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감독님, <벌새>는 인생영화예요 |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COSMOPOLITAN KOREA)

지금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의 이야기로 스크린을 장악한 여성들이 있다. <벌새>의 김보라, <아워 바디>의 한가람, <메기>의 이옥섭 감독을 만나 그들이 우리의 삶에 던지는 질문, 유쾌한 파문을 들었다.

<벌새>, 김보라 감독

셔츠 코스. 귀고리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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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벌새>의 성과를 쓰려면, 항상 최근 뉴스를 찾아야 한다. <벌새>는 최근 베르겐 국제영화제에서 경쟁 부문 공동 대상을 추가해 27관왕이 됐다. 현재 누적 관객 12만으로 독립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성취를 이루며 신드롬에 가까운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테네 영화제 최우수 각본상 수상 소식을 봤어요. ‘27관왕’이라는 숫자가 한국 영화 앞에 붙은 적이 있었나? 이런 반응 예상했어요?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 모니터링할 때 영화가 잘될 거란 예감은 있었어요. 다들 좋아하는 장면, 대사가 다 달랐거든요. 시나리오를 읽고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난 적이 부지기수였어요. 극 중 ‘은희’의 엄마 역으로 나오는 이승연 배우님은 시나리오 다 읽은 날 잠을 못 이뤘대요. 슬퍼서. 한편으론 아름답기도 해서. 그런 이야기들이 좋았어요.

‘은희’의 이야기를 언제, 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지 궁금해요.
대학원에 다닐 때, 계속 중학교에 다시 다니는 꿈을 꿨어요. 그땐 ‘이걸 영화로 만들자’는 마음보단 ‘나한테 왜 자꾸 이런 마음들이 찾아오지?’ 하면서 친구들과 명상 모임을 갖고 나의 유년기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죠. 그 과정에서 떠오른 감정들, 에피소드가 모아지고 이어지면서 ‘은희’의 9살 시절을 다룬 단편 <리코더 시험>을 만들었어요. 나를 드러내는 일이 참 쉽지 않았는데, 다들 그 짧은 영화를 너무 좋아해줘 힘이 났죠. 관객들이 “은희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까? 너무 궁금하다”라고 많이 물어봐준 것이 <벌새>가 나온 가장 큰 원동력이에요. 지금은 “은희가 30대가 되면 어떤 모습일까?” 하고 물어봐요.

<벌새>를 본 사람들은 아름다운 대사들을 계속 곱씹어요. “난 내가 싫어질 때, 그 마음을 들여다봐. 아, 내가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이런 언어들은 자신의 경험인가요?
스무 살 무렵부터 명상을 하고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많이 느끼고 배우고 체화한 문장들이에요. 명상에선 ‘바라봄’이라는 행위를 강조하거든요. 바라보면 사라진다. 예를 들어 내가 나를 싫어할 때, 그 마음을 깊게 들여다보면 그 마음이 사라져요. 20대 땐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 돼 답답했는데, 30대가 넘으니 와닿더라고요. 바라보는 게 처음이자 끝이다, 영화 속에서 ‘은희’에게 이런 말을 해준 선생님 ‘영지’의 대사가 그렇게 나온 거예요.

뭘 바라봐야 할까요? 나를? 남을? 혹은 세계를?
모든 것. 숨을 마시고 내쉬는 것부터 일어나는 모든 감정을 바라보는 거죠. 나를 싫어하는 감정은 항상 찾아오잖아요. 그럴 때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질문이, ‘나한테 왜 또 이런 마음이 들지?’예요. 실은 이것도 자연스러운 감정이거든요. 그냥 ‘또 왔구나’ 하고 바라보면 돼요.

<벌새>가 더 좋은 건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되는 이 세계 ‘은희’들의 이야기 때문이에요. “희미하고 뿌옇던 나의 어떤 순간들을 명료하게 만들어준 영화”, “내 인생에서 스쳐 지나간 여성들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영화”… 영화를 본 이들 사이에선 신드롬에 가까운 반응 같아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벌새>를 선보였을 때 제가 “‘영화 잘 만들었다’라는 말 대신 영화 보고 그날 밤 일기를 쓴다거나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스토리의 흐름, 인물을 관조하는 앵글, 긴 테이크 등등을 통해 이야기에 ‘공간’을 만들었죠. 그게 현실의 시간이기도 하니까. 그 속도 안에서 관객들이 자신의 경험과 함께 영화를 완성하길 바랐어요. 그 의도가 이렇게 잘 전달돼 오히려 제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에요.

<벌새>를 보고 영화관을 나섰는데 그날 마주친 여성들이 조금 달라 보였어요. 그저 ‘남’이었는데 ‘우리’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걸 의도했나요?
“편지 같은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얘길 한 적이 있어요. 제가 그런 마음으로 편지를 썼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여성들이 ‘아, 내가 잘못된 게 아니야’, ‘내가 나쁜 게 아니야’, ‘내가 이상한 게 아니야’라는 위로를 받고. 그럼 또 그게 ‘나만 이상한 게 아니야’가 아니라 ‘쟤도 이상한 게 아니고, 얘도 이상한 게 아니고, 우리 다 이상한 게 아니야’ 하는 생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벌새>는 무수히 많은 GV를 했고, 감독님은 관객의 반응을 아주 가까이에서 자주 접했어요. 남성들의 다양한 반응 중 짚고 싶은 것은 뭐예요?
기억에 남는 남자 관객들이 있어요.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을 항상 증명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고, ‘여자 같다’는 말을 종종 들은 어떤 분들은 왜 세상이 꼭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나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벌새>가 굉장히 위로가 됐다는 말을 해줬어요.

<벌새>는 잔잔하지만 꽤 강하게 ‘여성’의 삶, 우리가 내야 할 목소리를 알려줘요. 감독님의 세계에 영향을 준 ‘벌새’와 같은 존재는 누구예요?
제 삶에도 ‘은희’의 상처를 쓰다듬어준 ‘영지’ 같은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 ‘영지’들은 주로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여성의 얼굴’이 뭘까요?
경청하고, 서로를 알아주고, 바라봐주는 그런 것.

영화 속에 나온 질문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와 마주했을 때 저는 답을 곧바로 못 찾았어요. 감독님의 답은 뭐예요?
저는 삶에서 아름다운 순간이 되게 많았는데 굉장히 빛나는 순간이 오면 항상 제 안에 어두움을 가져오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것으로부터 달아나려고 노력하거나. 근데 이제 그러지 않으려고요. 빛과 아름다움이 찾아오면 그걸 허용해주고, 거기에서 도망가지 않으려고 노력하려고요. 그런 나 자신을 바라보고, 행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요. 이제, 정말로.

사람들은 벌써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농염하고 관능적인 30~40대 여성이 아닌, 내가 생각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라고 말한 계획을 보면서, 김보라가 생각하는 ‘여자’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어요.
여성이 미디어의 영향이나 사회적 통념, 가부장제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때 드러내는 그 민낯의 얼굴들이 너무 아름다워요. 저는 그걸 드러내고 싶어요. 진짜 본질적인 얼굴을 한 여성들. 내 얼굴, 우리의 얼굴을 한 진짜 여자들.
지금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의 이야기로 스크린을 장악한 여성들이 있다. <벌새>의 김보라, <아워 바디>의 한가람, <메기>의 이옥섭 감독을 만나 그들이 우리의 삶에 던지는 질문, 유쾌한 파문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