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뜨는 수공예? 명품 하우스들이 쿠튀르에 빠진 이유
미니멀리즘을 지나 화려한 쿠튀르 판타지가 돌아왔습니다. 디올, 샤넬, 보테가 베네타의 2026 F/W 컬렉션에서 발견한 수공예 디테일과 새로운 럭셔리 패션 트렌드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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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가 미니멀리즘의 안도감을 만끽하던 시절 한편엔 미학적 갈증이 누적돼왔다. 그리고 이번 2026 F/W 시즌, 디자이너들은 억눌러온 판타지를 폭발시키듯 화려하고 거대한 ‘쿠튀르 판타지’를 런웨이 위에 펼쳤다. 자카르와 엠브로이더리, 벨벳과 레이스 같은 고풍스러운 소재부터 퍼와 프릴, 의도적으로 해체하고 비틀어낸 빈티지한 질감까지, 풍성한 장식과 공예적 디테일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이는 단순히 화려함에 대한 욕망으로 그치지 않는다. AI를 비롯해 손쉽게 복제되는 이미지와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인간이 직접 만든 것’과 ‘장인의 시간’은 오히려 대체할 수 없는 가치가 됐다. 특히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하우스의 방향을 새롭게 정의하는 시기인 만큼, 정교한 테크닉과 공예는 메종의 기술력과 헤리티지를 증명하는 강력한 언어가 됐다.
FENDI
ETRO
ERDEM
럭셔리 하우스들은 각기 다른 공예 기법과 서사를 통해 이 판타지를 현실로 불러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이 이끄는 디올은 파리 튈르리 정원에 대형 유리 온실을 세우고, 잔잔한 수면 위에 수련을 띄워 거대한 클로드 모네의 정원을 완성했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허무는 몽환적인 공간에서 디올의 정제된 헤리티지와 특유의 해체주의적 감각을 결합한 컬렉션을 선보인 것. 패브릭 가장자리에 와이어를 넣어 물결치는 실루엣을 만들고, 레이스와 튈 스커트의 끝단을 부식된 듯 풀어헤쳐 낭만적이면서도 서늘한 다크 로맨티시즘을 표현했다. 섬세한 수련과 개구리 장식은 패션과 순수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라우드 럭셔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시적인 장면을 완성했다. 마티유 블라지가 이끄는 샤넬은 하우스가 소유한 공방 집합체 ‘르19엠’의 역량을 전면에 내세웠다. 르마리에 공방의 깃털과 프릴 트리밍은 재킷의 칼라와 소매 끝에서 유려하게 흔들렸고, 르사주 공방의 트위드는 트림을 의도적으로 풀어 빈티지한 질감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미세한 입체 꽃 장식과 메탈릭 마이크로 원사까지 더해 완성도를 높였다. 기존의 클래식함에 독창적인 발상을 구현하는 공방의 수공예가 더해지며 옷은 하나의 아트 피스로 확장됐다. 루이스 트로터의 보테가 베네타는 전통적인 가죽 세공의 영역을 넘어 산업용 신소재까지 공예의 대상으로 끌어들였다. 핵심은 재활용 유리섬유를 새로운 미학적 코드로 풀어낸 것이다. 미세하게 가공한 유리섬유를 섬세하게 엮어 만든 코트와 스웨터, 스커트는 멀리서 보면 얼핏 부드러운 퍼처럼 보이지만 움직일 때마다 빛을 굴절시키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더불어 하우스의 상징적인 인트레치아토 기법을 더해 소재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DIOR
CHANEL
BLUMARINE
BOTTEGA VENETA
EMPORIO ARMANI
2026 F/W 시즌 메이저 하우스들이 선보인 쿠튀르 판타지는 단순히 ‘화려한 옷’으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다. 디지털 이미지와 절제된 미학에 지친 패션계가 다시 디자이너의 고뇌와 장인의 시간, 인간의 손길을 하이패션의 본질로 재정의한 것이다. 형태와 이미지를 손쉽게 복제할 수 있는 시대가 될수록 대체 불가능한 수공예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로고나 일시적인 팝 컬처에 기대던 럭셔리 하우스 역시 앞으로 아틀리에와 전통 공방이 축적해온 유산에 더욱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 또한 옷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장인의 시간과 서사까지 소유하는 방식으로 가치 소비를 이어갈 것이다. 결국 레디투웨어에 스며든 쿠튀르적 공예는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패스트 패션의 홍수 속에서 하이패션의 정체성을 지키는 최후의 수단이자 럭셔리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성이다. 다시 말해 런웨이를 수놓은 아득하게 아름다운 쿠튀르 판타지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한동안 이어질 거란 얘기!
Credit
- 에디터 유재영
- 사진 IMAXtree.com
- 아트 디자이너 변은지
- 디지털 디자이너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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