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러 개의 슬롯을 자신이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로 채워나가는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비어 있는 슬롯에 집중하다 보면 불행해지더라고요. 저는 홍천 생활을 하며 꽉 막혔던 벽 틈새로 새어 나오는 한 줄기의 빛을 봤어요. 요즘은 그렇게 제 슬롯을 채울 수 있는 단서들을 찾아나가는 게 즐거워요.”
캐시미어 터틀넥 가격미정, 캐멀 와이드 팬츠 1백만원대, 레이스업 앵클부츠 1백만원대 모두 Max Mara.
대중이 생각하는 가장 한혜진다운 모습으로 코스모 카메라 앞에 섰어요.
아무래도 서울에 머물 때는 패션 현장에 있거나 조명 아래서 풀 세팅된 모습으로 있을 때 가장 저다운 것 같아요. 막스마라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브랜드라 커버 촬영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기뻤죠.
반면 ‘홍천 라이프’를 통해 톱 모델이 아닌, 인간 한혜진의 시골 생활도 보여주고 있죠.
홍천에선 스킨, 로션도 안 바른 상태로 하루를 보낼 때가 많아요.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자연인에 가까운, 정말 편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죠.
울 펠트 점프슈트 가격미정, 캐시미어 글러브 40만원대 모두 Max Mara.
삶은 여러 개의 슬롯을 자신이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로 채워나가는 것이라 생각해요. 아직 비어 있는 슬롯 중엔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등의 가치도 포함돼 있었죠. 하지만 결핍에 집중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불행해지더라고요. 눈을 돌려서 새로운 가치를 찾은 게 바로 홍천 라이프였죠. 어머니께서 고향인 홍천으로 돌아가 터를 잡은 지 12년이나 됐고, 저도 엄마 집을 오가며 홍천에 집을 짓고 싶다는 확신이 생겼던 것 같아요. 물론 홍천에 드림 하우스를 지었다고 해서 내면에 있던 모든 결핍이 상쇄됐다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홍천에 와서 꽉 막혔던 벽 틈새로 새어 나오는 한 줄기의 빛을 봤어요. 요즘은 그렇게 제 슬롯을 채울 수 있는 단서들을 찾아나가는 게 즐거워요.
다수의 연애 프로그램 MC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적립한 연애 철학도 궁금합니다.
연애 철학이요?(웃음) 20대 때는 연애에 대한 환상도 크고, 연애가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하지만 내 인생의 여정 중에 작은 한 부분일 뿐 연애가 전부는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니 그 비중이 많이 줄었어요. 그리고 그 자리를 다른 것들로 많이 채웠죠. 지금은 연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밸런스예요. 사랑과 삶의 다른 부분을 잘 조율해 삶의 질 전체를 높이는 게 중요해요.
울 재킷 4백만원대, 셔츠 가격미정, 울 플레어 팬츠 가격미정 모두 Max Mara.
패션모델 신에서 불합리한 일에 대해 거침없이 일침하고, 군기 문화와 같은 악습도 끊어내는 등 처우 개선에 힘썼죠.
그렇게 얘기해주니 감사하기는 한데, 사실 거창하게 포장되는 게 불편하기도 해요. 모델 일을 오래 하면서, 겉보기에는 이보다 더 화려한 직업이 없는데 백스테이지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괴리감이 가장 힘들었거든요. 제가 남들보다 좀 더 예민한 탓에 불편한 점들을 더 잘 느꼈을 뿐이에요.
불편한 점을 바로바로 이야기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저 덕분에 개선됐다기보다는, 사회 전반적으로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된 덕분에 패션쇼 현장에도 적용된 거죠.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당시에는 낙인찍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불평불만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저는 지금도 그리 몸을 사리는 편은 아니지만 그때는 확실히 ‘똘끼’가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크롭트 스웨터, 니트 롱스커트 모두 가격미정 Max Mara.
팬데믹으로 서울패션위크가 취소됐을 때는 ‘100벌 챌린지’를 통해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소개하며 한국 패션 산업에 힘을 보태기도 했죠.
