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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서의 비밀

“지금 무슨 생각해요?” 물끄러미 카메라 너머를 보는 전종서에게 묻고 싶은 것.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답한다. 복수하려는 자, 강도, 초능력자, 살인마, 그리고 비밀스러운 배우 전종서에게 다가갔다.

프로필 by 이예지 2023.09.25
 
오간자 플리 드레스 3백30만원 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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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질문을 이렇게 시작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함께 작업한 감독들은 전종서가 어떤 배우라고 말하나요?
알 수 없는 배우. “무슨 생각하냐”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 말씀을 안 하셨던 감독님이 없으셨어요. 무슨 생각하면서 연기하냐고 물으시면, 저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웃음) 
 
오늘 촬영한 포토그래퍼도 그랬거든요. 전종서 씨를 카메라에 담을 때 보면 무슨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제가 그래 보이나 봐요. 뭔가 생각이 있어 보이는. 하지만 별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 점이 전종서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수극인 넷플릭스 영화 <발레리나>에서는 여태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얼굴을 볼 수 있겠죠?
맞아요. ‘전종서가 또 저런 걸 한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다르게 연기했습니다. 액션도 중요하지만 ‘옥주’가 왜 복수를 하는지 감정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거든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친구를 잃은 상실감과 복수심을 제대로 보여주려고 했어요.
 
소중한 것을 잃어본 적 있어요?
없어요.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 비극적인 사건이 많잖아요. 사회적 공분에 감정이입하면서 시선을 정확하게 가져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옥주’와 제가 닮은 점을 찾았어요. 저는 몸을 사리지 않고, 머리보다 몸이 앞서죠. 나라도 가장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선 ‘옥주’처럼 행동하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으로 연기했습니다.
 
경호원 출신인 ‘옥주’는 호신술, 검술, 총기, 바이크까지 몸으로 하는 것은 못 하는 것이 없다는 설정이죠. 액션 연기를 위해 어떤 공력을 쏟아냈는지도 궁금한데요.
다수의 남자를 대상으로 싸우는 작품이기에 제가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들과 차별화하는 전략으로 속도와 유연성을 잡았고, 지능적인 움직임을 많이 넣어 액션 합을 짰습니다. 몸 쓰는 걸 좋아해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무술팀분들과 치고받고 같이 땀을 내니 동지애도 생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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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친구를 연기하는 박유림 그리고 복수의 대상을 연기하는 김지훈과의 합은 어땠나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 한국 배우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박유림 배우를 유심히 봤는데, 엄청 신선했어요. 깨끗하고 자연스러웠죠. 기대되는 만남이었고, 실제로도 그랬어요. 박유림 배우님이 연기한 ‘민희’는 ‘옥주’에게 심장 같은 존재, 나아가 이 영화의 심장 같은 역할이거든요. 그 역할을 정말 배우님 본연의 모습처럼 잘해주셨어요. 김지훈 오빠가 연기한 ‘최프로’는 섹시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찌질’한 면을 부각시켜 연기하시더라고요. 의외여서 재미있어요. 영화 <콜>의 이충현 감독님, 조영직 촬영감독님과 함께 하는 두 번째 작품이라 편안하기도 했고요.
 
영화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의 ‘모나’, <콜>의 ‘영숙’, <버닝>의 ‘해미’ 등 야성적이고 종잡을 수 없는 뉴 타입의 여성들을 연기해왔어요. 전종서 아니면 할 수 없는 인물들이었죠. 실제 전종서의 연기 스타일도 직관적이라 들었어요.
맞아요. 저는 직감적인 사람이에요. 늘 제 감을 믿고, 틀리든 맞든 그 감에 따라 살죠. 그걸 표현해내는 걸 직업으로 삼고 있으니 좋은 일이죠. 영화나 드라마라는 매체가 아니면 이런 감각을 어디서 허용받을 수 있겠어요. 전부 그때그때의 제 모습이라, 지금 이 세 작품을 다시 찍으라고 하면 그 모습 그대로 연기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날 촬영 현장에서 나오는 감각들이 있거든요. 장소, 사람들, 카메라, 긴장감, 제 기분과 상대 배우의 기분,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시시각각 달라지죠. 실제로 저는 이전 테이크에서 제가 어떤 연기를 했는지 기억을 잘 못해요. 감독님들이 다양하게 골라 쓰시기 좋죠.(웃음)
 
