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여성을 위한 경제생활 미디어 ‘어피티’를 발행하는 박진영 대표. 어피티는 운전면허 시험장처럼 독자가 재테크에 뛰어들기 전 안전한 돈 관리법을 트레이닝하는 장이다. 뉴스레터를 기반으로 경제 콘텐츠를 제작, 발행하며 밀레니얼 타깃의 리서치를 전문으로 한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얼 여성을 위한 경제생활 미디어예요. 어피티는 주요 타깃과 함께 성장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되 새롭게 유입하는 2030세대에게 필요한 금융 관련 콘텐츠도 기획합니다. 예를 들면 ‘메가스터디’가 현재 고등학생의 수능 강의를 하면서 메가스터디와 같이 성장해온 수강생들을 위해 공무원 관련 강의도 함께 운영하는 것처럼요.
경제를 다루는 데 있어 ‘당당한(uppity)’이라는 태도에 방점을 찍은 이유가 있나요?
이미 잘하고 있는 여성들을 ‘조금 더 끌어올려준다’는 뜻을 지닌 비슷한 단어를 여러 개 살펴봤는데 ‘어피티’가 가장 적합했죠. 당시 입주했던 공유 오피스에서 입주민 대상으로 저희가 고안한 이름을 설문조사했는데 가장 많은 사람이 어피티라는 단어를 선택하시더라고요. 여성들이 자기가 번 돈에 자신감을 가지고 이기적일 정도로 당당한 태도를 갖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밀레니얼 여성을 주요 타깃으로 삼은 이유가 있나요?
저는 일할 때 재미와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따지는 사람이더라고요. 제 또래 여성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 때 타깃층과 함께 그 안에서 논다는 생각을 하면 특히 보람을 느껴요. 제 어머니는 제가 어릴 때부터 언제 어디서든 경제력의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어머니처럼 밀레니얼 여성들에게 계속해서 경제에 대해 얘기해주는 미디어를 만들기로 한 거죠.
어피티의 뉴스레터를 구독해보면 여성에만 국한해서 얘기하진 않더라고요.
맞아요. 어피티의 메인 타깃과 페르소나는 밀레니얼 여성이지만 남성 독자를 배제하지 않아요. 저희가 독자 설문조사를 해보면 70~80%가 여성이고 나머지 20~30%는 남성이에요. 다만 어피티가 대외적으로 ‘여성’을 부각하지 않는 것은 저의 사업적 판단 때문이에요. 요즘 시대에 여성에 집중한다는 것을 드러내면 저희의 지향점보다 불필요한 갈등과 논란이 두드러지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어피티가 밀레니얼 여성을 위한 경제 미디어라는 사실, 동시에 이는 남성 타깃을 배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꼭 밝히곤 합니다.
‘밀레니얼 여성은 경제에 관심이 없다’는 편견이 깨지고 있음을 느낀 적 있나요?
타깃 리서치 결과 2018년 코인이 한창 인기를 끌었을 때는 남성만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모습이었는데, 2020~2021년에는 여성들이 주식 시장에 월등히 많이 뛰어들었어요.
어피티를 창업할 당시 레드 오션이라고 생각했나요, 블루 오션이라고 생각했나요?
밀레니얼 여성을 대상으로 한 경제 미디어 분야는 블루 오션이라고 느꼈어요. 조금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지금보다 많이 낮았어요. 그때는 여성이 20대 중반만 돼도 결혼 후 경력 단절을 겪곤 했고요. 지금은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었는데도 금융, 자동차 등 특정 영역에서 일하는 여성을 위한 콘텐츠나 서비스가 부족해요. ‘그 서비스를 내가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들었어요.
어떤 면에서 사업적 확신을 느꼈는지 궁금해요.
당시 온·오프라인 서점에 입점한 경제 관련 서적을 보면 거부감이 앞섰어요. 가판대에 놓인 책 표지에는 남성 신입사원만 등장하고, 볼드체의 제목으로 디자인한 고리타분한 워딩뿐이었죠. 여성을 위한 경제 서적에는 재테크도 육아도 잘해내는 일명 ‘알파 걸’과 하이힐이 그려져 있었고요. 표지만 봐도 성 역할이 현저히 분리된 느낌이 많이 들어 어느 것에도 손이 가질 않더라고요. 여성도 남성만큼 사회생활과 경제생활을 하는데 왜 남자들의 재테크만 발전하고 여자들의 재테크는 가계, 육아에 치중돼 있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앞으로는 젠더 감수성을 공감하는, 밀레니얼 여성을 위한 경제 미디어가 꼭 필요하겠다는 확신이 섰고요.
개인적으로 모아두었던 창업 자금은 없었고요. 친구들과 어피티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해 미디어 전략 컨설턴트이자 미디어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인 강정수 박사님께 창업 의사를 밝히고 멘토링을 받았어요. 저희 창업 멤버를 신뢰하셨기에 10% 지분으로 4000만원도 투자해주셨죠. 초기 투자금으로 타깃 리서치를 진행할 수 있었어요.
