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몬부터 코쿤까지! '요즘' 아티스트 메이킴의 감각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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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몬부터 코쿤까지! '요즘' 아티스트 메이킴의 감각

볼 수 없다면 만든다. 며칠째 해를 보지 못한 날, 툴을 켜 텅 빈 화면에 태양을 뚝딱 만들어내는 3D 그래픽 디자이너 메이킴. 스튜디오 콘크리트, 젠틀몬스터를 거쳐 오브젝트 모드의 대표까지. 평면의 세계에 입체감과 영혼을 불어넣는 그녀는 이 시대에 필요한 아티스트다.

COSMOPOLITAN BY COSMOPOLITAN 2022.11.18
 

디지털 아티스트 메이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그녀의 작품 세계엔 가장 개인적인 경험이 담겨 있다. 제일 원초적인 생각을 가장 최신의 기술로 표출해 소비자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메이킴의 작업들.
메이킴을 지칭하는 수식어가 굉장히 많다. 그래픽 디자이너, 비주얼 디렉터, 3D 아티스트, 콘텐츠 제작자, 인플루언서, 앰배서더 등. 직업을 독자에게 소개해준다면?
워낙 여러 가지를 하고 있어 하는 일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웃음) 메인으로 하고 있는 것은 스튜디오 오브젝트를 운영하며 3D 모션 그래픽 작업을 하는 것. 디지털 아트를 상업적으로 풀어서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요즘에는 숏폼 광고 같은 것이 인기다 보니 이미지보다는 영상 작업을 많이 한다.
 
회사원에서 프리랜서, 오브젝트  모드의 대표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이력의 시작은 뉴욕에 있는 투바이포(2×4)라는 패션 브랜드 회사에서 인턴을 한 것이었다.  당시에 그래픽 디자이너로 유명한 분들이 가장 많이 포진한 회사여서 그곳만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지원했다. 들어가서야 프라다, 미우미우 등 하이엔드 브랜드를 클라이언트로 둔 패션 회사라는 걸 체감했다. 패션에 대해 공부하고 관심이 생긴 것도 그때부터다. 그 경험을 발판 삼아 잡지사 아트 팀에서 편집 디자인 일도 했다. 그때 디지털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전공은 순수 미술이라고 들었다.
맞다. 대학교 입학 당시에는 순수 미술 학부에 진학했고, 여름방학 동안 갤러리에서 인턴을 했다. 그때 깨달았다. 동기들은 나와 다른 세계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적성도 안 맞고 실력도 부족했다. 무엇보다 회화는 내가 상상한 것을 구현하기에 알맞은 매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안정적인 회사에 다니다 프리랜서로 독립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혹시 회사에만 속해 있기엔 메이킴의 능력이 아깝다고 생각했나?
부정할 수 없다.(웃음) 젠틀몬스터에서 1년간 근무한 것을 마지막으로 독립했다. 당시 몸담고 있던 팀이 브랜드 컬래버레이션 담당 팀이었다. 그때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며 툴을 굉장히 많이 익히고 배웠다. 그래서 3D로 개인 작업도 많이 하던 시기였는데 간간이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게시물을 보고 의뢰가 들어오곤 했다. 당연히 회사 일을 하느라 바빠서 모두 거절했는데 알렉산더왕 본사 캠페인 등 들어오는 일의 스케일이 점점 커졌다.
 
〈sal-ki〉 커버 림킴 싱글 앨범 커버.

〈sal-ki〉 커버 림킴 싱글 앨범 커버.

대체 인스타그램의 어떤 작업물을 보고 그런 일이 들어왔나?
처음 뉴욕에서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매거진 아트 팀에서 잠깐 일했다. 그때 인연이 된 패션 에디터 선배가 3D 스캔 화보를 함께 진행해보자고 해서 만들었던 작업물이 발단이 됐다. 당시 3D 화보 착장이 마린세르였는데 그걸 마린세르 공식 계정에서 리그램하면서 모든 스태프가 다 태그했다. 그때부터 입소문이 나지 않았나 싶다.
 
