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이 진짜 불편한 이유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성생활은 개인의 자유인데 왜 간섭하냐고? 단순한 섹스 토이일 뿐인데 왜 난리냐고? 심지어 리얼돌이 예뻐서 질투하는 거 아니냐고? 여자들이 리얼돌 합법화에 대해 불편해하는 이유를 알려줄게. 왜 이것이 근거 없는 불안이 아닌지도 함께. | 리얼돌,리얼돌 합법화,리얼돌 논쟁,리얼돌 수입,love

리얼돌(Real Doll). 진짜 사람 같지만 진짜는 아니기에 ‘리얼’이라 이름 붙여진 인형이다. 실리콘으로 말랑말랑한 피부를 표현하고, 관절이 움직이며, 머리카락과 눈썹, 눈동자, 가슴까지 정교하게 재현했다. 이 역설적인 존재를 사랑하는 남자들이 등장하는 영화도 있다. <페스티발>의 류승범은 사람보다 예쁜 리얼돌을 끌어안고 살고,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라이언 고슬링은 리얼돌 비앙카를 살아 있는 사람처럼 여긴다. 이들은 리얼돌을 여친처럼 아끼고 인격적으로 대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리얼돌을 바라보는 시선은 영화에서만큼 아름답지 않다. 리얼돌의 본질을 들여다보려면 이 인형이 섹스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성 기구라는 사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강간 인형’이라고까지 비난하는데, 최근 리얼돌의 국내 수입이 합법화돼 논란이 되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여성의 인권이라는 두 논리가 날카롭게 대치 중이다.   이른바 ‘리얼돌 논쟁’은 2017년 5월, 인천 세관이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라는 이유로 리얼돌의 수입 통관에 보류 처분을 내리면서부터 시작됐다. 수입업체는 세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1심 재판부는 세관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019년 6월, 2심 법원이 내린 판단은 달랐다. 리얼돌이 성인용품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1심 판결을 뒤집는 데 주요하게 작용했다. “성 기구는 매우 사적인 공간에서 이용되는데 이러한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는 인식이 전제가 됐다. 결론은 리얼돌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왜곡”할 정도의 음란물이 아니라는 것. 대법원은 2심 재판 결과를 그대로 확정했다. 많은 시민이 법원의 판결에 분개하며 리얼돌의 합법화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부추긴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주세요’라는 국민청원에 7월 8일부터 8월 7일까지 263만792명이 동의했다. 한편으로는 리얼돌 합법화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었다. 리얼돌이 사회적 순기능을 수행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얼마나 촘촘한 근거가 있는 것일까? 코스모는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승희 부대표와 함께 리얼돌 합법화에 찬성하는 주요 입장을 반박해보기로 했다.   Issue 1 단순한 성 기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리얼돌이 단순한 섹스 토이일 뿐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여성들도 남성의 성기를 본뜬 자위 기구를 사용한다.” 하지만 자위 기구를 대하는 남성과 여성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여성들은 성 기구와 남성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윤김지영 교수는 “여성용 바이브레이터는 리얼돌과 달리, 남성 신체의 완벽한 재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바이브레이터는 여성 신체의 민감한 감각을 반영해 진동 횟수, 진동 강도뿐만 아니라 온도, 다양한 색감, 디자인적 심미성 등을 목적으로 한다. 여성이 바이브레이터를 쓰면서 자신의 신체가 느끼는 것에 집중하고자 한다면, 남성용 자위 기구는 여성의 신체를 지배하는 데 집중한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여성용 자위 기구는 외관만 봐서는 용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심미적인 디자인 위주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남성용 자위 기구는 어떻게 더 ‘리얼’하게 여성의 신체를 재현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부 남성들은 여성이 핏줄과 포경된 모양까지 페니스를 그대로 구현한 딜도를 사용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산다. 서승희 부대표는 업무 특성상 포르노를 모니터링할 일이 많은데, 흥미롭게도 포르노 속 여성의 자위는 남성의 성기를 본떠 만든 딜도를 사용하는 것처럼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남성들은 포르노 속에서 여성들이 자위하는 모습과 도구를 학습한다. 하지만 이는 실제 현실에서 여성이 사용하는 자위 기구와 다르다. 이런 오해 자체가 지금껏 남성들이 포르노를 통해 만들어온 판타지인 것이다. 이미 사회에 만연한 성 계층에 대한 고려 없이 단지 여성용 자위 기구도 있듯 남성용 자위 기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평면적이고 편협한 주장이다.” 그러므로 리얼돌 합법화에 대한 논쟁은 단순히 ‘여자도 사용할 수 있다’는 프레임으로 중화될 수 없다.   Issue 2   성생활이 힘든 사람을 도와준다? 일부 찬성론자들은 리얼돌이 성생활이 힘든 사람들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게 돕는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적 소외자’란 중증 장애인, 장애자, 노인 등을 일컫는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처럼 성행위를 하는 것이 인간의 권리고 그것이 박탈됐을 때 반드시 보장받아야 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왜 성적 소외자들이 인간 대신 인형과의 관계를 원한다고 단정 짓는 걸까? 어쩌면 성적 소외자들이 리얼돌로 성욕을 해소하고 싶어 할 것이라는, 아니 해소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그들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하는 편협한 사고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현실적으로 이들이 리얼돌을 사용할 가능성도 적다. 서승희 부대표는 “사회에서 소수자라고 불릴 정도의 사람 중에 1백만~2백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의 리얼돌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성행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이들이 30kg이 넘는 리얼돌을 들어서 옮기고 자세를 바꿔가며 욕구를 해소한다는 것 자체가 가능할까?”