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가 이상적인 오럴 섹스일 거라는 환상이 철저히 붕괴된 뒤부터, 나는 늘 궁금했다. 정말 ‘69 자세’에서 극강의 쾌락을 느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있다면 그 비결을 담아 DM을 보내주길 바란다)? 대부분의 경우 옆으로 누우면 여성 파트너의 목 가동 범위가 너무 좁아진다. 그렇다고 위아래로 포개진 자세로 하면 여성이 남성의 얼굴에 푹 주저앉지 않는 이상(!) 높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생각해보라, 상체는 계속해서 상하 운동을 반복하는데 엉덩이는 일정한 높이로 유지할 수 있겠는가?). 동시에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흐름이 끊긴다.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공평한 오럴 섹스라는 건 판타지 같은 일일까?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절대 알 수 없는데 둘 모두 동등한 쾌락을 느끼는 게 가능할까? 더군다나 여전히 많은 여성이 커닐링구스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펠라치오 하는 걸 즐기지 않음에도 요구받는다. 내 가설은 이렇다. 사람들은 그 불평등한 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신체적 행위의 정신성에 대한 복잡한 이론과 성향을 발달시켰다. 섹스는 은밀하지만 위대하다. 섹스는 일종의 카니발이고, 카니발의 핵심은 전복이다. 20대 후반의 여성 박하늘 씨는 한때 BL에 푹 빠져 살았다. “길티 플레저였지. 공수 관계는 항상 계략과 가학으로 점철돼 있어. 올해 초에 인기를 끌었던 왓챠 시리즈 <시맨틱 에러>를 생각해봐. 사실 원작 웹툰이 수위가 훨씬 강했거든. 거기서 ‘수’가 섹스하던 도중 ‘공’에게 ‘왜 빨리 안 싸?’라며 뽀뽀를 쪽 하니까 ‘공’이 ‘시발!’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사정하고, ‘수’가 흐뭇해하는 장면이 나와. 사람들은 왜 도미넌스가 연계된 섹스 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걸까?” 어느 날, 첫 섹스 후 파트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난 오럴 섹스는 해주는 건 좋지만 받는 건 싫어. 잘 하는 여자를 만나본 적 없어서. 내가 아예 못 하게 하는 거지.” “가장 최악의 오럴이 뭐였는데?” “없어. 다 최악이었거든. 잘 생각도 안 나. 이 때문에 아팠던 기억 정도?” 그는 오럴 섹스를 즐기는 방법에 2가지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자극 자체를 즐기는 것, 혹은 도미넌스를 느끼는 것. “나는 후자야. 혀나 입술이 주는 물리적 자극보다는 가학적인 자세나 행동을 즐기는 거지. 파트너가 무릎 꿇고 앉아서 해주거나, 내가 머리채를 잡거나.” “나는 내가 오럴 해줄 때 머리에 손대면 싫던데. 오럴을 한다는 건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만약 네가 도미넌스를 느끼면서 흥분한다면, 나는 그걸 역이용해 너의 심리를 조종했다고 생각하면서 흥분을 느끼는 거야.” “키잡과 역키잡의 세계네.” 내가 이 내용으로 칼럼을 쓰겠다고 하자, 그는 “제목은 ‘오럴 섹스의 양자역학적 해석’ 어때? 같은 상황을 두고 서로 자기가 도미넌스를 느낀다고 하니까”라는 말을 남겼다. 그래서 말인데, 미안하지만 어려운 물리학을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양자역학은 아인슈타인으로부터 비롯된 고전역학의 판을 뒤엎어버린 20세기의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만물을 이루는 원자 속의 전자는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동시에 가지며, 따라서 그 위치나 속도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기본으로 한다. 만약 상자 안에 전자를 하나 넣어둔다고 하자. 고전역학에 따르면 상자를 열어 관측하기 전 이미 전자의 위치는 결정돼 있어야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상자를 닫은 상태에서 전자의 위치를 확률적으로만 추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상자를 열면 빛의 개입으로 전자가 일시적으로 입자의 성질을 띠고 고정된 상태로 관측된다는 것이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자.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들어본 적 있을 거다. 양자역학에서 비롯한 사고 실험으로, 상자 안에 1시간 뒤 50%의 확률로 고양이가 죽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두고 1시간 후에 관측한다는 내용이다. 상식적으로 상자를 열기 전이라도 1시간이 지나면 고양이의 상태가 죽은 것, 혹은 살아 있는 것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고양이가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2가지가 혼재된 상태라고 본다. 