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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고 급진적인> 국회의원 장혜영의 의정 보고서

한 해 동안 국회의원의 활동 결과를 기록한 의정 보고서엔 대개 과정이 생략된 결과가 담긴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장혜영은 임기 첫해에 행한 노력과 고민의 과정을 한 편의 이야기로 엮은 문고형 의정 보고서를 내놓았다. <차분하고 급진적인>이라는 제목 그대로, 지금 장혜영은 미래의 상식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BYCOSMOPOLITAN2021.03.02
 
베스트 재킷, 스커트 모두 가격미정 아크리스. 귀고리 6만5천원 인사일런스. 뱅글 (오른손)7만4천원대 모노노어웨어. (왼손)각각 22만원대 모두 포트레이트 리포트. 슈즈 79만원대 율이에.

베스트 재킷, 스커트 모두 가격미정 아크리스. 귀고리 6만5천원 인사일런스. 뱅글 (오른손)7만4천원대 모노노어웨어. (왼손)각각 22만원대 모두 포트레이트 리포트. 슈즈 79만원대 율이에.

비례대표 시절에 이메일을 주고받은 일이 있는데, “어려운 시기지만 서로 기대며 다정하고 활기차게 버텨나가자”라는 인사말이 기억에 남았어요. 임기 첫해의 장혜영은 다정하고 활기차게 약속을 지키는 의원이었을까요? 배우면서 실전을 치러야 하는 압박감이 있었지만, 권력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진짜 정치를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입법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활용해보면서 ‘이런 걸 할 수 있는 거구나’ 하고 깨닫는 한편 ‘이런 걸 할 수 있었으면서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했어?’ 싶었죠. 하하. 이제는 지형 파악이 됐으니 진짜 게임을, 승부를 해야죠. 
 
전략은요? 국회에서 입바른 20~30대 여성 정치인은 거의 신인류에 가깝잖아요. 청년이자 여성이 웃지 않고 눈을 똑바로 보면서 의견을 얘기하는 것을 기분 나빠하고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 생각하는 일부 중년 남성들도 계시니까요. 미국 연방 대법관을 지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쓴 책에 “과거에 대해 내가 관대한 태도를 가지는 이유는, 지금의 상식은 과거에는 상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현재와 같은 잣대로 과거를 평가하면 우리는 화해할 수 없죠. 지적이 아니라, 이 사람이 다음에 변화하길 바라는 진심을 가지고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렷하게 말하는 것과 독선적인 것은 달라요. 
 
할 말 다 하고 어디로 튈지 예측되지 않는 낯선 존재라 기성 국회를 긴장하게 만들지는 않았을까요? 존재하는 것만으로 긴장을 주는 건 즐겁고 명예로운 일이라 생각해요. ‘까탈스러운 페미니스트니까 여성 정책만, 청년이니까 청년 정책만, 정의당이니까 성 소수자 정책만 하겠지’라는 식으로 색안경을 끼고 규정된 프레임으로 저를 보는 사람이 많지만, 그 벽을 뛰어넘어 나도 당신과 똑같은 인간으로 존재할 뿐이라는 동의를 이끌어내는 게 쉽지 않죠. 하지만 변화는 진짜 어디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거기 때문에 평소에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 변화를 위해 한 해 동안 어떤 노력을 했는지 정리한 게 바로 의정 보고서죠. 2020 의정 보고서를 딱딱한 보고서 형식에서 탈피해 에세이처럼 술술 읽히는 인터뷰집 형식으로 만들었더라고요. 의정 보고서는 국회의원의 자기 자랑인데, 바쁜 인생 속에서 남 자랑하는 걸 읽어줄 사람은 없죠. 저의 경쟁 상대는 다른 의원님들의 의정 보고서가 아니라 넷플릭스라고 생각해요. 하하. 넷플릭스를 볼 시간에 의정 보고서를 봐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들고 싶었어요. 
 
나이키 vs 닌텐도 구도보다 더 치열한 경쟁 구도네요. 의정 보고서라는 걸 처음 접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집어들 수 있고, 읽고 난 뒤에는 나를 위해 만든 책 같다는 느낌을 주는 무언가를 이 머나먼 정치의 섬에서 사람들에게 던져보자는 마음이었죠. 적어도 딱 ‘그만큼’은 사람들한테 정치가 가까워졌다면 그걸로 좋아요. 정치라는
건 정말 이상한 생물이어서 자기한테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의 권리는 잘 대변하지 않거든요. 이 의정 보고서를 통해 정치와 좀 더 가까워진 분들이 자기 권리를 더 많이 주장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요즘 핫한 SNS ‘클럽하우스’에 의정 보고서 〈차분하고 급진적인〉을 읽고 리뷰하는 방도 있더라고요. 직접 본인이 등판하기도 했죠?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저마다의 영역에서 피드백을 한 게 재밌었어요. 한 디자이너분은 책 넘길 때 종이가 빳빳해서 넘기기 힘들었다는 피드백을 주셨죠. 
 
