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한꺼번에 여러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생생한 폴리아모리 입문기

솔직한 욕망을 찾아가는 소설가 아리안나 몬타나리의 폴리아모리 입문기.

프로필 by 김미나 2026.09.11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연인 관계에서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은 바람이라고 믿었다. 다른 사람에게 반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잠자리를 갖는 것 말이다. 책, 영화, 술자리 대화를 통해 학습된 뿌리 깊은 생각이었고, 실제로 내가 가장 큰 상처를 받은 것도 상대의 바람이었다. 16살 무렵, 나는 나이 차이가 조금 나는 남자 친구를 만났다. 당시의 나는 우리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앞으로 내게 다른 사람은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여름이 끝날 무렵, 나는 그가 같은 반 여학생과 바람피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남자 친구는 그녀를 바닷가 별장으로 초대했고, 둘은 스킨십을 했으며, 어쩌면 나보다 그녀를 더 좋아했다. 그해 여름 끝자락, 나는 사람의 위장이 며칠 동안 음식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몸은 계속 작동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질투’라는 유령 같은 감정이 찾아왔다. 질투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풍경을 구체화하는 능력이 있다. 그가 그녀와 해변가를 거니는 동안 내 존재는 어떤 구석진 방에 밀쳐져 있었을까?


그와 헤어진 이후로도 나는 몇 차례 더 남자 친구의 바람을 목격했다. 현장에서 적발당한 남자도 있었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몰래 그에게 온 메시지를 읽다 알게 된 경우도, 이미 헤어진 후 몇 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된 적도 있었다. 이들 중 한 명은 일본어 학원에서 만난 똑똑한 여자와 결혼까지 했다. 나는 매번 괴로워했고, 매번 질투하지 않는 척 연기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괴로운 건 상대가 나를 위해 만들어놓은 달콤한 세계가 한순간에 거짓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현실은 모조리 잘려나간 영화 <트루먼 쇼>처럼 나는 순진하고 착한 여자 친구 역할을 맡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피해자 위치에 서니 묘한 보상심리가 생기기도 했다. 적어도 양심만큼은 내 편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나는 언제나 옳은 편에 서 있는 사람이었고, 그들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변화가 찾아왔다. 동거한 지 수년이 지난 내 연인과 나는 여전히 견고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고, 대출을 받긴 했지만 적당한 크기의 집도 샀고, 귀여운 아기 고양이 두 마리도 키우고 있었다. 모든 게 안정적이었을 때 갑자기 낯선 눈길 하나, 인사 한 번, 새로운 미소 하나가 내 삶에 들이닥쳤고, 단 몇 주 만에 내 일상의 좌표를 사정없이 흔들어놓았다. 나는 새로운 사랑을 피워보고 싶다는 욕구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한순간에 박살 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비틀거렸다. 정신과 상담 의자에 누워 심리 치료를 받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나는 직면해야 했다. 나는 연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가슴을 짓누르는 죄책감과 함께 나 자신이 이토록 변덕스럽고 우유부단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실망했고, 괴로웠다. 내 인생 처음으로 ‘잘못을 저지른 쪽’에 서게 된 것이니까. 신뢰를 깨뜨린 것도 나였고, 연인이 아닌 남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떨렸던 것도 나였으며, 비밀의 영역을 키우고, 나와 삶을 나누는 연인의 눈을 가리고, 우리가 함께할 미래를 의심하게 만든 것도 나였다.