서울패션위크는 제가 데뷔한 무대라서 애정이 있기도 했고, 당시 상황이 좀 답답해 뭐라도 하고 싶었어요. 디자이너들은 쉬지 않고 작업하는데 행사가 올스톱되면서 작품을 보여줄 무대가 사라진 거잖아요. 그래서 ‘100’이라는 막연한 숫자를 잡아놓고 무작정 도전한 거죠. 사실 선후배 모델들의 도움을 받아볼까 생각도 했는데, 제 제안이 강요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포기했어요. 당시에 옷을 보내주신 디자이너분들은 물론이고 포토그래퍼분들과 헤어·메이크업·스타일리스트 실장님들이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셔서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죠. 쉽게 잊을 것 같진 않아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한혜진 인스타그램을 끝까지 내려봤어요. 첫 게시물은 20살 때 호주에서 찍은 셀카더라고요. 바로 어제 찍은 것 같던데요.(웃음)
사실 방송 일과 모델 일을 하지 않았다면 외모 관리를 느슨하게 했을 거예요. 아직 모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관리를 많이 할 수밖에 없죠. 사실 외적으로 달라진 거 많아요.(웃음)
울 맥시 코트 6백만원대, 캐시미어 터틀넥 1백만원대, 스웨이드 쇼츠 2백만원대, 니트 벨트 50만원대, 레더 벨트 40만원대, 레더 글러브 50만원대, 니트 타이츠 가격미정, 레이스업 앵클부츠 1백만원대 모두 Max Mara.
제가 보낸 시간을 돌이켜봤을 때, 과거에 일어났던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이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저 자신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된 거죠.
스스로에 대해 또 새롭게 발견한 부분이 있나요?
유튜브를 2년 동안 운영하면서 제가 연출이나 기획에 흥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데뷔 15주년 기념으로 <한혜진 바디북>을 출간했을 때도 굉장히 즐거웠는데, 지금은 저의 기획력을 언제나 실현할 수 있는 유튜브 채널을 가지고 있으니 재미있는 기획을 자꾸만 해보고 싶어요.
실크 드레스 가격미정, 니트 벨트 50만원대, 레더 벨트 40만원대, 니트 타이츠 가격미정, 레이스업 앵클부츠 1백만원대 모두 Max Mara.
본업을 잘하는 건 물론이고 어머니와 잘 지내는 모습, 사랑에도 열정적인 모습을 보며 커리어와 사랑, 가족애까지 빠지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제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밸런스’예요. 삶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가장 중요한 것을 정의하는 순간 ‘과몰입’해 골몰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현재에 충실하려 하고, 행복한 순간도 적절히 배분하려고 하죠.
<코스모폴리탄>과 한혜진은 건강한 아름다움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인연이 깊어요.
사회가 요구하는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게 중요하죠. 그러려면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해요. 우리는 지금 미디어에서 쏟아져 나오는 시각적인 것들에 너무 빠져 있어요. SNS 속 나의 모습이나 화려한 인플루언서의 삶 말고, 거울에 비치는 ‘진짜’ 나의 모습을 보며 고찰의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해요. 내가 어떤 걸 먹었을 때 좋은 에너지를 내는지, 몇 시간 잤을 때 컨디션이 좋은지, 어떤 사람들을 만날 때 정신적으로 좋은 영향을 받는지, 내가 가장 스트레스받는 요인은 무엇인지 등을 알아야죠. 스스로를 계속 돌아보고, 들여다보며 관심을 가져야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과 정신을 가질 수 있죠.
재킷 2백만원대, 캐시미어 터틀넥 1백만원대, 니트 벨트 50만원대, 레더 벨트 40만원대, 레더 글러브 50만원대, 레이스업 앵클부츠 1백만원대 모두 Max Mara. 브리프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어느덧 데뷔 25년 차예요. 매년 커리어를 갱신하고 있는데 궁극적인 목표도 궁금해요.
사실 목표 지향적 인간은 아니라서 궁극적인 목표 같은 게 잘 세워지진 않아요.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고 그 순간에 몰입하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제가 좀 예민한 성격이라 어떤 큰 목표나 계획을 세우면 그걸 끝낼 때까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잘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서 그런 것 같아요. 대신 단기 계획을 촘촘하게 세우죠. 이 방식이 제게 더 잘 맞아요.
일단 오늘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저의 데뷔 25주년을 기념해 여러 가지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는데 곧 유튜브에서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기억에 남는 좋은 일? 엄마, 아빠가 좋아할 만한! 공개되면 아마 깜짝 놀랄 거예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