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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귀엽지 않아! <나는 솔로> 상철의 문제적 발언

당연하게 여겨왔던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진다. ‘Fun’하고 ‘Fearless’한 4가지 시선.

프로필 by 이예지 2024.01.07
 

그런 건 귀엽지 않습니다 

“부엌은 여자의 공간이다”라고 하는 16기 상철을 무해하고 귀여운 ‘시애틀 유교보이’로 포장해주는 예능 <나는 솔로>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덥수룩한 수염에 괴상한 동물옷을 입으면 저런 가부장적인 발언도 깜찍하게 들리는 것인가? 시대착오를 귀엽게 포장하는 미디어의 불온함을 들여다본다.  
 
“진정해.” 친구가 말했다. <나는 솔로>가 시작한 뒤로 우리가 수요일 밤에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완전 미친 놈 아니냐”로 시작해 “진정해”라는 말과 함께 끝났다. <나는 솔로>의 시청률과 화제성이 오르면서 사람들은 작품을 “짝짓기 예능이 아닌 인간 군상 다큐멘터리”라 정의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본 뒤 PD의 전작 <스트레인저>부터 애청해온 나의 이상한 ‘부심’이 묘하게 꿈틀댔다. 종종 지면에 ‘연애 리얼리티 열풍’에 대해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방송을 무슨 연애나 사랑으로 말하는 게 골치가 아팠다. <나는 솔로>를 ‘연애 리얼리티’ 카테고리에 묶는 게 가능한가? 내 안에서 이 방송은 코 피지를 짜내는 유튜브 채널에 가까운데.
 
출연자들이 ‘피지’라는 건 아니다. 그만큼 ‘이걸 왜 보고 있냐’는 마음과 ‘보는 걸 멈출 수가 없어’라는 마음이 싸운다는 거다. 결국 <나는 솔로>의 ‘개국공신’이라 불리는 1기 ‘영호’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실연 후 숙소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던 영호가 다른 남성 참가자의 방귀 소리를 듣고 참았던 분노를 분출하며 사자후를 지르는 장면은 그야말로 대형 피지가 뽑히는 순간이었다. 그때 바로 직감했다. 내가 이 방송이 만드는 괴로움에 깊게 중독될 것이라는 걸. 그 괴로움은 기수가 바뀔 때마다 달라졌다. 흡사 <화성인 바이러스> 같았던 4기에는 같은 기수 여성 출연자에게 폭언과 모욕을 한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영철’, <페미니스트들에게 던지는 치사하고 쪼잔한 질문들>이란 책을 쓴 ‘정수’, 8기엔 ‘남성 혐오를 혐오하는’(절대 ‘여혐’은 아니다) 유튜버 ‘영수’가 있었다. <나는 솔로>의 인지도를 제대로 끌어올렸던 10기 돌싱 특집도 다채로웠다. ’존예’ 데리고 다니는 ‘존잘’이 되고 싶었던 ‘영호’, “난 척하는 여자가 제일 싫다”던 ‘상철’까지. 가히 전설이 될 만했다.
 
위에서 열거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나, 치사하고 쪼잔한 페미니스트가 느낀 괴로움들은 대체로 남성 출연자의 말과 행동에서 비롯됐다. 특히 12기 ‘모태 솔로’ 특집은 숨이 막혔다. 상대의 감정은 전혀 살피지 않는 일방적인 대화를 하다가, “내가 이렇게 노력했는데 왜 날 안 받아줘” 하는 억울함을 표출하던 남자 출연자의 행동. 그리고 그것을 ‘연애에 서툰’, ‘순수한’ 따위의 표현으로 수습하던 자막. 그건 더 이상 피지 제거 영상의 더럽지만 중독적인 쾌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예능을 예능으로만’ 봐야 한다지만, 여성 출연자에 대한 끈질긴 집착과 협박에 가까운 구애를 보고 실제로 일어난 교제 폭력 사건들을 떠올리지 않는 방법을 치사하고 쪼잔한 페미니스트는 모른다.
 
연애? 못 해봤을 수 있다. 소통의 어려움 또한 인간이라면 모두 겪는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행동을 컨트롤하는 것이 서툰 일반인 출연자를 집요하게 관찰하면 잘못된 행동이 더 크게 부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미디어는 자신이 만든 모든 장면에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책임의 범위를 계속해서 고민하고 넓혀야 할 의무가 있다. 아무리 <나는 솔로>가 카메라의 개입을 최소화한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을지라도, 잘못된 메시지가 출력될 가능성이 있다면 ‘이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가이드를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 촬영 당시 상황에 개입하는 것이 불가능한 ‘리얼리티’ 포맷이라면 편집과 자막을 좀 더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미디어는 대체로 그런 배려를 남성의 입장에서만 발휘하는 경향이 있다. 꾸밈없는 차림새로 등장해 “부엌은 여자의 공간”이란 말을 당연한 듯이 하던 16기 상철이 그 수혜자다. 자신의 ‘하우스와이프’가 되어 미국으로 함께 떠나줄 여자라면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는 것처럼 굴던 그에게, 방송은 ‘시애틀 유교보이’라는 애칭까지 붙이며 그를 ‘마성의 매력남’으로 포장했다. ‘미국에 사는 교포지만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남자’, ‘고지식하지만 어쩐지 귀여운 구석도 있는 남자’는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끌며 광고에서 패러디되기도 했다. 그러나 종영 후 상철의 치부는 만천하에 공개됐다. 그는 자신에게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온 여성 시청자들에게 음란한 메시지를 보냈고, 그것이 밝혀지자 “남성이라면 당연한 일”이라며 되레 큰소리를 쳤다. 그뿐만 아니라 “정복하고 싶다.” “여자는 여자의 일이 있다”처럼 방송에서 귀엽게 포장해줬던 말들이 그의 가치관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온 말이었음을 유추할 만한 대화도 다수 있었다.
 
