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아 새 싱글 '더 바라지도 않겠어(Peacock)'의 숨겨진 비하인드
지금 선우정아의 마음이 가득 담긴 노래, '더 바라지도 않겠어(Peacock)'로 돌아온 선우정아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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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톱, 선글라스 모두 Bottega Veneta.
곧 새 싱글 앨범이 나오죠. ‘TIME TO BE A PEACOCK’이라는 문구가 심상치 않던데요.
지난해 EP 앨범을 낸 뒤 오랜만에 발표하는 싱글 앨범이에요. 싱글 앨범을 만들 때 스스로 작업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 달라지는데, 싱글은 유독 음악 못지않게 미술적인 부분에도 집중하게 돼요. 오랜만에 그런 작업을 했고, 즐겁게 마무리했어요.
소속사를 통해 미리 받아본 앨범 자료에서 ‘선우정아 2.0의 시작’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어요. 지금 2.0이라는 환기가 필요했던 이유는요?
전 매번 환기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과거는 좋든 그렇지 않든 떠나 보내고 새로운 지금을 늘 맞이하고 싶은 성격이에요. ‘2.0’이라는 말이 거창해 보일 수 있지만, 앨범마다 새 시즌, 새로운 선우정아를 생각하며 접근하는 편이고요. 이제 회사와 호흡을 맞춘 지도 2년이 넘었으니, 본격적으로 새로운 프로젝트에 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담긴 말이기도 해요. 그리고 제 나이도 이제 40대 초반이 됐고, 그래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달라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갖게 됐어요. 여기에 걸맞은 새로운 작전이 필요했던 셈이죠.
40대가 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달라졌길래요?
지쳤죠.(웃음) 제 노래 중 ‘BUFFALO’라는 곡처럼 전 일을 벌이고 확장시키고 밀어붙이는 성격이었는데, 이젠 그런 모습이 좀 작아졌어요. 무작정 행동에 옮기기보단 두드리고 살펴보고, 그래서 속도가 조금은 느려졌죠. 그런데 그래서 또 좋은 점이 있더라고요.
뮤직 토크쇼 <더 시즌즈-성시경의 고막남친>에서 했던 말도 생각나요. 슬럼프가 와서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려웠지만, 신곡 작업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고 했죠.
늘 그것을 반복하는 것 같아요. 지난해 발표한 ‘찬란(chan rahn)’이라는 EP 앨범을 작업할 때도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앨범을 만들며 힘을 얻었고,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도 새로운 어려움에 봉착했어요. 물론 새로운 역경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즐거움도 얻게 됐지만요. 한동안은 작업물과 관계없는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했어요. 음악이나 공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순간들 속에서 실패가 페이스트리처럼 쌓이고 있다는 걸 느낀 적도 있어요. 그럼에도 다시 또 음악을 만들며 용기를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떻게 됐나요, 그때 켜켜이 쌓인 실패들은?
뭐, 먹어버려야죠.(웃음)
그러곤 버팔로의 마인드로 또 나아가면 되죠.
그런데 버팔로는 이제 안 될 것 같아요. 하하. 이제 소의 느긋한 걸음으로…!
니트 톱, 자수 프린지 스커트, 펌프스 모두 Bottega Veneta. 귀고리 본인 소장품.
하하, 좋아요. 신곡‘더 바라지도 않겠어(Peacock)’에서 선우정아의 터치가 들어간 ‘공작새’ 이야기도 궁금해요. 아까 언급한 미술적인 부분도, 곡 창작에 대한 부분도요.
원래는 이 곡이 공작새의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짝사랑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진 가사였는데, 곡을 완전한 짝사랑 이야기로 가기엔 어딘가 애매한 구석이 있는 거예요. 예전의 전 머리도 초록색을 했다가, 삭발도 하고 화장도 이것저것 도전해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그게 다 깎여나간 듯한 느낌을 받던 시기였어요. 거기서 ‘공작새’라는 키워드를 떠올렸고, 그럼 이 이야기를 가사에 풀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래, 난 원래 공작인데?’라는 생각이 이 곡의 씨앗이 된 거죠. 그래서 가사에 깃털이라는 단어도 가감 없이 쓰게 된 거고, ‘Peacock’이라는 부제를 달았죠. 이 노래를 쓰면서 다시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게 됐어요. 언젠가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이게 맞을까?’ 하는 기준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 여기에 정답이란 없고, 그 누구도 정답을 모르는데, 애써 사회가 정한 답에 맞춰가려고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무엇이든 하고 싶은 거 다 하자는 마음을 가사에 담았어요. 앨범의 비주얼에도 제가 좋아하는 요소를 다 모았죠. 얼굴에도 색깔을 주저 없이 넣어보고, 화려한 옷도 입어보고요. 아낌없이!
이 이야기를 들으니 가사가 더 와닿아요. “더는 주지 않겠어/아까운 나의 마음을”, “슬퍼하지 않겠어/홀로 고고한 노래를 부르며”. 어떤 상황이든 나를 귀히 여기는 화자가 노래 안에 있네요.
맞아요. 그것이 대중의 기호나 시선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사회가 될 수도 있고 짝사랑하는 대상일 수도 있죠. 그게 무엇이든 우리의 지향점 앞에 걸리적거리는 기준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거기에 맞춰 함께 나아갈 때가 있고, 지금처럼 내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멀리 날아가야 할 때가 있는데, 이 곡은 그보단 내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죠.
특히 좋아하는 가사가 있나요?
