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연인보다 친구와의 이별이 더 슬프다고?

왜 우리는 연인과의 이별에는 그토록 호들갑을 떨면서 친구와의 헤어짐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 걸까? 우정의 끝은 연애의 끝을 마주하는 것만큼이나, 혹은 훨씬 더 고통스러운데 말이다. 혹시 옛 친구에게 남은 앙금의 정체가 무엇인지 헷갈린다면, 사랑하는 친구와 크게 싸운 뒤 ‘손절’을 고민한다면? 다음 네 사람이 고백하는 또 다른 처절한 ‘이별’에 대해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BYCOSMOPOLITAN2020.01.07

우정의 치킨 게임

나는 거의 평생을 같은 친구들과 어울렸다. 마치 미드 〈기묘한 이야기〉에 나오는 ‘더스틴’, ‘루카스’, ‘윌’, ‘마이크’처럼(‘데모고르곤’은 빼고) 우리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그래도 떼놓을 수 없는 사이였다. 친한 친구들과 떨어져 홀로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절박하게 노력했다. 2학년에 올라갈 무렵, 나는 나영이를 만났다. 그녀 옆에 있으면 온전히 나 자신일 수 있었고, 그녀가 편했다. 나는 “지나치게 수줍음을 타는 성격을 극복할 필요가 있어요”라고 적힌 생활기록부를 집에 가져오는 아이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휴게실에서 노느라 수업을 빼먹는 아이가 됐다.
나는 나영이를 내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에 초대했다. 나영이는 같은 친구들과 오래 교제하지 않고 한 학년 진급할 때마다 친한 친구가 바뀌는 스타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나영이가 꼭 내 사람들의 일부가 됐으면 했고, 친구는 많으면 많을수록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다. 효과는 있었다. 우리는 같은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고, 여름이면 빙수를, 겨울이면 딸기 뷔페를 찾아 함께 몰려 다니고, 토요일 밤 놀러 나갈 때면 서로의 화장품이나 드레스를 빌렸다. 나영이는 그렇게 내 친구 그룹에 공식적으로 합류하게 됐다.
문제는 우리가 점차 나이를 먹으며 생겼다. 나영이는 남자 친구를 만난 뒤 더 이상 우리와 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우리를 집에 초대하고도 저녁 내내 남자 친구와 통화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결혼식과 새 집 장만에 집착했고 침실 벽에 저축 목표를 써붙여두기도 했다. 마침내 그녀는 금전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우리의 휴가계에 돈을 내길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나영이를 빼고 여행을 떠났다. 물론 그녀를 빼고 가는 것에 대해 나와 내 친구들은 엄청나게 다퉜다. 우리는 모두 싱글이었고 인생을 좀 더 즐기길 원했지만 나영이의 인생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우리의 그룹 채팅방이 잠잠해지는 걸 보며 나는 우정의 종말을 직감했다. 친구 중 한 명이 나영이에게 이제 더 이상 공통 관심사가 없으니 친구로 지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다른 친구들도 그 뒤를 이어 하나둘씩 채팅방을 나갔다. 그리고 어느새 채팅방에는 나와 나영이만이 남게 됐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영이와의 우정을 끝내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나영이와 나 사이에 무엇이 남아 있는가’에 대해 답할 수 없었다. 다른 친구 그 누구도 내게 압박을 준 적은 없지만 나영이와 친구로 남는 것이 내게 가장 소중하고 오래된 친구들과의 관계를 해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난 나영이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내 안녕을 고한 뒤 일방적으로 나영이의 번호를 차단했다. 마치 나영이가 틴더에서 잘못 만난 상대인 것처럼.
나영이가 나에게 편지를 쓰기 전까지 우리는 몇 년 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편지 봉투에서 나영이의 글씨체를 보자 속이 울렁거렸던 걸 기억한다. 나영이는 내게 사과하며 당시 자신이 겪었던 많은 문제에 대해 설명했다. 나는 답장을 했지만 나영이가 다시 편지를 보내 만나자고 했을 때는 답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내가 한 행동이 내 성격에 어두운 흔적을 남겼다고 항상 생각했고, 우리가 함께한 모든 추억을 떠올릴 때면 수치심도 따라왔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당시 상황을 내 식대로 합리화하며 그건 다른 친구들을 잃을까 봐 두려워서 그랬던 거라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잔인한 진실은 사실 내가 그녀를 그리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달랐고 그래서 서로 멀어진 것뿐이었는데 그걸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걸 깨닫기에는 아직 어렸던 걸까? 지금까지도 난 우리가 그녀에게 잔인하게 행동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잠수를 탄 건 겁쟁이 같은 짓이었고, 다신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후회는나의힘(33세, 작가)
 

