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말하는 페미니즘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담론이라고? 남성으로서 누려운 '특권'을 자각하고 '맨박스'에서 벗어나는 순간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도 시작된다.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이유를 남성 페미니스트인 위근우 작가, 박정훈 기자, 이한 활동가의 목소리로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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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근우
」텐아시아, 아이즈 등에서 재직한 문화부 기자 출신으로 지금은 경향신문 ‘위근우의 리플레이’에 대중문화 비평과 페미니즘 관련 글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 저서로는 <뾰족한 마음> <프로불편러 일기>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등이 있다.
위근우 작가가 정의하는 페미니즘이란?
첫째로 생득적인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 둘째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양한 부분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현실 인식. 마지막으로 그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실천.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내가 선천적으로 여성으로, 혹은 호남 사람으로, 혹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게 페미니즘 제1의 원칙이다. 보통 사람들은 여기까지는 동의한다. 그런데 두 번째, 현실 인식에서 많이 갈린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문화적·경제적 차원에서 차별받는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개선 방법은 여러 가지다. 굉장히 래디컬한 페미니즘 활동가도 있을 것이고, 정치적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정치가, 학술장에서 현실의 차별을 분석하는 전문가, 그리고 나 같은 사람 등. 이런 실천들이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성차별에는 반대하지만, 페미니스트는 아니라는 궤변도 심심찮게 보인다.
비겁한 주장이다. 어떤 개념이든 많이 쓰이면 인플레이션 현상이 생긴다. 이를테면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도 어떤 특정한 상황에선 굉장히 유용한 개념인데 어느 순간부터 오만 군데에 다 쓰이더니 그 말의 효용이 사라졌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을 남성 혐오 혹은 여성 우월주의라는 식으로 규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용어를 남용한 느낌이 강하다. 사실 페미니즘을 원론적으로 얘기하면 개념의 발전과 정치적 활동에 있어 남성 혐오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페미니즘은 ‘여성해방’이 중요하지, 남성 혐오와는 거리가 멀었다. 남성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여성 페미니스트라고 얘기하는 액티비스트들은 남자에 관심조차 없다. 자신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프로젝트에만 관심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남성들이 어떻게 남성 혐오를 당했는지는 본인들이 입증해야 될 문제다. 가령 ‘집게손가락 논란’ 같은 경우 많은 남성들이 ‘남혐’이라고 주장하는데, 누가 봐도 아니다. 엄지와 검지가 붙어 있는 손가락 모양을 보고 이렇게까지 화를 내면서 페미니즘을 탓하는 것은 망상에 가깝다. 그것이 남성 혐오가 아니라는 걸 왜 우리가 증명해야 하는지 의구심마저 든다.
반면 여성 혐오는 그 뿌리의 깊이부터 다르다.
여성 혐오와 남성 혐오, 두 단어만 놓고 봐도 언어 구조상 동일한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가끔은 그냥 미소지니(misogyny)라고 그대로 음차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미소지니, 즉 여성 혐오는 여성에 대한 선행 차별, 문화적·정치적·구조적 차별에 대한 것이다. 이걸 ‘여성 혐오’라고 표기하면 당연스럽게 ‘남성 혐오’라는 말이 따라 나온다. 전혀 다른 두 개념이 네 음절로 병치되는 순간 동등한 개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여성 혐오는 단순히 여성들을 미워한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열등한 존재, 주변화된 것으로 인식하고 남성 중심적 세계관에서 여성의 지위를 훼손한다는 개념이다. 그에 반해 남성 혐오는 기껏해야 기분 나쁘고 끝나는 문제다. ‘혐오(hate)’라는 표현 때문에 남성들은 “그래도 여성들이 남성을 미워하는 게 있잖아”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 ‘혐오’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증오 때문에 여성이 남성을 죽이진 않는다. 반대 경우는 존재하지만. 여성 혐오는 ‘미소지니’라는 특수한 개념이다. 남성 혐오와 동등한 개념처럼 여겨지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남성에게도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맨박스’에서 벗어나는 것이 남성을 더 자유롭게 한다는 꽤 좋은 담론이 이미 존재하고 그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문명화된 사회에서 시민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소양이지, 필요에 의한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하다. 가령 길을 걷다 100만원이 든 지갑을 주웠을 때 경찰서에 갖다 줘야 한다는 인식은 시민의 덕목이라서지, 지갑을 주운 사람에게 꼭 필요한 행위기 때문은 아니지 않나. 페미니즘은 분명 ‘맨박스’처럼 남성에게 실용적인 논리도 있겠지만, 민주화된 사회, 민주주의 국가에서 문명화된 사회의 일원이라면, ‘당연한 덕목’ 같은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여성과 함께 살아가야 하지 않나? 남성에게 맨박스 담론을 이야기하기 전에, 페미니즘은 그냥 시민의 책무이고 덕목이라는 걸 먼저 강조했으면 좋겠다.
