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프릭션맥싱이 뭐길래? 편리함을 덜어내는 생활법

편리함을 덜어내고 일상에 의도적인 불편을 더하는 ‘프릭션맥싱’. 스트레스로 스트레스에 맞선다는 이 방식은 정말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까요?

프로필 by 김미나 2026.10.17

사실 20년 전의 삶이 지금보다 고단했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크레이그 데이비드의 ‘7 Days’ 가사를 빌리자면, 수·목·금·토요일에 데이트를 하고 일요일에 겨우 쉴 수 있었으니까. 그때도 넷플릭스가 존재했다면 집에서 편하게 데이트할 수 있었을 텐데, 챗GPT가 있었더라면 가사 몇 줄 쓰는 건 일도 아니었을 텐데….


인지신경과학자 에밀리 허드는 스크린 뒤에서 살아가는 삶이 보편화되면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말한다. “우리 뇌는 보상을 얻는 데 필요한 노력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끊임없이 계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려운 일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죠.” 예를 들어 재치 있는 카피를 고민하는 대신, 챗GPT를 이용해 채널에 딱 맞는 텍스트를 단 몇 초 만에 뽑아내는 식이다.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저널리스트 피이 모스코위츠는 서브스택 뉴스레터 <Mental Health>에서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진 세상에서는 열심히 일하면 보상받는다는 오래된 상식이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많은 사람에게 삶은 더 힘들어졌습니다. 경제는 엉망이고, 정치 시스템은 희망이 없어 보이죠. 그러니 편안함의 매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겁니다.” 모스코위츠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가 일과를 마친 뒤 와인 한 잔을 찾는 이유와 휴대폰을 집어 드는 이유는 같습니다. 마음과 몸이 잠시라도 쉴 곳을 원하기 때문이죠.”



일상 속 마찰 늘리기 >> 문제는 이러한 ‘쉬어 가기’가 정신 건강을 위한 완벽한 해법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심리치료사 엘로이즈 스키너는 마찰이 완전히 사라진 삶이 도리어 지루함, 불만족, 수동성 그리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비록 마찰의 부재를 부정적 감정의 유일한 원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스키너는 이것이 내담자들의 불안감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그는 “어려운 문제를 헤쳐나갈 때 우리는 살아 있다고 느끼며, 현재에 집중하고, 몰입합니다. 따라서 삶에서 모든 마찰을 제거해버리면 정확히 그 반대의 부작용이 나타납니다”라고 말한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은 보상, 조절, 연결감과 관련된 뇌의 도파민 회로를 강화한다. “이 회로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삶에 대한 몰입감마저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AI)에 지나치게 의존할 때 치러야 하는 심리적 대가에 대한 증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9월 1일 발표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인의 73%가 지난 한 달 동안 AI를 사용했다고 답했다. 겉으로는 삶이 편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2025년 하버드 의과대학 연구에 따르면 AI 사용량이 많을수록 우울증, 불안, 짜증의 위험이 높아졌으며, 매일 AI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우울증 위험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30%나 높았다.


손상되는 것은 현재의 행복뿐만이 아니다. 마찰의 부재는 미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영국 베스트셀러 <Hyperefficient: Optimise Your Brain To Transform The Way You Work>의 저자이자 정신적 능력 및 스트레스 관리 분야의 선두 연구자인 미투 스토로니 박사는 미세한 스트레스 요소가 사라지면 위기에 대처하는 유연성도 함께 잃는다고 주장한다.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겪고 거기서 빠르게 회복할 때, 뇌는 ‘신경 가소성(새로운 정보에 응답하고 적응하는 뇌의 능력)’ 등의 메커니즘을 통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도록 발달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사소한 스트레스 반응이 오히려 마음의 회복 탄력성을 키워준다고 설명한다.