마린세르에서 마음에 들었나 보다. 놓친 프로젝트들을 생각하면 아쉽지 않나?
너무 아쉬웠다. 한 번이 아니고 그렇게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쌓이다 보니 퇴사를 결심하게 됐다. 그 시기에 뮤지션 림킴과 함께 했던 3D 작업이 반응이 굉장히 좋았는데 그때 용기를 얻어 이걸로 먹고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 같다.
 
프리랜서로 독립한 후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했다. 그러면서 정의한 비주얼 디렉팅은 무엇인가?
요즘엔 비주얼 디렉터가 분야마다 다 있다. 스타일링을 전문으로 하기도 하고, 공간을 전문으로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게도 생판 모르는 분야의 일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 때문에 ‘비주얼 디렉터’라는 명칭을 써도 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주로 다루는 분야는 그래픽 디자인이다. 3D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프로그램 안에서 하늘부터 땅까지 모두 만든다. 생각을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그 과정이 너무 힘든데 보람 있다. 내 분야에서 비주얼 디렉팅이란 빈 화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 아닐까?
 
대표 작업물 중 유독 애착이 가는  ‘아픈 손가락’이 있나?
최근에 보고 너무 허접해서 놀랐던 작업이 있다. 〈데이즈드〉에서 만들었던 3D 화보다. 첫 3D 작업이었고, 그때는 3D 작업이 생소하던 시절이라 되게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화질도 좋지 않고, 작업도 어설프다. 2년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기술도 많이 좋아지고 전문가도 많아져 내게는 그 작업이 ‘아픈 손가락’ 같다.
 
Originality, 2022.

Originality, 2022.

최근에는 시몬스와 협업한 NFT 작품이 화제가 됐다.
처음에 러브콜을 받았을 땐, 침대 회사가 왜 나한테 연락했나 싶었다. 그때는 시몬스가 이렇게 힙한 프로젝트를 하는지 몰랐고, 디지털 아트에 관심이 많은지도 몰랐다. 디지털 아트 전시도 하더라. 실제로 시몬스 크리에이티브 팀과 함께 일해보니 사람들이 되게 오픈 마인드였다. 작업도 재밌고 배운 것도 많다.
 
처음 3D 아트를 시작했을 때도, NFT 작품을 발행했을 때도 대중에게는 생소한 장르였다. 새로운 아트 플랫폼에 주저 없이 도전할 수 있는 대담함은 어디서 나오나?
먹고살기 위해서?(웃음) 편집 디자인을 하던 시절, 그 틀에 갇혀 있는 걸 너무 싫어했다. 사실 디테일에 엄청 민감한 편은 아니라서 매거진 아트 팀 재직 당시 혼나는 게 일상이었다. 자간이나 디자인 등 모두 규격화된 틀 안에 딱딱 맞추는 일이 재미없기도 했다. 그래서 늘 새로운 툴을 익히며 편집 디자인으로부터 탈출할 궁리를 했던 것 같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지는 않았고, 확실히 부지런했던 것 같긴 하다.(웃음)
 
현재 속한 곳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볼 수 있나? 대학생 때 회화를 전공하던 시절도 그렇고.
그렇다. 천성이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는 걸 못 견딘다. 항상 새롭고 신선한 것을 찾아가는 것 같다.
 
코드 쿤스트 앨범 팝업 공간도 디렉팅했다. 어떤 작업물이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는데 이 공간에 담긴 메시지는 무엇인가?
코로나가 심해지던 시기에 진행한 행사였다. 그때는 디테일한 방역 수칙이 없어서 사람들을 최대한 야외에 머물게 해야 한다는 주최 측의 요구가 있었다. 마련된 공간 자체는 내부였지만 메인 스폿을 과감히 야외 정원에 세팅했다. 조명을 화려하게 해서 사람들이 외부에만 머물 수 있게. 그래서 사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실내에 들어오지 마세요’였다.(웃음)
 
Nordic, 2019.

Nordic, 2019.

