은 씨와 멜로 연기를 펼치기도 했죠. 알고 보면 독립 영화계의 공유였던 건가요?
2011년 일이니 너무 옛날 얘기긴 하네요. 근데 저 학교에서 멜로나 코미디 연기 많이 했었어요.(웃음)
 
독립 영화 연출할 때는 주로 타인한테 미안해하는 이야기를 많이 만들었어요.
미안함은 〈너와 나〉에서도 계속해서 나오는 굉장히 중요한 감정이에요.
 
‘사랑’, ‘미안함’ 같은 단어를 자주 쓰는데, 말에는 의식이 투영되곤 하잖아요.
왜 자꾸 미안하나 했더니 뭔가 이해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아요. 미안함이란 내가 다른 사람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감정 같거든요.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려면 먼저 사랑이 있어야 되는 법이고요.
 
요즘은 뭐에 관심이 있어요?
나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요.(웃음) 되게 현실적인 문제예요.
 
왜요?
나무를 보고 있으면 계속해서 뭔가를 말하고 있어요.
 
나무가 뭐라고 했는데요?
제가 제주 산방산을 되게 무서워하다가 최근에 친해졌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저는 이 친구가 할머니라고 생각하는데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기다리면 다 된다”고. 영화 작업도 나무가 싹을 틔우고 뿌리를 뻗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너와 나〉 역시 성실하게 때를 기다린다는 느낌으로 작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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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세계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독특한 관점이 생기기도 하겠어요. 지금 조현철처럼요!
왜 이 세계의모든 것이 인간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계속해서 새로운 관점을 얻으려는 접근이 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거든요.
 
과거 인터뷰에서 “다들 사랑하고 있는데 사는 게 피곤해서 그냥 지나치는 것들이 아쉬워 영화로 보여주고 싶다”라는 말을 했더라고요. 조현철 감독님은 뭘 사랑하나요?
저는 종종 이 세계 자체와 저와 우주, 시공간, 이 모든 게 허상이라는 의심을 하거든요. 그럼에도 제가 느끼는 건 사랑이 존재한다는 거예요. 사랑이라는 것은 남녀가 사랑하는 열렬한 감정이라기보다는 이 세계가 작동하는 아주 근본적인, 근원적인 힘에 가까운 느낌이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가령 무엇을 볼 때 사랑의 힘을 느끼나요?
요즘은 매일 목련을 지켜보는데, 목련이 겨울 동안 자기 줄기에서 수액을 순환시키고, 겨울 눈을 틔워 그 안에서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꽃을 피우고,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열매를 맺는 작동 방식 안에 사랑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현철에게는 이 힘이 어떻게 작동해요?
모든 것은 때가 있고, 때를 기다리면서 자신의 몫을 성실히 해나가는 흐름 안에 근원적 사랑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이걸 인류애라고 생각했었는데 약간 더 넓혀지고 있나 봐요. 인류, 그러니까 인간만의 얘기가 아닌 거예요. 저 나무들 안에 사랑이 있고, 저한테 “다 기다리면 된다”고 말했던 그 산방산에도 일종의 사랑이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이러나저러나 사랑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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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Feature Editor 하예진
    Photo by 채대한
    Stylist 이민규
    Hair 박규빈
    Makeup 구현미
    Set Stylist 박주영
    Assitant 김미나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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