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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기후 위기에 맞서는 방법? 신지영 연구위원을 만나다

한겨울에 벚꽃이 피고, 잦은 호우로 딸기가 금값이 됐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2009년부터 국내 기후위기 적응계획 수립을 이끈 기후위기 적응 전문가, 한국환경연구원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 신지영 연구위원과의 대화.

프로필 by COSMOPOLITAN 2024.01.13
 
현재 시행 중인 환경 정책 중 다수를 한국환경연구원(이하 ‘KEI’)에서 만들고 제안했다고 들었어요. 어떤 곳인가요?
KEI는 국내 유일의 환경 분야 국책 연구 기관이에요. 문제나 현상의 원인을 과학적인 실험결과와 자료를 통해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찾거나 앞으로 어떤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제시합니다.
소속되어 있는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이하 ‘적응센터’)에서는 어떤 연구를 하나요?
기후변화로 인해 일어났거나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의 영향을 예측하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만드는 연구를 합니다. 다만 기후위기 ‘대응’은 크게 2가지 방식인 걸 먼저 이해해야 해요. 기후변화의 원인인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과 기후변화의 영향에 ‘적응’하는 것이죠. 적응센터는 연구뿐만 아니라 정책, 사업까지 업무의 폭이 넓어요. 정부 부처, 특히 환경부와 긴밀하게 협업해 ‘국가 기후위기 적응 대책 수립’을 직접적으로 지원하고요.
 
연구 결과가 정책에 반영된 사례를 들으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먼저 방금 언급한 ‘국가 기후위기 적응 대책’이 있어요. 적응센터와 환경부를 주축으로 5년동안 우리나라가 기후위기 적응을 위해 해야 할 일을 계획합니다. 2010년부터 시작해 지금은 3차 국가 기후위기 적응 대책 기간이고요. 그런데 여느 계획이 그렇듯, 계획은 잘 세워요. 더 중요한 건 그 계획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행 점검 프로세스를 만들었어요. 매년 과제를 정해 평가하고, 목표했던 것이 적절한지 점검했죠. 그게 2022년 3월, 탄소중립 기본법에 ‘이행을 점검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배경입니다. 또 ‘공공기관 적응 대책 수립’도 의무화했습니다. 영국처럼전력공사, 수자원공사 등 사회 기반 시설을 담당하는 공공기관들로 하여금 적응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 점검도 하게 만들었어요. 담당자들 교육도 적응센터에서 했고요. 8년 정도 했더니 그 내용도 탄소중립 기본법에 포함됐습니다. 더불어 ‘환경영향평가 제도’도 시작했어요. 이를테면 도로를 내야 해서 산 하나를 깎을 때 어느 쪽으로 깎는 게 나은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계획을 유도하는 제도인데요, 이 제도의 필요성, 외국 사례, 제도화 하는 법을 연구했습니다. 현재는 시행 중이고요.
 
기후변화로 인해 일어났거나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의 영향은 어떤 데이터로 어떻게 예측이 되는 건가요?
먼저 과거의 데이터를 가지고 경향성을 바탕으로 모델들을 만들어요. 그 모델들에 미래의 기후시나리오를 반영한 값을 넣어서 영향을 예측합니다. 이때 기후시나리오는 IPCC(기후변화의 위험을 평가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세계기상기구와 유엔환경계획이 공동으로 설립한 유엔 산하 국제 협의체)에서 설정한 시나리오를 사용합니다. SSP(공통사회경제경로 시나리오)라고 하는데, 5개의 시나리오가 있어요. 지금과 같은 속도로 비슷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회인 경우, 그보다는 사람들이 노력하고 기술이 발전해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더 적은 사회인 경우, 기술이 엄청 발전해서 획기적으로 탄소 배출을 거의 하지 않는 사회인 경우, 이런 식으로요.
 
그럼 5개 유형의 미래를 예측하는 건가요?
맞아요. 그리고 그 값들의 평균값을 보는 거죠. 그런데 사실 각각의 결과값을 내는 데도 굉장한 시간과 데이터가 필요해서 쉽지 않아요.
 
수학적으로 도 값이 딱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죠. 결국 ‘시나리오’니까요. 기상예보처럼 당장 며칠 내에 확인할 수 없고 30년 평균값을 얘기하는 거거든요. 그럼에도 의의가 있는 것은, 뭔가를 예측하고 시도함에 있어 필수인 과정이기 때문이에요. 어떤 영향이 있을지 한 번쯤 점검하고 검토해본다는 게 유의미하죠. 예측 결과의 정확성을 높이는 노력도 꾸준히 하고요.
 
