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법조인 연기에 도전하는 려원,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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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법조인 연기에 도전하는 려원,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감독과 작가, 주인공과 악당까지 모두 여성인 스릴러 <하얀 차를 탄 여자>로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배우상을 수상한 정려원. 그는 당장 지금은 일직선으로 보일지라도, 결국 세상은 선한 것을 향해 휘어지리라 믿는다.

COSMOPOLITAN BY COSMOPOLITAN 2022.08.25
 
〈하얀 차를 탄 여자〉로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BiFan)에서 배우상을 수상했죠? 축하해요.
너무 기뻐요. 처음엔 JTBC 단막극으로 기획했던 작품이라 영화제에 초청받을 줄도, 상을 받을 줄도 몰랐거든요. 감독님이 편집해보고 영화제에 내야겠다 싶어 냈는데 덜컥 된 거죠. 그냥 재미있게 해보자고 시작했는데 수상까지 하게 되어 행복하네요.
 
드레스 가격미정 지방시.

드레스 가격미정 지방시.

드라마 〈검사내전〉의 공동 작가인 서자연 작가가 대본을 썼고, 공동 연출을 맡았던 고혜진 PD가 연출했죠. 여성 감독·작가·배우들이 만나 굉장한 작품을 만들어냈더라고요.
재미있죠?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답은 아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묘미가 있어요. 키맨들이 전부 여성인 작품은 처음이라 새롭고 좋았는데요, 남성 감독님들이 “여자들은 이러지 않아?”라고 으레 물으시는 게 없는, 물음표 없이 자연스러운 현장이었어요.
 
1990년생 고혜진 PD와는 친한 사이라고요.
맞아요. 저는 스릴러 한 번도 안 해봤고 자신 없다 그랬더니, “나는 언니가 이거 제일 잘할 것 같아”라고 확신하는 거예요. 그리고 같이 집에서 작업했죠. 그 친구는 스토리보드 그리고 저는 대사 외우고, “이거 재미있겠다”면서 서로 아이디어 공유하고, 현장에서 감독 편에서 싸워주기도 하고. 그런 게 정말 신났죠. 서자연 작가님도 “아!” 하면 “어!” 하시는 분이라 대사 하나 수정할 게 없었고요. 
 
톱, 미니스커트, 집업 부츠 모두 가격미정 살바토레 페라가모. 이너 슬리브리스 톱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반지 본인 소장품.

톱, 미니스커트, 집업 부츠 모두 가격미정 살바토레 페라가모. 이너 슬리브리스 톱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반지 본인 소장품.

배우와 감독, 작가 모두 애정이 큰 작품 같네요.
현장에서 보면 손님으로 온 사람이 있고, 주인처럼 쓸고 닦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 현장은 다 나 아니면 진짜 안 될 것처럼 일하는 거예요. 다들 뭐 하나라도 더 하려고 혈안이 돼 있었어요.(웃음)
 
맨발에 먼지와 피가 떡진 상태로 고군분투합니다. 배우로서도 쾌감이 큰 연기였을 것 같은데요.
너무 추웠어요. CG 비용을 아끼려고 진짜 눈밭에서만 촬영했거든요. 맨발로 계속 눈을 밟았죠. 먼지와 피 분장은 어렵지 않았어요. 일단 화장을 안 하잖아요? 오히려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거울도 보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섰죠. 몸에 먼지가 뭉치면 혼자 쓱 닦고, 머리가 떡져 얼굴을 가리면 툭 치우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화면에 예쁘게 비칠지에 대해 잊고 연기하는 그 순간이 참 편안했던 것 같아요. 춥고 고생스러운 현장이었는데도, 내 컷이 끝났다고 차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덜덜 떨면서 다른 배우는 어떻게 찍나 모니터링했죠.
 
경찰부터 용의자까지, 여성 배우들과 연기해보니 어땠나요?
배우들이 감정을 잡고 연기에 들어가는 예열 시간이 필요 없는 현장이었달까요. (김)정민이와 (장)진희는 “언니” 하면서 살갑게 굴다가도 카메라 돌아가면 엄청 살벌해요.(웃음) 이정은 선배는 멋지고 자기 것이 있어요. 너무 구수한데 또 너무 시크해. 너무 좋아서 졸졸 따라다녔다니까요.나 어떡하지. 큰일났어.(웃음) 
 
드레스 1천3백만원 알렉산드라 리치 by 루이자비아로마. 펌프스 1백60만원대 프라다. 반지, 니삭스 본인 소장품.

