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름으로 활동하는 외국 일러스트 작가 '예솔'이가 그린 그림은?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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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름으로 활동하는 외국 일러스트 작가 '예솔'이가 그린 그림은?

‘예솔’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 작가, 코리 페더. 그는 때수건, 한복, 고려청자 등 한국 문화를 통해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강보라 BY 강보라 2022.01.18
 
한국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 뉴멕시코 지역에서 활동하는 일러스트 작가. 애니메이션, 세라믹 작업을 겸하는 아티스트이자 음원까지 발매한 싱어송라이터. 그의 그림을 보았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한국인인가?’였다. 하지만 작품을 보면 볼수록 작가의 정체성에 대해 가졌던 확신은 점차 옅어졌다. 참외, 부채, 강강술래 등 한국적 요소가 또렷하게 포착되는 그림이었지만 그것들로 이뤄진 동화적 판타지는 또 전에 없이 낯설었다. 혼란스러운 정체성의 시소 한가운데에서 안정감 있는 자기 세계를 선보이는 코리 페더(Cory Feder), 아니 예솔(Yesol)과 서면으로 묻고 답했다.
 
‘코리’와 ‘예솔’ 2개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코리’는 영어 이름, ‘예솔’은 엄마가 지어준 한국 이름이다. ‘코리’로 불리며 자랐지만, ‘예솔’도 최대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평소에 사람들이 잘 부르지 않는 한국 이름으로 내 그림과 음악 작업을 소개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작품에 한국의 문화, 특히 전통문화의 요소가 많이 드러난다. 한국인으로서, 또 비한국인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체성에 대한 탐구는 내게 끝나지 않는 순환 고리 같다. 내가 진정으로 속한 곳이 어디인지, 내가 특정 정체성을 주장하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체성 탐구 자체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시기가 오더라.

 
 
한국 문화는 주로 어디서 접했나?
내가 아는 한국 문화는 엄마가 이민 오는 과정에서 가져오기로 결심한 것들뿐이다. 다시 말해 엄마는 의식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한국의 전통 중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한국에 남겨두고 오고 싶은 것을 스스로 정해 자식들에게 가르친 것이다. 나는 항상 이것을 잘 알고 있었고, 내가 모르는 혈족들의 이야기를 매우 궁금해했다. 
 
 
당신에게 한국이란 그리고 또 미국이란 어떤 의미인가?

나는 이를 연을 날리는 모습에 비유하고 싶다. 내가 연이라면 나를 줄로 연결한 두 손은 한국에 있고, 바람은 나를 미국이라는 연고 없는 곳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두 땅 사이에는 ‘집(home)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있다. 나는 두 곳 어디에도 제대로 속한 적이 없지만, 작업을 하다 보면 그 사이에 생기는 긴장감이야말로 가장 일관성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그러고 나면 해방감과 함께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찾아온다.
 
 
어린 시절은 어땠나? 그것이 당신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이따금 어린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나는 백인 커뮤니티에 둘러싸여 자랐고, 아주 어린 나이에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당시 엄마가 나를 한국 교회에 자주 데려가 자연히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거기서도 또 다른 방식의 인종차별을 겪었다. 나는 오랜 생각 끝에 이것이 특정 커뮤니티의 민족성이라기보다 인종 간의 순수 혈통에 대한 인식과 더 많이 결부돼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편견에 맞서기가 가장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것이 사람들을 똑같은 상자 안에 밀어 넣어 단순하게 분류한 후 나머지는 모두 지워버리려는 민족주의(nationalism)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미묘한 뉘앙스를 깨닫게 된 후 나는 다른 이들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굳이 나 자신을 박스 안으로 밀어 넣지 않기로 결심했다.
 
 
한국적 오브제들, 예컨대 때수건이나 한복, 이불 같은 소품은 당신 작품에서 중요한 소재다. 이미지의 반복과 곳곳에서 발견되는 상상 속 동물도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다.
내 그림에 등장하는 한국적 요소는 내 개인의 삶으로부터 온 오브제이자 장면들이다. 나는 일상 속에서 신화적으로 여겨지는 순간을 상징적 언어로 표현하길 즐긴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을 재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황홀하다. 어린 시절의 평범한 이미지가 성인이 되면서 점점 모호하고 소중한 것이 되는 경험. 때수건은 이런 매일의 일상 속에서 무심히 보았던 것들을 보여주는 상징적 예다. 또한 한국의 목욕탕은 내게 ‘씻음’의 의식을 행하는 공간, 명상과 재탄생을 이야기하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당신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에 전래 동화를 읽으며 떠올렸던 이미지가 생각난다. 할머니가 나를 앉혀두고 호랑이와 곶감 얘기를 해주던 과거의 장면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정말 멋진 칭찬이다! 한국 어린이를 위한 전래 동화 책을 읽어보고 싶다. 몇 권 추천해줄 수 있을까?
 
 
당신은 EP와 싱글 앨범을 발매한 뮤지션이기도 하다.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는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악기에 둘러싸여 자랐다. 피아노와 플루트 레슨을 받았고 기타, 하프, 드럼을 독학했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건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상상도 못 했다.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혼자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때부터 좀 더 적극적으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음악은 내가 어렵다고 생각했던 시기를 헤쳐나갈 수 있게 도와줬다.
 
 
당신의 애니메이션 역시 매우 프로페셔널하고 아름답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뭔가? 지금 구상 중인 또 다른 관련 프로젝트가 있나?
애니메이션은 좀 더 다차원적이고 추상적인 감정을 스토리로 표현하기 좋은 매체다. 지금 친구의 싱글 앨범을 위해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중인데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고, 내 싱글의 뮤직비디오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할 생각이다.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나?
어렸을 때 네다섯 번 정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19년부터 2020년 사이에 서울에서 잠깐 영어 교사로 일하기도 했는데, 정말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일하면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는지 모른다. 학생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관점으로 문화를 배울 수 있었고, 평소 자주 만날 수 없던 친척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매일 한국 음식을 먹어대느라 잠시 몸무게가 늘었다.(웃음) ‘내가 이곳에서 자랐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달콤쌉쌀한 상상도 했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어느 때보다 내가 나 자신으로서 편안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에서 전시나 공연 등의 계획이 있을까?
아직 정해진 건 없지만, 언젠가 내 작품을 보여주겠다는 꿈은 항상 꾸고 있다. 지금 내 에이전시(Core Artist)가 한국에 베이스를 두고 있기에 그 꿈에 조금 가까워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조만간 뉴멕시코 타오스에 있는 밸리 갤러리(The Valley Gallery)에서 조인트 전시가 있을 예정이다. 첫 번째 앨범도 곧 선보일 것 같다. 나의 한국 교회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그래픽 노블과 동화책,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세라믹 작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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