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여성 '엄마'라는 존재
2025년 5월호 FUN FEARLESS FEMALE은 세상에서 가장 유쾌하고 용감한 여성, 엄마의 다채로운 면면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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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하는엄마

그럼 알 거 아니야. 딸을 위해선 내가 옳은 일만 할 거라는 거.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에블린
‘에블린’(양자경)은 자신을 실패한 엄마로 여긴다. 운영하는 세탁소는 변변치 못하고, 남편 ‘레이먼드’(키 호이 콴)와 본받을 만한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니까. 무엇보다 동성애자인 딸 ‘조이’(스테파니 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모녀 관계는 얼음장처럼 굳어 있다. 그런 그가 멀티버스 세상에서 수많은 ‘나’를 만나며 마침내 깨닫게 된다.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딸을 사랑하고 있었음을. 사랑은 어디에나 있고, 그 모양은 제각각이라는 것을 말이다. 멀티버스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에 사랑은 모든 걸 초월한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실체적인 힘을 얻은 건, 그 진심이 양자경을 통해 뻗어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를 구하기 위해 끝없이 세계를 넘나드는 에블린의 여정 속에서 양자경은 무엇도 막을 수 없는 강인함과 가족에게 미움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취약성을 오가며 놀라운 균형을 보여준다. 그중 영화가 포착한 양자경의 천변만화한 얼굴 중 백미는 파트 2에 있다. 에블린이 조이와 머리를 맞댄 장면에서 확신에 찬 표정으로, “우린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근사한 엄마의 말에 자연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다.
- 이유채(<씨네21> 기자)
#성장하는엄마

내 딸이 어르신이나 나처럼 혼자되지 않을까 겁이 났어요.
영화 <딸에 대하여> - 엄마
<딸에 대하여>의 요양 보호사 ‘엄마’(오민애)는 여자의 인생이 오직 한 가지 길뿐이라 믿어온 중년이다. 때 되면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그러나 다음 세대의 여성은 다르다. 딸 ‘그린’(임세미)은 동성 연인 ‘레인’(하윤경)과 함께 살고 싶어 하고, 부당하게 해고된 동료의 복직을 요구하는 사회적인 목소리도 낸다. 경로 이탈 정도가 아닌 아예 새 길을 만들어 걷는 딸은 엄마에게 걱정거리이자, 이제껏 진실이라 믿어온 삶을 흔드는 위협적인 존재다. 그렇다고 딸을 부정할 것인가. 소외된 ‘노인’(허진)을 정성껏 돌봐왔던 성정에서 짐작할 수 있듯, 사랑이 많은 엄마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딸의 인생을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과 노화, 타인의 고통과 여성의 다른 삶을 절실히 사고한 끝에 성장한다. 엄마는 오랫동안 불안과 자기 목소리를 몸에 봉인한 여자처럼 행동한다. 딸의 동성 연인과 한 뼈도 닿지 않기 위해 접은 어깨, 딸네가 있는 옆방에서 밤새 이부자리를 뒤척이던 모습은 이 인물의 모든 것을 초반부터 말해준다. 그렇지만 갖은 풍파를 겪은 뒤의 어느 날, 손잡고 걷는 여자들과 엄마가 스치는 장면에서 엄마는 깨끗한 미소를 지으며 어느새 밝은 가능성의 세계로 나아갔음을 보여준다.
- 이유채
#진짜광기엄마

