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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같은 남자가 좋은 이유

여자들이 ‘곰상’을 이상형이라 할 땐, 외모가 중하지 않다거나 미련하리만큼 바보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발 빠른 콘텐츠 제작자들은 이런 여자들의 이상향을 적극 반영한 남성 캐릭터들을 전파에 태우기 시작했다. 다섯 여자가 ‘곰상 남자’들에게 사로잡힌 이유는 다음과 같다.

BYCOSMOPOLITAN2019.12.22
 
이 한 몸 잠시 뉘이고 싶은 남자
곰? 우선은 키가 크고, 어깨가 넓어야 한다. 단, 크고 넓다는 기준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얼굴 크기가 작으면 어깨가 넓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여성들의 경우 “나보다 크면 큰 거지”라는 자체적인 기준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말하는 크고, 넓다는 단어에 발끈하는 남성이 없기를 바란다. 한 가지 더, 우리는 지금 키가 작고 단단한 몸을 지닌 아기 곰이 아니라, 성년에 다다른 어른 곰의 형상에 관해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조건을 덧붙인다. 성격이 포악하거나 몸이 둔해서는 안 된다. 불구덩이도 불사할 정도로 당신을 사랑하니 “결혼해요. 하자, 응?”이라고 조르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속 배우 강하늘이라든가, <나 혼자 산다>에서 홀로 고양이들의 안위를 살펴가며 털을 깎고 집 안 청소까지 깔끔하게 마치는 배우 윤균상이라든가. 크고 묵직한 덩치의 남성에 대한 선망이 마초적인 성향이나 갈라지는 근육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이라고 해석한다면 깜짝 놀라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날 것만 같다. 고양이 집사인 나는 요즘도 가끔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번쩍번쩍 안아 들고 털을 깎는 윤균상의 모습을 VOD로 돌려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음, 그래. 마치 잘생기고 성실한 곰이 고양이들을 돌봐주는 듯한 느낌이야. 굉장한 책임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지.’ 얼마 전에는 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하루>에서 넓은 등으로 김혜윤을 받쳐주고, 그녀에게 폭력적으로 구는 남성들을 물리치는 로운을 보면서 생각했다. ‘와, 그렇지. 안정적으로 나를 받쳐줄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면 좋겠네. 억지로 손목을 잡아 끌고 가는 건 무례한 행동이라고 경고하는 커다란 저 남자 주인공, 괜찮네, 괜찮아.’ 나는 곰이라는 동물을 생각하면 우화에서 으레 묘사되는 것처럼 덩치가 큰 만큼 성실하고, 순하고, 귀여운 동물을 떠올린다. 가끔 인터뷰하면서 키는 나보다 훌쩍 크고 어깨도 넓은데, 말투가 상냥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이들을 보면 문득 말해주고 싶다. “귀엽다”라고. 두꺼운 승모근을 자랑하면서도 자신의 손보다 훨씬 작은 종이컵을 만지작거리며 질문에 대한 답을 고르다 활짝 웃을 때, 그럴 때도 말해주고 싶다. “참 귀여우시네요.” 사람에 따라 귀엽다는 말을 칭찬으로 듣지 않는 사람이 있고, 기자로 일하면서 사사로운 잣대로 상대를 평가한다는 인상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본 적은 없다. 대신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동화책에 나올 법한 거대하고 상냥한 곰상들을 찾아 끊임없이 멋있고, 귀엽다고 말한다. 물론 내 옆에는 없지만.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용식이를 찾습니다
