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싶어] 조욱형 PD가 '모솔'들을 보고 느낀 진짜 감정

조욱형 PD가 카메라를 통해 마주한 스무 살의 나. 표현에 서툴고 연애에 미숙했던 나와, 당신이 놓치고 있던 것에 대하여.

프로필 by 천일홍 2025.10.10

신기한 경험이었다. 지난가을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던 밤부터 릴리즈 이후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따금씩 마음이 두근거리는 신기한 경험. ‘연프’ 첫 연출이 이렇게까지 강렬한 감정으로 남을 줄은 몰랐다. 대체 왜 우리 모솔들은 내 머릿속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고 있나? 여운이라기엔 너무 어제 같은 1년 전 제주의 열흘은 대체 뭐였을까?

시간의 관통. 적당한 말을 찾고 고른 끝에 내린 결론이다. 제주에서의 촬영 동안 나는 나의 20대가 열흘간 나를 관통해갔다고 느꼈다. 고작 열흘간 10년의 세월이 압축적으로 관통해 갔으니 후폭풍이 없을 수가. 출연자 한 명 한 명의 작은 행동 하나에 그 시절 내 조각들이 고스란히 박혀 있었다. 이성의 뜻하지 않은 관심에 어쩔 줄 몰라 눈을 돌리던 ‘상호’도, 불이 붙어버린 내 마음만 보고 달려가다 정작 상대의 마음이 식는 줄은 몰랐던 ‘현규’도 모습만 달랐을 뿐, 20대의 나와 어찌 그리 닮았는지. 거절의 한마디를 찾지 못해 저녁에 뭐 할지를 묻고 후회하는 ‘재윤’도, 여자 친구가 어떤 모습에 실망하는지도 모르고 싸우듯 술을 들이붓던 ‘승리’도, 달라진 내 마음을 나도 몰라 헤매다 뜻하지 않게 상처를 준 ‘정목’도. 아찔할 정도로 나였다. 그러니 촬영장에서도, 편집본을 시사할 때도, 심지어 집에서 가족과 이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마저도 20대의 내가 불쑥 말을 거는 기분이었다.

“이게 다 너야. 기억나?” 10년짜리 열흘이 떠올려준 오래된 물음표들을 이제야 주섬주섬 정리해본다. 그래서 이 글의 수신자는 20대의 ‘나’다. 그리고 나처럼 연애도 사람도 힘들었던 당신에게도.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말이 있듯이, 저에게는 근거 없는 수치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재윤’이 썸메이커 서인국 배우를 처음 만나 했던 말. 촬영 현장에서 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스무 살 무렵의 나를 시간이 흘러 다른 사람이 정확히 정의 내릴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게도 수치심에는 근거가 없었다. 눈을 쳐다보지 않고 말할 때가 많았고, 속에 있는 말들은 술 없이 내놓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누구보다 열심히 근거를 만들려 했다. 지금도 못 고친 사투리를 고치려고 서울말을 따라 하고, 인기 많은 선배의 말투를 흉내 내고, 남들 따라 헤어스타일이나 옷을 바꿔보려고도 했다. 노력이 모이면 근거가 되고, 그 근거가 수치심을 지우고 자신감을 만들어주리라 그땐 믿었다. 지금은 안다. 수치심이든 자신감이든 근거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는 걸. 한국인 최초로 수학계 노벨상이라 일컫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는 말한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근거가 있는 자신감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라고. 스타일, 외모, 졸업한 학교, 다니는 직장, 수입까지 타인의 인정을 근거로 삼아야 하는 인생은 얼마나 얄팍하고 고될 것인가. 이렇게 얻은 자신감은 끝까지 채워질 수도 없다. 모든 인생이 등수로 매겨지면, 내 앞 사람의 수만큼 수치심도 더해갈 뿐이니까. 그러니 그냥 누굴 만나든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대하라.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사람임을 믿고 나만의 고유한 매력을 의심하지 말자.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만 잊지 말자. 근거는 당신 자신으로 충분하다.



“지금 제 마음속 1순위는 ( )님입니다.”

모든 연애 프로그램 인터뷰의 마지막은 항상 이 질문으로 맺는다. “지금 당신의 마음속 1순위는 누구인가요?” 숨도 안 쉬고 마음속 1순위를 말하는 사람도 있고, 잠시 두 사람 사이에서 고민하다 말하는 이도 있다. 모두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어렵잖게 내보인다. 누구에게? 제작진에게. 그렇게 3~4일을 제작진에게만 속마음을 보이다 때를 놓치는 안타까운 예가 과연 ‘연프’에만 일어나는 일일까? 왜 그동안 나왔던 수많은 출연자가 가장 진실하게 마음을 밝힌 대상은 좋아하는 상대방이 아닌 제작진이었을까? 나도 그랬다. 마음을 밝히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속마음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만 드러내곤 했다. 위로를 받는 그 순간, 잠시 미뤄질 용기를 가져본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인터뷰를 들어주는 제작진도, 짝사랑에 안타까워해주는 친구들도 그, 그녀가 아닌 것을. 왜 나는 회심의 결정구를 죽어라 관객석에 던지고 있었을까?

그냥 말해라. 메신저로도 전화로도 말고 그냥 만나서 표현하자. 쓸데없이 혼자 아련해지지 말자. ‘그래, 고백을 하긴 할 건데 더 좋은 타이밍을 기다리는 중이야’ 같은 전략적 사고도 그만해라. 그런 완벽한 타이밍은 결코 오지 않는다. 충분히 친구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문득 말하자. 당신에게 마음이 가고 있고, 더 알고 싶고, 가까이 있고 싶다고. 결과는 생각하지 마라. 피할 수 없는 이불 킥이라면 말도 못 해본 겁쟁이로 차지 말고, 당당한 용자로 차라. 설령 상대와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당신은 한 발짝 전진했다.