네가 왜 이 탑에 사는 줄 아니? 맞아, 널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야!
애니메이션 <라푼젤>- 고델
왕실의 공주인 ‘라푼젤’을 갓난아기 때 납치해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운 마녀 ‘고델’. 그녀를 ‘절대 악’이 아닌 ‘엄마’로 볼 수 있는 이유는 꽤나 충분하다. 고델은 여느 디즈니 악역들과는 달리 주인공인 라푼젤을 학대하지 않는다는 점, 18년 동안 가스라이팅으로 탑에 감금하지만 어떤 무력도 동원되지는 않았다는 점, 라푼젤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귀한 물감이든 책이든 뭐든 구해다 준다는 점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그저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고델의 사랑에 대가가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 라푼젤은 엄마로부터 정신적·육체적 독립을 시작한다. 그럼에도 엄마에 대한 애착이 마음속 한구석에 남아 있던 것일까? 고델이 탑에서 추락할 때 진심을 다해 손을 뻗는 라푼젤의 얼굴엔 찰나의 애증이 뒤엉켜 있다. 고델이 라푼젤을 애지중지 모성으로 키운 것은 비록 마법의 머리카락 때문이었지만, 라푼젤이 느낀 것은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 김미나(<코스모폴리탄> 피처 에디터)
#부하직원엄마

내가 너무… 고정됐었나 봐!
소설 <가녀장의 시대> - 복희
‘올리브영’은 ‘영일레븐’,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아만다 사이프러스’, ‘리즈 시절’은 ‘로즈 시절’이라 말하는 귀여우면서 허당끼 있는 엄마 ‘복희’. 딸 ‘슬아’와는 다소 특이한 관계에 놓여 있다. 바로 딸이 사장이고 엄마가 부하 직원이라는 것. 근무 중에는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호칭 역시 ‘대표님’이라고 부르는 것까지, 웬만한 모녀 관계에선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분명 복희에게도 슬아에게 가르침을 주고, 업어 키우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소설 속에선 그 관계가 완전히 전복됐다. 슬아의 레즈 부부 친구를 보고 “이런 질문이 실례일 걸 알지만서도”라며 사족을 단 뒤 “누가 여자 역할이고, 남자 역할이세요?” 하고 묻고, 답변을 듣고는 “내가 너무… 고정됐었나 봐!” 하며 다 같이 깔깔 웃는 장면은 세상 호쾌하다. 이토록 편견 없고, 꼬인 데 없으며, 꼰대도 아니고, 페미니스트인 딸과 함께 연대하며 살아가는 엄마가 또 있을까?
- 김미나
#히어로엄마

엄마가 봉석이 지킬 거야.
드라마 <무빙>- 이미현
혈혈단신 돈가스 가게를 운영하며 아들을 키우는 헌신적인 엄마, 퍽퍽한 삶에도 아들 ‘봉석’(이정하)에게는 친구처럼 늘 다정한 엄마. ‘미현’(한효주)의 화장기 없는 얼굴 너머엔 히어로의 면모가 숨겨져 있다. 안기부 역사상 최연소로 입사해 모든 훈련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은 최정예 엘리트 요원, 초인적인 오감 능력을 지닌 존재. 국가의 음모와 임무로부터 벗어나고자 초능력을 숨긴 채 살아왔지만, 자신에게 초능력을 물려받은 아들이 위험에 처하는 순간엔 주저 없이 총을 든다. 아들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엄마의 본능에 초능력이라는 판타지가 더해져 <무빙> 속 엄마의 얼굴은 초현실적 존재로 재탄생한다.
- 천일홍(<코스모폴리탄> 피처 에디터)
#가짜엄마

코렐라인, 난 너의 다른 엄마야.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줄게.
애니메이션 <코렐라인>- 가짜 엄마
‘엄마’를 평가할 수 있는 건 그에게서 양육된 자식이 가진 고유의 특권일까? ‘코렐라인’에게는 2명의 엄마가 있다. ‘진짜 엄마’ 멜은 늘 바쁘다는 핑계로 자신에게 무심한 엄마지만, 다른 세계에서 만난 ‘가짜 엄마’는 코렐라인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는 최고의 엄마다. 코렐라인은 당연히 가짜 엄마를 따르지만, 이내 가짜 엄마의 친절은 조건부이며 그의 정체는 아이의 눈을 빼앗아 지배하려는 마녀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코렐라인은 마녀에 맞서 진짜 엄마 멜을 되찾고, 만족하지 못했던 엄마와의 관계에서 새로운 행복을 발견한다. 결국 <코렐라인>의 ‘엄마들’은 엄마와 자식이 계속해서 변하는 유동적 관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엄마는 점점 헌신을 줄여가며 본인의 삶을 전수하고, 자식은 그런 엄마를 파악하고 이해하며 성장과 독립을 배운다.
- 복길(자유 기고가)
#자유를찾아떠난엄마

