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ebs

김이나가 말하는 '야하고 지적인 사람'이 되는 법

마음을 언어로 치환하는 일. 무형의 생각을 굴절 없이 전하기 위해 수만 가지 단어 중 그와 닮은 하나를 고르는 이 섬세한 작업이 보통 일일 리 없다. 말이 지닌 무게를 아는 작사가 김이나는 자신의 두 번째 책에 <보통의 언어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BYCOSMOPOLITAN2020.07.23
 
톱 31만8천원 렉토.

톱 31만8천원 렉토.

보통’, ‘일상’, ‘소소’ 같은 단어는 너무 많이 소비된 탓에 의미를 평가절하당하기도 해요. 책 제목에 ‘보통’이란 표현을 넣은 이유가 궁금해요.
말이 내 의도와는 다르게 전해질 때가 있잖아요. 아무리 특별한 이야기도 언어로 표현될 때 곡해되지 않아야만 전달될 수 있는 거죠. 그런 오해가 어디서 출발하는지 궁금했고,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보통의 말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많은 사람의 관념 속에 있지만 언어화되지 않은 것들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죠.


부정적으로 쓰이는 단어 이면의 긍정적 의미를 들여다보는 내용이 많더라고요. ‘선을 긋다’라는 말이 차단의 의미가 아니라 나의 내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주는 과정이라는 시선도 재밌었어요.
모든 단어에 대해 사전적 정의를 내린다기보다는, 내 경우에는 특정 단어에 이런 의미를 부여한다는 생각을 썼어요. 사람마다 단어를 각기 다른 생명체로 쓰고 있다는 걸 알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더 넓게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예를 들면 ‘예민하다’란 말은 원래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데, 우리가 사회라는 시스템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튀거나, 무던하지 못하다’라는 뜻으로 쓰이잖아요. 보통과 다른 면을 짚어줄 수 있는 ‘예민한’ 구석이 있다는 건 섬세하다는 장점이기도 한데 말이에요.


많은 말을 관성적으로 사용하지만, 실은 짧은 말 한마디에도 말하는 사람 저마다의 무수한 역사와 맥락이 담겼죠.
돌이켜보면 제가 이성적으로 매력을 느낀 사람들은 보편적인 ‘남자답다’는 개념에 어울리는 이들이 아니었어요. 섬세한 건 물론이거니와 겁을 낼 줄도 아는 사람들이었거든요. 내가 왜 그런 사람들을 좋아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겁이 많은 사람들은 살면서 뭔가 이뤄본 경험이 있고 그것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더라고요. 성취한 것을 잃는 게 두려워 피할 줄도 알고, 포기할 줄도 아는 거죠. 그래서 ‘겁이 없다’가 무조건 좋은 뜻이거나 ‘겁이 많다’는 게 무조건 나쁜 뜻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감이란 게 있을 때라 쳐도 그 감이 통하는 ‘때’가 있을 뿐, 나이가 들면 다른 세대가 보기에 낡고 촌스러워 보이는 것이 바로 이 ‘감’으로 하는 일들이다”라고 쓴 대목에서는 작사가로서의 고민도 엿볼 수 있었어요.
음악은 굉장히 작은 차이로 트렌드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분야예요. 나중에 그런 순간이 왔을 때 누구를 탓하기보다는 자신을 직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브라카다브라’만 해도 가사의 몇몇 단어들은 지금 보면 트렌디하지 않은 부분이 좀 있거든요. 제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죠.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새로운 시장을 여는 것이기도 해요. 어리고 감각적인 가사를 못 쓰게 된다고 이야기하면 좀 서글퍼지지만, 새로운 영역에 대해 쓸 수 있게 되는 거니까요. 제가 쓴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나 조용필의 ‘걷고 싶다’가 그래요. 그런 서정적인 가사가 필요한 곡이 있을 때,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이름이 ‘김이나’가 되도록 내 영역을 바꾸는 거죠.


독자 입장에서 이런 챕터는 작가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평소에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라고 자주 밝혔는데, 인정받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스스로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는 건 어떤 의미예요?
제가 멋있다고 여긴 사람들의 공통점은 남이 흠잡을 수 있는 부분을 인지하고 그것에 연연해하지 않는 면모였어요. 예를 들면 방송에서 매력적으로 소비되는 사람은 ‘자기 비하 개그’가 가능한 사람들이거든요. 예능에서 놀림을 받거나 무시를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거죠. 방송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단단한 사람은 변수가 없어요. 인간은 누구나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이 건드려졌을 때 수치심을 느끼는데, 자신의 치부를 인지하고 있으면 그것이 드러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초연하죠. 그렇기에 내면의 거울을 수시로 보는 게 중요해요. 같은 얼굴도 밤낮에 따라 다른 것처럼, 내면도 수시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내가 생각하는 나와 진짜 나 사이의 괴리가 생기거든요.
 
