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회사 다니다가 정의당 비례대표가 된 류호정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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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회사 다니다가 정의당 비례대표가 된 류호정

정치판은 진흙탕이라는 편견도, 정치에 뛰어들면 미친 사람이라는 취급도 그만둘 때가 됐다. 여기, 국회와 일터 안팎에서 발로 뛰는 2030 여성들이 있으니까. 누군가는 시나브로 일상을 돌보고 누군가는 판을 확 뒤집어엎으려 한다. 어느 쪽이든, 불편함은 조금만 감수해주시길. 세상을 바꾼다는 건 그런 일이다.

COSMOPOLITAN BY COSMOPOLITAN 2020.04.06
 
슈즈 12만9천원 앤아더스토리즈. 슈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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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범주를 벗어나면 사람들에게 설명을 많이 해야 해. 왜 공부를 이것밖에 못 했는지, 왜 집이 없는지, 왜 결혼을 안 했는지.” 어머니는 누구도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것이 편한 삶이라 말했지만, 류호정의 생각은 달랐다. 그에게 설명이 필요 없는 삶이란 굳이 해명하지 않아도 자신이 살고 싶은 모습대로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걸 의미했다. 정의당이 92년생 청년 후보에게 비례대표 1번 자리를 내어준 이유에 대한 설명은 이것 하나로 충분했다.


게임 회사 직원이었는데 노조를 설립하다 ‘잘렸어요’. 굳이 나서서 노조를 만드는 건 큰 결심이었을 텐데요.
당시에는 대단하다고 생각 안 했어요. 정말로 잘릴 줄은 몰랐거든요. 그러니 큰 결심도 필요 없었죠. 주변에서 이직을 해도 회사 문화는 똑같을 거라는 말을 하길래 ‘그러면 아예 바꾸자’라고 생각했어요. 그 방법 중 하나가 노조였고요. 동료가 직장에서 성희롱당하는 걸 목격한 것도 계기가 됐어요. 저는 회사에서 성희롱을 비롯해 폭언이나 갑질 같은 부당한 일을 겪을 때마다 사회생활의 범주라 여기고 대충 넘어갔는데, 저와 함께 성희롱 장면을 목격한 한 후배는 신고를 하더라고요. 부끄러웠어요. 내가 침묵해서 부당한 일이 반복된 것 같아 미안하더군요.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고, 페미니즘에도 더 관심을 갖게 됐죠.


‘판교의 오징어잡이 배’라고 칭할 만큼 게임업계는 야근이 잦기로 유명하죠.
정규직도 권고사직을 너무 쉽게 당했어요. 모든 직원에게 포괄 임금제를 적용해 게임 개발을 위해 장시간 근무하게 하면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엎어지면 그 책임은 왜 직원들이 져야 할까요? 창의적인 업계임에도 당시 회사 분위기가 수직적이라 사측과 직원 간의 소통이 잘 안 됐어요. 부당한 요구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요. 업계가 좁다 보니 이의를 제기하다 찍히면, 이직할 때 부당한 일을 당할 거라는 걱정을 하니까요. 모든 회사에 노조를 만들 순 없으니 공짜 노동을 유발하는 포괄 임금제 폐지가 제도화돼야 해요. 포괄 임금제는 야근을 한다고 간주하는 제도인데, 그러면 야근을 시키는 문화가 만연하게 되거든요. 포괄 임금제를 폐지하면 일한 만큼 돈을 줘야 하니 자연스럽게 쓸데없는 야근이 줄어들죠.


재직 당시에는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어요. 대학 시절에는 게임 동아리 회장, 게임 방송 BJ로도 활약했고요. 정치와 연결 짓기에는 생소한 이력인데, 원래 정치에 뜻이 있었어요?
행동이 앞서는 경향은 있었어요. 게임을 좋아하면 게임만 해도 될 텐데 모임을 만들고 대회도 나가고, 재밌어 보이는 건 다 행동으로 옮겼거든요. 마케팅이나 기획 직군에 있다 보면 좀 더 상대방의 언어로 얘기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중2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글을 써라’ 같은 원칙을 적용하면, 어려운 정치 용어를 일상의 언어로 풀어서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죠. 남성 육아휴직은 ‘아빠의 자장가’, 포괄 임금제는 ‘공짜 노동 없애기’, 1가구 다주택 과세 제도는 ‘살 집만 갖자’로 표현하는 식이에요.


정치에 도전해보니, 정치 활동과 노조를 직접 조직하는 것은 어떤 점이 닮고 또 다르던가요?
지향점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생각이 다른 이들을 설득하고, 교섭을 한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매우 많아요. 어쨌든 생각이 같은 이들이 모여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그렇게 찾은 합의점을 적용해 사회를 바꾸는 거니까요. 노조는 대개 교섭 대상이 사측인 경우가 많은데, 정치는 지켜보는 모두를 설득하는 일이에요. 그렇기에 대중의 언어를 습득하는 게 더 중요해요. 물론 정치가 녹록지는 않아요. 정의당처럼 규모가 작은 당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리거든요. 소수가 다수를 설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제가 해나가야 하는 것들이죠.