지금 기후위기 대응 준비가 잘됐는지 부족한지 판단하는 기준은 어떻게 세울 수 있나요?
기후 대응엔 ‘감축’과 ‘적응’이 있다고 한 거 기억하세요? ‘감축’은 비교적 쉬워요.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 대기중 온실가스 농도, 줄여야 하는 배출량 등을 수치화할 수있으니까요. 어느 시점 대비, 언제까지, 얼마나 줄여야 한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죠. 반대로 ‘적응’은 고려해야 하는 게 너무 많아요. 예를 들어 1℃가 올라가면 구상나무가 몇 그루씩 죽는대요. 그런데 그건 기온이 오르니 토양, 강수량, 일조량, 공존하는 곤충들까지 다 변하기 때문이 거든요. 여러 요인이 있는데 그걸 다 분석하려면 너무 복잡한 거예요. 구상나무가 얼마나 사라지지 않게 하고 싶은지, 어느 시점을 대비해서 말하는 건지,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죠. 하지만 그럼에도 대응 준비가 모자란지 충분한지 판단할 기준은 필요해서, 이와 관련한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기준이 세워질 때까진 아까 말씀드린 이행 점검 같은 방식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겠죠. 무언갈 하면 ‘적응’에 도움이 되니 이거라도 해보자며 목표를 제시하는 것, 그 목표의 달성 여부를 체크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요.
 
기후변화의 위험도가 빠르게 높아지는 와중에 대응책을 연구해야 하니 어려울 것 같아요. 긍정적인 시선을 놓지 말아야 준비할 마음도 생길 것 같은데, 위원님은 어디서 희망을 찾나요?
애초에 대응책을 연구할 때 ‘이게 될까? 안 될까?’ 같은 생각을 잘하지 않아요. 필요한 내용이고 나에게 주어진 테마니까, 무조건 된다고, 어떻게든 답을 내겠다 생각하고 일해요. 어차피 한번 내놓는 답이 완벽한 정답도 아니에요. 재확인과 보충의 연속이죠.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는 데만 집중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한다는 말로 들리네요. 기후변화로 인한 최악의 상황을 그려본다면 어떤 모습이겠냐고 질문하려 했는데.(웃음)
전 굉장히 현실적인 인간이에요.(웃음) MBTI 유형도 극 ST고, 최악의 상황 같은 건 상상해보지 않았어요. 대신 5~6년 전만 해도 <투모로우> 같은 기후 재난 영화를 보면 감독의 상상력이 참 풍부하다며 감탄했거든요? ‘설마 저렇게까지 되겠어?’하고요. 근데 요즘엔 부쩍 ‘저렇게까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영향을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을 텐데도 초연하네요.
연구원들은 어떤 현상을 발견했을 때 그 현상의 결과에 더 집중하거든요. 먼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는 건 또 다른 영역이에요.
 
기후위기 적응 전문가로서, 2023년 한 해 동안 기억에 남는 연구가 있었나요?
연구는 아니지만, 독일이 2023년 7월에 적응법을 통과시킨 게 기억에 남습니다. 기후변화의 영향과 취약성을 평가하고, 주기적으로 그 결과를 공개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대책을 만들겠다는 내용인데요, 그동안 ‘감축’에 비해 ‘적응’은 중요시되지 않았는데 그런 법안이 통과됐다는 게 일단 고무적이었어요. 그리고 함께 공개된 보고서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해수면 변화는 어떤 영향을 줄까? 건물과 문화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의 건강 문제는? 생태계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 다른 영역에서 연구하고 있었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모든 내용을 집대성하고, 하나의 보고서로 만드는 작업을 법에 근거해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의지가 보였어요. 공통된 기준으로 다양한 분야로부터 어떠한 결론을 뽑아낸 종합 보고서를 만드는 것. 아직 우리나라는 완벽하게는 못 하고 있는데, 우리 KEI 적응센터에서 해야죠.
 
연구위원님이 참여한 30여 건의 연구 중 기억에 남는 걸 고르자면요?
‘제2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 수립’ 연구를 하면서 국가 정책 수립의 처음부터 끝까지 깊게 관여했는데요, 굉장히 많은 지식과 연구 방법을 터득한 경험이었습니다.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고요. 그리고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환경정책연구’에 정말 재미있게 참여한 기억이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준 연구였고, 제 인생에 ‘형평성’이라는 키워드가 생겼죠. 형평성이라는 건, 일정 수준의 삶을 위한 기준선을 누구나 맞출 수 있게 해주는 거거든요. 같이 살아가는 사회인데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다같이 품고 가겠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렇지 않아도 기후위기 취약계층에 대해 질문하려고 했어요. 기후위기가 사회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치듯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잖아요.
기후위기 취약계층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취약계층과는 조금 달라요. 2022년에 폭우로 강남에 홍수가 나서 포르쉐며 페라리며 비싼 외제차들도 다 떠내려 갔잖아요. 기후위기 취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라서 취약계층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에게 어떤 지원을 해줘야 하느냐고 물으면 그때부턴 환경정의와 사회정의, 복지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고민해봐야 합니다. 기후위기 취약계층을 정의하고 그들을 위해 어떤 정책을 개발 할 것인지는 환경부에서 준비 중이에요. 결론이 나면 각 소관 부처로 협조 요청을 하겠죠. 사과 농부가 기후변화 때문에 더 이상 같은 품종의 사과를 키울 수 없다면 새로운 품종을 키울 수 있게 농림부에 협조 요청을 하고, 집의 단열이 안 돼 추위에 취약한 사람이 있다면 주택 관련 지원을 해달라고 행안부 쪽에 요청하는 식으로요.
 