차도남의 시대는 갔다. 대신 용식이의 시대가 왔다. 단순·무식·우직으로 뭉친 어느 깡촌 토박이의 반란이다. 이름하여 ‘촌므파탈’ 신드롬이란다. 최근 수많은 여성의 이상형을 바꿔놓은 한 남자가 있으니, 바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남주인공 ‘황용식이’ 되시겠다. 수더분한 이름만큼 성격도 순박하다. 한 술 더 떠 뇌까지 순수하기 짝이 없다. 하나 슈퍼 모지리일 것 같은 그에게도 필살기가 있다. 바로 지구력이다. 이 남자, 끈질기다. 육류로 치면 소 힘줄 같고 어류로 치면 쥐포 머리 같다. 들이대는 자세부터 남다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있을지언정 열 번 감아 안 스며드는 여자는 없다는 듯, 함부로 애틋하고 은밀하게 위대하다. 세상 투박한 사투리로 구수하게 펼치는 세레나데를 듣고 있노라면, 이미 마음은 온통 ‘순삭’당한다. 이 남자의 진짜 매력은 손바닥 뒤집듯 돌변하는 모습에 있다. ‘동백 씨’ 앞에서는 순해빠진 테디 베어가 따로 없고, 동백 씨 건드리는 사람에겐 개망나니 미친 불곰이 따로 없다. 나쁘기만 한 남자는 재수 없고, 착하기만 한 남자는 재미없다. 용식이는 다르다. 되는 건 확실히 되는 거고, 안 되는 건 단호하게 안 되는 거다. 바보는 맞는데 호구는 아니며, 숙맥은 맞지만 ‘찐따’는 아니다. 단짠을 오가는 조련의 달인이자 애정 만수르. 아, 이 촌놈. 진짜 골 때리게 섹시하지 않은가. 대체로 ‘곰 같은 남자’라 하면 굉장한 오해를 받아왔다. 몸만 컸지 세상 착하고 답답하고 우직한 사람이라고. 그러나 곰만큼 똑똑한 동물이 또 없으며, 인내심이 좋을 뿐 알고 보면 악명 높은 야생의 폭군이다(<벡터맨> 베어는 무려 지구 용사다). 폭발하는 이유는 대개 자기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건드려서라는데, 푸우한테서 꿀단지를 뺏거나 용식이 앞에서 동백 씨를 괴롭히면 그리 된단 얘기다. 그러니 곰 같은 남자란, 자기 사람은 확실하게 지키되 버튼 눌리면 지구까지 터뜨릴 수 있는 남자를 뜻한다. 집 안에선 그저 철부지 막내아들이고, 직장에선 통제 불가 시한폭탄인지 몰라도 연애할 때만큼은 불나방 초사이언, 황용식이처럼 말이다. 차도남도, 츤데레도, 초식남도 이제는 한물 갔다. 밀당도 적당히 해야 매너고, 간도 적당히 봐야 도리다. 시국은 어지럽지 밥벌이도 팍팍한데 연애까지 요란하면 그건 그냥 지옥이다. 눈치 싸움은 회사랑 하는 걸로 충분하다. 쟁탈전은 쇼핑몰에서 하는 걸로 족하다. 나 하나만 바라보되 줏대는 확실해서 모로 가도 행복만 주는 남자가 고프다. 그러니 여우 같은 곰이니, 곰 같은 여우니 다 집어치우련다. 뭐니 뭐니 해도 최고는 ‘곰다운 곰’ 아니겠나.
-김또각(가명, 회사원) 
 
웃을 일은 매일 있어, 곰 같은 남자와 함께라면
씩씩하고 유머가 넘치며 너그러운 사람. 이건 어느덧 내 삶의 지향점인 동시에, 파트너에게 기대하는 일순위 조건이 돼버렸다. 물론 이건 체형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나라는 사람이 살아오며 경험한 적디적은 확률상, 조각 같은 몸매가 아닌 곰돌이 체형의 소유자들이 대체로 그러한 성향에 더 가까웠다. 아마도 자신의 몸에 대해 관대한 사람이 타인에게도 관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야식으로 먹는 피자와 아이스크림 한 스쿠프 같은 것에 너그러워지다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그렇게 되는 것 같다는 비과학적 믿음이 내겐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강박적으로 닭 가슴살을 갈아 마시는 사람이 언제나 너그럽고 유머러스할 리 없잖아! 이러한 편견을 한층 견고하게 다지게 만든 인물은 세스 로건. 할리우드 곰상 배우의 대표 주자다. 벤 스틸러나 조나 힐 등 걸출한 코미디 배우들이 연출가로 혹은 진중한 캐릭터로 변신을 꾀하며 자꾸만 멋져지는 바람에 배신감마저 드는 요즘, 예나 지금이나 푸근함과 유머를 무기로 코미디의 최전선에 서 있는 로건을 보며 안도한다. 잘생김 흘러넘치는 할리우드 배우들 사이에서 사람 좋게 웃고 있는 모습은 생각보다 중독성이 꽤 강하다. ‘성격 미남’ 카테고리 안에 함께 넣을 수 있을 또 다른 곰상 배우 잭 블랙보다는 덜 요란스럽고, 마크 러팔로보다는 더 유머러스한 적정선 역시 훌륭하다. 게다가 로건이 너드 코미디와 화장실 유머 사이에서 연기해온 온갖 철딱서니 없는 남성 캐릭터들에게서는 대체로 공통된 면모가 두드러진다. ‘절대로 먼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 같은 우직함’ 말이다. 하룻밤 불장난이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책임지려는 ‘벤’(<사고친 후에>),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아내를 바라보면서도 매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노년을 상상하는 남편 ‘루’(<우리도 사랑일까>), 차기 대권 주자인 연인을 온몸으로 지지하는 사고뭉치 ‘프레드’(<롱 샷>) 등의 캐릭터가 이를 증명한다. 