남성에게 추천하고 싶은 페미니즘 도서가 있다면?
<82년생 김지영>. 앞서 말한 페미니즘 정의에서 ‘현실 인식’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는데, 이 책을 통해 여성이 처한 현실과 겪고 있는 차별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학술적인 개념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여성들이 살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을 하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82년생 김지영>은 뭘 어떻게 하자고 주장하는 작품은 아니다 그저 여성의 경험을 담담하고 건조하게 풀어내는 책이다. 남성이 그들이 겪는 것보다 훨씬 넓은 차별의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며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실천 의지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대중문화 평론가로서 미디어가 경계해야 할 태도는?
유튜브를 제어할 수는 없다. 대신 레거시 미디어는 좀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온갖 SNS가 우리 일상 속 깊숙이 스며들었지만 여전히 레거시 미디어가 가진 영향력은 크다. 사실 ‘젠더 갈등’, ‘여성 혐오 VS 남성 혐오’와 같은 프레임은 모두 레거시 미디어가 만들었다. 정확히는 남성들이 만든 프레임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다. 계속 언급하는데, ‘집게손가락’으로 논란이 일면 언론은 그게 아니라고 기사를 내야지, 흔히 말하는 ‘He Said, She Said 저널리즘’만 실천하는 현실이다. 누가 주장하는 걸 그대로 전달하는 부화뇌동식 보도가 무슨 가치가 있을까? 적어도 전통 언론에선 부화뇌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첫 번째 바람이고, 두 번째는 미디어가 PC주의자들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제로 여성 혐오를 했다는 이유로 정말 ‘캔슬’된 게 얼마나 될까? 적어도 ‘캔슬 컬처’가 한국에서는 굉장히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프레임으로 몰고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근 대중문화를 소비하며 불편했던 경험이 있나?
지난 몇 개월간 연예 매체가 ‘박나래’라는 이름을 활용하는 방식에 정말 환멸을 느꼈다. 물론 박나래 씨가 잘못을 했다. 그걸 두둔하려는 건 아니다. 그런데 온갖 매체가 아무 상관없는 기사 헤드라인에 ‘박나래’를 무지성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전현무, 기안84, 김지민 등 주변 인물이기만 하면 ‘박나래’는 맥락과 관계없이 무조건 언급된다. 조회 수 장사를 위한 언론사의 ‘저열함’이라고만 환원하기에 케이스는 다르지만 ‘차은우’는 그런 피해가 덜하다. 역시 욕먹는 여성이 가장 만만하다는 ‘젠더 불균형’이 드러난 사례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젠더 불균형과 갈등이 해소될 수 있을까?