‘쉬운 언어’로 정치를 설명하는 건 장혜영이 정치를 대하는 태도기도 해요. 작가들에게 ‘이제는 쓰지 않는 말’을 주제로 글을 모으는 〈내가 이제 쓰지 않는 말들〉 캠페인도 진행할 예정이라고요. 제 경우엔 ‘미쳤다’는 말을 쓰지 않아요. 감탄사로 쓸 때도 있지만 필연적으로 정신 장애에 관련된 단어니까요. 저는 수많은 정신 장애인 친구가 있고, 그들이 정신 장애로 얼마나 힘들어하고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지 지켜보면서 더 이상 쓸 수 없었죠. 
 
대체할 수 있는 말이 대번에 떠오르지는 않네요. 사실 저도 못 찾았어요. ‘This is crazy’라는 뜻으로 얘기하고 싶은 때가 있더라도 그냥 참는 거죠. 제가 말 한마디 참는 걸로 세상의 편견이 얼마나 사라질까 싶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죠. 그런 식으로 좀 더 상냥해지고 싶어요. 더 많은 사람이 그런 노력을 하면 훨씬 더 다양한 사람이 자기답게 살 수 있을 테니까요. 편견 없이. 
 
영화 〈킹스맨〉의 명대사 “Manner maketh man”처럼 들리기도 하는데요, 정치에서 ‘언어’가 중요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언어는 인류가 규칙을 정교하게 쌓아나가는 과정 그 자체였다고 생각해요. 약속의 방을 만들어가는 방법인 거죠. 정치는 결국에는 ‘우리 어떻게 모여 살까’라는 고민에 대한 답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언어는 중요할 수밖에 없어요. 가장 정치의 본질이기도 하고요. 
 
장혜영이 정치하기 이전에 글 쓰는 사람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언어에 민감한 게 더욱 이해가 되는 대목이죠. 여전히 많은 사람이 학교와 이별하며 대자보를 붙였던 노란 머리의 대학생 장혜영, ‘생각많은 둘째언니’를 운영하는 크리에이터 장혜영의 모습을 기억해요. 불가피하게 정치인으로서의 공적 캐릭터(부캐)를 만들어야 하는데, 부캐에 반영하고 있는 태도와 습관이 있다면요? 정치는 나와 다른 사람들하고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일이 핵심이에요. 말이 좋아 다양성이지, 다양성은 굉장히 불쾌한 거거든요. 그래서 다름을 불쾌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연습을 해요. 리더가 된다는 건 어떤 순간에도 상대를 위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거라 생각해서요. 
 
하지만 24시간을 그렇게 ‘성인’ 같은 부캐로 살 수는 없는 법이죠. 본캐로 돌아오면 그 끓어오르는 감정을 어떻게 해소하나요? 집에서는 정말 다른 사람이 돼요. 하하. 보통의 사람처럼 술도 마시고, 책도 읽고, 영화도 봐요. 국회에 있다 보면, 그곳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논의하는 느낌이라서요. 근데 집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다 보면 ‘맞아, 세상은 밖에 있는 거였지’ 하는 마음에 그런 사소한 일상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어요. 결국 국회에서 우리가 박 터지게 싸우고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결국엔 수많은 사람이 이런 사소한 행복과 일상을 누리기를 바라기 때문인 것 아닐까요? 나도 언젠가는 꼭 ‘여기’로 돌아와야겠다고 다짐해요. 
 
“무사히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요, 장혜영은 무사히 할머니가 돼가고 있나요? 타인과 불안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청년들, 비단 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중년들도 미래의 늙은 자신을 걱정하잖아요. 늙지 않아도 죽을 것 같은 불안한 여건 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사는 것 같잖아요. 나만 이렇게 살기가 힘든 건가 하는 불안에 외로워질 때, “아니요. 나도 비슷한 기분이에요”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최근 세간의 이목이 쏠릴 일이 있었죠. 이번에는 장 의원님이 ‘다정하고 활기차게’ 지내자는 인사를 들을 차례네요. 다정하고 활기차며 차분하고 급진적으로 지낼 생각이에요. 하하. 저는 제 결심에 공동체적 해결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제가 속해 있는 당이 저의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어떤 분들이 계시죠. 하지만 그건 절반에 불과하고, 필연적으로 제겐 우리 사회라는 공동체의 의미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저는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한 사람으로 살아가니까요. 저는 변함없이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고, 시민 한 분 한 분께 ‘그럼 공동체로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져드리고 싶어요.
 
장혜영(21대 국회의원) 
정의당. 국회의원 임기 1년 차.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전에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자 크리에이터로 활동했다. 무사히 할머니가 되는 것이 꿈이며, 그런 사회를 직접 만들기 위해 여의도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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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하예진 / 김예린 / 김지현 / 류진(프리랜서)
  • art designer 박유진
  • photo by 표기식
  • Stylist 엄아름
  • Hair 배경화
  • Makeup 김부성
  • Assistant 김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