한편 나이에 대해서도 이중 잣대가 드러난다. “내가 왜 ‘나이 든 여자’랑 만나야 합니까? 40대 특집인 줄 알았으면 안 나왔습니다”, “그냥 나보다 어리기만 하면 돼.” <나는 솔로> 14기 40대 특집에 출연한 남자들은 같은 또래인 여성 출연자의 나이에 분노한다. 방송은 마치 대단한 것을 포착하기라도 한 듯이 남성 출연자들의 이런 뻔뻔한 말에 굵고 화려한 자막을 입혀 내보내고, 결국 인터넷 커뮤니티엔 40대 여성 출연자의 나이를 ‘역대급 대참사’라 비유한 글이 돌아다닌다. 다른 기수 사전 인터뷰에서 20대 여성 출연자가 “너무 나이 많은 남성분은 힘들 것 같다”고 하자 남규홍 PD가 “나이 차이가 왜요? 나이는 아무 상관없어요. 사랑이라는 건 그렇습니다”라 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평균 이하’를 자처했던 예능 <무한도전>의 흥행과 ‘야생의 남성’을 관찰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의 성공 이후 미디어는 ‘완벽하지 않은 남성’들을 호출했다. 예의 없는 행동과 비위생적인 습관은 사소한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자연스럽고 친근한 모습이 됐고, 몸과 마음을 가꾸기 위한 모든 인간의 의식과 소비는 ‘남성적이지 않은 것’으로 분류됐다. 세상의 모든 인위적인 법칙을 거부하는 ‘무위’의 남성성은 <나 혼자 산다>의 육중완과 기안84 등을 스타로 만들었고, 레거시 미디어의 트렌드를 그대로 따라가는 뉴미디어에는 그들의 계보를 잇는 남성 스트리머와 유튜버가 대거 등장했다. 나도 그리 예의 있거나 깨끗한 편은 아니다. 그래서 미디어에서 ‘잘 씻지 않는 남자’나 ‘말을 막 하는 남자’가 나와도 화가 나진 않는다. 다만 내가 그런 남성 방송인을 보며 화가 나는 부분은 가부장적 남성성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마저 인간의 본성이라 여기는 데 있다. <나 혼자 산다>에서 좀 전까지 쓰레기장 같은 자신의 집을 보여주고 “헤헤” 웃던 기안84는 이어지는 여성 출연자의 지저분한 차를 보면서 버럭 소리를 지른다. <나는 자연인이다>의 한 출연자는 하루 종일 바둑과 낚시로 고독을 즐기고도 모임에서 늦어 자녀에게 밥을 차려주지 못한 아내를 향해 “상식 밖의 일”이라며 잔소리를 한다. 털털한 남자 이미지로 인기를 얻은 유튜버  오킹은 “나는 이래도 되지만,  여자는 안 되지!”를 입에 달고 산다.
 
이런 리뷰를 쓰면 꼭 돌아오는 반응이 있다. 미디어에 이런 남성들이 많이 등장하면 여자들의 눈이 낮아지고 그것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거란 얘기다. 놀랍지 않다. 여성들은 이 말을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막아야 저출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오래된 협박과 쉽게 이을 수 있다. 미혼율이 높아지고, 출생률이 낮아지는 원인을 여성들의 ‘이기주의’에서만 찾는 사회에서 여성은 흔들린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여성이 있다면 끝까지 쫓아가 ‘노산의 위험성’ 카드를 꺼내 협박하고, “너의 노년은 반드시 외로울 것”이란 저주를 서슴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가치를 말한다는 방송과 소탈하고 거짓없는 남성의 모습을 담는다는 방송 모두 그것에 여성들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감춘다. 이러한 저의를 눈치챈다면 더 이상 괴인을 바라보는 일이 즐거울 수 없다. 오직 여성들을 회유해 사랑과 낭만, 결혼과 사회를 논하려 하는 방송에서 나는 이제 어떤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연애 리얼리티’와 ‘요즘 한국 남자’들을 보며 웃다가 마음이 불편해지고 때론 불안을 느끼는 나와 페미니스트들에게 김리윤의 시 ‘이야기를 깨뜨리기’의 한 구절을 전한다. “실패하지 않는 사랑/남겨지는 사람이 되지 않기/이런 것만이 우리의 소원은 아닐 거야.”
 
Writer_복길
여성들이 즐기는 대중문화와 서브컬처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에세이 <아무튼, 예능>을 썼고, 서브컬처 디제잉 공연 <슬픔의 케이팝 파티>를 기획했다.
 
 

Credit

  • Editor 이예지
  • Writer 복길
  • Digital designer 민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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