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무슨 날이야?
」① 언니는 돈을 좀 쓸게, 팍팍!
하고 싶은 것도, 알리고 싶은 것도 많았다. 축제도 참여하고, 어느새 5년 차에 접어든 노브라의 신세계를 설파하고…. 그러다 불현듯! 내 나이 바야흐로 서른 하고도 아홉수. 이제 닥치고 지갑 열 때라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뼈를 때렸다. 이번 여성의 날에 나는 돈을 팍팍 쓸 거다. 특히 1020 여성들에게.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생리대를 지원하는 단체에 정기 후원을 시작할 거고, 이번 총선을 위한 페미당 창당 모임에 자금을 보탤 것이다. #걸스캔두폴리틱스! 여성 작가가 쓴 책 10권을 한 번에 구매해 아이 키우는 엄마 친구들에게, 어쩌다 함께 살고 있는 한남… 아니 한국 남자와 그 일당(!)들에게 고루 보내고. 아, 그 전에 인스타에도 예쁘게 찍어 올려야지. 다 하려면 한 50만원은 족히 필요할 것 같은데, 일단 5… 5만원씩만 보내볼게. 같이 하실 분? ‒디지털 디렉터 성영주
② 답답한 건 던져, 브라!
친구에게 가슴을 조이지 않는 브라렛을 선물하고 싶다. 두께가 있는 니트 톱을 입을 땐 노브라도 괜찮고 넉넉한 셔츠를 입을 땐 볼륨 있는 가슴보다 밋밋한 가슴이 예쁘다는 조언과 함께. ‒패션 에디터 김지회
③ 야, 너두 우먼스 마치!
이번 여성의 날, 나는 할리우드 배우들의 ‘우먼스 마치’ 연설을 되돌려보며 영어 공부를 하겠다. 대학생 때 매주 토요일 영어 스피치를 분석하는 스터디를 했는데, 당시를 추억하며 스칼렛 요한슨과 만삭인 나탈리 포트먼의 스피치 영상을 돌려볼 예정. 그것도 이틀 전 내가 직접! 거금 주고! 새로 산! 무려 아이패드 프로로, ‘리퀴드 레티나 디스플레이’에서! 스피커 4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입체적인 오디오로! 그녀들의 당찬 말들을 새겨들어야지. We should all be feminist! ‒디지털 에디터 정예진
④ 선배, 웰컴백!
여성의 날을 기념해서가 아니라도, 전업주부에서 아주 오랜만에 필드로 복귀하는 직장 선배를 돕고 싶다.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 오래전 임신 초기에 아무것도 모를 때 국공립 어린이집 들어가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며 나 대신 알아서 대기 명단에 올려준 덕분에 쉽게 딸을 등원시킬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선배.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도시로 온 것처럼 오랜만의 업무가 낯설고 너무 많이 변했다는 선배를 내 능력 최대치로 응원하고 싶다. ‒디자인 디렉터 김수아
⑤ 들어봐주세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출신 송은지가 중심이 돼 기획한 컴필레이션 음반 〈이야기해주세요〉 3집의 노래를 팀원들과 공유하고 싶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세 번째 앨범. 텀블벅 모금이 마감돼 CD를 구입할 방법은 없지만 각종 음원 사이트에서 디지털 음원은 구할 수 있다. 김완선, 황보령, 김일두, 슬릭 등이 참여한 총 16곡의 음악을 들으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성들이 겪어내고 있는 현실을 살펴보는 건 어떨지. ‒아트 디렉터 구판서
⑥ 윤진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여성의 날을 맞아 주변 친구들에게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짜 내가 원하는 메이크업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한때는 뷰티 에디터로서 매 시즌 트렌디한 메이크업을 전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거나 기가 세 보인다는 이유로 청순여리여리한(실제로는 청순구리구리한) 메이크업을 고수했던 나. 매거진에서는 늘 때로는 프로페셔널하게, 때로는 섹시하게 메이크업하라고 당당하게 말하면서도 실상은 청순병에 걸려 늘 병약한 메이크업만 알파고처럼 했던 거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현타가 왔고,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눈에 예뻐 보이는 메이크업을 이것저것 시도했더니 자신감도 생기고 메이크업 실력도 상승했다는 사실. 그러니 여러분도 하고 싶은 메이크업 다 해! ‒뷰티 디렉터 하윤진
⑦ 같이 읽을까, 이런 마음
어떤 삶을 살든 내가 주체면 된다는 것을 일깨워준,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의 수필집 〈월하의 마음은〉을 친구들과 함께 읽고 싶다. 어떤 삶을 살든 우리가 ‘여성’임을 감사하고, 어떤 방향이든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자. ‒패션 디렉터 김지후
⑧ 친구들아, 맘껏 욕망을 채워볼까?
나이 들면 좋은 게 있다는 친구의 말이 신선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 도대체 왜? 무엇이? “용기가 생기더라고. 남자에게 먼저 모텔에 가자는 말을 할 수 있는 용기.” 일동 얼음! 그런데 시간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30대 중반인 여자가 성욕이 있다는 것과 섹스를 남의 눈치 안 보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제 와서 그 욕망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새삼스럽지만, 벌써부터 그 욕망을 포기하고 덮어두는 친구가 많다. 애인 없는 싱글은 물론이고 결혼, 육아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금욕의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 그들에게 예쁘고 귀여운 신상 자위 도구를 선물하고 싶다. 아직 우린 젊기에~ 괜찮은 쾌락이 있기에~ 그날만큼은 자유롭게 욕망을 표출하자! ‒피처 디렉터 전소영
⑨ 엄마의 이름을 불러줘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붙은 문구를 볼 때마다 씁쓸하다.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에 여성은 어디에도 없다. 얼마 전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가 임신했다는 이야길 듣고, 선물이라도 하나 해줘야지 싶어 이것저것 머릿속에 떠올려봤다. 장난감? 배내옷? 기저귀? 뭐가 좋으려나…. 그런데 이틀 뒤 트위터에서 어떤 글을 읽고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출산 선물로 립스틱을 가져갔다가 언니를 엉엉 울렸다는, 다들 아기에게 줄 선물만 가져가면 산모가 소외감을 느낀다는 이야기였다. 출산하면서 여자로서의 자신은 지워졌다는 생각이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고. 올해 여성의 날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엄마들의 다른 이름을 되새겼으면 좋겠다. 한 소녀이자 여자였고, 늘 엄마였지만 동시에 엄마 아닌 다른 사람들이기도 했으며, 앞으로도 엄마 외에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는.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을 ‘엄마’ 대신 본명으로 바꾸는 것도 좋은 시작이라 생각한다. ‒피처 에디터 김예린
⑩ 민낯이라도 괜찮아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휴대폰 앨범에 빼곡했던 셀피가 지금은 스크롤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할 만큼 적어졌다. 예전보다 눈 밑이 축 처져 보여서, 오늘은 메이크업이 잘 먹지 않아서, 어느 날은 볼에 존재감 강한 뾰루지가 올라와서. 풀로 세팅한 완벽한 상태여야만 셀피를 찍을 마음이 들곤 했는데, 그조차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내 외모를 옥죄는 코르셋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성의 날인 만큼 화장기가 1도 없는 내 얼굴을 셀피로 남겨보고 싶다. 마음에 든다면 SNS에 모처럼 내 얼굴도 올려보게! ‒뷰티 에디터 송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