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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아모리, 3명의 연인이 사는 집

사연 없는 가족이 어딨겠냐만,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가족이 뭐길래’ 싶다. 그렇게 가족 사진이 완성되는 동안 든 생각. 가족에 있어 ‘뭣이 중헌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BYCOSMOPOLITAN2020.05.05
 
고양시 달걀부리 마을에는 한 지붕 아래 3명의 연인이 산다. ‘폴리아모리’를 얘기할 때 자유보다 ‘평등’을 힘주어 말하는 이들의 사랑에는 ‘외도’도 ‘폭력’도 없다. 그만큼 헤어져야 할 이유는 줄어들고, 대신 오래도록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첨예해진다.

 
(지민)재킷 8만9천원 비슬로우 스탠다드. (승은)원피스 14만8천원 포이어. 셔츠 가격미정 르메르. (우주)재킷 13만9천원, 팬츠 7만9천원 모두 비슬로우 스탠다드.

(지민)재킷 8만9천원 비슬로우 스탠다드. (승은)원피스 14만8천원 포이어. 셔츠 가격미정 르메르. (우주)재킷 13만9천원, 팬츠 7만9천원 모두 비슬로우 스탠다드.

(왼쪽부터)지민(30세) 성 소수자 노동권 활동가.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승은과 우주와의 폴리아모리 관계, 페미니즘 강연 개최를 이유로 학교에서 무기정학을 받았지만 법정 다툼 끝에 최근 승소했다. 승은과 5년째 연애 중이다. 승은(33세) 글을 쓰고 강연을 다니는 마감 노동자. 스스로 ‘퀴어 페미니스트’라 소개하곤 한다.〈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를 썼다. 우주(37세) 대학에 강의를 나간다. 최근 유튜브에서 폴리아모리에 관한 채널〈폴리튜브〉를 개설한 유튜버 꿈나무. 승은과 7년째 연애 중.
 

 
인터뷰 제안을 처음에 고사했죠. 그동안 매체에서 폴리아모리를 다루는 방식에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고요.
지민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바람의 합리화예요. TV 프로그램〈연애의 참견〉에서 자신의 바람을 폴리아모리로 해명하려는 듯한 사연이 나왔죠. 둘째는 마치 자유 지상주의의 극단처럼 비춰지는 부분이에요. 우리는 개인의 자유가 너무도 중요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처럼 그려지죠. 날 때부터 폴리아모리를 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다는 듯 말예요. 세 번째는 폴리아모리에 대한 이야기도 여전히 이성애 중심이라는 거예요. 대부분 남자 둘에 여자 하나라 상정하고 거기에서 논의를 시작해요. 사실 저는 스스로를 남성이나 여성으로 구분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인데도 외양 때문에 그냥 남성으로 여겨지죠. 마지막으로 늘 폴리아모리가 1:1 서사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거예요. 기존에 관계 맺던 두 사람이 새로운 사랑의 실험을 한다는 식이죠. 제3자는 이름조차 소개되지 않기도 하죠.
승은 그동안 과연 폴리아모리가 제대로 소개된 적은 있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아무래도 섹스에 대해서만 관심이 몰리고요. 아까 촬영할 때도 저희끼리 소곤대면서 얘기했던 게, 이거야말로 사람들이 ‘폴리아모리’ 하면 떠올리는 난교의 모습이 아니냐는 거였어요. 하하.


사실 세 사람을 인터뷰한다고 얘기하면 꼭 나오는 질문 중 하나가 “이 남자 둘은 무슨 관계 아니지?”였거든요. 같이 산다는 게 더 자극적으로 비춰진 부분도 있으려나요. 셋이 동거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뭐였어요?
승은 셋이 사는 것에 대한 로망보다는 집에 대한 로망이 좀 더 컸던 것 같아요. 하하. 셋이 돈을 합치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맘때는 이미 함께 스터디하거나 술 마시다가 서로의 집에서 자고 가는 일이 자주 있어서 함께 있는 것에 대한 이질감은 크지 않았어요.