오랫동안 생각했던 일을 하고 싶어. 너에겐 미안하지만.
영화 <리틀 포레스트>- 혜원 엄마
드라마를 보며 이렇게 많이 울었던 때가 또 있었나. “나 너~무 좋아” 이 한마디가 슬피 들렸던 적은.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으로 절절하고 애틋한 엄마의 모성을 완벽하게 연기한 문소리.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그가 연기한 ‘혜원 엄마’는 ‘애순’과 정반대 지점에 있는 엄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애도, 취업도 뭐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것 없어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날, 엄마의 품이 그리워진 딸 ‘혜원’(김태리)은 본가로 돌아오지만, 어느 곳에서도 엄마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저 어렸을 적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기억만이 빈집을 채우고 있을 뿐. 그렇다. 별안간 편지 한 통만 남기고 자신의 삶을 찾아 딸을 떠나버린 엄마는 그간 한국 영화에서 쉬이 보지 못한 캐릭터다. 영화 속에서 엄마의 전사 역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엄마가 오랫동안 무얼 하고 싶었는지, 지금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래서 지금 그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도통 알 길이 없다. 그렇게 영화 속에서 암전된 엄마의 서사는 어쩌면 오랜 시간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내,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던 한 여자의 고충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고충의 싹조차 눈치채지 못한 딸의 무심함도. 전형성을 벗어난 캐릭터가 주는 깨달음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 천일홍
#병적인집착엄마

세상에서 나보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없어.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널 위한 거야.
영화 <런>- 다이앤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고, 아토피가 심한 데다 심장병도 있는 ‘클로이’(키에라 앨런)는 엄마의 극진한 보살핌과 사랑 속에 살아가고 있다. 온 집안의 환경과 식단은 장애를 가진 클로이에게 맞춰져 있다. 엄마인 ‘다이앤’(사라 폴슨)이 희생하고, 신경 쓴 덕분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병적인 모성애에서 비롯된 거라면? 사실 다이앤은 출산하자마자 2시간 만에 아이를 떠나보냈고, 큰 충격으로 같은 신생아실에 있던 클로이를 납치한 것. 모든 면에서 지극히 정상이었던 클로이에게 개가 먹는 근이완제 및 정신과 약을 불법적으로 복용시키고, 장애를 갖게 했다. 한 인간의 이기심과 병적인 욕망이 새로운 생명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것. 진실을 몰랐다면 그들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새의 발목을 잘라낸다고 해서 도망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이앤은 애초에 딸을 인간이 아닌, 하나의 소유물로 봤기 때문에 모성애로 치부해온 날들에 밑천이 드러난 것이다. 진실이 보일수록 숨겨왔던 광기를 표출하는 다이앤의 모습이 경악스러운 이유다.
- 김미나
#비범한엄마