92년생으로서 여성·청년 문제는 결국 내 삶의 문제기도 하죠. 그런 고민을 반영한 공약이 있다면요?
모든 문제는 결국 불평등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주거, 노동, 분배 같은 문제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돼요. 특히 사회로 나온 지 얼마 안 된 청년들이 이런 불평등한 구조에 더 직격탄을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서울에 와서 집 문제가 가장 컸거든요. 학교 다닐 때는 월세 부담에 허덕이고, 졸업 후에는 월세와 함께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했죠. 그만큼 저축이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됐어요. 그러니 자연스레 우선순위가 계속 밀리더라고요. 미래를 구체적으로 설계하거나 큰돈이 드는 일은 계획하기 힘들어지는 거죠. 이런 고질적인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분은 정의당을 찍어주셔야죠. 하하.


기성 정치인들은 정치에서 노동이라는 단어를 빼고자 하는데, 오히려 노동을 전면에 내세워 ‘젊은 정치’, ‘전환의 노동 정치’를 주창하고 있어요. 진보 정치를 업데이트하는 데 젊은 후보기 때문에 해낼 수 있는 몫이 있다면 뭔가요?
매일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노동이라는 단어를 멀게 느껴요. 정치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일상이랑 밀접한데도 멀게 느껴지잖아요. 정치와 노동이 가지고 있는 편견 같은 거죠. 당장 주 35시간 근무제 같은 정책이 입법화되면 일상이 바뀌는데도 말이죠. 사실 옛날에는 목숨 걸고 노동운동해야 하는 시절이 있었잖아요. 노동이 금기였던 선배 세대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노동이 편견 정도로 바뀐 것 같아요. 제가 할 일은 편견을 깨고 일상으로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일상이 되는 정치요.


노조 일을 하고 정치에 뜻을 가지면서 머리를 짧게 잘랐다고요. 연약해 보이지 않겠다는 의지였을까요?
탈코르셋을 염두에 두고 머리를 자른 건 아니에요. 지금 현재 여성성과 반대되는 새로운 여성성을 창조하면 그게 또다시 코르셋이 된다고 생각해요. 가부장제를 거부한다고 해서 여성은 무조건 머리를 잘라야 하고 화장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결국 여성을 새로운 틀에 가두는 거거든요. 페미니즘은 어떤 틀 없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헤어스타일 변화는 큰 다짐이 아니었어요. 탈색을 여러 번 했는데, ‘개털’이 돼서 잘랐을 뿐이죠. ‘빨주노초파남보색’ 염색을 다 해봤고 염색 머리를 유지하는 데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거든요. 하하. 저는 단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싶은 거고, 말 그대로 해보고 싶은 걸 하고 있어요.


20대, 여성, 해고 노동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요. 동시에 ‘여성+페미+해고 노동자+청년 특별 전형’이란 시선도 받죠. 특정 키워드에만 국한해 자신의 역량을 평가받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없나요?
사실 청년이고 20대며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여성이고 청년이니까 여성·청년 정책만 내놓는 건 아니에요. 기성 정치인이 하는 일이라면 저도 동등하게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제가 90년대생으로서 이 시대를 체감하며 내놓는 정책안은, 기성 정치인들이 주위에서 젊은이들에 대해 듣고 얘기하는 것과 분명 다를 거예요. 청년,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정치 일을 하는 데 잘 녹여내고 싶어요.


학창 시절에는 가정폭력으로 고군분투하고, 대학 진학 후에는 월세에 허덕이고, 사회생활하면서는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숨 쉴 틈 없이 살았어요. 저라면 ‘이제는 빚도 다 갚았으니 편하게 살자’라는 생각부터 할 것 같아요. 굳이 왜 정치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했어요?
오히려 반대예요. 그 빚을 다 갚았을 때 생각했어요. ‘이제 비로소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겠구나, 미련 없이 나댈 수 있겠구나’라고요. 빚이 있으면 마음대로 나댈 수도 없어요. 동생들이 아직 졸업도 못 했는데 갑자기 잘리면 곤란하거든요. 이제 돈을 덜 벌더라도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으로 자유를 찾아 떠날 수 있어 기뻤어요. 몸이야 사실 일을 한다면 뭘 해도 불편하죠. 저는 아마 정치를 해야 행복할 거예요. 뭔가 바꾸기 위해 스스로 행동할 수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요.


정치가 여전히 남의 일 같고 참여하기 귀찮아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정치는 우리의 일상이고,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면 분명히 바뀌어요. 외면하면 더 나빠질 수밖에 없어요. 세상은 완벽하지 않아요. 내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많기에 정치도 짜증 나는 거고요. 하지만 저는 세상이 완벽하지 않아 좋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내가 직접 바꿀 수 있는 거잖아요. 내가 바꾼다는 것은 멋있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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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하예진/김예린
    photo by 김태은
    hair&makeup 이소연
    stylist 김시애
    Digital Design 조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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