어쨌든 우주와 지민 두 사람은 걱정했을 텐데요.
우주 그전까지 승은과 동거했지만, 셋은 달랐죠. 저의 취미 생활부터 성생활까지 전부 공유해야 하고, 둘이 데이트 가기보다 셋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할 것 같고요. 하물며 TV를 봐도 셋 취향 맞추는 게 어디 쉽나요.
지민 셋이서 가까워지면서 그동안 겪었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한창 잦아든 시기였어요. ‘함께 살면서 다시 옛날처럼 힘든 감정이 올라오지 않을까?’, ‘섹스는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있었죠. 막상 걱정한 만큼 힘들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진짜 섹스는 어떻게 해요?
승은 당황스러운 순간은 있었죠. 섹스하다 말고 누가 들어오면 아무 일 없던 척하고요.
우주 저희가 연애 초기에 합친 게 아니라서 수월했던 것 같아요. 서로 눈만 맞으면 침실에 들어갈 시기는 지났던 때죠.
지민 동거 초기엔 셋이 같이 있으면 서로 손 안 닿으려고 몸을 사렸었던 기억이 나요.
우주 ‘여기가 셰어하우스인가?’ 싶을 정도였죠.
승은 지금은 좀 부자연스러운 긴장은 풀어졌어요. 다들 정말 집에 있는 것처럼 벗은 채로도 편하고, 소파에 같이 기대 눕고. 다만 여전히 셋이 대화할 때 직접적으로 애정 표현을 할 순 없다 보니 서로 장난을 치거나 공부하거나 둘 중 하나죠.


세 사람 사이에서 공유하는 성생활에 관한 규칙도 있죠?
지민 암묵적으로 쌓인 관습인데, 서로 알게끔 섹스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키스 마크 남기지 않기 같은 거요.
승은 지민이 남긴 걸 보고 우주가 속상해했던 적이 있거든요. 반대로 지민이 “마지막 섹스 언제였어?”라고 물어봤다가 제가 어젯밤이라 그래서 토라진 적도 있고요. 하나하나 부딪혀가면서 만드는 룰이에요.
우주 철저한 피임, 주기적인 성병 검사는 기본이고요.


세 사람 모두 각자의 섹스 라이프는 오픈하고 사는 건가요?
지민 저희도 계속 배우면서 확장하고 있어요. 폴리아모리 안에서도 합의 방식이 다양하거든요. 저와 승은은 모든 걸 말해주기로 했어요. 반면 우주와 승은은 DADT(Don’t Ask, Don’t Tell)로 합의했던 때도 있었고요.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다는 거죠.
우주 저희만의 바운더리가 있기도 해요. 예를 들어 자주 교류하는 활동가와는 섹스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식이죠.


서로를 ‘달걀부리 식구’라고 불러요. ‘식구’라는 표현을 쓰는 건 ‘가족’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기 때문인가요?
승은 가족 그 자체보다는 가족주의,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비판적이에요.
우주 기존의 가족 개념 내에서는 돌봄을 공유한다는 윤리가 잘 지켜지지 않잖아요. 그런데 ‘식구’라고 하면 ‘먹을 식(食)’ 자에 ‘입 구(口)’ 자니까 같이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 같이 모여서 밥도 짓고 가사노동도 하는 이런 느낌이 있잖아요. 돌봄 노동이 내포된 말이라 해야 할까요.


흔히 말하는 ‘정상 가족’, 그러니까 혈육이 포함된 원래 가족과 달리 지금의 가족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이 있나요?
승은 최근에 중학교 때 쓴 일기장을 다시 본 적 있는데, 거기에 ‘가족은 뭘까?’ 하면서 욕이 막 쓰여 있더라고요. 하하. 콩가루 집안이었거든요. 특히 아버지의 기분이 집안의 규칙처럼 되곤 했어요. 지금은 안정감이 있죠. 언제든지 내 의사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누군가 날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우주 제게 가족의 의미는 밖에서 돌아와서 휴식과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동체예요. 그게 가능하려면 지금처럼 돌봄 노동을 공유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고요. 대학교 가기 전까지 20년 정도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제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대가로 돌봄 노동이 제공되는 관계가 싫었어요. 한국에서 많은 부모가 자기 자식을 성공의 투사물로 여기죠.
지민 오래전부터 가족은 역할극이라 생각했어요. 제가 학생일 당시, 하루는 가정 폭력이 심하게 일어났던 적이 있었어요. ‘이 집은 망했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그다음 날은 유학 가 있는 첫째가 한국에 잠시 들어오는 날이었고, 하루 만에 저희 네 사람이 고깃집에 둘러앉아 하하호호 웃는데 그 상황이 너무 이질적인 거예요. 겉으로 보기엔 화목한 가정 코스프레를 하는데, ‘과연 자녀와 부모 사이, 엄마와 아빠 사이는 평등한가’ 하는 의문이 생겼죠. 지금 맺는 이 관계가 좋은 이유는 제가 자발적으로 맺은 관계이기 때문이에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기꺼이 이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을 하죠. 예전 가족과 살 때는 귀가할 때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면 불안함이 보였는데, 지금은 편안해요.