어피티에서 처음 얻은 수익은 얼마였고, 현재는 어느 정도 늘었나요?
제휴 광고로 500만원의 첫 수익을 올렸어요. 그에 비하면 현재 매출은 120%까지 늘어났어요. 2020년 상반기까지는 거의 보릿고개라고 말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기업 입장에서 뉴스레터를 기반으로 한 광고는 낯선 영역이라 남는 예산으로 실험해보는 정도였거든요. 그 와중에도 적극적으로 경제 관련 출판사 등에 광고를 제안해 좋은 레퍼런스로 제휴 광고의 물꼬를 틀 수 있었어요.
어피티에서 새롭게 목표하는 사업 영역이 있나요?
기업들이 어피티의 리서치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밀레니얼 여성에 특화한 정보가 많기 때문이에요. 앞으로는 어피티 설문조사 리서치를 바탕으로 콘텐츠도 만들고 기업에 판매하는 사업을 구상 중이에요. B2C를 위해 밀레니얼 여성 독자에게 이런 아이템을 구매해보라 광고하기보단, 우리가 갖고 있는 신뢰도 높고 전문화된 리서치를 기업에 판매해 매출을 내는 거죠.
여러 미디어 중에서도 뉴스레터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유튜브는 유저의 관심사를 수집해 알고리즘에 따라 콘텐츠를 추천하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원하는 핵심 타깃과 경제 분야 알고리즘은 잘 맞지 않더라고요. 저희 고객은 미혼이거나 비혼이고 절반 정도는 독립을 했지만 나머지는 아직 부모님과 살며 큰돈을 쓸 일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기존의 경제 분야 알고리즘은 어느 정도 재산을 축적한 중장년을 대상으로 부동산, 주식 등 전형적인 재테크 위주로 작동하거든요. 뉴스레터는 정보를 전달하기에 효율적인 텍스트를 사용하면서도 추천 알고리즘에 방해를 받지 않아요. 독자는 메일 ‘구독’을 누르는 것만으로 재테크에 대한 심리적 부채감을 어느 정도 덜게 되고, 주기적으로 경제 관련 소식을 받아볼 수 있죠. 직장인들은 출근하자마자 메일함을 열어보는 게 루틴이기에 콘텐츠에 접근하기도 쉽고요.
뉴스레터를 작성할 때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PC 버전이든 모바일 버전이든 독자가 중간에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이를 위해 페이지가 너무 꽉 차 보이지 않도록, 가독성 높게 디자인하려고 노력해요. 경제 용어의 대부분이 한자어와 약어이기에 문장이 너무 딱딱하지 않도록 팀원들과 저는 문학책을 많이 참고해 부드럽게 만들고 있어요. 그다음으로는 뉴스레터에 독자에 대한 기본적인 공감과 존중이 깔려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금융·경제 분야를 다루다 보면 어려운 개념까지 언급해야 해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아요. 독자들에게 ‘이런 개념은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식의 권위적인 태도를 경계하고 적절한 수준으로 개념을 설명한 후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 해요.
어피티의 목소리로 독자들에게 재테크를 권할 때 지양하는 것이 있나요?
“우리를 구독하면 돈 벌 수 있다”는 메시지예요. 무조건 돈 벌 생각으로 임하는 주식이나 투자는 저희의 전문 분야도 아닐뿐더러 반드시 누군가는 피해를 입게 돼요. 저는 어피티의 역할을 운전면허 시험장에 비유하곤 해요. 고속도로라는 생존이 걸린 곳으로 나가기 전, 기본적인 운전 기술을 배우고 교통법규를 익히며 그 흐름에 익숙해질 때까지 안내하는 곳이죠. 어피티도 독자들이 실전 사회에 뛰어들기 전 생활비에 타격을 주지 않는 선에서 주식을 사보거나 안전한 투자를 경험해볼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금융·경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신규 독자도 중간중간 계속 유입될 텐데 이분들을 위한 레터를 따로 만드는지요?
어피티의 웰컴 메일을 통해 기본적인 개념을 알려드려요. 레터를 새로 구독하신 분들에겐 2통의 메일로 어피티를 소개하고 가계부 PDF 파일을 전송해드려요. 갑작스럽게 돈에 대해 얘기하기보다는 우리가 누군지, 왜 창업했는지 등 저희가 지향하는 금융·경제 생활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집니다. 독자들과 차근차근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어며들 수 있도록’ 만드는 거예요. 어피티의 매력에 스며든다는 말이죠.(웃음)
저도 아직 30대 초반이고 어피티 역시 좌충우돌하며 클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보수적인 편이라 회사에 대한 투자 제안을 거의 받지 않았어요. 어느 정도 회사가 자생할 수 있을 때 투자를 받아야 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성향 때문에 어피티를 작은 기업으로 남게 만든 건 아닌지 고민도 컸어요. 이제는 그저 나를 믿고 가자는 생각으로 기울었지만, 예전에는 주변의 투자 유혹에 혼란을 많이 겪었죠.
