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랙퀸 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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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랙퀸 모어
지금은 화장이나 표현이 예전보다 많이 약해진 편이에요. 저는 원래 기괴한 스타일을 좋아했거든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더 놀라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악취미가 있었죠. 하하. 반평생 드랙 해오면서 욕을 정말 많이 먹었어요. 클럽에서 공연하다 보면 취객들이 험한 말도 막 던지거든요. “재수 없다”, “징그럽다”, “역겹다”…. 어느 순간부터는 싸우는 데 지쳐 활동명을 ‘모어’로 바꾸고 화장도 좀 더 순하게 하기 시작했죠.
‘모어’라는 이름의 뜻이 뭔가요?
털 모(毛)에 물고기 어(魚). 털난 물고기라는 뜻이에요. 사회에서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제 위치를 표현했어요. 저는 남자와 여자를 나누는 것도 지긋지긋한 성 소수자인 데다, 드랙 신 내에서도 특이하다는 취급을 많이 받았어요. 예를 들어 저는 공연에서 남자 노래도 하고, 터킹(남성 성기를 테이프로 고정시켜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것)은 하지 않거든요. 저한테 고추 달린 거 사람들이 다 아는데 그걸 숨긴다고 더 아름다운가요?
첫인상으로만 보면 굉장히 ‘여성스러운’ 면이 많거든요.
지금도 길에서 사람들이 제게 다짜고짜 아줌마라 하기도 해요. 원래 정체성은 트랜스젠더였어요. 나는 분명 여자인데 남자로 태어난 내 몸을 사랑할 수가 없었죠. 그러다가 어린 나이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남편은 그때나 지금이나 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전환을 포기했어요. 시간이 흐르니 인생을 조금 알 것도 같았고요. ‘나는 트랜스젠더도 게이도 아닌 그냥 인간’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작년 연극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안무와 움직임을 맡았을 때 쓴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는 모두 세상에 아름답게 태어났지만 세상이 말하는 아름다움과 비교되는 순간 그 아름다움은 힘없이 무너진다”라고요.
사람들이 늘 저를 ‘호모’라 놀리고 부모님께 가서 “너희 아들은 왜 그러냐, 아들이냐 딸이냐”를 따져 묻곤 했어요. 매일 맞았고, 매일 죽음을 생각했고요. 그러면 엄마는 저에게 항상 “지민아, 너는 너무 예쁜 내 아들인데 사람들이 너한테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셨어요. 사람은 누구나 그 자체로만 존재한다는 믿음만 있으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거든요.
대부분의 사람은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하고, 그 범주에서 벗어나면 불안함을 느껴요. 성별도 마찬가지죠.
스스로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는 환경이라 그렇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자기를 하나의 장르라고 생각해야 해요. 이 세상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나만의 장르. 제게는 ‘모어’가 하나의 장르인 거예요. 나이키처럼 세계적인 이름은 아니지만, 나만의 정체성이 있다는 아름다움과 성취감을 느끼거든요.

드랙퀸 모어
제 평생 일순위는 드랙이에요. 드랙 없이 춤을 춘다면 하다못해 하이힐이라도 신어요. 제게 드랙은 애증이에요. 이렇게 화보 촬영을 하거나 클럽에서 쇼를 하면서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저는 3할 정도이고, 7할은 숨고 싶어 하거든요. 계속 보여지기만 하다 보면 내실이 없어져요. 사람들은 제가 드랙을 할 때 보여주는 기괴하거나 아름답거나 웃긴 행위만을 기억하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겠지만, 저는 매일매일이 지옥 같아요. 언제까지 이렇게 덕지덕지 치장하면서 살아야 하나 싶죠. 그런데 저는 항상 아름답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드랙을 내려놓질 못하죠.
모어에게 드랙의 의미는 뭔가요?
‘드랙’이라는 타이틀을 빌려 ‘나’를 표현하고 싶은 거예요. 립싱크는 너무 답답하고, 저는 제 목소리로 말하고 싶어 시 낭송을 자주 해요. 드랙은 정말 광범위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출하는 거죠. 제가 처음 드랙을 시작하던 때는 지금이랑 분위기가 많이 달랐어요. 한복에 검은 단발 가발을 쓰고 은방울자매 노래도 부르고, 삭발한 머리에 가채를 쓰고 공연하기도 했어요. 된장이랑 오렌지 주스로 똥을 만들어 던지기도 하고, 홈키파를 뿌려 적을 퇴치하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공연장에 불이 난 적도 있었죠. 그런데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같은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회자되면서 사람들이 드랙을 ‘여장 남자’ 정도로만 알게 된 거죠. 열에 아홉은 ‘여장 남자래! 트랜스젠더인가?’ 하는 호기심에 공연장을 찾는 사람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드랙은 고무장갑을 끼고 목욕탕 수건을 뒤집어쓸 수도 있는 건데 말이에요. 방금 생각난 표현인데, 제게 결국 드랙이라는 건 최상의 창작 수단이에요. 그래서 드랙을 사랑해요.
드랙이 지금보다 훨씬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나요?
무조건. 세상에 드랙처럼 재미있는 게 어디 있겠어요. 이렇게 말도 안 되고 재미있고 창의적인 예술은 없어요. 그래서 지금처럼 물 들어올 때 더 새로운 퍼포먼스를 많이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 낭송처럼 난데없는 것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래야 생명력이 길 것 같고, 사람들도 드랙이 뭔지 제대로 알겠죠.
예전에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 ‘미친 년’이라고 한 적 있어요.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은 싫어요. 스스로 자기를 예술가라 칭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죠. 미쳐 있는 상태,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하고 싶어요. 정말 누가 봐도 ‘난 년’, 너무나 되바라져서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런 미친 년. 대단하다는 말보다 “넌 정말 미친 년이야”가 제겐 최고의 칭찬이에요.
그렇게 사는 건 분명 쉬운 일은 아닐 테죠.
드랙을 하려면 정말 여러 가지 반응을 다 감수해야 해요. 예를 들어 우리 사회에서 여성 배우들이 노출 신을 찍으려면 정말 용감해야 하잖아요. 사람들의 편견을 다 견뎌야 하니까. 그러면서 나는 생각보다 강하다는 걸 어느 정도 깨달은 거예요. 어떤 날은 치마를 입고 전철을 타기도 해요. 튀고 싶어서가 아니라 너무 편안해져서. 고통을 겪어낸 시간만이 저를 이곳으로 인도해준 거죠. 그 시간이 아니었다면 저는 여전히 너무 어설픈 상태였을 거예요. 오해하지 말아요. 그렇다고 내가 지금 완벽하다는 건 아니니까. 그저 조금 나아졌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