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속 성 정체성과 성적 취향의 모든 것!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Life

K-콘텐츠 속 성 정체성과 성적 취향의 모든 것!

10년 전에는 별일이던 일이, 더 이상 별일이 아니게 됐다. K-콘텐츠 속 성 정체성과 성적 취향 이야기다.

하예진 BY 하예진 2021.12.28
동성애 코드를 은근히 묘사한 드라마들이 있었다. 〈커피프린스 1호점〉(2007), 〈미남이시네요〉(2009), 〈성균관 스캔들〉(2010), 〈개인의 취향〉(2010) 등. 그러나 그 설정엔 ‘가짜 게이’, ‘남장 여자’ 등의 전제가 붙었다. 동성애를 정면으로 마주했다고 보기엔 모자라다. 동성애를 ‘제대로’ 조명한 최초의 지상파 TV 드라마는 〈인생은 아름다워〉다. 불과 10여 년 전 작품이다. 극본은 김수현 작가가 썼고, 송창의(‘태섭’ 역)와 이상우(‘경수’ 역)가 브로맨스를 연기했다. 제작 의도는 가화만사성. 김수현표 가족 드라마다.
 
극본을 쓴 김수현 작가는 당시 중앙일보를 통해 태섭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그 가족의 다르지 않은 점’이라 강조했다. 그리고 쿨하게 인터뷰했다. “자식이 많다 보면 동성애자도 하나 끼어 있을 수 있지 않나. 조금 시끄럽겠다 싶었지만, 사회적 이슈 그런 걸 의도한 건 없다. 어느 집안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을 그렸다”라고. 그러나 드라마 속 등장인물까지 그처럼 쿨하긴 어려웠는데, 대중문화 속 동성애가 흔하지 않던 시절의 가족 드라마인 만큼 자식의 커밍아웃으로 충격받는 아버지, 형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동생, 우리만은 이해해줘야 한다고 눈물로 호소하는 새어머니 등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논란도 뒤따랐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항의와 격려가 동시에 쏟아졌고, 한편으론 대중문화 속 동성애에 익숙지 않은 기성세대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면서도 태섭과 경수를 그저 친한 친구 정도로만 인지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그뿐이 아니다. ‘참교육어머니전국모임’과 ‘바른성문화를 위한국민연합’은 한 일간지에 이 작품을 비난하는 광고를 실었다.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게이’ 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 1943년생 드라마 작가 겸 파트타임 만렙의 트위터리언이던 김수현은 자신의 계정을 통해 헤이터들에게 이렇게 화답한다. “웃음도 안 나온다. 근데 메이저 신문인데 돈만 내면 말 안 되는 광고도 받아주나보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오늘. K-드라마가 서 있는 지점은 어디일까? 〈마인〉 〈알고있지만,〉 〈갯마을 차차차〉 등 올해 다양한 성적 취향을 다룬 드라마는 여러 편에 달했다. 동성애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나 그것을 담는 그릇 자체는 확실히 넓어진 셈이다.
 
