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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성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웹툰 <정년이>의 두 작가

웹툰 <정년이>의 주인공, 국극 배우 ‘정년이’는 무려 1950년대에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젠더성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든다.

BYCOSMOPOLITAN2021.03.05
 
 (서이레)톱 가격미정 사카이. 귀고리 21만원 포트레이트리포트. (나몬)재킷 가격미정 사카이. 이어 커프 2만원 에브리벌스데이.

(서이레)톱 가격미정 사카이. 귀고리 21만원 포트레이트리포트. (나몬)재킷 가격미정 사카이. 이어 커프 2만원 에브리벌스데이.

〈정년이〉로 지난해 〈2020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에서 콘텐츠상을 수상했어요. 그런 ‘평’에 대한 기대가 있었나요? 상 받고 나서 달라진 마음가짐이라든지. 
서이레(이하 ‘이레’)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다만 5년 동안 작품을 쓰면서 ‘누가 내 작품을 보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정년이〉는 여성 인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보시는구나, 양성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이 작품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구나’라는 걸 알게 됐죠. 
나몬 상으로 부담감이나 책임감을 느끼진 않아요. 그냥 ‘앞으로도 하던 대로 하면 되겠다, 가던 길을 계속 가면 된다’는 공언을 받은 기분 정도인 것 같아요. 
 
〈정년이〉의 시대적 배경인 1956년은 여자가 자기 뜻대로 삶을 펼치고 제 목소리를 내며 사는 게 거의 불가능한 시대예요. 실제로 다양한 작품에서 여성의 삶이 그렇게 묘사되기도 했고요. 그런데 작품을 정주행하다 보면 지금을 사는 여성들이 가질 법한 생각, 느껴야 할 감정이나 할 법한 말들이 65년 전에 살았던 여성들에게서 보여요. 물론 웹툰은 픽션을 전제로 하는 장르지만 그래도 궁금해요. 정말 이런 여성들이 있었을까? 실존했던 삶이 아니라 ‘이상’이 아닐까? 
이레 그 시대에도 굉장히 다양한 사람이 살았어요. 1980년대에 만들어진 드라마가 그때 사람들이 원하는 가치관으로 그 시대를 바라보듯, 지금 2021년엔 우리의 가치관을 통해 1950년대를 조망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요. 실제로 당시 국극 팬 중엔 “내가 한번 국극단을 운영해봐야겠다”라는 포부로 전 재산을 털어 1억을 투자한 여성도 있었어요. 결국 잘 안 됐지만 자기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대범한 기개를 가진 분이었죠. 사람들이 과거에 보고 싶었던 ‘전후 시대의 여성상’이 ‘순종하는 여자’였다면, 저는 1950년대를 살았던 다양한 여성 중 제가 보고 싶은 삶을 살았던 인물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런 서사를 여성 국극을 하겠다고 모인 이들에게서 찾은 거죠.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던 여자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누군가가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지. 
 
여자가 만들고, 여자가 연기하고, 여자가 보는 여성 국극은 여성이 남성의 역할까지 도맡아 연기한다는 점에서 요즘의 ‘젠더프리’ 경향과 맞닿아 있어요. ‘여성 국극’의 세계를 조명한 작품으로 2018년 MMCA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정은영 작가도 이 점에 주목했죠. 〈정년이〉에서 ‘남성성’을 완벽히 복제한 인물들 또한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여성성’이란, ‘남성성’이란 뭘까? 두 사람의 정의가 궁금해요.
나몬 작품 안에서 그려지고 있는 ‘남자됨’과 ‘여자됨’은 새로운 여성상이나 남성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합의된 여성과 남성의 모습에 가까워요. 여성 국극 배우가, 그러니까 ‘정년이’가 그런 ‘남자’를 연기하면서 그 틀을 전복시키고 고정관념을 교란시키는 거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일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데 집중했고요. 저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특별히 어떤 언어로 고정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이레 사회가 말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가두는 것 아닐까요? 남성성과 여성성을 정의하기보다는 그 통념을 재미있게 가지고 놀았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 여성성에서 남성성으로, 남성성에서 여성성으로 쉽게 옮겨가고 교차하는 시도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지금 현재 ‘여성’에 씌워진 프레임은 뭐라고 생각해요? 혹은 요즘 여성상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줘도 좋고요.
이레 현재의 여성을 몇 가지 단어로 표현하기가 참 어려워요. 굳이 고르자면, ‘예민하다’는 프레임? 특히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한 이들과 여성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너 되게 예민하다”라는 반응이 돌아오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진짜 예민한 걸까? 상대가 느끼는 것을 별거 아닌 걸로 치부하려고 하는 말은 아닐까? ‘여자는 좀 예민해’가 책임을 떠넘기려는 말은 아닌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나몬 여성들이 전보다 많이 솔직해졌다고 생각해요. 불과 10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거든요. 싫은 건 싫다고, 좋은 건 좋다고 말하는, 자기 표현에 아주 분명한 존재들이오. 
 