이 원리를 오럴 섹스에 적용해보자. 남성에게 펠라치오를 해줄 때 여성은 피학성과 지배욕을 동시에 느끼는데, 남성이 관측할 때는 피학이고, 여성 스스로가 관측할 때는 지배욕일 수도 있다는 거다. 나는 다행히도(?) 이 가설에 동조해주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30대 초반의 여성 손나연 씨는 스스로 마조히스트라고 정의하지만,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정확히 구분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마조히즘과 사디즘이 동전의 양면 같다고 생각해(정확히 양자역학에도 적용되는 예시다). 나는 무릎을 꿇고 복종하는 나 자신의 모습에 흥분을 느껴.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즐겁지? 빨리 사정하고 싶지?’ 하며 약 올리는 심정이야. 오럴을 해서 그 사람이 사정하는 걸 보는 게 엄청난 쾌감인데, 한편으로 그건 성취감이랑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옆에서 함께 얘기를 듣던 20대 후반의 남성 유준영 씨는 “난 그 성취감이 바로 도미넌스라고 생각하는데”라고 말을 얹었다. 그 자리에 앉은 나를 포함한 셋 모두 동의했다. 나연 씨는 말을 이어갔다. “관계에서는 돔이고 사디스트인 편이야. 나도 모르게 상대방을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기질이 있거든. 그런데 섹스할 때만큼은 남의 신체를 함부로 다루는 것에 대해 불편함이 있는 것 같아. 사실 사디스트라 해도 상대방의 리액션 자체에 흥분하는 게 아니잖아. 상대방의 아픔과 흥분이 혼재된 상태를 함께 느끼는 거지. 나 역시 마조히스트지만, 상대방의 사디스트적인 쾌락과 공명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행위를 즐기는 거야.” 나연 씨는 오럴을 받는 것보다 해주는 걸 좀 더 선호하는 쪽이었다. “받을 때는 불안해지지. 내 성기가 못생겼거나 냄새라도 날까 봐 늘 걱정해. 한 번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는데도. 지금 파트너는 내가 씻지 않은 그 지저분한 상태조차도 좋다고 하지만, 오랫동안 여성들에게 요구돼온 깔끔하고 매끈한 성기에 대한 환상을 머릿속에서 지우기 힘들어.” “나는 내가 여자들한테 오럴 해줄 때 가끔 사디스틱한 부분이 있다고 느껴. 방금 말했듯 여자들이 보통 오럴 받는 걸 부끄러워하잖아. 그게 내 안의 사디즘을 자극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워하는데 내가 밀어붙이는 거. 그리고 부끄러워하기만 했던 상대방이 오럴을 받으면서 마음을 열고 흥분하기 시작할 때 내가 이 사람의 오르가슴을 컨트롤한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지배욕이라고 생각해.” 준영 씨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심지어 준영 씨는 마조히스트에 가깝고, 오럴을 받을 때 부담감을 느끼는 케이스였다. “여자들이 오럴 해주는 걸 대부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러다 보니 상대방이 나를 위해 노력하는 상황에서 내가 충분히 즐겨야 한다는 부담감 같은 게 생겨.” 그는 삽입 섹스를 하며 오르가슴을 연기하는 여성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 셋은 와인 두 병을 비운 뒤였고, 나는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어쨌든 두 사람은 스스로의 오럴 스킬에 자부심이 있는 거지?” 나연 씨는 단숨에 답했고, 비음이 매력적인 준영 씨는 이번에도 콧소리를 섞어 답했다. “응. 뭐, 나름?” 이제 다소 양극단에 있는 두 사람을 만나볼 차례다. 앞서 언급한 박하늘 씨는 “오럴 섹스 해줄 때 상대방 얼굴을 너무 보고 싶은데 각도가 안 나와. 동영상이라도 찍어야 하나 싶어”라며 담배를 깊게 빨았다. “느끼는 모습이 너무 섹시해. 평소에 절대 볼 수 없는 얼굴일 거 아냐. 여성 상위랑은 또 달라. 내가 그걸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도미넌스를 느끼지. 그리고 여자들이 오럴 후에 정액을 삼키면 남자들이 엄청 좋아하잖아? 자기가 먹였다고 생각하고(그렇다. 남자들은 기특해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남자를 따먹었다고 생각해.” 펠라치오에 관해 하늘 씨는 열정적이었고, 그와의 대화는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에 사는 20대 여성으로서의 최종 진화 버전이랄까? 하지만 슬프게도 하늘 씨는 여태껏 커닐링구스를 잘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손가락의 움직임을 혀로 어떻게 흉내 내라고 할지 설명을 잘 못 하겠어. 가르쳐준다고 해도 자존심 상해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반면 30대 초반의 최우빈 씨는 ‘돔&섭’이라는 관점에서 오럴 섹스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