누군가는 내 또래 여자들의 이야기를 해야 했지요. 남들이 걷는 길에서 벗어난 내가 자격이 있나 싶으면서도 길에서 벗어나야 길이 보일 때가 있으니 계속했어요.
소설 <시선으로부터,> - 심시선
딸과 아들, 손녀와 손자 온 가족이 엄마의 10주기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모인 하와이. 이곳에서 엄마, ‘심시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한국을 떠나 하와이로 이주해야 했던 피난민이자, 예술가의 꿈을 위해 독일로 유학을 떠난 뒤 작가로 명성을 떨친 화가였던 심시선. 두 번의 결혼과 전남편의 자살로 보수적인 사회가 그를 향한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며 자신만의 궤적을 그려간 비범한 인물이다. 첫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세 남매, 두 번째 결혼으로 얻은 딸,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과 한 가족을 이루는 이 일가족의 뿌리에도 어김없이 심시선이 있다. 심시선이 이룩한 모계사회,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부터 시작되는 족보를 보라. 얼마나 짜릿한가! 이제 자식들은 그가 자랐던 이 땅에서 자신의 뿌리를 다시 한번 상기하며, 자신의 인생을 분투하며 살아간다. 심시선으로 시작해, 심시선을 통해 확장되는 이야기. 작가는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 혹독한 지난 세기를 누볐던 여성 예술가가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일가를 이뤘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고 싶었다. 쉽지 않았을 해피엔딩을 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시선으로부터,>는 여성의 시선에서 그려낸, 비장한 여성 서사가 아닐 수 없다.
- 천일홍
#3대모녀의서사

이 집 살림 밑천 아니고, 내 딸이에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광례, 애순, 금명
‘광례’(염혜란)는 바다에 들어가 숨을 참으며 자식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었다. 자식을 위해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강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광례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며 자신의 똑똑한 딸 ‘애순’(문소리, 아이유)이 어디서도 꺾이지 않는 꼿꼿한 존재가 되기를 바랐다. 양배추를 팔면서도 문예지를 읽던 애순은 광례의 바람대로 컸다. 비록 육지에서 대학을 다니겠다는 꿈은 좌절됐지만, 그는 현실에 주눅 들지 않고 주어진 상황 안에서 늘 자신의 태도를 다림질하며 딸 ‘금명’(아이유)을 키웠다. 광례의 억척스러움은 애순의 강인함이 되고, 금명은 애순의 강인함으로 삶의 굴욕적인 순간들을 극복한다. <폭싹 속았수다>는 격변하는 시대를 살아낸 세 모녀의 가정사 전반을 비추며 가부장제의 억압과 사회적 한계에 맞서는 여성의 생존 방식을 유산처럼 남긴다. 광례와 애순이 자식에게 보여주는 태도는 분명 엄마로서 베푸는 지극한 사랑이지만, 그들이 딸을 키우며 살아낸 삶의 과정은 그 자체로 헌신보다 더 큰 유산이 된다. 모성은 돌봄이나 희생에 머물지 않고, 억압에 맞선 여성이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생존의 기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복길
#좋은엄마 #이상한엄마 #나쁜엄마

낡은 문희여 가고, 당당한 나문희여 오라!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나문희, 박해미, 신지
‘준하’와 ‘민용’의 엄마이자, 천하장사 나씨 집안의 막내딸 ‘나문희’ 여사는 일곱 식구의 가사를 책임지는 인물이다. 하지만 남편 ‘순재’와 며느리에게 무시당하기 일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찬 투정을 하는 식구들에게 “호박고구마!”를 외치며 참지 않는 면모를 보이고, “고리타분한 생각을 바꿔라”라는 순재의 말에 집 안의 온갖 살림살이를 다 ‘바꿔’두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조금 벅차도 명랑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나문희 여사의 캐릭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단연, 스포츠댄스를 배우게 되는 161화. 그날도 토지 분양 사기를 당해 가족들에게 크게 한 소리 듣지만 개의치 않는다. “나는 언제나 이 춤처럼 내 삶을 리드하는 나문희다. 낡은 문희여 가고, 당당한 나문희여 오라!” 사기당한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지만, 그 모습마저 밉지 않은, 조금은 이상하지만 사랑스러운 엄마다. 반면 ‘박해미’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한의원 원장이자, 아빠의 든든함과 엄마의 따뜻함을 두루 갖춘 집안의 가장이다. 가끔 두 아들 중 공부를 잘하는 ‘민호’를 편애하거나 시동생 민용에게 필요 이상의 집착을 보이기도 하지만, 극한의 상황이나 자신이 열세한 상황에서도 “오케이!”를 외치는 세상 쿨한 엄마다. ‘아내’, ‘엄마’, ‘맏며느리’ 하면 떠오르는 클리셰를 모조리 깨는 진보적인 엄마가 바로 박해미다. 커리어에 대한 열정은 넘치지만 엄마로서 자격이 조금 부족한 엄마도 있다. 마지막 엄마, ‘신지’는 결혼해서 아이도 낳았지만 음악을 배우기 위해 이혼 후 유학을 떠난다. 뮤지컬 감독과 미팅하는 자리에서 아들 ‘준이’를 봐주는 나문희로부터 전화가 걸려오지만 전화기를 꺼버린다. 알고 보니 고열로 응급실까지 간 준이. 자식이 늘 우선순위에 있어야만 정답은 아니지만, 엄마 스스로도 자책할 만한 상황을 만드는 건 잘못된 일이지 않을까? 물론 신지도 이 사건을 통해 한층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 김미나
#딸같은엄마