너무 아픈 우정은 우정이 아니었음을

오랫동안 승연이는 내가 무슨 일을 겪을 때마다 가장 먼저 전화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가 꿈에 그리던 직업을 갖게 됐을 때 나의 기쁨에 가득 찬 비명을 들었고, 지독한 연애가 끝났을 때 수화기 너머로 나의 눈물을 다 받아준 사람이다. 또한 나의 이상한 농담을 그녀만의 독특한 드립으로 맞받아칠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밝은 봄날, 나는 남자 친구 그리고 승연이와의 이별을 동시에 겪어야만 했다. 관계의 끝은 아무런 경고 없이 찾아왔다. 그녀는 갑자기 내 메시지에 답하지 않기 시작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가끔 이뤄지는 대화는 마치 지루한 업무에 응대하듯이 사무적인 톤이었다. 연애든, 동료 관계든, 가족 관계든, ‘힘든 관계’의 공통점은 끝나기 전까지 그 관계가 얼마나 우리 자신에게 유해했는지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난 고통스러운 일을 겪을 때 늘 그랬듯, 승연이와의 불화도 정면 승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랫동안 심리 상담을 받고 혼자 앉아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책도 꽤 찾아 읽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내가 ‘베프’라 부르기 마지않았던 그녀는 내 실패했던 연애 상대들과 거의 똑같은 애착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바로 회피주의자였던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과 늘 거리를 둬 스스로 누군가 필요하다 느끼기 전까지는 만나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절대로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녀와 나의 헤어짐을 경고한 많은 순간이 있었던 것 같다. 결혼을 앞둔 친구의 파티에 갔을 때, 어떤 남자가 강압적으로 내 음부를 움켜쥔 사건이 있었다. 우리는 경찰을 불렀고 그는 체포됐다. 며칠 뒤 울면서 승연이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는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었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섹슈얼”한 내 헤어스타일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그녀가 이 문제를 바라본 시각을 나는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 없다. 도저히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보려고 해도 잘되지 않는다. 한번은 내가 싱글맘으로 아이를 입양할 계획이라며 신이 나서 그녀에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매우 퉁명스럽게 “어떤 방식으로도 그 일에 관련되고 싶지 않다”라고 답했다. 당시 나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언젠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진 말에 화가 났던 승연이가 그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그것을 변명 삼아 나와의 관계에서 도망쳤다는 걸 알게 됐다.
이 글을 쓰는 나는 현재 아이를 입양하는 과정에 있다. 요즘 내 주변에는 엄청나게 멋진 친구가 많다. 오래됐거나 새로운 친구들이지만 모두 똑같이 내게 소중한 이들이다. 문자 그대로 또는 은유적으로 언제나 내 옆에 있어줄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 전화를 피하거나 메시지를 무시하지 않고, 나를 깊은 구렁 속에 빠트리지도 않는다. 나는 친구들과 상호적으로 사랑과 응원을 나누며, 친구들과의 관계 덕분에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더 밝고 의미 있어진다. 이 관계들이 내게는 ‘베프’의 새로운 정의다. -두번당한여자(36세, 스타일리스트)
 