“내 호감이 5인데… 뭔가 100만큼 과장한 느낌이 들어가지고.”

용기를 내 고백한 ‘여명’에게 다른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 ‘재윤’은 그날 밤 그녀를 혼란에 빠뜨리고 만다. “그렇게 말하면 ‘여명’ 씨가 마음이 더 편해질 거라 생각하고 거짓말을 했어요.” 후에 밝힌 ‘재윤’의 진심. 아, 진짜 이 장면은 몇 번을 봐도 긴 한숨이 나온다. 대체 왜 그랬을까 하는 마음이 반, 너무 알 것 같은 마음이 반이라. 모두 한 번은 그런 경험이 있을 거다. 모든 용기를 짜내서 고백한 상대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는 기분이란. 맨정신으로 다음 스텝을 밟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민홍’의 표현 그대로다. “일상생활 가능해요?” 좋아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혼란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 그걸 없었던 일로 되돌려서 상대가 편하길 바라는 심정을 왜 모르겠나. 하지만 그런 혼자만의 배려가 또 한 번 상대에게 곤란을 주고야 마는 경우를 흔히 본다. 누군가를 좋아하기로 결심했다면 잊지 말자. 언제나 진실할 것. 상대에게도 그렇지만 우선 자신에게. 언제나 스스로에게 진실해야 한다. 아무리 상대가 편해지길 바란다 해도 자기 마음을 부정해선 안 된다. 사랑도 내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상대에게 누군가 있다 하더라도 내 마음에 진실하는 것이 먼저다. ‘재윤’은 방송 후에 알게 됐겠지만, 당시엔 ‘여명’ 역시 같은 상황이었다. ‘정목’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녀는 한 발 다가서는 쪽을 택한다. “하루에 0.1씩 다가가겠다”라고 말하는 ‘여명’은 자신의 진심에 충실했고, 제주에서의 열흘간 자기 자신으로 살면서 응원하고픈 사랑의 전형을 남겼다. 제주를 떠날 때 그녀의 표정이 밝았던 건, 커플이 돼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진실하고 상대에게 당당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을지 모르겠어. 알려주면 안 돼?”

큰일났다. ‘현규’는 맹렬하게 타오르고 ‘지수’는 서서히 식어간다. 조금씩 거리감을 느끼던 ‘현규’는 자신의 어쩔 수 없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안쓰러울 정도로 절박하다. 정답을 네가 말해준다면 나는 그저 따르겠다며 자신을 내던진 듯한 한마디에 ‘지수’는 의아해하며 되묻는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달라고?” 썸 그리고 연애는 둘이서 하지만, 연애도 결국 상호작용이다. 내가 뭔가를 해야 상대방도 뭔가를 할 수 있다. 지금도 숏츠에 뜨는 ‘유느님’의 명언이 있다. “하하야, 아무것도 안 하면 도와줄 수가 없어. 네가 해야 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당신의 뜻을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사랑이 싹트긴 어렵다. 보호자를 찾는 게 아니라면 당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최선을 다해라. 배려는 상대를 존중하고 의견을 구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설령 당신의 선택을 상대가 탐탁지 않아 한대도 주눅 들지 마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리고 이해의 폭을 넓혔으면 된 거다. 그렇게 서로의 다름을 맞춰가는 것이 연애의 맛일 테니.



“궁금해요. 왜 마음이 변한 건지. 저한테 원인이 있는 건지… 원인이 있다면 고칠 수 있을까요?”

상대의 마음이 식었음을 깨닫게 된 ‘이도’. 그는 왜 변한 걸까? 대화의 결이 다른 것 같다는 그의 말도 그녀에겐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설명이 되지 않으니 그녀는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지 물으며 눈물을 흘린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처음엔 상황을, 그다음엔 상대를, 마지막엔 스스로를 원망하며 오랫동안 괴로워하기도 한다.

세상의 어떤 일들은 시간이 흘러야만 알게 된다. 이제는 안다. 모든 것은 변하고 사랑도 예외일 수 없다는 걸. 변한 사랑을 당신에게만 일어난 지독한 불행이라 생각지 마라. 그건 언제든 찾아오는 날씨의 변화와도 같은 것이다. 사랑은 기간이 아니라 순도다. 서로가 짧지만 100% 진실했다면 그것도 괜찮은 사랑 아닌가. 무릇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변한다. 사랑을 줬던 그도 변하고, 사랑을 받았던 나도 변한다. 그러니 상대나 자신에 대한 원망은 멈추고, ‘이도’의 끝인사처럼 ‘Be myself’ 하자. 훌륭한 이별은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원래 남의 연애가 쉬워요.” 썸메이커 카더가든의 말이 맞다. 남의 연애가 쉽다. 나의 연애일 땐 제대로 해낸 것이 거의 없다. 이론은 웅장하고 실전은 고달프다. 그럼에도 말한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있는 힘껏 고백하고, 어떤 순간에도 스스로에게 진실하라. 그리고 당신답게 주도하고, 훌륭하게 헤어지자. 몇 번이고 반복해도 좋다. 당신은 몇 번이고 성장하며 좋은 사람이 돼 있을 테니. Good for you!

writer 조욱형(<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PD)

Credit

  • Editor 천일홍
  • Writer 조욱형
  • Illustrator 도요
  • Photo by NETFLIX KOREA
  • Digital designer 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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