“가망 없는 순정 개나 주겠어” 이 가사요.(웃음) 이 노래를 쓰면서 마치 단편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처럼 고전적이면서도 어딘가 촌스러움이 있기를 바랐어요. 가냘파 보이지만 강단 있는 화자를 그렸는데, 거기에 정말 큰 역할을 하는 구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다른 노래도 그렇듯 욕 직전의 표현을 쓰는 걸 좋아해요. 이 또한 정말 저다운 가사죠.
맥시 코트 N°21. 스타킹, 플랫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반지 본인 소장품.
노래를 비롯해 곳곳에 남겨둔 선우정아의 기록들을 통해 골몰하는 아티스트 선우정아를 발견하곤 합니다. 여전히 좋은 것을 전달해야 한다는 직업적 사명감으로 음악이 다가온다고 했죠. 최근 음악 작업을 ‘자정작용’에 빗댄 표현에서도 그 태도가 느껴졌어요.
결국 제가 하는 이 일은 대중 예술이니까요. 청자들이 노래를 들으면서 ‘내 얘기 같아!’ 라며 공감하고 위로를 받듯이 음악을 발표하는 뮤지션들도 ‘내 이야기에 공감해주세요’ 하고 마음의 어떤 구석을 꺼내놓는다고 생각해요. 책임감이 사라진 채로 마음속 깊은 구석을 꺼내는 건 정말 많은 사람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죠. 누군가에게 어두운 슬픔을 전염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창작자이자 대중음악가로서 책임감을 갖자고 마음먹죠.
그 책임감이 자정작용을 만들어내는 거군요.
제 안의 이야기, 감정, 그러니까 분비물을 음악으로 배출하고 마는 게 아니라, ‘이 노래가 세상과 호흡하려면 어떤 모습을 띠고 있어야 될까? 어떤 사운드여야 할까? 어떻게 해야 세상이 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것까지 고려해야 하는 거죠. 결국 세상과의 작용을 생각하며 다듬는 것까지가 자정작용이 된다고 봐요.
그 과정은 굉장한 골몰을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느껴지는 기쁨도 있을 테죠. 선우정아가 느끼는 이 일의 기쁨은요?
제게 그 즐거움이란, 저에 대해 고찰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 곡을 내보낼지 말지 선별하는 기준 자체도 제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까, 저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하면서 평소와는 또 다른 저에 대해 알게 되는 게 참 재미있어요.
그렇게 바라본 선우정아는 어떤 사람인가요?
되게 솔직하지만, 여전히 겁이 많은 양면성을 가진 사람. 유쾌한 것을 하지만, 그 극단에 있는 아주 딥한 것도 좋아하고요. 그리고 아까 말한 자정작용이 잘 유지되고 있는 걸 보면, 아직 악한 사람은 아니구나 싶죠. 그걸 잘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재킷, 셔츠, 팬츠, 앵클부츠 모두 Bottega Veneta. 귀고리 본인 소장품.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토록 다채롭고 섬세하게 곡을 쓰는 사람은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감각을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 있어요.(웃음) 선우정아가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는 방법이 있나요?
왜 그런 말들 하잖아요. 바다로 떠나서 곡을 썼다. 전 그런 걸 못 해요. 여행을 가거나 자연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그냥 그걸로 끝이거든요.(웃음) 오히려 일상을 살면서 마주한 평범한 장면들 속에서 창작 욕구나 영감이 튀어 올라요. 나이 든 부부가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만난 동네 어르신의 재치 있는 말 같은 것들에서요. 별것도 아닌 것에서 별거를 많이 느끼는 편이죠.
근래 느낀 ‘별거’는요?
‘따릉이’요. 저희 동네는 단지가 크지 않아서 따릉이 자전거 수가 적단 말이에요. 그런데 전 일주일에 거의 서너 번을 타거든요. 외출하기 전 몇 대나 있는지 조회해서 탈 수 있는 따릉이가 있을 때! 그리고 제가 탄 따릉이의 기어 상태가 최상일 때, 그때 느끼는 기쁨이 진짜 커요. 반대로 외출했는데 따릉이가 한 대도 없을 때는 정말 상실감을 느끼죠.(웃음) 그리고 첫 바퀴를 굴려서 딱 바람을 쐤을 때, 그 냄새와 촉감이 너무너무 행복해서 많은 영감을 받아요. 따릉이를 타고 계속 곡 생각을 하면서 간 적도 있어요.
따릉이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있네요.
하하. 정말요!
롱 코트, 셔츠, 스커트 모두 Saengin. 귀고리, 반지 본인 소장품.
오늘 화보도 그런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준비했어요. 이 화보와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 한 곡 추천해주실래요?
‘Long Form Life’라는 곡이 있어요. 숏폼 시대에 대항을 전혀 하지 않고, 그냥 느리게 살겠다는 노래거든요. 그게 딱 일상에서의 제 모습인 것 같아요. 세상이 빠르게 흘러가든 말든, 골목길을 천천히 산책하는 제 모습과 굉장히 닮아 있는데, 그 노래가 좋을 것 같아요.
이어서 ‘더 바라지도 않겠어(Peacock)’도 듣고요.(웃음)
아, 새 싱글! 들어주시면 좋겠지만, 여기엔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웃음) 대신 힌트를 좀 드리자면, 하반기에 이래저래 다양한 활동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때 좀 더 이야기 나눌까요?
Credit
- 피처 에디터 천일홍
- 포토그래퍼 장기평
- 헤어·메이크업 김라희
- 스타일리스트 김나현
- 어시스턴트 정주원
- 아트 디자이너 김지은
- 디지털 디자이너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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