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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랑의 마스터 퍼퓨머, 티에리 바세가 한국에 방문했다고?

티에리 바세는 겔랑의 마스터 퍼퓨머 그리고 향기의 창조자다. 14년 만에 방한한 소감부터 그의 어린 시절과 조향 철학까지 들어봤다.

프로필 by COSMOPOLITAN 2023.11.12
 
한국에서 보게 돼 영광이에요. 오랜만에 서울을 방문한 소감은 어떤가요?
이번 방문은 무척이나 특별합니다. 올해 가장 좋은 시기에 방문한 것 같아요. 오랜만에 방문해서 그런지 공항에서부터 많은 변화를 느꼈죠. 하늘에 닿을 듯한 거대한 다리와 높은 건물들이 얼마나 역동적인지. 막상 서울에 도착해서는 호텔도 그렇고 산 배경과 함께 이 궁의 전망까지도 제가 기억하던 대로라 친숙하고 기쁜 마음이 들었어요. 우리가 인터뷰 중인 이 한옥에 도착했을 때 저는 이 집을 사고 싶을 만큼 이 공간에 매료됐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시아를 하나로 묶어 보려는 경향이 있지만, 여러 아시아 지역을 여행해보면 문화적으로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어요. 문화와 언어, 기후가 달라 각각이 특별해요. 이 공간에서는 평화의 미학이 느껴진달까요.
한국을 향수로 표현한다면 어떤 향이 어울릴까요?
한번 생각해봐야겠네요.(웃음) 한국은 모든 것이 아주 섬세하면서도 가벼운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향이 느껴지지 않기도 해요.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주의를 기울이면 작고 미묘한 특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질문에 막연하게 답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향수를 만드는 일은 언어와 같아 경험과 교감을 향기의 이야기로 풀어내야 합니다. 향수 원재료는 단어와 비슷해요. 무언가를 표현하려면 단어로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들이 하나둘씩 합쳐지면서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되는데, 당장은 감나무와 감잎 차가 생각납니다.
 
겔랑의 마스터 조향사로서 조향 철학이 궁금해요. 향수를 만들 때 어떤 지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해석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향기란 감정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지점입니다. 예를 들어 장미는 성숙하면서도 순수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죠. 제게 불가리아에서 온 로즈 오일은 과일 향이 나고 천진난만하게 느껴지지만 같은 향이라도 누군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언어로 향을 어떻게 해석할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겔랑 라르 & 라 마티에르 컬렉션.

겔랑 라르 & 라 마티에르 컬렉션.

그렇다면 겔랑 라르 & 라 마티에르 컬렉션의 신작 ‘토바코 허니’에 대한 당신의 해석이 궁금해요.
향수를 출시한 이상 향기는 대중을 감동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더 이상 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여러분의 것이죠. 토바코 허니에 대한 제 의견과 여러분의 생각은 다를 수 있고, 그래서 향수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제 해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완전히 모르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향수는 당신의 것이어야 해요.
 
어릴 때 꿈은 요리사였다고 들었어요.
제가 게을렀기 때문에 요리사가 되는 것은 너무 어려운 과정이었어요.(웃음) 청소년기에 호텔 주방에서 짧게나마 인턴십을 경험했는데, 저 자신을 위해 요리하는 것과 100명의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야 했죠. 저는 민감한 꽃 같은 사람이라 그걸 못 견뎠지만 요리하는 건 굉장히 좋아했어요. 음식을 만들며 맛을 보고, 소금을 더 넣거나 후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과정이 지금 하는 일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장 폴 겔랑도 훌륭한 요리사였고, 많은 조향사가 요리하는 과정을 즐기죠.
 
조향사라는 직업을 택한 계기가 궁금해요.
정말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허벌리스트로 수습 기간을 거친 후 스위스 제네바의 향수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어린 나이에 향수 만드는 일이 꽤나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겔랑에 있게 됐죠.
 
행사가 이루어진 북촌 ‘이음 더 플레이스’ 전경.

행사가 이루어진 북촌 ‘이음 더 플레이스’ 전경.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노스탤지어가 담긴 향이 있을까요?
살구는 향이 강한 과일이 아닌데, 오븐이나 로즈메리가 든 팬에 굽기 시작하면 꽤나 진한 향을 풍기죠. 구운 살구 향은 저를 50년 전 어린 시절의 행복한 순간으로 돌려놓습니다. 향기에는 이렇게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조향에 대한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는지 궁금합니다.
모든 순간 아닐까요? 풍경일 수도 있고, 맛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순간을 이해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현실에서 도피하지만 그 순간을 진정으로 느끼고 호기심을 가져야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두바이에서 하얀 턱수염을 예쁘게 다듬은 나이 든 신사분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는 제게 자신의 일상은 물론 향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중동 남자에게 향기를 맡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주었죠. 파리에 돌아와서 그 대화가 생생히 떠올랐고, 저는 그 추억의 향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영감이 될 수 있어요.
 
‘티에리 바세’를 대표하는 향수가 있다면 어떤 향수일까요?
1965년의 장 폴 겔랑이 만든 아비 루즈가 아닐까요? 보다시피, 저는 언제나 하얀 셔츠에 진한 파란색 슈트를 입는 사람입니다. 향수 또한 13살부터 62살이 된 지금까지 근 50년 동안 같은 향수를 쓰고 있죠. 13살 때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수염이 나지 않아 괴롭힘을 당했는데, 그 나이 때 아이들은 다른 의미로 잔인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낸 방법이 엄마 친구에게서 나는 향수를 뿌리는 거였습니다. 이 향은 제게 남자다움을 선물했고 행운의 부적이 됐죠.
 
티에리 바세와 함께한 조향 마스터 클래스.

티에리 바세와 함께한 조향 마스터 클래스.

당신이 정의하는 겔랑 라르 & 라 마티에르는 어떤 컬렉션인가요? 무엇이 이 컬렉션을 특별하게 만드는지 궁금해요.
1828년부터 예술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열정을 바탕으로 다양한 향수를 창조해온 겔랑 하우스는 겔랑 라르 & 라 마티에르 컬렉션을 통해 단순한 향이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컬렉션은 엄선된 원료에 대한 겔랑만의 대담한 해석을 담아 주인공이 되는 하나 또는 2가지 원료를 중심으로 무대를 올린다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는데요, 희귀한 원료를 사용한다는 점이 이 컬렉션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예술과 향수는 연관성을 가질까요?
예술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일상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찾기만 하면 되는 거죠. 향수는 향이라는 예술적 언어로 ‘나’를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최근 빠져 있는 향조가 궁금합니다.
우드. 어떤 나무를 사용하는지, 어느 지역에서 자라나는지에 따라 향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가공 방법에 따라서도 다채로운 향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매력적인 원료라고 생각합니다.
 
겔랑은 뷰티의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 브랜드입니다. 이러한 브랜드의 정신이 라르 & 라 마티에르 컬렉션의 원료 선택이나 패키징 등에도 담겨 있나요?
그렇습니다. 원료를 조달하는 방식은 항상 윤리적으로 진행되며, 2019년부터 UEBT(연합 생물 다양성 전문 기관)의 회원이 돼 우리의 원료 조달 경로의 지속 가능성 상태를 측정하는 데 도움을 받고, 필요한 경우 개선 계획을 수립합니다. 앞으로는 아쿠아 알레고리아와 같이 리필 가능하도록 병을 제작할 거고 재활용 유리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선보일 작업에 대해 살짝 귀띔한다면?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꾸준히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Credit

  • editor 조해리
  • photo by guerlain
  • art designer 김지원
  •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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