라고 지적한다. 동시에 “리얼돌 찬성론자들의 이런 주장은 본인들이 얼마나 인권 문제에 관심이 없고 성적 소외자의 실제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자신들이 리얼돌을 사용하고 싶으면서, 이를 사회 소수자를 이용해 마치 인권 문제인 것처럼 껍질을 씌우는 비겁한 논리다”라고 비판했다. 윤김지영 교수는 찬성론자들이 언급하는 사회적 소수자가 오직 남성으로만 한정돼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그들이 남성 소수자들의 성생활 권리를 예로 들며 리얼돌 이슈를 인권 문제로 확장시키면서, 여성 성 산업 노동자 같은 소수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정작 이 사회에서 여성 장애인과 여성 노인 계층과 같은 소외된 사람들이 성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는 현실 또한 외면하고 있다. 또한 성생활을 반드시 방출·해소해야 할 요소로만 정의 내리는 방식 역시 남성 중심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성생활은 인간 신체와 유사한 리얼돌을 통해 해소·방출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몸에서 다양한 성적 감도를 발견하는 것을 통해서도 향유될 수 있다.”   Issue 3   성범죄율을 낮춰줄 것이다? 성범죄율에 대한 논의는 찬성론자들의 주장 중 근거가 가장 빈약한 대목이다. 관건은 리얼돌이 성범죄율을 낮춘다는 인과관계를 어떻게 증명할 것이냐다. 리얼돌 합법화와 유사한 맥락에서 성매매 합법화와 성폭력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힌 연구를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결과는 정반대였지만 말이다. 독일의 경우 성매매 합법화 이후 성폭력이나 인신매매가 증가했다는 여러 연구*가 발표됐다. 성매매 합법화는 포주들의 주머니만 두둑하게 만들었을 뿐, 실제 여성에게 행해지는 폭력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해석이다. 서승희 부대표는 이런 사례를 통해 리얼돌의 합법화는 성매매의 합법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연구만 보더라도 성매매 합법화는 남성의 성욕이 언제나 분출돼야 하고 자유롭게 표현돼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또한 여성을 성욕 해소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여기기 때문에 폭력과 차별이 더욱 심해졌다”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리얼돌이 성범죄율을 낮추기는커녕, 여성 혐오와 차별, 폭력을 허용하는 세계를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라 입을 모았다. 윤김지영 교수는 리얼돌이 진짜 여성과 섹스하는 듯한 판타지를 충족시켜, 남성들의 여성 신체에 대한 장악력과 통제 욕망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남성이 여성의 몸을 자신의 성욕 배출소로 보는 한, 오히려 리얼돌은 여성의 신체를 가지고 어디까지 시도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실험 도구가 될 것이다. 리얼돌은 남성의 폭력적 지배욕에 대한 시뮬레이션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여성 혐오의 수위와 여성 대상 폭력의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   Issue 4   리얼돌 사용은 개인의 자유다? 리얼돌 논쟁은 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여성의 인권이 대치되는 양상으로 전개돼왔다. 하지만 윤김지영 교수의 말처럼,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자유는 언제나 남성의 권리로만 한정된 채 주장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녀가 꼬집듯, “남성이 자신의 성욕을 여성 신체 유사 형상물에 마음대로 방출할 권리를 국가가 나서서 보장해주는 이 사회는 정작 여성 시민의 안전할 권리와 기본권의 침해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리얼돌은 이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시민이 아닌, 성 계급에 의해 위계화된 위치를 갖고 있음을 입증해줄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서승희 부대표는 “자유가 강자의 언어인 것 같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자유를 누릴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더 큰 자유를 원한다. 그로 인해 어떤 침해와 차별이 자신의 삶에 스며들 수 있는 사람에게는 다른 상식과 규칙이 만들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자유는 타인의 인권에 위해를 가하거나 인권에 침해를 가하면서 확장될 수 없다. 어떤 자유도 절대로 여성의 인권 상위에 존재할 수 없다.”   리얼돌이 사고팔리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 이미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성 착취 산업 구조가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리얼돌의 유통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헤아리기 위해서는 그런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리얼돌 논쟁에서 결국 중요한 건 개인의 자유다. 성욕을 표출할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다면, 여성 인권에 대한 자유도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리얼돌은 여성이 안전할 자유, 존중받을 자유, 자유로울 자유를 위협한다. 여성의 몸 혹은 여성 자체를 물건처럼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공공연히 여성은 인격체가 아닌 성욕을 풀 대상으로만 여겨질 것이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 그것이 자유라는 그럴듯한 말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여성을 향한 폭력과 차별을 강화할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합법화된 성매매가 인신매매를 증가시키는가?(Does Legalized Prostitution Increase Human Traffcking?)(2012), SEO-YOUNG CHO, AXEL DREHER, ERIC NEUMAYER, 독일의 성 매매 합법화, 그 이후 나타난 문제점과 대안(2007), Cornelia Fil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