지금 사회는 젠더 갈등의 첨예함만을 의제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격차가 선행한다. 그리고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서 갈등이 벌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호주제 폐지 당시 수많은 기득권 남성이 들고 일어났다. 그야말로 갈등과 저항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호주제는 폐지됐다. 저항을 하든 말든 해치워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갈등이 나쁜 걸까? 그렇지 않다.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생기는 사회적 비용 같은 것이다. 그래도 우선 격차를 줄이는 것이 먼저지,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만 생각할 건 아니라는 거다. 그런 면에서 호주제 폐지가 좋은 선례다. 지금껏 폐지되지 않았다면 갈등만 계속됐을 것이다. 가령 염증 때문에 열이 나는 건데 우리 사회와 언론은 열나는 얘기만 계속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건 ‘염증 치료’다. 본질에 집중해야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고 갈등 해소도 따라올 것이다.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로 젠더 이슈를 주로 다룬다. 책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와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을 썼고, 신간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발간을 준비 중이다.
박정훈 기자가 정의하는 페미니즘이란?
가부장제 사회 그리고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배제와 차별에 저항하는 이론이자 운동, 그리고 태도. 성평등을 위한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사회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인 벨 훅스가 페미니즘은 “성차별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라고 정의했는데 명쾌한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남혐’이라고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부터 ‘페미니즘’이 온라인을 통해 대중화됐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페미니즘은 남성 혐오적이고, 여성 우월주의를 뜻하며, 남성이 역차별당한다는 인식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성평등은 남성의 삶을 위협하거나 남성 차별을 조장하는 일이 아니다. 과격하고 극단적인 언행 일부가 페미니즘으로 호도되고, 그것을 보수화된 정치권과 언론에서 페미니즘의 본질인 양 규정하고 승인한 결과로 남성들이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됐다. 몇 년간 그러한 현상이 반복되다 보니 안티페미니즘 운동이 탄력을 받게 되고, 결과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는 쌓일 수밖에 없었다.
일부 급진적이고 과격한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들, 젊은 남성들이 위기감을 느낄 정도인가?
10년 전, 일명 ‘페미니즘 리부트’ 당시 사회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던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이 굉장히 커졌다. 최근에는 ‘딥페이크 처벌법’ 같은 정책적 개선이 이뤄졌는데, 그마저도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 “온라인상의 활동을 제약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N번방’ 사태 때만 해도 남성들이 함께 분노하기도 했는데, ‘딥페이크 성범죄’ 때는 ‘낫 올 맨(Not All Man)’, 다시 말해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다’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젠더 폭력을 근절한다거나, 성차별을 없애려는 시도만으로 남성의 권리가 위협당한다고 생각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뜻밖의 지점에서 박탈감을 느끼는 ‘이대남’이 정말 많다.
지금 젊은 남성들은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일 것이다. 여성의 경우 사회 진출이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표준 모델을 만들고 있다. 여전히 성차별이 심하고, 유리 천장이 존재하지만 우리 어머니 세대처럼 살지 않겠다는 마인드로 비혼이나 대안 가족 등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개척해나가는 반면 남성들의 표준 모델은 여전히 전통적 가부장에 머물러 있다. 사회가 굉장히 변했음에도 여전히 가장으로서 대우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박혀 있는 것이다. 지금 그 어떤 국가에서도 가부장이 되긴 어렵다.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닌데, 한국 남성들은 이 문제의 원인을 여성에게서 찾는다. 남초 집단에 여성이 진출하는 것을 굉장히 경계하고, ‘징병제’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기 때문에 “왜 여자는 군대 안 가” 소리만 반복한다. 사실 이건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징병제를 유지하는 국가를 비난해야 타당한데, 그 화살을 여성에게 돌린다는 것이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군대’는 점점 더 시대착오적인 공간이 돼가는 것은 맞다. 당장 징병제를 전면적으로 개선할 수 없기 때문에, ‘징병’이라는 특수성이 젠더 갈등 문제를 풀기 어렵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언론인으로서 저널리즘이 젠더 갈등 앞에서 가져야 하는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커뮤니티발 보도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커뮤니티에서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하는 식의 기사가 너무 많아졌다. 결국 ‘집게손가락 음모론’도 언론이 사실인 양 기사화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기사를 쓰는 건 기대하지도 않지만, 최소한 커뮤니티에서 발화된 논쟁거리는 신중하게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남성이자 페미니스트로서 경계하는 지점이나 ‘자기모순’이라고 느낀 경험은?