세 사람에게 ‘식구’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뭐예요?
지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언제든 이 관계를 끊어낼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상태요.
우주 잘 끊으려면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누군가에게 종속되지 않아야 하죠.
지민 질병이나 장애가 있다면 돌봄 노동을 더 많이 필요로 할 수도 있잖아요. 쉽지 않죠.
승은 관계가 끊어지면 당장 위태로워지는 사람은 특히 권력 관계 내의 위치를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관계의 평등함이란 게 ‘우리 서로 평등하게 대해주자’라고 해서 성립되는 건 아니에요. 평등하지 않으면 자유로울 수 없고요.
우주 폴리아모리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단지 많이 만나는 게 능사가 아니라 이 관계를 어떻게 평화롭게 유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면 그런 의존과 돌봄 관계를 무시할 수 없어요.


‘폴리아모리’에 대해 각자 어떻게 정의하나요?
우주 낭만적 사랑이나 정상적인 가족 구성을 전제로 한 독점적인 일부일처제가 당연시되는 사회잖아요. 그런 관계를 반대하고 서로의 성장을 제약하지 않도록 평등하고 개방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사랑의 방식이라 생각해요.
지민 비슷한데, 그때그때 맺는 관계에서 누구랑 무엇을 합의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해요.
승은 폴리아모리에서는 비독점성이 제일 중요해요. 소유한다는 생각 때문에 생기는 물리적·정서적 폭력이 있죠. 폴리아모리는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이 자칫 폭력으로 넘어가지 않게끔 어떻게 평등한 관계를 만들 수 있을지를 같이 고민하고 맞춰나가는 노력인 것 같아요.


폴리아모리는 특히 여성에게 해방적인 관계 방식인 것 같아요. 폴리아모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여성을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거니까요.
승은 제 친구는 썸남에게 폴리아모리 얘기를 꺼냈다가 “내 여자가 그러면 패버릴 거야”라는 말을 들었대요. 그런 점에서 저는 ‘지뢰 찾기’가 수월했죠. 하하. 두 사람에게 고마워요.


셋이 살면서 가장 큰 장점은 뭐예요?
승은 음…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셋이 합칠 수 있다는 점? 말빨로 이길 수 있어요. 하하.
우주 안에서 서로 잘 싸우는 것도 장점이죠. 서로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성장하니까요.
지민 저희 셋이 아무리 편해져도 일종의 긴장감이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싸우더라도 금방 화해할 수밖에 없어요. 옆에 다른 사람이 적극 조율해주거든요.


함께 산 지 2년인데, 20년 차 부부들 같아요.
승은 저녁 시간이랑 주말에는 거의 계속 붙어 있어요. 지방에 강연 있을 땐 같이 겸사겸사 여행도 가고요.
우주 거의 수학여행 온 기분이에요. 하하. 말은 이렇게 해도 1:1 관계로 다른 애인을 만나거나 가족과 살 때보다 훨씬 행복감을 느낄 때가 많아요.
승은 예전에 아버지가 군무원이어서 저녁 6시에 칼같이 퇴근하시곤 했거든요. 6시 ‘땡’ 하면 군화 소리, 문 두드리고 열쇠로 문 여는 소리 들리는 게 싫었어요. 지금은 두 사람이 집에 들어올 때 개들이 짖고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리면 너무 기뻐요. ‘와! 왔다!’ 하면서요. 정말 큰 차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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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ha ye jene/kim ye rin
  • Photographer kim sin ae
  • Stylist 김지수
  • hair 박규빈
  • makeup 김부성
  • Digital Design 조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