적응센터는 가닥만 잡아주는 느낌이군요.
맞아요. 그런데 그 가닥을 잡아주는 역할이 아주 중요하더라고요.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고 생각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거요. 사람들은 원래 하던 거에 익숙하니까요.
 
연구위원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제대로 ‘적응’하려면 세상을 보는 관점까지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응센터에서 가닥을 잡고, 국가적으로 계획을 세워도 결국 사회 구성원들이 따라줘야 이행되는 거잖아요. 이행이 돼야 점검도 가능하고, 점검 결과가 쌓여야 더 정확하고 바람직한 연구도 가능해지고요. 사람들을 각성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후 리터러시’를 높여야 해요. 기후변화 현상을 읽어내는 능력을 기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리터러시와는 그 방법이 달라야 할 것 같아요. 기후가 왜 변하고 있고, 변하는 게 왜 문제인지, 결론적으로 뭘 해야 하는지를 단편적으로는 알 수 있지만 전체적인 메커니즘을 머릿속에 넣는 게 쉽지 않거든요. 제 생각엔 ‘네 생활이 바뀔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게 제일 효과적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해안 도시의 공무원들은 태풍이 지나간 후 유출된 선박 기름을 닦으러 해변에 나가야 한대요. 예전엔 어쩌다 가끔 태풍이 왔지만 이젠 기후변화 때문에 잦아졌잖아요. 3개월에 한 번씩 돌 닦으러 나가던 걸 이젠 일주일에 한 번 혹은 주말마다, 어쩌면 사흘에 한 번씩 가서 닦아야 할 수도 있는 거예요. 우리 일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게 와닿죠? 다양한 형태로 뭔가를 내보내고 발설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어떤 분은 그레타 툰베리가 도널드 트럼프를 째려보며 말하는 뉴스를 본 게 시작이었대요. ‘저 조그만 여자애는 뭔데 미국 대통령한테 저러고 있어?’ 하고 그냥 궁금해서 찾아본 거죠. 그러다 기후위기에 대해 알게 됐고, 그러다 우리나라에도 기후소송을 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러다 NGO에서 그들을 지원하는 역할까지 하게 됐대요. 이처럼 기후위기가 결국 내 문제라는 걸 알게 되는 건 정말 우연한 계기더라고요.
 
기후위기 적응 그림 공모전을 개최했던 것도 그런 이유겠군요.
맞아요. 다양한 형태로 정보를 노출시키자는 의도였어요. 그림을 그리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잖습니까? 특히 아동부 참가자는 보호자와 어떤 얘기를 나눌지, 훗날 그 순간의 기억이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거예요.
 
최근 젊은 층 과의 만남도 잦았어요. ‘청년아고라 :기후위기,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 토론자로 참석했고, ‘미래 세대와 함께하는 기후위기 정책 토론회’에서 특강도 했죠.
다양한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배울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는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그만큼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반증이기도 해서 마냥 좋았다고는 못 하겠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걸 보고 많이 배우기도 했습니다.
 
지구가 망할 것 같으니 그냥 막 살겠다며 허무주의에 빠지는 젊은이도 많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한마디한다면?
‘어떻게 살지 네 가치관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라.’ 삶을 어떻게 살지는 본인 선택이에요. 그 선택이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가 핵심이죠. 나 자신도 중요하지만 그 방향이 내 이웃, 내 가정, 내 친구, 더 나아가 내가 사는 사회, 국가, 세계까지 뻗어갈 수 있는 사람과 그냥 혼자 편하게 사는 사람의 삶은 아주 다를 겁니다. 그런데 ‘허무하니까 아무것도 안 할래, 막 살아!’라는 태도가 분명히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스스로도 알 거예요. 그건 본인한테도 도움이 안 돼요. 전 그들이 그 사실을 알 거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쿨하면서도 합리적인 말이네요.
허무주의에 빠지는 건 내 삶의 가치,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앞만 보고 달리다 ‘난 왜 이렇게 살지? 너무 힘들어!’ 같은 생각에 종종 시달리잖아요. 저도 그런 적 있는데 이유를 짚어보니, 세상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만 대충 했더라고요. 정확히 내 가치관이 어떤 건지, 그 가치관과 이 일의 의미가 어떻게 연관되는지 정립하지 않고 말이죠. 어떤 일을 하는 이유가 나의 가치관과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비단 일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에요. ‘지금 내 행동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 있다면 어떤 의미가 있나? 없다면 왜 없는 건가?’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 스스로 잘 서 있을 수 있어요.
 
이 인터뷰를 읽고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사람도 있겠죠. 기존의 삶에 ‘친환경’ 키워드를 추가하고픈 사람에게도 한마디한다면?
나와 환경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 또한 세상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우선은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텀블러 사용하기, 컵에 물 받아서 양치하기, 겨울에 내복 입기, 에어컨 설정 온도 높이기, 샤워 빨리하기, 잠자리에 일찍 들기, 음식 남기지 않기 등 우리가 부모님 세대 혹은 학교에서 배운 것들부터 같이 하나하나 실천해보면 좋겠습니다.

Credit

  • Assistant editor 박한나
  • photo by 이우전
  • art designer 김지원
  •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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