웹툰이라는 장르에서 여성 작가를, 혹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대하는 분위기나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나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변화를 이야기해줘도 좋고요.
나몬 연재하며 느낀 건데, 〈정년이〉에 ‘여성 서사’라는 타이틀이 항상 붙어요. 그럼 “이건 여자 이야기니까 무조건 봐야 해”나 “야, 이런 걸 왜 봐. 이거 페미니즘 작품이잖아”라고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이들이 있어요. ‘그냥 재미있는 작품으로 봐주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여성 서사가 보편적인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에요. 지금의 과도기를 지나면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요. 
이레 저는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한 작품의 주인공이라, 변화를 좀 더 생생하게 느껴요. 데뷔작을 처음 선보일 땐 관계자에게 “여자가 주인공인 작품이라 못 나갈 수 있다. 잘되기는 어려울 거다” 같은 얘기를 들었고, 실제로 잘 안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정년이〉를 시작할 땐 환영받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점도 물론 있죠. 사람들이 〈정년이〉의 계보를 따질 때 소년 만화를 예시로 들곤 해요. 순정 만화를 ‘여자애들이나 보는 만화’ 혹은 ‘작품성 없이 연애나 표현하는 만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당연히 이 만화는 순정 만화에서 계보를 찾아야 해요. 좋은, 작품성 있는, 재미있는 순정 만화가 얼마나 많은데요. 순정 만화에 대한 새로운 장르적 평가, 제대로 된 계보 잇기가 따라줘야 하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그런 변화를 바라보고 있어요. 
 
〈정년이〉 이후 또 여성의 서사를 그리게 된다면 그 이야기에선 어떤 ‘여자’를 보여주고 싶나요? 
나몬 그걸 어떤 단어나 문구로 축약해 정리하기가 참 어렵네요. 너무 다양한 여성의 삶이 있으니까요. 음… 어떤 것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여자랄까요. 
이레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 ‘여성’이 어떤 점에선 ‘소수자’의 입장을 띠는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불편함이나 차별 등 감내해야 할 것이 많은 건 사실이니까요. 그럼에도 많은 여성이 자기 삶을 살며 자신의 방법대로 일생을 꾸려나가고 있어요. 우리가 나이 든 여성을 볼 때 어떤 숭고함과 존엄을 느끼는 이유기도 하죠. 그런 사람의 삶을 보여주고 싶어요. 
 
두 분의 얘기를 듣다 보면 이 질문에 도달하게 돼요. 여성이 여성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의식하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왜 중요할까? 
이레 세상이, 사회가 여성으로 하여금 여자를, 혹은 자기 자신을 너무 쉽게 미워하게 만들어요. 여자가 거울을 볼 때 ‘난 왜 이렇게 생겼을까?’, ‘피부가 좀 더 하야면 좋을 텐데’, ‘쌍꺼풀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가진 고유함을 부정하고 미워하기 쉽게 만들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자기 자신에 대해, 여성의 서사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잘 알면 미워할 수 없거든요. 나를 잘 알면 스스로 사랑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다른 여성의 삶도 사랑할 수 있게 되니까요.
 
서이레&나몬(웹툰 〈정년이〉 스토리·작화 작가)
서이레(좌)는 글로, 나몬(우)은 그림으로 그 시절 우리가 알았던 여자의 전형(순종적이며 수동적인, 순응하는)을 깨고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프레임을 부수며 ‘순정 만화’의 새 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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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하예진 / 김예린 / 김지현 / 류진(프리랜서)
  • art designer 박유진
  • photo by 표기식
  • Stylist 엄아름
  • Hair 오지혜
  • Makeup 최민석
  • Assistant 김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