내가 우울한 날, <라이온 킹>의 ‘품바’를 연기한 것처럼 쉴 새 없이 나를 웃겨줄 것 같은 재치를 겸비한 이 남자의 매력은 끝이 없다. 로건은 지난해 <세스 로건: 웃음의 마법으로>라는 버라이어티 쇼를 론칭했다. 알츠하이머 환자를 위한 연구 기금 모금을 위해서다. 로건은 정말로 농담과 웃음이 세상을 구한다고 믿는 것 같다. 예민한 미남은 여자의 눈물을 부르고, 성격 좋은 곰상 남자는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 장기적으로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건 후자 같다. 이러니 곰돌이 같은 남자들을 사랑할 수밖에.
-이은선(영화 저널리스트)
 
이상형 부정론자가 곰상에 치이다
나는 늘 이상형이 없었다. 누가 이상형에 대해 물으면 지난 연애 상대가 마음을 상하게 했던 점을 하나 들며 “나보다 고양이가 먼저인 사람만 아니면 될 것 같은데?”라는 식으로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생각을 해보라. 아무리 이상형이 있다 한들 결국 연애를 결정하는 건 순간의 공기, 순간의 행동과 언어, 순간의 케미 아닌가. 좀 꼬아 생각하자면 어렸을 때부터 목표 대학을 정하길 강요당하고, 대학을 다닐 땐 목표로 하는 회사를 정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이제 연애까지 프레임을 씌우는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늘 이상형이 없었고, 이상형 부정론자에 가까웠다. 내심 내가 나에게 이상적인 연애 상대를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 연애에 능숙하지 못하단 뜻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이상형이 있다는 건 적어도 본인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과 맞는지를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러던 내게도 이상형에 관한 각성의 계기가 여럿 있었는데 소위 ‘직진남’이라 불리는 남자 캐릭터를 대거 발견하면서부터다. <쌈, 마이웨이>의 ‘고동만’,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의 ‘박모건’, 그리고 최근 <동백꽃 필 무렵>의 ‘황용식’까지. 내가 이들 드라마에 미쳤던 건, 그리고 이 캐릭터들을 오래도록 빈 자리였던 이상형 리스트에 곧바로 업데이트한 건 썸도 연인도 아닌 애매한 연애에 지쳤다는 방증 아닐까. 이 직진남들은 동물로 따지자면 요즘 유행하는 ‘곰상’ 캐릭터와 결이 같은데, 이들에게 연애의 룰이니 밀당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저 스스로의 연애 감정을 똑바로 바라보고, 상대에겐 좋아하는 마음을 에두르지 않고 말할 뿐. 상대에게 어떤 행동 양식을 바라지도 않고 그저 촌스러우리만큼 자신의 마음을 곰처럼 우직하게 지켜나가는 인물들. 그들을 보며 나는 자신의 마음이 다칠까 봐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고 재거나 그러다 수가 틀리면 상대의 마음을 무기로 휘두르던 연애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들었던, 지금은 쓸모없게 느껴지는 무수한 연애 조언도 함께. 용식이라면, 동만이라면 그런 연애 조언에 좌지우지되기보단 자신의 마음을 더 바라봤을 텐데. 그러니까 나의 이상형은 그런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연애 조언과 연애 공식을 무력화해버리는 곰상 남자. 그저 마음으로 관계를 대하는 사람.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저래야 한다는 등의 낡은 프레임을 씌우거나 연애에선 더 좋아하는 사람이 손해라는 식의 말에 얽매이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신과 상대의 티 없고 맑은 마음의 가치를 믿는 사람 말이다. 나의 새로운 이상형을 통해 나는 긴긴 시간 동안 잡히지 않았던 다음 연애의 실마리를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근데, 그래서 그런 남자가 어디에 있는데?