우리 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착한 애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영화 <비밀은 없다>- 연홍
작품 속에서 ‘엄마’로 등장하는 캐릭터를 보며 ‘우리 엄마’를 떠올리지 않은 경우는 <비밀은 없다> 속 ‘연홍’(손예진)이 처음이었다. 한마디로 연홍은 ‘미친 엄마’다. 그는 딸인 ‘민진’(신지훈)의 실종 후 그 흔적을 쫓다 정치인인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되고, 남편이 자신의 정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딸을 죽음으로 몰았다는 진실을 알고 이성을 잃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연홍을 미치게 한 것은 사건을 추적할 때마다 맞닥뜨리게 되는, 딸 민진이 엄마인 자신을 돌보고 지켜주려 했다는 흔적이다. <비밀은 없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간신히 해내던 한 여자가 죽은 딸에게서 모성을 느끼고 절규하는 이야기다. 연홍은 딸 민진과의 관계를 되짚으며 자신의 허울뿐인 모성과 작별한다. 내가 연홍을 보며 ‘우리 엄마’를 연상하지 못한 건 그가 모성을 본능이 아니라, 벗어나야 할 신화로 받아들이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 복길
#엄마보다더엄마같은엄마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말은 거짓말이야. 좋아하면, 정말 좋아하면 이렇게 안아주는 거야. 이렇게 말이야, 꼬옥!
영화 <어느 가족>- 노부요
<어느 가족>의 결정적 장면. 취조실의 ‘노부요’(안도 사쿠라)는 “두 아이는 당신을 뭐라고 불렀나요? 엄마? 어머니?”라는 경찰의 물음에서부터 ‘붕괴’된다. 유괴죄로 체포돼 이 자리에 앉아 있고 아이들에게 생계를 위해 좀도둑질을 시켰지만, 그는 분명 벼랑 끝에 선 어린 존재들을 거둔 보호자였다. 더 줄 수 없는 사랑으로 돌봤지만 아이들이 과연 자신을 엄마로 생각했을까. 자신이 없는 노부요는 대답을 피하지만, 스크린 너머의 관객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를 엄마라 부르고 있다. 여기서 안도 사쿠라의 클로즈업 컷 얼굴(촬영 당시 안도 사쿠라는 울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은 그 얼굴을 담는 카메라와 지켜보는 감독, 스크린 바깥의 관객 모두 얼마나 속수무책 상태에 이르는지를 절감하게 한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두 눈을 자꾸 비빌수록 그는 더없이 맑아져 어느 순수의 경지로 들어서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게 한다. “이제부터 우리가 우는 장면을 찍는다면, 그건 안도 사쿠라를 따라 한 것일 테다”라 말했던 케이트 블란쳇의 극찬이 절로 납득되는 순간이다.
- 이유채
Credit
- Editor 천일홍 / 김미나
- Photo By IMDb
- Assistant 함상우
- Art Designer 장석영
- Digital Designer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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