우정의 이름으로 용서할 수 없는 것

다혜는 언제나 좀 거친 편이었다. 나뿐 아니라 주변 친구들에게도 늘 스스럼없이 욕을 하거나 거친 표현을 썼지만, 그 점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해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어릴 때는 거친 행동을 ‘애정 표현’으로 여겼다. 친구로서 그녀는 언제나 나를 챙겨주는 편이었다. 내가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게 돼 고향을 떠났을 때도 늘 먼저 시시콜콜 메시지를 보내 안부를 묻곤 했다. 그녀는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 자기 친구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비호할 준비가 돼 있었다. 카페에서 내가 실수로 커피를 엎질렀을 때, 내가 곧바로 사과했음에도 옆 사람이 계속 화를 내자 오히려 그녀가 나서서 욕하며 상대와 싸운 적도 있었다.
학기가 끝나가던 어느 날, 나는 오랜만에 다혜와 다른 친구를 만나러 부산에 갔다. 당시 다혜는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었고, 만나기로 한 다른 친구는 간호사였기에 우리는 그녀의 근무가 끝나기를 기다려 밤늦은 시각에 만났다. 그런데 다혜는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나이트클럽으로 이끌었다. 클럽 아니고 그 나이트 말이다! 그녀가 나이트클럽을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기차를 타느라 피곤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는 나이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조금 짜증이 났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나는 너희와 얼굴 보며 얘기하고 싶지 시끄러운 데서 남자들과 놀고 싶지는 않아”라고 말하며 발길을 돌렸다. 그러자 그녀는 별안간 나를 벽으로 밀어붙이더니 “너는 너 하고 싶은 대로만 하냐”라며 욕과 함께 소리를 질렀다. 그날따라 유독 그녀가 공격적이라 느껴졌고, 그런 그녀의 행동을 참을 수 없었다. 나도 화가 나 가르치듯 말하지 말라고, 나는 네가 가르치는 학생이 아니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그녀는 손가락으로 내 턱을 툭툭 치기까지 하면서 “네가 뭔데 내 직업을 비하하냐”라고 쏘아붙였다. 다른 친구의 중재로 우리는 간신히 근처 술집에 들어가 마주 앉았지만,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였고 이야기는 나와 간호사인 친구 중심으로 흘러갔다. 그녀는 결국 말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꽤 시간이 흐른 뒤에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메시지를 보내 안부를 물어왔다. 태연하게 내 애칭까지 부르면서 말이다. 나는 첫마디에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따졌지만, 그녀는 자신이 왜 사과를 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랜 친구 사이인데 그런 실수 정도는 당연히 받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게 그녀의 변명이었다. 나는 “네가 그 일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는 네 모습에 더욱 크게 실망했고 더 이상 친구로 지내고 싶지 않다”라고 답했다. 그제야 그녀는 내 의견이 정 그렇다면 존중한다며, 그러나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하고 싶다며 “미안하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마치 붙잡기엔 너무 늦은 걸 알지만 있는 힘을 다해 질척거리는 전 남친처럼 말이다.
당시에는 그녀가 자격지심에 휩싸여 미성숙하게 행동했던 거라고만 생각했지만 결국 우리의 오랜 문제는 서로가 생각하는 ‘우정’이 달랐다는 거다. 그녀는 나를 위해 거침없이 행동해줄 수 있는 친구지만 동시에 나에게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당시 다혜는 우리를 만나기 전에 다른 술자리를 가졌고 거기에서 누군가와 한바탕 싸우고 난 뒤였다. 만약 반대로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아 나이트에 가서 풀고 싶다고 했다면 그녀는 흔쾌히 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과보호를 받고 싶지도, 그녀의 거친 행동을 더 이상 참아주고 싶지도 않았을 뿐이다. ‘친구를 위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다’의 선은 각자 다르다. 서로가 생각하는 선을 넘어 무언가를 해주고 그만큼 받기를 원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상대의 행동을 재게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끝은 절대 좋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녀와 헤어지며 아프게 깨달았다. -밟으니까꿈틀하지(30세, 교사)
 