-김소희(프리랜스 에디터) 
 
나의 히어로들
내게 곰상의 매력을 깨닫게 해준 건 슈퍼히어로 아이돌 집단 어벤져스의 대표 곰상 ‘피터 퀼(크리스 프랫)’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첫 장면에서, 음울하고 황량한 행성에 기괴한 헬멧을 쓰고 나타난 그가 갑자기 구식 소니 워크맨 속의 팝 음악에 맞춰 커다란 덩치를 둠칫둠칫 흔들기 시작한 순간, 나는 그의 곰 같은 매력에 곧바로 빠져들었다. 넓고 넓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는 곰처럼 덩치 큰 영웅도 별만큼이나 많다. 하지만 곰상의 매력을 완성하는 것은 단순한 육체적 특징을 넘어선 캐릭터의 힘이다. 듬직함, 순박함, 우직함 등 ‘곰상’ 하면 흔히 떠오르는 여러 미덕이 있지만, ‘피터 퀼’의 고유한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여유로운 성격에 있다. 스페이스 오페라의 평범한 도입부를 흥겨운 뮤지컬 오프닝으로 바꿔버린 첫 등장 신처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는 남자. 절체절명의 위기, 최강의 적수 앞에서 급작스러운 막춤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슈퍼히어로가 바로 그다. ‘피터 퀼’과 함께 투톱을 이루는 곰상 히어로로 천둥의 신 ‘토르(크리스 햄스워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진가는 시리즈 3편인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제대로 발휘된다. 이 작품에서 ‘토르’는 자신의 자부심이던 왕가의 비극적 진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어두운 이야기일수록 특유의 여유와 유머는 빛을 발한다. 모든 지위와 힘을 잃은 상황에서도 어릴 적 우상인 ‘발키리’를 만나자 자신도 ‘발키리’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고백하는 ‘토르’의 순수함과 순박함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벤져스> 시리즈는 회를 거듭할수록 무겁고 어두워졌지만, ‘토르’와 ‘피터 퀼’이 마침내 얼굴을 대면하는 장면에서만큼은 미소 지을 수 있었다. 피터 퀼’과 ‘토르’의 매력은 배우들에 의해 한층 강화된다. 공교롭게도 이름마저 같은 크리스 프랫과 크리스 햄스워스는 실제 성격 또한 유쾌하고 둥글둥글하기로 유명하다. 할리우드 스타답지 않은 소박한 모습, 동료 배우들과 제작진과의 두터운 신뢰 관계, 가정적인 모습은 그들이 연기하는 슈퍼히어로들의 사랑스러움을 더 빛나게 해준다. 최근 국내 서점가에는 일명 ‘곰돌이 푸 시리즈’라 불리는 힐링 도서가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있다. 곰상이 새롭게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도서들의 제목처럼 ‘행복한 일은 매일 있을 것’이라 말해주는 듯한 여유롭고 낙천적인 힘 때문이 아닐까? ‘피터 퀼’과 ‘토르’, 나의 곰상 히어로들이 그랬던 것처럼.
-김선영(TV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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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예린
  • Photo by shutterstock.com(실사 곰/ 곰 인형)
  • movist.com(쿵푸팬더/ 패딩턴)
  • A WarnerMedia Company(위베어 베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