고통을 즐겨라 >>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프릭션맥싱’, 즉 ‘마찰 극대화’다. 디지털 시대의 매끄럽고 편리한 삶으로 약해진 내성을 다시 키우기 위해, 사회적 교류나 약간의 불편함이라는 ‘마찰’을 의도적으로 일상에 도입하는 것이다. 이 용어는 지난 1월 뉴욕 매거진 <The Cut>에 글을 기고한 저널리스트 캐서린 제저-모턴이 처음 제안했다. 마찰 없는 삶은 건강에 독이 된다는 증거가 쌓이면서, 이후 이 단어의 검색량은 140%나 폭증했다. 스트레스를 이용해 스트레스를 방어한다는 개념 자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인지행동치료(CBT)의 일종으로,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스트레스 접종 훈련(Stress Inoculation Training, SIT)’은 1970년대부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 치료에 사용돼왔다. 스토로니 박사는 “SIT는 3단계로 구성된 정교한 CBT 기술이며, 세 번째 단계는 안전한 환경에서 스트레스 요인을 통제한 상태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라며 “대처 전략을 배운 뒤 실제로 시연해보는 방식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이 시뮬레이션은 스트레스 자극에 대한 뇌의 반응을 재설계해, 낡은 신경 회로를 더 강하고 회복력 있는 새 회로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 효과가 워낙 뛰어난 덕분에 미 해병대에서도 이 훈련법을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번아웃을 막기 위한 스트레스 예방 훈련은 프릭션맥싱이라는 트렌디한 용어로 다시 태어나 대중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반짝 유행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 개념의 바탕이 되는 원리는 철저히 과학적 검증을 거친 것입니다.” 프릭션맥싱을 직접 실천하고 있는 아동 교육 심리학자 사샤 홀 박사의 말이다. 에식스에 사는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육아와 재택근무, 가사 노동을 병행하며 심각한 번아웃을 겪었다. 그래서 자신을 압박하는 일들의 목록을 적어봤다. 끝없는 청소와 아이들과 함께 장을 보는 것이 1위에 오르자, 부담을 덜기 위해 로봇 청소기를 사고 대형 마트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이 행동은 역효과를 낳았다. “스트레스가 줄어들기는커녕 더 심한 번아웃이 왔어요. 스트레스 요인을 없애버리니 사소한 불편함에도 훨씬 더 예민해졌죠. 치과에서 검진 예약을 하라는 문자를 받는 것조차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스토로니 박사는 이것이 바로 마찰이 사라졌을 때 스트레스 반응을 통한 ‘둔감화 훈련’ 능력을 잃어버리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한다. “평소라면 금방 회복했을 가벼운 자극에도 이제는 더 큰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라 부르는 코르티솔(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 수치가 계속 높게 유지되면서 염증의 위험 인자인 만성 스트레스로 발전하기 쉽습니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스트레스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 스트레스 관련 정신 질환을 앓는 비율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만큼, 이러한 감각 둔화 능력의 상실은 여성 건강 관점에서 특히 우려할 만하다.



프릭션맥싱이 다음 세대에 주는 영향 >> 모든 것이 너무 편안하게만 돌아가는 세상은 다음 세대에도 영향을 준다. 특히 현재 아동 정신 건강은 위기 수준이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추정에 따르면 잉글랜드 어린이 5명 중 1명이 정신 건강 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대단히 충격적인 수치다. 복합적인 원인이 존재하지만, 런던 대학교(UCL) 연구진이 지적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위험을 지나치게 회피하는 양육 방식’의 증가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야외에서 놀거나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또래와 소통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 결과 청소년들의 사회적 삶과 소통 능력이 취약해지고 메말라가는 현상, 이른바 ‘소셜시닝’ 현상이 발생해 타인과의 연결성을 떨어뜨리고 행복감을 해치는 것.


홀 박사는 프릭션맥싱이 부모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스노플로 패런팅’ 대신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고 말한다.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이겠지만, 아이들이 실패를 경험하거나 지루함을 견디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살아가면서 난관에 부딪혔을 때 꼭 필요한 회복 탄력성을 키울 수 없습니다.” 소셜시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홀 박사가 선택한 방식은 아이들에게서 인터넷을 강제로 빼앗는 것이 아니라, ‘마찰이 존재하는 소통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이 부모에게도 아주 유익하다고 덧붙인다. “아이들이 스스로 우정을 쌓고 혼자서도 잘 놀 수 있게 되면, 부모의 육아 번아웃이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일상의 마찰을 늘린 지 불과 몇 달 만에 저는 진심으로 더 행복해졌고 마음도 단단해진 것을 느낍니다.”