지코와 크러쉬가 속한 힙합 크루 팬시차일드와도 작업을 했다. 어떤 인연으로 함께 하게 됐나?
그 인연은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다. 처음 한국에 들어와 한남동 우사단로에 집을 구했다. 그때 친구가 하나도 없어서 동네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그 친구들 중 한 명이 크러쉬의 스타일리스트였다. 팬시차일드 뮤직비디오 작업을 함께 하게 된 건 당시 연출을 맡았던 김호빈 감독님이 3D 스캔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연결해드렸다. 막상 360도 카메라로 찍어보니 멋있게 나와서 3D 작업까지 요청받았다. 그때 젠틀몬스터에서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라 퀄리티가 만족스러운 작업은 아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역시 ‘아픈 손가락’이다.
 
버드와이저 광고에 등장하는 ‘맥주맨’의 유려한 무빙은 어떻게 구현하게 되었나?
사운드 아티스트와 협업한 작업이다. 이게 3편이 있는데 각각 힙합, 테크노, 하우스다. 의뢰가 들어왔을 때 광고 콘셉트가 ‘혼술’이었다. 코로나19가 심각해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라고 독려해야 했다. 그래서 ‘혼술’하고 혼자 춤추는 맥주맨을 만들었다. 버드와이저 특유의 부드러운 목 넘김을 표현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굉장히 많았는데 계속해서 ‘더 부드럽게’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나중에는 아예 관절까지 없앴다. 물처럼  움직일 수 있게.
 
작업 특성상 늘 새로운 경험을 하겠지만 그래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전에 패션 매거진 〈W〉에서 의뢰를 받아 파인 주얼리 화보를 작업한 적 있다. 이미 은퇴하신 보석 사진 장인이 스튜디오에 오셔서 주얼리 사진을 찍으면 나는 그래픽 작업으로 합성했다. 할아버지뻘 되는 장인이시다 보니 서로의 작업을 이해하지 못해 처음엔 의견 대립이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서 기자님이 잘 중재해줬다.
 
그야말로 ‘자강두천’이다.
그렇다. 그날 장장 15시간 촬영했다.(웃음) 나중에는 장인의 디테일에 감탄했다. 보석의 커팅과 빛깔, 광을 실물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5도씩 조명 각도를 바꿔가며 촬영하시더라.  나를 옆자리에 앉혀놓고 “자, 아가야 봐라” 하시면서 작업하셨다.(웃음) 한 땀 한 땀 포토샵 하시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벌써 기억이 미화됐다.
 
그렇다면 미화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던 작업이 있다면?
최근에 무신사와 함께 했던 워치 홍보 영상 작업이다. 인생에서 역대급으로 힘든 프로젝트였다. 무신사 부티크에서 하이엔드 빈티지 워치 전문점인 ‘용정콜렉션’과 파트너십을 맺어 무신사에서 판매할 라인업 워치의 홍보 영상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1천만원 이상인 고가 제품들이라 실물을 받아 보지 못한 채 제품 사진에만 의존해 3D 작업을 했다. 알다시피 시계는 워낙 복잡한 구조를 가진 기계고 제품을 사는 사람들도 디테일에 민감하다. 그래서 20번이 넘는 수정 과정을 거쳤다. 다이얼 모양 하나하나까지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포트폴리오 레벨 좀  올라갔나?
확실히 포트폴리오에 하이엔드 워치들이 있으니까 빛이 나더라. 제품 자체가 너무 예쁘기도 해서. 결국 또 기억이 미화됐다. 이런 이미지가 포트폴리오에 생기니까 ‘그래, 돈을 좇으면   안 되지’ 다시 한번 새기기도 했다. 이렇게  한번 노력을 갈아 넣으면 돈이 알아서 좇아오긴 하니까.(웃음)
 
작업하다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결하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만큼 한계도 자주 느낄 것 같다.
창작의 고통, 아이디어 고갈… 돌아오는 시기가 주기적으로 있다. 그럴 때는 결국 놀아야 된다는 결론에 다다라서 분 단위로 계획을 세워 논다. 최근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는 오락실에서 딱 1만원만 쓰고 오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가서 펌프부터 레이싱 게임까지 전부 다 했다. 모두 옛날 3D 그래픽 기술로 만든 건데 영감을 많이 받고 돌아왔다. 클라이언트가 존재하는 상업 작업을 할 땐 항상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밖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고 이런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멀티로 작업하는 습관이 있는데 작업  중에 생기는 딴생각이나 스트레스를 다른  개인 작업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그러면 많이  해소된다.
 