그중 대중의 주목을 받는 데 성공한 작품은 tvN의 〈마인〉이다. 〈마인〉은 재벌가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담았다. 극본을 쓴 작가 백미경은 ‘편견에 맞서는 여성들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과연 드라마엔 우리가 쉽게 편견을 갖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미혼모와 새엄마, 그리고 성 소수자. 이 중 성 소수자 역할을 맡은 건 김서형이다. 극 중 ‘정서현’(김서현)은 재벌가 장남인 ‘한진호’(박혁권)와 부부 사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다른 사람이 있다. ‘최수지’(김정화). 여자다. 〈마인〉은 자극적인 드라마다. 아니,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 드라마다. 재벌가의 위선, 등장인물의 타살, 탄생의 비밀 등 시종일관 과한 설정을 밀어붙이는 이 드라마가 딱 하나, 표현을 절제한 부분이 정서현과 최수지의 서사다. 둘은 종종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가만한 손길로 얼굴만 겨우 쓰다듬는다. 이윽고 못내 절절하게 그리워한다. 동성 간의 감정이라 더 요란해진 구석은 조금도 없다. 극이 전개되면서 정서현은 한진호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백한다. 더없이 담담하게. “내 정체성을 그 누구한테도 사과할 이유는 없지만 당신한테는 미안해요. 속였으니까요.” 주의 깊게 살필 것은 그다음 한진호의 대사다. K-드라마가 한 단계 발전했다는 지표. “어쩔 수 없었겠지. 그게 본인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동성애가 마음의 문제라고, 의지의 문제라 여기던 ‘옛날 마인드’에 당당히 맞서는 대사가 아닌가! 뒤이어 “나처럼 심플하게 사는 사람에게 왜 해결 데이터가 없는 어려운 문제가 생기냐”며 너스레를 떠는 장면은 귀여워 보일 정도다. 정서현과 동서지간인 ‘서희수’(이보영) 역시 서현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누가 뭐래도 전 형님 편이에요. 형님이 나랑 다르다고 해도 그건 그저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뭐든 형님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내가 지켜줄게.” 재벌가를 배경으로 한 〈마인〉의 동성애 코드가 다소 저 세상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것과 달리 JTBC 드라마 〈알고있지만,〉은 그것을 이 세상 대학생들의 현실적인 연애로 풀어내 공감을 얻는다.
 
‘평범하지 않은 청춘들의 하이퍼리얼리즘 로맨스’를 표방한 이 드라마는 미대 조소과를 배경으로 20대의 각기 다른 사랑과 우정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조소과 3학년 ‘윤솔’(이호정)과 ‘서지완’(윤서아)은 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소꿉친구 사이. 따라서 강남 가는 게 친구라지만, 지완은 솔을 쫓아 흥미도 없는 미대까지 진학한 인물이다. 이렇게 진심이면서도 그 마음이 우정인지, 사랑인지 혼란스럽다. 〈알고있지만,〉은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와 설렘, 그리고 질투를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와 함께 풋풋하게 엮어낸다. 드라마에서 두 여자가 자신들의 감정이 우정 이상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그들의 마음을 스치는 건 정작 ‘동성애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평생의 단짝을 잃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과 같은 성(性)을 가진 건 문제가 아니다. ‘세상에나, 내가 동성애자라니’, ‘난 이제 어떡하면 좋지. 엄마한테는, 친구들한테는 뭐라고 하지’ 따위의 고뇌는 실제로 존재할 순 있겠으나 그걸 여전히 콘텐츠화하는 건 촌스럽다.
 
K-드라마가 이제 그 정도는 생략할 수준에 오른 것이다. 이후 솔은 지완에게 “내 마음 절대 안 변해”라며 안심시키고, 친구들은 새 커플을 향해 부러움과 축하의 말을 전한다. ‘솔지완’ 커플은 학교에서 손도 잡고 팔짱도 끼는 흔한 캠퍼스 커플이 된다. 10여 년 전 드라마가 그랬듯이 “어머머, 세상에 너희가?”, “나는 이 관계 반대요” 하며 그들의 관계가 누구의 허락이라도 필요한 양 호들갑 떠는 사람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요즘 애들은 이렇게 연애한다. 대수롭지 않게. 〈알고있지만,〉은 그렇게 말한다.
 