편안함을 거부하는 사람들 >> 2014년, 영국에서 채소 섭취량을 늘려준다며 품절 대란을 일으켰던 나선형 채칼을 떠올려보자. 정작 사용하고 나서는 세척이 악몽이었다. 프릭션맥싱도 비슷하다. 아무래도 꽤 고된 일처럼 들린다. 편안함이라는 혜택을 굳이 포기하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과도한 업무로 압박받는 현대인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코츠월드에 사는 라일리 몰리나리오는 생각이 다르다. 누구나 마감이 임박한 일을 하는 대신 SNS 스크롤을 내리고 싶지만, 그에게는 이런 미루기를 뿌리치는 일이 특히 어렵다. “저는 어릴 때 ‘영재’라는 말을 듣고 자랐어요. 뇌가 너무 빠르게 회전해서 저 스스로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때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재택근무를 하다 보면 너무 쉽게 산만해집니다. AI의 편리함을 사랑하지만, 그 편리함 때문에 다른 길로 새서 시간을 엄청나게 허비하곤 하거든요.” 현재 관계 코칭 플랫폼인 ‘Relationship Intelligence’를 운영하는 그는 업무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찰’을 늘린다. 집중해서 일할 때는 스마트폰을 다른 방에 두고, 일과가 끝나면 모든 SNS와 이메일 계정을 로그아웃한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의식처럼 로그인 절차를 거친다. “디지털에 접속하는 과정을 일부러 불편하게 만들었어요. 의도적인 마찰이 오히려 저를 훨씬 효율적으로 만들어줍니다.” 런던 서부에 사는 회계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케일리 톰슨 역시 이에 동의한다. 지난해 말 크리스마스 전까지 업무를 끝내기 위해 일과 삶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을 때, 그는 지하철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기 시작했다. 오디오도, 영상도, 독서도 없이 말이다. “일과 육아 때문에 너무 많은 자극을 받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동 시간마다 무의식적으로 휴대폰 화면을 스크롤했죠. 하지만 제가 정말 필요로 했던 건 머릿속을 비우는 일이었어요.” 케일리는 마찰을 견디는 절제력을 발휘해 SNS 앱을 삭제하고 사색과 명상의 시간을 가졌더니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훨씬 역량이 높아졌다. “더 이상 길바닥에서 정신적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된 덕분이죠”라고 그는 말한다.


의도적으로 인생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프릭션맥싱의 이점을 제대로 누리고 싶다면 장기적인 습관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에서 하던 홈트레이닝 대신 오프라인 피트니스 클래스로 바꿔보세요. 수업 예약, 옷 챙겨 입기, 이동하기 등 그에 딸려오는 온갖 번거로움을 직접 겪어보는 겁니다. 성취감에서 오는 심리적 이점뿐만 아니라 새로운 환경이 주는 긍정적인 자극까지 얻게 될 거예요.” 스키너는 시도해보고, 배워서 자신에게 맞게 조절하라고 말한다. “단지 트렌드를 따르겠다고 마찰을 도입했다가 상응하는 혜택도 얻지 못한 채 자유만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업무 이메일을 쓸 때 맞춤법 실수를 줄이겠다며 자동 완성 기능을 껐다가 홍보팀(Public Relations)을 성기(Pubic Relations)로 잘못 쓰는 상황처럼 말이다. 여기, 초보자를 위한 4가지 가이드를 먼저 시도해보자.


프릭션맥싱 입문 가이드

「

몸을 움직여라

」

“운동은 분명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키지만, 감정적인 응어리나 부담을 남기지 않습니다”라고 스토로니 박사는 말한다. 운동을 하면 새벽 3시에 스트레스받았던 일을 다시 생각하느라 스트레스 호르몬이 계속 분출될 일도 없다. 그러니 근육과 회복 탄력성을 키우기 위한 운동을 시작해라.


「

챗GPT 사용을 중단하라

」

2025년 MIT 연구에 따르면 창의적인 작업에 AI를 사용할 경우 장기 기억 능력 저하를 포함한 심각한 ‘인지적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대신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뇌의 인지 기능을 단련해보자.


「

결제를 까다롭게 만들어라

」

재무 의사결정 전문가인 재러드 케슬러는 불필요한 소비가 ‘편리함’ 때문에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는 스마트폰에서 쇼핑 앱을 삭제하고, 간편 결제 한도를 낮추고, 앱에 등록된 카드 정보를 삭제하라고 조언한다.


「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라

」

집 상태가 완벽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홀 박사는 말한다. 그 역시 집이 깨끗하지 않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놀이 약속을 취소하곤 했다. 하지만 불가능한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대신, 완벽하지 않은 상태가 주는 어색함과 마주해보면 어떨까? 있는 그대로의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관련기사

Credit

  • 에디터 김미나
  • 글 Georgie Lane-Godfrey(〈우먼스 헬스 UK〉피처 디렉터)
  • 사진 스톡시(메인)·게티이미지(스마트폰)
  • 아트 디자이너 안영은
  • 디지털 디자이너 유영호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