드레스 1천3백만원 알렉산드라 리치 by 루이자비아로마. 펌프스 1백60만원대 프라다. 반지, 니삭스 본인 소장품.

여성 동료들과 일한 게 정말 좋은 경험으로 남은 것 같네요.
여자들에게 인정받고 임파워링 받으면요. 진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 들어요. 내 편을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현장에서 꿀리는 게 없어지는 기분이죠!
 
디즈니플러스의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공개를 앞두고 있죠. 드라마 〈마녀의 법정〉의 아동여성범죄전담부 ‘마이듬’은 계속 회자될 멋진 캐릭터였는데,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의 ‘노착희’는 어떤 캐릭터일까요?
‘마이듬’은 정말 멋있죠! 반면 ‘노착희’는 기회주의자예요.(웃음) 어르신들에겐 깍듯하게 잘하지만 자기를 드러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무례하게 굴어요. 그런데 제가 이런 역할을 맡으면 표독스러워지기보다는 좀 코믹해지더라고요.(웃음)
 
〈마녀의 법정〉으로 K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받으며 “이 드라마를 통해 성범죄법이 강화돼 가해자들이 처벌을 받고,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높일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수상 소감을 전했죠. 4년이 지난 지금, 세상이 어떻게 변화했다고 생각해요?
바뀌었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물론 아직도 더 나아가야 할 부분이 많지만, 저는 엄청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The Arc of the Moral Universe Is Long, But It Bends toward Justice(당장은 일직선으로 보일지라도, 결국 세상은 선한 것을 향해 휘어진다).” 저는 마틴 루터 킹의 이 말에서 큰 위안을 얻어요. 
 
트위드 셋업, 트위드 크롭 톱, 귀고리 모두 가격미정 샤넬. 반지 본인 소장품.

트위드 셋업, 트위드 크롭 톱, 귀고리 모두 가격미정 샤넬. 반지 본인 소장품.

최근 〈한낮의 어둠: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를 읽고 있다고요. 현 사회에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죠.
그걸 보니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정보가 홍수를 이루지만 자기가 듣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만 취사선택할 수 있는 사회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극단주의자들이 탄생하나 싶기도 하고요. 사람이 너무 싫어질 것 같아 그 책을 덮고 언니네 이발관 이석원 씨가 쓴 〈2인조〉를 봤어요. 힐링되더라고요.(웃음)
 
〈2인조〉는 어떻던가요?
브리즈번에 부모님이 사시는데, 조용한 곳이에요. 오후 5시만 넘어도 할 게 없어요. 어릴 땐 그곳이 참 지루했는데 한국의 소음이 익숙해진 상태에서 오랜만에가니 좋더라고요. 그때 이 책을 꺼내 들었어요.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내 편이 돼야 한다. 가장 쉬운 건 내가 내 편이 되는 것이니까, 내 편이 돼주자. 그런 내용이에요. 나를 판단하는 나 자신과 친해지기. 나 자신을 반추하려고 여기 왔구나 싶었어요.
 
자신을 끌어안아줄 시간이 필요했나 보네요.
너무너무 그랬나 봐요. 정말 강추해요.
 
블라우스 40만원대, 스커트 2백만원대 모두 뮌. 뱅글 모두 가격미정 샤넬. 반지 본인 소장품.

블라우스 40만원대, 스커트 2백만원대 모두 뮌. 뱅글 모두 가격미정 샤넬. 반지 본인 소장품.

어릴 때 정려원은 어떤 아이였나요?
눈에 띄지 않는 아이요. 5학년 때 “아이 돈 노”만 알고 호주에 갔으니까 외로웠죠. 점심 도시락도 먹는 둥 마는 둥 그림 그리러 다니고, 파티에 초대받아도 구석에 있는 애 있잖아요. 구석에 가면 “여기 있었냐?” 하는 비슷한 친구들을 마주치는. 아직도 비슷해요. 대본 리딩 때는 귀가 빨개진다니까요.(웃음)
 
하지만 연기는 다른가요?
맞아요. 그건 제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대본 없이 뭔가를 하라고 하면 고장납니다.(웃음)
 