다양한 성 정체성을 지지하는 건 비단 드라마에 국한되지 않는다. Mnet의 댄스 서바이벌 예능인 〈스트릿 우먼 파이터 〉에선 라치카가 감동적인 퍼포먼스 무대로 성 소수자를 따뜻하게 끌어안았다. 지난 10월 12일 방송분은 ‘맨 오브 우먼’ 미션으로 라치카의 협업 공연을 내보낸다. 라치카는 이 공연을 맵시와 와쿤, 킹키, 키키로 구성된 커밍아웃 크루와 특별 게스트인 조권과 함께 한다. 이들이 선택한 음악은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 이렇게 노래하는 곡이다. “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워/ 신은 실수 따위 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거든/ 난 옳은 길로 나아가고 있어/ (중략) 게이거나, 이성애자거나, 양성애자거나, 레즈비언이거나 트렌스젠더라도/ 난 바른 길을 가고 있어.” 해당 곡에 맞춰 라치카를 비롯한 퍼포머들은 꽃 같은 춤사위를 피워냈다. 다양한 취향과 정체성을 함축하는 형형색색의 네온 컬러 의상도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들의 안무 콘셉트는 ‘누구나 태어난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 킬 힐을 신은 조권, 킬 힐에서 내려와 맨발로 안무를 소화한 라치카. 무대는 작은 부분까지 의도적이고 상징적이다. 멤버 구성부터 선곡, 의상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한 게 없는 이 무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확실하다. 라치카의 리더 가비는 본무대를 마친 뒤 “너무 행복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했던 이유는 이 무대를 너무 하고 싶어서였다. 분명 누군가는 저희 무대를 보고 응원을 받을 거라 생각한다”고 소감을 말했고, “별종이라 불리는 이 세상 모든 이들을 빛내주기 위한 무대”라고 부연했다.
 
그렇다고 이런 움직임에 모두가 박수를 치진 않는다. 몇몇 시청자들은 TV 속 동성애 코드가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지향 사회에 대중의 입맛을 반영한 설정에 불과하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PC’는 인종과 민족, 종교, 성적 지향, 출신 지역 등과 관련해 소수 약자를 차별하지 않는 태도와 가치관을 뜻하는 용어다. 이들이 우려하는 건 PC에 집착하느라 작품에 맥락 없는 설정을 끼워 넣어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결과물의 완성도를 낮추는 것이다. tvN의 〈갯마을 차차차〉가 이러한 쓴소리를 들었다. 개연성이 부족한 동성애 코드를 굳이 집어넣었다는 지적이다. 발단은 초등학교 교사인 ‘유초희’(홍지희)가 횟집 주인 ‘여화정’(이봉련)을 좋아했던 과거를 넌지시 보여준 장면이다. 유초희가 15년 전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그는 다른 일에 열중한 여화정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공교롭게 초희의 모친이 이 장면을 목격한다. 그는 “어미가 돼갖고 딸년 눈빛 하나 못 읽겠냐”며 “한 번만 더 이러면 오빠가 정신병원에 처박아버린댔다”고 딸을 몰아붙인다. 초희는 “엄마, 나 안 미쳤어. 멀쩡하다고.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게 어떻게 병이야”라며 오열한다. 문제는 이 장면이 방영된 것이 종영을 2회 앞둔 시점이라는 사실이다. 초희의 삼각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였겠으나, 시청자 입장에선 어리둥절할 수 있다. 드라마 내내 이에 관한 어떤 복선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tvN 〈더 로드 : 1의 비극〉은 다른 이유로 반발을 샀다. 이 작품에서 앵커인 ‘차서영’(김혜은)은 국장인 ‘권여진’(백지원)을 호텔로 부르고, 두 사람의 내연 관계를 이용해 프라임 시간대 방송을 맡는다. 이후 차서영은 자신과 권여진의 사이를 눈치챈 ‘백수현’(지진희)에게 그들의 관계를 담은 영상을 보여주며 거래를 제안한다. “너한테 진심이었다”는 여진의 마음을 이용한 서영을 두고 성 정체성을 약점으로 잡아 득을 취한다는 설정 자체의 도덕성을 문제 삼은 시청층이 있었다.  대중문화가 동성애 코드를 다루는 수준을 떠나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금기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콘텐츠를 접하는 이들은 더 이상 폭 넓어진 성적 취향을 낯설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뒤엔 수많은 이들의 노고가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과 그것을 들어준 사람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기꺼이 조명한 사람들. 그들이 지난 10년 동안 콘텐츠의 질을 바꿨다. 이제 콘텐츠 제작자는 전형적이고 표면적인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인간에 대해 더 사려 깊고 섬세하게 탐구하며, 시청자들은 그런 작품과 무대에 적극적으로 관심과 공감,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그 현상이 반갑다.
 

Keyword

Credit

    freelancer editor 강민지
    editor 하예진
    photo by Getty Images
    digital designer 김희진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