남성들을 비판하면서도 실상은 나도 그들과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라기보다 “페미니스트가 되어가고 있다”라고 말한다. ‘나 정도면 깨어 있지’라는 자만이 가장 위험한 상태라고 생각해서. 성평등 의식도, 페미니즘에 대한 담론도 계속해서 업데이트되기 마련이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둔감해지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계속 나의 의식을 돌아보고, 실수로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이마저도 내가 서른 살 무렵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생각해보지 못했을 문제다.
젠더 갈등을 해소하려면 남녀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표현도 더 과격해지고, 서로에 대한 오해가 쌓인 것 같다.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오프라인을 통해 페미니즘을 접한 남성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거의 없었다. 특정 커뮤니티에서 접하는 페미니즘 말고, 오프라인상에서 소통할 기회가 필요하다. 소통의 장을 만드는 것이 젠더 갈등을 줄여나가기 위한 첫 걸음이 아닐까 한다.
남성들 사이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효과적이었던 언어는 뭐였나?
전에 육아휴직을 쓴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했다. 나라에선 저출생이 심각하니 애를 낳으라고 하지만 막상 출산하고 육아휴직까지 다녀오면 경력이 단절되고 승진에서도 차별받는 현실이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대부분 별말 못 한다.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
크고 작은 SNS 채널에서 무분별하게 만들어지는 여성 혐오 콘텐츠도 문제다.
무방비 상태에서 그런 콘텐츠들에 노출되면 불쾌감과 피로감을 느낀다. 그런데 지상파나 종편도 아니고, 개인이 만드는 채널들에 시정 요구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에는 성 상품화 혹은 여성 혐오 콘텐츠들이 넘쳐나고 있다. 노출이 있는 여성을 노골적으로 등장시키는 헬스 유튜버나, 아프리카TV(현 SOOP)의 ‘엑셀 방송’(여러 명의 여성 BJ가 하나의 방송에 출연해 시청자 후원에 따라 선정적 행위를 하고 후원금 순위를 엑셀 문서처럼 화면에 띄워주는 방송) 등이 그러하다. 사실상 통제가 불가능하다. 반면 유익한 페미니즘 채널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도 레거시 미디어 쪽에선 경향신문의 ‘플랫’이나 한국일보의 ‘허스펙티브’가 있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페미니즘이 힘을 얻어 잘못된 콘텐츠들이 알아서 무너지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요즘 가장 큰 화두는 뭐라고 생각하나?
남성들이 성평등을 수용하는 게 이 시점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청년 남성들이 정의라고 믿고 따르는 공격적인 안티페미니즘이 사실 여성의 삶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성의 삶도 망가뜨린다. 분노가 쌓이고, 극우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니 남성들이 성평등 가치를 수용해 맨박스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곧 신간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이 발간된다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인가?
이전 책인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에서는 남자들이 자기반성을 해야 된다는 메시지를 주로 다뤘다면, 이번에는 남성을 망가뜨리는 구조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 사회는 여성의 권익이 성장했으니 남성들에게 뭐라도 해줘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남성들이 이전 세대보다 못산다고 생각하고, 역차별을 당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한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남성들이 피해를 호소한다고 해서 해소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남성 스스로 자신의 고통이 정말 차별에 의한 것인지 성찰해야 한다. 그래야 남성의 삶도 진정으로 개선될 수 있다.
이한
」남성과 남성성 중심으로 활동하는 페미니즘 단체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의 운영위원이자 성평등 교육 활동가. 책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을 썼다.
이한 활동가가 정의하는 페미니즘이란?
