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게 정말 사랑일까?’ 문득 이런 질문을 던져본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거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세계 곳곳을 두루 다니며 사랑에 관한 문장을 담아내는 여행 작가 최갑수·장연정과 함께 사랑의 정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BYCOSMOPOLITAN2016.02.13


이기지 않아도 괜찮아


사랑이라는 말은 늘 우리의 마음을 양분한다. 한없이 움츠러들게 했다가, 또 한없이 피어나게 하는 힘. 사랑이 가진 그 양면성 속에서 방황하는 사이 우리의 생은 완성되어가고, 결국 어떤 식으로든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생의 끝없는 화두이자 질문은 ‘사랑’. 이 안에선 어떤 대답도 옳을 수 있고, 어떤 대답이든 모두 틀렸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랑에 관해 논하는 책과 매체가 넘쳐나고, 많은 이들이 가볍든 무겁든 사랑을 정의하는 말을 늘어놓지만 서른여섯 해를 살아본 나의 결론은 사랑은 절대 ‘남의 말’로는 배울 수 없다는 것. 온몸을 다해 부딪치고 깨지고 상처받고 아물어가야 겨우 알 수 있는 것. 때로는 쉽고도 가벼운 본능에 지나지 않는 것. 정해진 매뉴얼대로는 절대 이뤄지지 않는 것. 그러니 사랑이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이제까지 다양한 이들을 만나 연애하고, 또 이별을 했다. 연애의 결말에서 이별의 이유로 내세운 건 언제나 ‘성격 차이’였다. “이런 부분이 안 맞고, 이런 부분 때문에 싸워서…”라는 이러저러한 성격 차이를 언급하며 이별의 당위성을 부여하곤 했다. 그런데 결코 그것이 진짜 이별의 원인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준 사랑이 내게 찾아왔다.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영원히 함께 있고 싶은 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정말이지 성격도, 성향도 나와 달랐고, 게다가 ‘그>나’라는 관계 부등호를 그릴 수 있을 만큼 내가 더 많이 사랑함을 느끼게 했다. 그럼에도 그것이 전혀 속상하거나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그런 속상함마저 달콤하달까? 문득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Love Is a Losing Game’ 노랫말이 떠올랐다. “세상의 수많은 음악이 말해주듯 사랑은 다 주는 거야. 내가 견딜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당신이 도박이라는 걸 알아. 하지만 사랑은 다 주는 거야.” 꼭 내 마음 같았다. ‘지는’ 사랑을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생각을, 나는 처음으로 하게 됐다. 


그가 행복에 충만한 얼굴로 나를 보는 순간, 그가 행복해하는 모습에 행복해지는 나를 마주하는 순간을 정말 사랑한다. 그가 나에게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갑’의 위치에서 의기양양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보다, 내가 지고 그를 돋보이게 하는 그 순간에 나는 훨씬 더 큰 행복을 느낌을 알게 됐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계산은 사라지고, 그 끌림에 오직 마음을 내맡긴다. 운명의 방향을 통보받고 어떤 물음도 없이 순순히 순응해버리는 사람처럼. 그런 경험은 일종의 선고와도 같아서, 이미 그를 사랑하게 된 그날부터 나의 하루는 늘 생의 마지막 날처럼 소중하고, 또 아까워지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 비록 내가 지게 된다 할지라도 결코 나 자신을 거는 일에 몸 사리지 않게 되는 것. 그것이 내게는 사랑이다.


세상에는 수십억 명의 사람이 있고, 딱 그 수만큼의 사랑이 존재한다. 저마다의 사랑법이 있겠으나 적어도 내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나온 한 대사처럼 “그 사람이 나를 끝없이 괴롭게 만드는데도, 그래서 그 사람을 끝없이 미워하고 싶어지는데도, 결국 그 사람을 절대 미워할 수 없는 것. 미워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결코 미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사람을 위해 지는 ‘패’를 쥐고도 늘 웃는 그런 게임이다. 어쨌든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사랑해야 한다. 너무 아프더라도, 혹은 끝이 뻔한 ‘losing game’이라 할지라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사람다워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장연정(<눈물 대신 여행> 외 다수의 여행서 저자)



