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쉬의 헤스페리데스 향수가 메인 제품이다 보니 촬영장 곳곳이 자몽으로 가득했거든요. 덕분에 상큼하고 싱그러운 향기를 맡으면서 힐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 유독 스태프들이 저를 너무 사랑해주셨어요. 방긋 웃는 걸 잘 못하는데, 스태프들이 포옹해주고 격려해주셔서 재밌게 촬영했죠. 워낙 칭찬에 힘을 많이 받는 성격이거든요.
평소에도 화장품에 관심이 많아요? 이번에 촬영한 제품 중에서 최우식의 최애템은요?
직업 특성상 여성분들 못지않게 얼굴에 뭘 많이 바르니까요. 프레쉬는 맑고 깨끗한 브랜드로 유명해 좋아하는데, 그런 브랜드 이미지처럼 상큼하고 밝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뿌듯했어요. 상큼한 자몽 향기라 그런지 뿌리자마자 기분이 전환되더라고요 코로나19로 우울한 요즘 사용하기 좋을 거예요. 남녀불문 다 어울리는 향 같아요.
올해는 영화 〈경관의 피〉 〈원더랜드〉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죠. 전작 〈기생충〉이 너무 잘돼서 차기작에 대한 부담이 클 것 같아요. 그때 그 연기, 그때의 자신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진 않았어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너무 좋은 경험이었고, 배우와 스태프 모두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나길 바라는 소망과 목표를 품지 않을까요? 저는 두 영화와 예능 〈여름방학〉 〈윤스테이〉 등 많은 작품을 찍으며 큰 힐링을 했는데, 결과만 생각했다면 부담감에 어떤 작품도 선택하지 못했을 거예요. ‘나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도 갔는데, 다음 작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칭찬을 받을까’라는 압박에 방황했겠죠. 과정을 즐기고 행복하게 일을 하다 보니 부담감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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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는 순간 숨통을 틔워줄 힐링 퍼퓸! 만다린, 이탈리안 레몬, 그레이프프루츠로 구성된 톱 노트에서 시작해 베르가못·연꽃 잎·자스민 향의 미들 노트를 지나 루바브·머스크·피치 향의 잔향으로 마무리되는 저 세상 텐션의 상큼 프레쉬한 시트러스 향조. 다시 말해 자몽 향수가 곧 최우식이다!
필모그래피의 흐름이 재밌어요. 김태용 감독은 〈에튀드, 솔로〉에서 최우식이 보여준 ‘비릿한 눈빛’이 좋아 〈거인〉에 캐스팅했고, 그것이 〈옥자〉와 〈기생충〉으로 이어졌어요. 잘 알려지지 않은 초기작 중에서 최우식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을 추천한다면요?
OCN 〈특수사건 전담반 TEN〉(이하 〈TEN〉)이오. 이승영 감독님이 반대를 무릅쓰고 저를 캐스팅해 시즌 2까지 이끌어주셨거든요. 저는 연기를 수업이나 무대로 갈고닦은 사람은 아닌데, 〈TEN〉을 촬영할 땐 연기를 한다는 생각 대신 상황극이라고 상상하며 캐릭터를 표현했어요. 지금과는 다른 각도로 연기에 접근했던 시기가 딱 그때까지였을 거예요.
배우로서 처음으로 진지한 연기를 한 작품이기도 하죠. 정말 어딘가 있을 법한 막내 형사 같았어요.
그 전에는 개구쟁이 역할만 하다 처음 맡은 성인 역할이었어요. 그것도 형사 캐릭터요. 원래 대본상으로는 몸이 좋고 듬직해 액션 연기도 많은 설정이었는데, 제가 캐스팅되면서 허당끼 있는 막내로 역할이 완전 바뀌었어요.
〈TEN〉 이전에는 최우식 하면 그런 발랄하고 촐싹대는 허당 이미지부터 떠오르는 시절도 있었죠. 〈마녀〉의 ‘귀공자’나 〈거인〉의 ‘영재’, 〈기생충〉의 ‘기우’ 캐릭터까지, 스스로도 배우로서 한계를 무너뜨리고 확장시켜간다는 희열을 느낄 때가 있나요?