재킷 가격미정 제인송. 드레스 24만8천원 리유니. 샌들 38만8천원 렉토.

재킷 가격미정 제인송. 드레스 24만8천원 리유니. 샌들 38만8천원 렉토.

‘깡고리즘’을 통해 2012년에 발표된 가인의 ‘피어나’도 재조명받고 있어요. 어릴 때 이 곡을 듣고 야하게만 여겼던 사람들이 어른이 돼 “여성의 욕망을 아름답게 표현했다”라며 호평하고 있죠.
‘피어나’는 오르가슴에 대한 노래예요. 오르가슴은 사랑이라는 관념을 인간이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 신이 만들어놓은 기적 같은 경험이잖아요. 남성은 그것이 사정이라는 결과로 도출되지만, 여성은 남성처럼 매번 ‘끝’을 보진 못해요. 저는 그 이유가 어렸을 때부터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해 솔직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내 성감대가 어디라고 얘기하는 게 마치 “나는 섹스를 하고 싶어”라는 선언처럼 문란하게 받아들여지는 거죠. 여자는 서툴러야 하고, “이럴 때 너무 좋아”라고 말하면 너무 밝히는 사람처럼 취급되는, 보이지 않는 섀도복싱을 마주하는 거죠. 저 또한 10~20대 때 그런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나이를 먹고 오르가슴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르가슴과 단순한 흥분을 헷갈리거나 모른 채로 있는 여성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답답했거든요. 오르가슴이나 성은 신체에 관한 얘기고, 관계를 견고히 하는 사랑의 취향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듣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고도 섹시한 가사를 쓰기 위한 고민도 컸겠어요.
‘피어나’보다 더 농밀한 가사도 있는데요 뭘. 하하. 예를 들면 김그림의 ‘우리만 있어’는 “온몸의 피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같은 표현으로 남녀가 관계를 맺는 밤을 묘사하기도 했어요. 저는 그런 관계를 묘사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야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부정적인 의미로 정말 야한 건 상대방의 감정이 어떤지 고민하지 않고 감정 묘사도 없이 일방적으로 섹시하게 소비하는 가사예요. 저는 야한 표현을 할 때도 상대의 쾌락이 아닌 화자의 욕구에 충실했기 때문에 여성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방식은 아니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랑하는 이에게 섹시해 보이고 싶으면서도, ‘섹시하다’는 말이 스스로를 성적 대상이 된다는 것에 수긍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는 목소리도 있어요. 주체적인 섹시함이란 뭘까요?
그냥 내 욕구가 뭔지 아는 것이 주체적인 섹시함이에요. 섹시함을 일반화하는 순간 엉망이 돼요. “남자는 이렇게 하면 흥분한대”, “여자는 이렇게 해야 섹시해 보인대”라며 주위에서 들리는 말에서 자유로워지세요. 스스로가 상대에게 어떤 욕구를 느낀다는 걸 인정하고 당당하게 마음을 표현하면 공기부터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정말 섹시하게요.


방송에서 활약하며 ‘연애에 통달한 언니’, ‘야하고 지적인 언니’ 이미지로 여성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죠.
제가 믿을 만한 언니인지는 모르겠어요. 지금 이 인터뷰조차 최선을 다해 답변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다시 한번 잘 정리된 결과물이 공개될 테니까요. 미디어에서 깊이 있는 어른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오히려 저는 10~20대 때 너무 불안정한 자아였고, 우여곡절의 시기를 겪었기 때문에 견고한 30대를 보냈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저는 20대 때 조언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누군가 그때 내게 이런 얘기를 해줬더라면…’ 하는 마음 때문인지, 계속 젊은 여성층을 기준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코스모폴리탄〉의 모토는 ‘Fun Fearless Female’이에요. 야하고 지적이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기억해야 할 단어는 뭘까요?
욕망이오. 정확하게 말하면 욕망의 출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해요. 욕망에는 반드시 결핍이 따르는데, 내가 어떤 점이 결핍돼 이런 욕망이 생겼는지 이해하는 게 중요해요. 결핍은 사람의 매력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요소거든요. 모든 게 채워져 있는 사람들이 섹시하고 섬세할 리 만무하죠. 인간은 결핍을 채우는 존재고, 결핍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가진 무언가가 생겼다는 과정을 상기하는 게 좋아요. 그런 식으로 자신의 결핍을 들여다보고, 머릿속에 ‘나’에 대한 매뉴얼이 생기면 인생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요.

Keyword

Credit

  • Feature Editor HA YE JENE
  • Photographer LEE JUN KYOUNG
  • Stylist 이은진
  • Hair 박규빈
  • Makeup 최민석
  • Assistant 김지현
  • Digital Design 조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