투자에 관해서라면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가 있다면?
제 어머니는 통장의 잔고를 바닥돈이라 말씀하시는데, 바닥돈은 항상 0원 위에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어피티의 보릿고개라 생각할 정도로 힘든 시기에 매력적인 투자 제안이 있었지만 수락할 수 없었던 이유도 현금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였어요. 레버리지를 끼고 수익을 일으키는 것 자체를 경계하는 편이에요. 두 번째는 구독자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함이에요. 광고 제휴를 늘리면 매출이 늘어날 수 있지만 저희는 독자에게 유용한 정보인지, 매체의 지향점과 맞는지 등 광고를 고르는 기준이 까다로운 편이에요. 우리는 독자의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게 무너지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이죠.
팀원을 뽑을 때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뭔가요?
어피티 타깃에 대한 이해도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요. 경제 지식에만 밝은 사람은 독자들 사이에서 ‘놀듯이’ 자유롭게 글을 쓰지 못하거든요. 팀원 역시 타깃 페르소나에 가까운 사람들 위주로 뽑았기에 밈 같은 것도 신경에 거슬리지 않는 선에서 재밌게 사용할 수 있죠. 다시 말하면 타깃 페르소나와 얼마나 동기화가 되느냐가 팀원을 선별하는 중요한 기준이에요.
규칙을 잘 지키는 솔선수범하는 리더가 되고 싶지만 성격상 그건 좀 힘들겠더라고요.(웃음) 다만 회사에 위기가 닥쳤을 때 무조건 팀원들 먼저 지키는 든든한 리더가 되고 싶어요. 우리가 독자에게 전하는 내용과 배반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면 임금 체불, 법정 노동시간을 넘기거나 최저임금을 어기는 것, 직원이 응당 누려야 할 중소기업 정책을 잘 이행하는 것 등이 있겠죠.
최근 낸 신간 〈웰컴 투 어피티 제너레이션 2022〉를 통해 특정 세대를 다시 명명한 이유가 있나요?
사회적 시선으로 보면 밀레니얼은 소위 ‘영끌’해 돈을 마구 쓰는 욜로족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목격한 2030은 자기 기준과 목표에 맞춰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경제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죠. ‘성실하고 부지런함’은 영끌보다 덜 자극적이고 재미가 없으니 주목받지 못했던 거예요. 보통 사람들은 3년 일해서 자신의 연봉만큼 저축하는 게 힘들어요. 만약 이런 일을 해낸 독자가 어피티 ‘머니로그’로 알려주시면 우리는 물개 박수를 치며 칭찬해드려요. 엄청 어려운 일을 해내셨다고요.(웃음) 그들을 비판하며 충격 요법을 주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동기부여를 많이 만들어주는 게 중요해요. 〈웰컴 투 어피티 제너레이션 2022〉는 그런 사례를 아카이빙한 결과예요.
어피티 커리어레터의 필진인 ‘조인스타트업’ 장영화 대표요. 변호사 생활을 하시다 창업 교육에 관심을 갖고 조인스타트업을 설립하셨죠. 요즘 사람들이 제게 결혼, 육아에 대해 물으면 아직 결정할 만한 근거도 없고, 책임질 것을 생각하니 두렵기만 했어요. 하지만 장영화 대표님은 우리에게 가족이 생기든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든 간에 새로운 걸 탐구하고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말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새로운 인사이트에 호기심을 느끼고 관심을 갖는 대표님의 모습을 보면 오히려 제가 찌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버지니아 울프에게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가 있었다면, 당신을 이 자리에 있게 해준 2가지는 뭔가요?
첫 번째는 부모님이요. 제가 가장 마지막에 치달았을 때도 든든하게 부모님이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무슨 일이든 자신 있게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됐어요. 두 번째는 ‘작은 성공’이라는 단어예요. 연 매출 100억원 같은 성공도 좋지만, ‘내가 어피티의 직원들 몇 명과 함께 어느 정도의 흑자를 냈다’, ‘우리가 이런 사업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성취감 같은 작은 성공이 모여 지금의 어피티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미디어, 콘텐츠 분야의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IP 비즈니스를 시작하세요. IP(Intellectual Property)는 지적재산권을 의미하고, IP 비즈니스는 대표성을 띤 콘텐츠를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 수익을 내는 사업 모델을 말해요. 창업하며 만든 콘텐츠가 쌓여 있다면 그걸 필요로 하는 플랫폼 사업자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사업 초기부터 알아두면 좋아요. 창업 전에 타깃 조사와 스프린트(팀원들과 토론을 통해 도출한 아이디어를 단기간 내 프로토타입으로 제작하고 답을 찾는 과정)는 꼭 해보되, 시간을 너무 끌지 말고 일단 저질러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