페미니즘을 정의할 자신이 없어 석학들의 이야기를 따르는 편인데, 벨 훅스의 정의를 가장 좋아한다. “페미니즘이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는 운동이다.” 페미니즘이 그저 ‘앎’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만들어내는 운동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페미니즘에 처음 관심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느 순간 돌변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결정적인 일들을 꼽아보자면,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 뉴스에서 사건을 봤을 때는 ‘안타깝다’ 정도였는데, 주변 친구들이 추모 현장에 같이 가보자고 제안해서 따라가게 됐고, 그곳에서 정말 많은 여성들이 모여 슬퍼하고 분노하고 문제에 공감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나에게는 그저 뉴스에 나오는 막연한 사건 중 하나였는데, 이렇게 많은 주변 여성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에 놀랐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조금씩 성차별과 성폭력, 젠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일부 남성과 여성이 페미니즘은 ‘남성 혐오’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답답하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도 많은 청소년들이 “페미니즘 그거 이상한 거 아니에요?”라고 물어본다. 어디에서 그런 정보를 접했는지 물어보면 대개 SNS나 커뮤니티다. 그래도 그런 선입견이 청소년 때까지는 그렇게 뿌리 깊지 않은 것 같다. 마주 앉아서 조금만 자세히 이야기해도 생각이 변하는 걸 느낄 수 있다. 예컨대 나는 그런 오해를 가진 참여자들에게 운동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모든 운동에는 대중적인 것부터 급진적인 것까지 존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독립운동만 해도 그렇다. 3·1운동처럼 비폭력 운동이 있었는가 하면, 윤봉길·안중근 의사처럼 독립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직접적인 행동을 한 운동가도 있다. 그런데 한 외국인이 “윤봉길 때문에 사람 많이 죽었는데 그거 테러 아니야?”라고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다양한 맥락과 역사에 대한 이해 없이 특정 장면만으로 어떤 운동을 폄하하는 것은 잘못됐다. 페미니즘 역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그 운동과 역사의 맥락, 이론을 함께 공부해봤으면 한다. ‘
남페미’라는 용어 자체가 남성과 여성 그 어디에도 속하기 힘들 것 같다는 선입견도 든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나?
남성들 사이에서는 배신자 혹은 ‘여미새’로 여겨지고, 여성들 사이에선 여전히 불신이 존재한다. 남성 페미니스트라며 등장했다가 실망을 안긴 케이스도 더러 있었으니 이해는 간다. 스스로도 그런 고민을 많이 한다. 당장 지금도 ‘내가 뭘 했다고 <코스모폴리탄>과 인터뷰를 하고 있지? 너무 큰 발화 권력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다. 그래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겸손을 빙자한 방관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하지만 나서서 필요한 활동을 하는 게 내 부끄러운 과거와 잘못에 책임지는 자세라고 본다. 이렇게 비장하게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막상 활동을 하다 보면 응원과 지지의 말을 더 많이 듣는다. 꽤 많은 남성들이 문제의식을 느꼈지만 말할 곳이 없었다며 찾아오기도 하고, 여성 페미니스트들도 자신들의 노하우를 공유해준다. 지금껏 활동할 수 있었던 힘이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하 ‘남함페’) 대표로서 사회에 이바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단체의 비전은 ‘유해한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 실천하는 것, 나 또한 “남자는 원래 다 그래~”라는 말로 너무 많은 문제를 외면해왔다. 그런 유해한 남성성에서 벗어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구나, 저런 삶 탐나는데?’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남성성을 제시하고 싶다. 그리고 이 뜻을 함께하는 동료를 만들어내다 보면 우리 사회도 좀 더 안전하고 성평등을 이루지 않을까?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그 자체로 피로하고 갈등을 점화하는 논제로 여겨지곤 했다. 페미니즘을 회피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나?
사랑하는 주변인을 향한 애정과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성평등 모두 정말 중요한 이야기지만 때로는 너무 거창하고 피곤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성차별 문제로 괴로워한다면, 여성 혐오와 성폭력 문제로 일상에서 두려움을 느낀다면 누구든 그 문제를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젠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첫 걸음은?