친구는 고쳐 쓰는 게 아니다

모든 우정이 울고 불며 다툼과 극적 대립을 거쳐 끝나는 건 아니다. 어떤 친구는 소리 소문 없이 멀어져갈 뿐이다. 민지와 나는 가장 힘든 시기였던 고등학교 2~3학년을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지만 애초에 그녀와 나는 가치관이 확연히 달랐다. 그 간극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벌어지기만 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 입시’라는 공통 목표가 있었고 하루의 3분의 2 이상을 함께했지만, 각자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우리는 생활 주기가 너무나 달라졌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나는 곧바로 직장을 얻었고 일류 대학에 다니던 민지는 “남의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며 취업을 미뤘다. 또 그녀는 한번 사귄 남자 친구와 오래 연애하는 성격이었지만 나는 그녀와 만날 때마다 만나는 남자가 바뀌어 있었다. 물론 가치관이 다르다고 해서 꼭 충돌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그런 점을 평가하기보다 재미있어 했다. 내가 새로 생긴 남자 친구를 두고 다른 남자와 원나이트 스탠드한 이야기를 고백할 때 민지는 충격받은 듯했지만 한 번도 나를 비난하거나 충고한 적은 없었다.
민지가 5년째 교제하는 남자 친구를 두고 몰래 미팅을 나갔다가 만난 상대와 사귀게 됐다고 조심스레 털어놓았을 때, 나는 오히려 그녀의 변화를 반겼다. 그녀는 첫 섹스 상대였던 전 남친과는 섹스를 거의 즐기지 못했는데, 새 남자 친구를 통해 섹스가 이렇게 즐거운 것인지 알았다며 화색이 돌았다. 곧 그녀는 남자 친구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연애할 때마다 결혼을 진지하게 고려했던 그녀였기에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민지가 새로운 사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녀가 내게 자신의 사업에 투자해 ‘재테크’를 해보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사생활에도 전혀 관여하지 않던 우리였는데, 그런 그녀가 전과 달리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민지가 말한 사업의 내용을 검색해봤고, 그녀가 유명한 다단계 사업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포털 사이트에서 같은 부분을 반복해 읽으며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늘 나보다 똑똑하고 합리적인 선택만을 해왔던 그녀가 왜 그런 일에 엮이게 됐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그녀가 그 사업의 성공을 굳게 믿고 나를 설득하려 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그녀와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달라졌을까? 그녀를 이대로 그냥 둬도 괜찮을까? 온갖 생각이 스쳤지만 기분은 줄곧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할 뿐이었다.
나는 휴대폰 화면에 그녀의 이름이 뜰 때면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녀는 나의 변화를 직감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녀와 만나기로 했던 겨울, 나는 지독한 독감에 걸려 약속을 취소해야만 했다. 나는 정말로 아파서 나갈 상황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그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몇 달이 지나 나는 카카오톡 친구 즐겨찾기 목록에서 그녀를 삭제했다. 한동안은 허전했고 스스로 자책했다. “넌 살인을 해도 내 친구야”라던 그녀에게 내가 너무 야박하게 군 건 아닌가? 내가 약속을 깼으니 먼저 연락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분명한 건, 만약 민지와 내가 지금 만났다면 친구가 될 확률이 극히 적을 거란 사실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시기를 지나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변할 때, 그 우정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때 나는 만사에 시원시원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쟁취할 배짱과 능력이 있는 그녀와 함께라면 나 역시 건강한 방향으로 성장하고 늙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제 와서 그녀의 삶의 방식을 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함께한 지난 시간을 뒤로하고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건 그 누구에게 내리는 처벌도 아니다. 단지 성장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사이여기까지(29세, 에디터)


*본문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