그녀를 사랑한다는 단 한 가지 증거

겨울비가 내리던 어느 날을 기억한다. 나는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며 달걀을 삶고 있었다. 냄비 속에서 달걀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거제 몽돌해변에서 들었던 파도 소리를 떠올렸다. 파도에 자갈이 구르는 소리와 양은냄비 속에서 달걀이 익어가는 소리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Y였다. “뭐 해?” “달걀 삶고 있어요.” 수화기 너머에서 그녀가 “풋” 하고 웃었다. 그녀는 대학 시절, 그러니까 20년 전 내가 짝사랑했던 이다. 같은 과 1년 선배로 눈이 크고 피부가 곱다. 입매가 야무진데 웃을 때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그녀의 웃는 입매가 별이 떨어지는 각도와 닮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오늘 만날 수 있어?” 그녀가 물었다.


20년 만에 우리는 홍대 앞에서 만났다. 그동안 우리는 늙었고 지쳐 약간은 각자의 인생을 못 견뎌하고 있었다. 함께 차를 마시고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셨던 그날은 영하 3℃의 차가운 날씨였다. “영화 볼까요?” 내가 물었다. “20년 만에 만난 사람에게 하는 말이 고작 ‘영화 볼까요’야? 그냥 좀 걷자.” 그냥 좀 걷자나 영화 볼까요나…. “결혼했다는 말 들은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헤어졌어. 작년에.” 그녀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었다. “조금만 더 걷자.” 우리는 그냥 걸었다.


“너, 나 좋아했지?” 연희동 어느 카페 앞에서 그녀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왜 말 안 했어?” “이젠 다 지난 일인걸요.” 20년 전, 그녀와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어느 시골에 도착했고 강변에 텐트를 치고 코펠에 밥을 지어 먹었다. 그녀와 함께 도서관에서 잡지를 본 적도 있다. 단둘이 시집을 함께 소리 내어 읽었고, 영화를 보았고, 꽃나무 그늘에 앉아 있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그녀와 단둘이 참 많은 일을 했구나. “이제 가야겠어.” Y가 말했다. “그래요.” 택시에 오르는 Y의 손을 잠깐 잡았다. 20년 만에 처음 잡아보는 손이었다. “너, 아직도 나 좋아하니?” 나는 그냥 웃었다. 여의도 쪽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눈이 오려나 보다.


인생은 흐르고 흘러 여기까지 왔다. 하루에 하루씩 꼬박꼬박 지나가는 하루를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살아와서 어느새 40대가 됐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스물한 살이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서른두 살이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마흔세 살이다. 두보 영감은 “봄을 마음껏 보려고 하나 꽃잎은 눈을 스치고 지나간다”라고 했던가. 인생은 그런 것이다. 불과 아침과 저녁 사이만큼 순식간에 지나간다. 창밖을 바라본다. 어슴푸레하게 빛나는 도시의 풍경, 도로에는 드문드문 차들이 지나고 네온사인은 파르르 떨리며 필사적으로 반짝인다. 그 풍경을 바라보자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내가 지나온 날들이 저기 다 있다는 그런 느낌이랄까? 이 누추한 감정 앞에서 뭐라도 해야 되겠다 싶어 종이컵에 가루 커피를 타 마신다. 문득 팽이를 닮은 타임머신이 베란다 창문 앞으로 와서 “타세요. 20년 전으로 데려다드릴 테니. 가서 사랑한다는 고백이라도 해보세요” 하고 스윽 문을 열어준다면 나는 어떡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나는 “고맙지만 사양하겠어요. 여기서 그냥 커피나 마실랍니다” 하며 종이컵을 들어 보이지 않을까?


밤은 점점 깊어가고, 세월은 여전히 돌아갈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20년 전부터 그녀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생각해왔다. 그녀가 “아직도 나 좋아하니?”라고 물었을 때 하고 싶던 말은 이거였다. “당신을 좋아하지 않았던 날은 당신을 만난 뒤로 단 하루도 없었어요.” 그런데 왜 말하지 못했을까? 굳이 이유를 묻는다면, 시간이 너무 흘러 그랬다고밖에는 핑계를 대지 못하겠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는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왔다고밖에는 말하지 못하겠다. 아직도 내 손에 남아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았던 그 순간의 온기. 오늘은 그 온기가 날아갈까 봐 손을 꼭 쥐고 있는 밤. 그러니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온 세월을 바쳐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것. -최갑수(<우리는 사랑이 아니면 여행이겠지> 외 다수의 여행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