내 머릿속은 온갖 자책과 나를 괴롭히는 환청이 내뿜는 소음으로 뒤엉킨 경주장 같았다. 영화 <라스트 키스>에서 바람맞고 비명을 지르던 조반나 메초조르노의 고함,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아내의 성적 판타지를 듣고 아연실색하던 불쌍한 톰 크루즈의 눈빛, 그리고 안나 카레니나. 진실한 사랑, 그러니까 불륜을 택한 뒤 그녀가 감당해야 했던 비극은 또 어땠던가?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환상을 좇은 엠마 보바리는 또 어떻고? 이기적으로 굴었으니까, 사랑해준 사람에게 상처를 줬으니까, 그 사람만을 순수하게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나 역시 그들처럼 파멸하고 말 거라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배신’ 혹은 ‘바람’이라는 단어 속엔 결코 회피할 수 없는 부정적인 가치가 내포돼 있다. 언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형성하는데,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너무나 인간적인 이 경험을 은연중에 도덕적으로 비난하거나 단죄하지 않은 채 온전히 포용해주는 어휘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람’이라는 단어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상상 속에서 나는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고, 배심원석에는 어릴 적 내 모습도 있었다. 나는 구제 불능이 된 것만 같았다. 연인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문제는 나였다. 이기적인 욕심쟁이. 나는 결국 모든 걸 잃게 될 것이고, 그게 마땅한 대가라고 느껴졌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바람’이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되뇐 나머지, 이제는 ‘바람’이 어떤 의미인지도 희미해졌다. 현실 속 그 무엇도 대변하지 못하는 단어가 돼버린 것이다. 그래, 나는 누군가에게 흔들렸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일은 아니었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 그냥 사고 같은 일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갑자기 들이닥치기도 하니까. 나를 흔든 사람은 새로웠고, 짜릿했으며, 내 호기심을 자극하고 웃게 만드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상대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게 그 어떤 악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리어 그것은 인생이 준 축복 중 하나였다. 그 기쁨을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훗날 내 연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내가 무슨 자격으로 막아설 수 있을까?


사랑에 영원함을 보장하는 마법은 존재하지 않지만,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야말로 유혹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차라리 사랑하는 연인 곁에 뿌리내린 채로 새로운 사람에게 흔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지혜롭다. 우정에서는 당연하게 작동하는 이치가 왜 사랑에서는 달라야 하는 걸까? 연인에게 우리가 함께 살아가되, 우리 관계의 규칙을 바꿔야겠다고 선언하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했다. 당연한 일이다. 한 번에 둘 이상을 사랑하고 싶다고 인정하는 꼴이니까. 나는 우리의 사랑이 혹독한 절제와 억압을 반복하는 훈련장이 되지 않길 바란다. 나는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빵과 장미를 쥐여주고 싶었다.


파베세 운하 끝자락에 있는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 중 그에게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어릴 적 내 방에 가득 붙여놓았던 연예인 사진 이야기로 내 마음을 설명하려 애썼다. 그 사진 속 인물들은 전부 어딘가 엉성한 B급 배우나 가수들이었다. 나도 그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사실은 내 부모님이 좋아하는 이들이었거나, 쿨하고 지적인 사람으로 평가받기 위해 숭배해야만 하는 대상들이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엔 스파이스 걸스가 있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면서. 정작 매일 아침 눈떴을 때 나를 바라보고 있던 건 라디오헤드의 쓸쓸한 눈빛과 험프리 보가트의 담배 연기, 스탠리 큐브릭 영화의 한 장면들이었다.


“이번만큼은” 나는 그에게 운을 띄웠다. “규칙을 정하는 주체가 내가 되고 싶어. 출처도 모르는 곳에서 만들어져 누군가에 의해 규정된 절대적인 기준에 내 삶을 더 이상 맞추고 싶지 않아. 우리가 어떤 모양의 삶을 살아갈지는 너와 나, 우리가 직접 결정하고 싶어.”


그의 반응은 냉담했다. 설득이 통하지 않은 듯했고, 혼란에 사로잡힌 얼굴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도 난 말을 꺼낸 걸 후회하진 않았다. 내 생각에 확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눈떴을 때, 그가 떠날 준비를 마치고 문 앞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인기척에 눈을 뜨니 그는 옷장 앞에서 박스 테이프와 어디선가 구해온 스파이스 걸스 엽서를 들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명확한 정답을 찾진 못했다. 앞으로 우리 앞에 끼어들 다른 사람들, 메시지들, 타인의 침대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그것들이 실제로 존재할지, 아니면 단지 상상 속의 가설로 남을지도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차츰 알아갈 것이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도, 집으로 돌아와 옷장에 붙어서 나를 올려다보는 스파이스 걸스를 볼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세상 그 어디도 아닌 바로 이곳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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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김미나
  • 글 Arianna Montanari(저널리스트 겸 소설가)
  • 일러스트레이션 Elio Ferrario
  • 아트 디자이너 김지은
  • 디지털 디자이너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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