작업을 작업으로 해소하다니. 정말 ‘저세상’ 해소법이다.
눕지도 못하고 일단 책상에 앉아는 있어야 하니까.(웃음) 그래도 개인 작업을 하다 보면 당장 끝내야 하는 상업 작업을 위한 원동력이 생긴다. 그런 식으로 탄생한 ‘키스’라는 개인 작업은 상업 광고로 사람 모델링 작업을 하다가 단축키를 잘못 눌러 사람 여러 명이 겹쳐지게 됐는데 그 이미지가 재밌어서 개인 작업으로 풀어낸 케이스다. 어떻게 보면 사고에서 비롯됐다. 얼마 전에는 작업을 하다 마음이 너무 복잡해 무작정 툴을 켜 평화로운 가든을 만들었다. 좀 씁쓸한 얘기인데 해소는 됐다.(웃음) 하드한 힙합 음악을 듣는 것도 오래된 해소법이다. 퓨처가 피처링한 드레이크의 ‘Way 2 Sexy’, 리한나의 ‘Bitch Better Have My Money’ 같은 노래를 노동요로 틀어놓으면 센 언니, 센 오빠가 내게 ‘돈 벌어라’ 응원해주는 느낌이라 전투력이 상승한다.
 
Bad Influence, 2022.

Bad Influence, 2022.

해소법 외에 영감을 주는 것 리스트도 궁금하다.
남자 친구가 음악을 해 영향을 받았는데 최근 ‘LP 크레디트 디깅’에 푹 빠졌다. LP 가운데 동그란 부분에 크레디트를 보고 디깅을 하는 것이다. 누가 비트를 찍었는지, 프로듀싱은 누가 했는지 깨알 같은 글자로 적혀 있다. 맨날 핀터레스트에서 이미지 디깅을 하던 내게는 신선한 방법이었다. 또 하나는 허니제이가 한 인터뷰. ‘나 춤출 때 필요한 노래 아무도 안 만들어서 내가 만들었어’ 식의 내용이었다. 실제로 허니제이가 직접 가창에 참여하고 릴체리가 피처링한 음원을 발매했다. 댄서가 안무에 필요한 음원을 낸다는 것도 발상의 전환이었는데 그 쿨한 태도가 특히 멋있다.
 
메이킴이 천재성을 타고난 것과 부단히 노력하는 것은 뭔지 궁금하다.
천재성이라 말하면 거창하지만, 눈치가 빠르고 촉이 좋다. 사람들의 기분을 빨리 캐치하는 것이 일할 때 도움이 많이 된다.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다.(웃음) 그리고 잘될 것 같다, 아니다 하는 판단의 적중률도 높은 편이다. 부단히 노력하는 게 있다면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 감정 기복이 굉장히 심한 편이다.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할 정도로. 고민거리가 생겨도 말을 안 하고 혼자 해결하려는 강박이 있어 주변 생각 안 하고 혼자 침울해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바로바로 말한다. “나 잠깐 생각 좀 정리할게” 별거 아닌데 인생의 수수께끼를 푼 느낌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비주얼 디렉팅은 뭐라고 생각하나?
중요한 질문이다. 우리는 이미지가 너무 많은, 자극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특히 우리처럼 창작자 입장에서는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고 피로도도 너무 높다. 이제 아무리 자극적인 이미지를 봐도 재미가 없다. 어떤 작업물을 보면 온전히 감상하기보다는 자동적으로 핀터레스트에서 봤던 레퍼런스를 떠올린다. 많은 창작자가 공감할 것이다. 아마 다 같이 ‘현타’오는 시점이 머지않은 것 같다. 그래서 대중을 위한 것도 좋지만 나와 같은 창작자에게 영감을 주는 비주얼 디렉팅을 하고 싶다. 그러려면 가장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너무 공감하는 문장이라 모니터 옆에도 붙여놨다. 결국 다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개인의 가장 사적인 이야기인 것 같다. 기꺼이 꺼내놓을 준비가 돼 있다.(웃음) 그것만큼 오리지널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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