개인적으로 ‘갈등’이라는 표현이 논점을 흐린다고 생각해서 좋아하진 않지만, 우선 젠더 간 인식 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다. 말은 쉬운데 현실에선 참 쉽지 않다. 강의 때 이를 설명하기 위해 ‘흰금vs파검 드레스 논쟁’ 사진을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흰색과 금색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파란색과 검정색으로 보이는 특이한 착시 이미지가 몇 년 전 커뮤니티에서 화제였다. 근데 이게 누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냥 정말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착시였다. 우리는 자주 외부에 있는 사물,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1020세대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 직업훈련 영역’의 성평등 수준이 다른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여성도 대학에 많이 가고, 학업 성취도도 높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성차별이 낯설고 남 이야기처럼 들리기 쉽다. 그런데 ‘경제활동 영역’, ‘의사결정 영역’을 살펴보면 성차별이 만연하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다른 영역의 경험이 넓어지며 성차별 문제를 인식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교육으로 되겠어?”라며 소용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자포자기할 만큼 교육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도 교육 현장을 다니면서 이 이야기들을 했을 때, 많은 참여자들이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 지점을 인식하게 되며 변화하는 걸 느꼈다. 결국 열린 자세와 교육이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남성들을 상대로 페미니즘을 교육했을 때 가장 효과적이었던 언어는 뭐였나?
아무래도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이 경험하고 고민하는 문제에서 출발하는 게 효과적이었다. 예를 들면 ‘맨박스’ 같은 것들. 나도 ‘남자다워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몸을 혹사해가며 남자답기 위해 애썼고, 일부러 감정 표현도 무디게 하다 보니 부작용 역시 심했다. 그런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다들 하나쯤은 공감하며 호기심을 보인다. 그러고 나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최근 창비에서 나온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라는 책에서 감명을 받아 동명의 모임을 개최했다. 정말 많은 남성들이 공감하며 찾아왔다. ‘연애’를 주제로 한 이야기도 언제나 인기다. 남함페에서 열었던 강연 중에 ‘애증’과 ‘신-남성 연애스쿨’이 있었는데 모두 연애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예를 들면 “애인이 페미니스트인데 어떻게 해야 해요?” 같은 고민을 가진 남성들이 종종 찾아온다. 그들과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애인과 어떤 갈등을 겪었는지 이야기하다 보면 이 대화에 얼마나 몰입하고 있는지 느껴진다. 이렇게 상대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점차 타인과 사회 전반으로 이야기를 확장해나가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여성 혐오적 콘텐츠나 대중문화로 인해 불편했던 경험이 있었나?
대중매체나 SNS, 커뮤니티 반응에 트렌디한 인간이 아니라 잘 모른다. 하지만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미디어 비평을 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비평의 대상을 나락으로 보내려는 건 아니다. 젠더 권력이라는 것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로 인해 누군가는 더 쉽게 폭력의 대상이 되는 세상에서 너무 쉽게 약자 조롱에 편승하지 말자는 것이다. “원칙은 큰일에나 적용할 것, 작은 일에는 연민으로 충분하다.” 알베르 카뮈가 한 말이라고 이동진 작가가 이야기했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지금 논란이 되는 콘텐츠나 유튜버를 비난하기보다 그 힘을 아껴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 더 많은 권력과 힘을 가진 대상에 더 크게 목소리를 내고 싶다.
지금 이한의 삶에서 가장 큰 페미니즘 화두는?
지속 가능성. 뜨거웠던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누군가는 ‘끝물’이고 ‘한때’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사이에 사라진 단체, 기관, 인물도 있어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힘이 약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 각성한 페미니스트들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나도 동료들과 즐겁게 오래도록 이 활동을 하고 싶다.
Credit
- 에디터 김미나
- 일러스트레이터 유승보
- 아트 디자이너 김지은
- 디지털 디자이너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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