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PD 김희나(3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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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슈트 가격미정 레호. 반지 19만8천원 르이에. 스니커즈 9만2천원 컨버스. 안경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사람들이 레진코믹스는 잘 알아도 담당 PD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를 것 같아요.
콘티를 짜는 과정에서 등장인물들 간의 감정 흐름이 자연스러운가, 캐릭터나 묘사가 반감을 일으키지는 않나, 설정 오류가 있지는 않나를 두고 작가님과 의견을 나눠요.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할 때 “외꺼풀이면 어떨까요?”, “점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라는 식으로 의견을 내고요. 완성작에서는 성기 윤곽선이 안 보이게 잘 처리됐는지, 대사에 오타는 없는지를 확인하죠.
〈야화첩〉에서 성기는 전부 희게 칠해졌더라고요.
법률상 규정이에요. 음모, 성기 윤곽선, 성기 접합 부위가 드러나는 것, 항문, 형태가 적나라한 성 기구 등을 표현하는 데는 제약이 있어요.
일본 만화는 수위가 훨씬 세죠?
성기뿐 아니라 성행위 중 성기 내부와 액체가 오가는 것까지 그리기도 해요. 어릴 때는 보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대부분의 일본 만화는 한국 시장에 맞게 변형하죠. 예전에는 교복 입은 여성 캐릭터의 치마 아래로 팬티가 보이는 장면이 마치 서비스처럼 들어갔는데, 요즘에는 인식이 많이 바뀌어 문제 되는 장면은 삭제 요청해요.
만화를 잠정 독자에 따라 남성향과 여성향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가장 큰 차이가 뭘까요?
보통 남성향 만화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평범한 인물이고, 여자는 굉장히 예쁜데 갑작스러운 신체 접촉과 성관계에 거리낌이 없는 데다 실제로 하고 나서도 뒤끝 없는 캐릭터로 나와요. 그러니까 뭘 해도 크게 고민이 없는 캐릭터인 거죠. 반면 여성향 만화는 주인공들 간에 신체 접촉이 이뤄지기까지 심리적 긴장감이 계속 유지돼요. 결국 서사가 있느냐 없느냐 차이예요.
그리는 과정도 많이 다를 것 같아요.
남성향 성인 만화는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위주로 묘사한다는 흥행 공식이 있어요. 반면 여성향 로맨스물이나 BL물은 성행위 하나를 그리더라도 섬세한 심리전이 필요해서 손이 더 많이 가고, 정형화하기 힘들죠.
〈야화첩〉을 보면서 표정 묘사가 정말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실제 작가님은 어떤 고민을 가장 많이 하던가요?
심리적 흐름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해요. 이른바 ‘정사’ 신이 꼭 들어가야 하지만, 너무 자주 하거나 정사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뭔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으면 주인공인 ‘윤승호’와 ‘백나겸’의 캐릭터가 무너질까 봐 걱정하죠. 정사 신에서 등 근육, 허리와 종아리 라인을 아름답게 그리느라 에너지를 많이 쓰기도 하고요.
대다수가 여성 독자인데, 여자들이 BL을 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비주얼에 대한 판타지를 만화에서 충족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선망할 수 있는 멋있는 남자 캐릭터가 하나보다 둘 나오면 좋은 거죠. 심플한 이유예요.
남자 둘의 동성애 로맨스를 보여주는 BL물은 공수 역할이 결국 성 역할을 답습한다, 여성 서사가 배제된다는 등의 비판을 받기도 해요.
요즘은 주요 인물의 외모나 체격이 비등해서 역할을 구분할 수 없는 웹툰도 많이 나와요. 체격 좋고 외모가 우월한 남성 캐릭터 둘이 아옹다옹하면서 케미를 뿜어내는 작품들이 인기가 많아요. 반대로 최근 몇 년 새 ‘여공남수’ 장르의 헤테로물이 흥행하기도 했어요. 〈S플라워〉 같은 작품은 여성이 오히려 주도권을 쥐고 SM 플레이에서 S 역할을 하며 자유롭게 여러 남성과의 관계를 이끌어가는 내용이죠.
〈야화첩〉에는 강제 추행이나 살인 등 불편한 장면이 종종 나와요.
〈야화첩〉은 사극 BL이에요. ‘윤승호’는 양반이고 ‘백나겸’은 천민이라는 신분적 구도가 설정돼 있어 현대법에 적용시킬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시대적 배경을 활용한 거죠. 〈야화첩〉의 작가님만 해도 연재 중간 있었던 인터뷰에서 “가장 성격파탄자에 가까운 캐릭터는?”이라는 질문에 “단연 윤승호”라면서 “저런 캐릭터는 현실에선 감옥에나 있죠”라고 답한 적 있거든요. 누구보다 현실과 작품의 구분이 뚜렷해요.
콘텐츠 내에서 성적 판타지의 영역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죠?
저만 해도 20대 초반부터 성인 만화 콘텐츠를 만들며 성교 장면을 거의 매일 봤지만 제 일상은 누구보다 보수적이에요. 만화에 나오는 섹스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일찍 깨달았죠.
직업이 성인 만화 다루는 일이라 생긴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아요.
가족 식사 자리에서 제가 ‘삽입’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는 거예요. 저에게는 그 단어가 ‘길을 걸었다’, ‘물을 마셨다’라는 말과 똑같은데 말이죠.
아직까진 ‘섹스’ 자체가 터부시되죠.
웹툰에서도 매번 직접적으로 ‘섹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보다 ‘잤다’, ‘했다’ 같은 단어로 순화를 몇 번 해줘요. BL물이 성인물과 동일시되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독자의 니즈가 각기 다르죠. 섹스 판타지를 충족하기 위해 BL을 보는 여성 독자들은 섹스하고 싶을 때 본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남자 아이돌 군무 보듯 BL을 ‘덕질’의 측면에서 소비하는 독자들도 있어요. 앞으로도 소비 트렌드를 반영해 끊임없이 바뀔 거라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