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패션계에 거듭되는 문화 전유 논란

거듭되는 문화 전유 논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BYCOSMOPOLITAN2021.03.26
 
지난 1월, 패션 브랜드 짐머만은 멕시코 정부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그들이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드레스가 멕시코 오악사카 지방의 전통 복식이라는 거다. 짐머만은 몰라서 그랬다면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상품을 철회했다. 멕시코가 패션 브랜드에 항의한 건 처음이 아니다. 그들은 2020년에도 이자벨 마랑에게 공개 서한을 보냈다. 이자벨 마랑은 ‘문화 전유(cultural appropriation)’ 논란에 휩싸였고, 트위터에서 숱한 공격을 받은 끝에 사과했다. 문제의 드레스는 새로운 스타일은 아니었다. 문화 전유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흔히 “인터넷 검색만 하면 알 수 있는데 왜 실수를 반복하냐”라고 묻는다. 하지만 위의 드레스처럼 강남역 빈티지 가게는 물론 스파 브랜드에서도 두루 발견되는 스타일이면 원전을 찾아봐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웃어넘기기엔 논란의 역사가 깊어지고 있다. 문화 전유란 남의 문화를 제 것처럼 갖다 쓰는 행위를 말한다. 특히 문화 영향력이 강한 측이 약한 측에게 저질러 잠재적 이익을 빼앗거나, 민감한 코드를 깊은 이해 없이 건드릴 때 문제가 된다. 아프리카 디자이너가 청바지나 슈트를 응용해도 사람들은 문화 전유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아프리카가 제1세계를 착취한다고 볼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문화 전유는 권력의 균형에 관한 문제다. 예컨대 파리 컬렉션에서 갓을 쓰고 봇짐을 멘 백인 모델이 워킹을 한다 치자.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Gat Hat’와 ‘Botzim Bag’은 뉴욕 백화점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50년 동안 갓을 만든 무형문화재는 일거리를 잃는다. 이것이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등의 비주류 문화 집단이 겪는 문제다. 멕시코만 해도 판초, 바자 후디, 자수 드레스 등을 빼앗겼지만 소비자들은 ‘에스닉’, ‘보호’ 따위 설명 뒤에 숨은 원전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시대는 여기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너에겐 금기, 나에겐 패션

패션 디자이너들은 서로 베끼고, 과거를 복제하고, 남의 브랜드 역사도 내 것처럼 활용했다. 그걸 영감, 오마주, 리바이벌, 유행이라 불렀다. 그 기준으로 타 집단의 문화도 차용했다. 하지만 패션 비주얼이 구매자와 업계 사람들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대중에게 노출되고, PC(Political Correct) 문화가 개인 미디어를 잠식하고, 매의 눈으로 논란거리를 사냥해 증폭시키는 짜깁기 매체가 난립하면서 국지적 문화 전쟁이 매일 벌어지는 요즘은 각별히 주의할 문제가 됐다. 특히 문화 전유가 인종, 종교, 성적 지향 등과 결합하면 걷잡을 수 없다.
2019년 구찌는 얼굴 절반까지 올라오는 검정 스웨터를 내놨는데, 두꺼운 입술이 그려진 그것은 과거 백인들이 흑인 분장을 하고 인종차별 희극을 하던 모습을 연상시켰다. 일명 ‘블랙페이스’로, 흑인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금기 중 금기다. 게다가 흑인들은 강도로 오인받을까 봐 후드도 마음대로 못 쓰는데 백인들은 흑인을 흉내 낸 마스크를 패션으로 쓴다? 당장 소셜 미디어가 들끓었다. 구찌는 시크교도의 터번 같은 머리 장식으로도 뭇매를 맞았다. 남의 종교 상징을 액세서리로 전락시킨 것도 문제지만 시크교도들이 서양에서 받는 차별을 고려하면 가혹한 무신경이었다. 2017 S/S 쇼에서는 마크 제이콥스가 지지와 벨라 하디드에게 우트레 가발을 씌웠다가 비난을 받았다. 서양 직장에서 흑인들은 여전히 비위생적이라거나 프로답지 못하단 이유로 고유의 헤어스타일을 금지당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인종이 그걸 패션으로 이용하면 분노할 수밖에 없다. 2020년에는 꼼 데 가르송이 백인 모델에게 땋은 머리 가발을 씌웠다. 비난이 일자 꼼 데 가르송은 그것이 이집트 왕 투탕카멘에서 영감받은 것으로, 흑인들을 노엽게 할 의도는 없었음을 밝히고 사과했다.
 

예쁘면 다 내 거? 

불과 5년 전만 해도 한국인들은 팝콘을 옆에 끼고 느긋하게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었다. 과거 수많은 한국 연예인이 드레드락스를 했지만 논란이 되지 않았다. 샤크라가 인도인 분장을 하고(2000), 버블 시스터즈가 블랙페이스로 앨범 재킷을 찍던(2003) 시절도 있다. 그러나 마마무가 브루노 마스를 따라 한다며 블랙페이스를 했을 때(2017), 모모랜드가 아오자이와 멕시코 의상을 입고 뮤직비디오를 찍었을 때(2018), (여자)아이들이 모스크가 그려진 세트에서 노래했을 때(2019), 어느덧 세계로 확장된 K팝 팬덤은 경고했다. 한국이 다문화적 경험이 부족한 건 알지만 앞으로는 바뀌어야 한다고. 팝 컬처 블로그 사우스손더(southsonder.com)는 2019년 K팝의 문화 전유를 비판하면서 해법으로 ‘문화 감상(cultural appreciation)’을 언급했다. BTS는 ‘IDOL’ 활동 당시 남아프리카의 ‘과라과라’ 춤에서 안무를 착안했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밝혔다. 이처럼 원전을 밝히고 감사를 표하는 것이 문화 감상이며, 오히려 비주류 문화를 홍보하는 계기가 된다. 참고로 해당 칼럼에서 필자는 K팝 기업들이 자신을 고용해 인종차별이나 문화 전유 문제를 예방하라고 장난스레 말한다. 농담이 아닌 게, 프라다는 2018년 뉴욕 매장에 검은 원숭이 인형을 배치했다가 인종차별 혐의를 받은 후 뉴욕시 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다양성 자문 위원을 고용했다. 그 자문 위원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알려졌다. 문화 다양성을 공부하고 전문가와 협력하는 건 향후 글로벌 기업에겐 필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할지는 모르겠다. 패션과 K팝은 인류 고금의 문화 유산을 경계 없이 흡수, 조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화 전유 논란은 이 방식을 근원부터 재검토하라는 요구다. ‘예쁘면 다 내 거’라는 태도로는 창작자로서 이 시대를 헤쳐나가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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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writer 이숙명
  • editor 이영우
  • art designer 오신혜
  • illustrator 키미앤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