정려원의 작품들을 다시 봤는데 저는 역시 영화 〈김씨 표류기〉의 ‘여자 김씨’가 제일 좋습니다. 〈하얀 차를 탄 여자〉의 ‘도경’도 그렇고, 섬세한 내면 연기를 참 잘해요.
제가 유일하게 화장을 하고 나오지 않은 두 작품을 좋아하시는군요.(웃음) 그래서 더 내면을 보신 걸 거예요. 겉으로 보기에 어딘가 결핍되고 부족해 보이는 인물들이잖아요. 저는 그런 연기를 하는 게 몰입이 잘되더라고요. 제 어딘가에 설움이 있는 건지.(웃음)
 
가장 좋아하는 미술 이야기도 해보죠. 요즘 영감을 주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피터 도이그. 모마에서 봤는데, 주로 자연에 대한 관찰이에요. 겨울 강에 뜬 배, 설원의 호수 앞에 선 인물. 외로운 그림이죠. 이 작가 그림 앞에 있으면 새벽 3시쯤 고요한 연못에 서 있는 기분이에요. 예전엔 불 같은 것들을 좋아했는데, 요즘엔 저를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좋아요. 어릴 땐 지루했던 브리즈번이 이젠 좋아졌듯이.
 
브리즈번의 고요함이 정려원 어딘가에 깃들어 있겠죠.
있어요. 분명히 있어요. 
 
가죽 미니드레스, 타이츠 모두 가격미정 샤넬. 반지 본인 소장품.

가죽 미니드레스, 타이츠 모두 가격미정 샤넬. 반지 본인 소장품.

요즘 그리고 싶은 게 있나요?
새로 작업실을 열었는데, 〈2인조〉에서 영감받은 것들을 그려보려고 해요. 솔직한데 겁 많은 제 성격이 드러나는, 다 썼다가 다 지운 그런 그림들이 나오지 않을까요?(웃음)
 
팔에 보이는 레터링 타투의 의미도 궁금해요.
제 손 글씨예요.‘So What.’ 제가 너무 쫄보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무슨 상관이야?’란 생각을 되새기려 써놓은 말이에요. ‘I AM WHAT I AM.’ 이건, 우리 사회에선 ‘I AM WHAT I DO’잖아요? 자기 일이 곧 자기죠. 직업을 잃으면 정체성을 잃는 사람이 많은데, 저는 직업 이전에 내가 먼저 있고, 연기도 그림 그리는 것도 내 것 중 하나라는 의미예요. ‘epignosis’는 고대 그리스어인데요, ‘gnosis(지식)’ 앞에 접두사 ‘epi-(~위에)’가 붙어 ‘더 방대한’ 지식이란 뜻이거든요. 머리가 아는 걸 마음도 안다. 완전한 지혜라는 의미로 좋아하는 단어예요.
 
배우로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어떤 일인가요?
어릴 땐 엄청 나이 먹고 싶었는데 이젠 나이보다 경험이 많은 게 배우로서 유리한 것 같아요. 인간으로선, 노인으로 나이 들기보다는 어른으로 나이 들고 싶어요. 어른이란 자신을 제대로 돌볼 줄 아는 사람이죠. 저희 엄마는 정말 어른인데, 일상생활에서 감탄이 나오는 부분이 있어요. 진정으로 유익한 게 뭔지 아시는 분이에요. 
 
베스트 가격미정, 셔츠 가격미정, 스커트 80만원대 모두 구찌. 귀고리, 반지 본인 소장품.

베스트 가격미정, 셔츠 가격미정, 스커트 80만원대 모두 구찌. 귀고리, 반지 본인 소장품.

지금 정려원에겐 녹색 광선 같은 희망이 있나요?
배우의 삶은 작품을, 배역을 찾아 떠나는 여정 같달까요. 그래서 저는 가장 최근작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었으면 해요. 계속 나 자신을 업데이트하고 싶거든요. 저의 녹색 광선은 다음 작품의 다음 배역입니다.
 
무엇을 멋지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주관을 가지고 소신을 지키는 사람. 진짜 멋있다고 생각해요. 물 흐르는 것 같으면서도 견고한 사람. Kind but not soft. 제가되고 싶은 사람이에요.
 
정려원은 어떤 걸 믿나요?
인간보다 더 크고 위대한 선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이어준다. 그렇게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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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Feature Director 이예지
    Photo by 채대한
    Stylist 이윤미/brand L
    Hair 순철/ 아라/순수
    Makeup 이명선/우선
    Assistant 김미나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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