밝은 개구쟁이 캐릭터는 연기적으로 보면 오디션에서 경쟁을 뚫을 수 있는 저의 무기였던 것 같아요. 제가 외모로 승부하는 배우는 아니었는데, 밝은 모습 하나만은 누구보다 편안하게 소화할 수 있었으니까요. 캐릭터를 표현할 때 인생 경험담을 끌어와 연기하는 편인데요, 과거에는 제 안에 밝은 모습이 많아 그걸 큰 무기로 활용하던 시기가 있었다면, 요즘은 저도 모르게 그와는 다른 모습을 파고들었던 것 같아요. 누구나 양면이 있잖아요. 요즘은 마냥 밝지만은 않은 모습이 편해요. 지금은 연기를 할 때도, 자랑스럽게 꺼낼 수 있었던 밝은 모습 카드가 살짝 힘들게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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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모습을 지닌 사람은 그만큼 어두운 면도 많은 것 같아요. ‘영재’나 ‘기우’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어딘가 있을 법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그들처럼 천성은 솔직하지만 솔직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고, 그 사실조차 숨겨야 하는 모습을 연기할 때 저와 많이 닮았단 생각이 들어요. 〈거인〉의 ‘영재’ 연기에 대한 제일 기분 좋았던 칭찬은 “자신의 아픔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자신의 아픔을 숨기는 걸 너무 잘했다”라는 평이었는데, 정확한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을 연기할 때 더 재밌더라고요.
그럼에도 발랄한 ‘생활 연기’는 최우식만의 독보적인 장르였잖아요. 그런 모습을 그리워하는 팬도 많아요.
원래 밥도 배고플 때 먹는 게 제일 맛있잖아요. 언젠간 그런 역을 다시 하게 될 거고, 누구보다 더 발랄하게 소화할 자신도 있어요. 저의 밝은 캐릭터를 추억하는 분들은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제가 더 맛있는 연기를 선보이지 않을까요? 요즘은 어떤 캐릭터가 됐든, 스스로 즐겨야 보는 사람도 그런 몰입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결과물에 대해 너무 걱정이 많았는데, 점점 더 과정을 즐기는 습관을 들이고 있어요.
거의 모든 인터뷰에서 ‘과정’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더라고요.
배우 일을 하면 새로운 모임에서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제한적이다 보니, 일을 떠나 개인적인 인연으로 이어지는 사람을 대부분 현장에서 만나요. 그런 좋은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는 과정은 언제나 설레죠. 특히 영화 〈부산행〉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 전에는 현장에서 괜히 주눅 들어 눈치 보고 사람들이랑 어떻게 교감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부산행〉 촬영할 때는 유미 누나, 공유 형, 소희, 마동석 선배님과 다 같이 연기에 대한 고민을 하고, 쓸데없는 얘기도 나누면서 유대 관계를 쌓았거든요. 저 같은 후배에게 그런 현장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선배가 있다는 건, 그 존재만으로도 연기에 대한 조언 이상의 엄청난 영향을 주잖아요. 저도 앞으로 현장에서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시간이 올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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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는 〈TEN〉처럼 그동안 자주 보여주지 못한 강한 모습의 캐릭터를 경험할 수 있었고, 〈원더랜드〉는 제가 너무 좋아하는 배우들과 다시 만나 작업하면서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겼어요. 배우 최우식이 결과를 떠나서 진짜 즐긴 작품이 이 두 영화라고 확신할 수 있을 만큼 너무 재밌게 찍었으니 기대해주세요.
배우가 되기 위해 캐나다에서 처음 한국으로 왔을 때는 친구들이랑 단편 드라마를 만들기도 했잖아요. 당시 연출을 하면서 연기도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그런 비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아무것도 모르던 신인 때 호기롭게 한 얘기인데, 지금은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부끄러워요. 하하. 영화 작업을 하면 할수록 연출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서요. 감독 한 사람만 믿고 가야 하는 순간도 많고, 감독이 케어해야 되는 사람도 너무 많아요. 연출은 말 그대로 진짜 꿈이자 소망인 것 같아요. 노력하면서 재미있게 해볼 수는 있겠다 싶으면서도, 그 어려운 과정을 즐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연출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을 할 단계라기보다는, 영화를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으며 배우로서 다져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평소 여행 갈 때 꼭 스피커를 챙겨 다닐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죠? ‘코시국’에 응원이 될 만한 나만의 플레이리스트가 있다면요?
제니비브(Jenevieve)의 ‘베이비 파우더’요. 요즘 꽂혀 반복해서 듣고 있어요.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노래라 기분이 좋아져 드라이브 할 때 많이 들어요. 모두에게 기분 전환이 됐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