드레스 4백35만원, 브라톱 가격미정, 롱 장갑 가격미정 모두 돌체앤가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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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작품 선택을 보면 연기할 때 몸이 힘든 것쯤은, 예뻐 보이지 않거나 전형성에서 벗어나는 것쯤은 아랑곳 않고 스스로를 불태우는 스타일일 것 같아요.
저는 남들이 안 해봤던 걸 해보고 싶어요. 연기를 하는 데 두려움은 없어요.
 
전종서는 어떤 사람이에요?
저란 사람은 업앤다운도 변덕도 심하고 뭔가에 금방 빠져 버리기도 하고, 싫증도 잘 내요. 가지고 있던 걸 다 버리기도 하고 새로 다 사기도 해요. 그래서인지 주변에는 안정적인 사람들을 둬요. 휴대폰을 10년 쓴 사람들, 차를 10년 탄 사람들, 가구 배치를 바꾸지 않는 사람들. 연기할 때도 그렇죠. <버닝>과 <콜>을 찍을 때는 정말 과열된 상태였어요. 밤에 잠도 못 자 늘 깨어 있고 거리를 마구 내달리고 싶었죠. 너무 오랜 시간 연기를 하고 싶어 했고, 연기를 하면서도 더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해미’와 ‘영숙’에게 저를 다 쏟아부었죠.  
 
데뷔작인 <버닝>으로 칸영화제를 경험했고,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은 베니스 국제영화제를 갔죠. <몸값>도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경쟁 부문에 진출했어요. 동년배의 어떤 배우보다 ‘영화적인’ 커리어를 쌓는 배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시대에 시네마란 뭘까요?
극장가가 침체된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극장을 찾게 만드는 영화가 있잖아요. OTT 시리즈도 영화의 범주를 확장시키고 있고요. 어떤 형태로든 전 이야기를 사랑해요. 시네마에 대한 저의 사랑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작품 선택의 기준은 뭔가요?
재미요.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고 궁금하게 만드는 힘. 저는 아주 금방 결정해요. 하루도 안 걸리죠. 시나리오를 보고 재미있으면 하고 아니면 안 해요. 시나리오가 재미없으면 감독이, 배우가, 노래가, 모든 요소가 노력해도 결국엔 안 되는 것 같아요.
 
재미가 가장 중요하군요.
아무리 친한 친구도 유머 코드가 안 맞으면 문자하기 싫잖아요. 남자 친구가 날 웃게 해주지 않으면 심심하잖아요. 전 무엇이든지 유머 감각이 있는 게 좋아요. 산다는 건 아주 가끔 즐거운 일이죠. 그러니까 그 외의 순간들을 재미있게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매 순간 너무 진지한 것보다는. 요즘 제가 재미를 느끼는 기준에도 변화가 있었고요.
 
셔츠 1백10만원대 올세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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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변화요?
최근에 어떤 영화를 봤는데, 작품은 좋았어요. 그런데 돈 주고 불행을 사서 보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어, 내가 왜 이걸 이렇게 받아들이지?’ 싶었죠. 그러다가 느꼈어요. ‘아, 나 심각한 거 보기 싫구나. 영화관에서까지 스트레스받기보단 잠깐 즐기고 싶은 거구나.’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느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이어졌죠. 제 생각엔 사회가 각박해지다 보니 영화를 보고 울거나 힘들거나 시달리기보단 희망적인 걸 보고 싶은 거예요. 최근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인 <웨딩 임파서블>을 찍으면서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앞으로도 사람들이 ‘오늘 너무 힘들었는데 그거 봐야지’ 생각하게 되는 작품을 더 찍고 싶어요. 스스로 이런 변화가 낯설어 엊그제 장윤주 배우님을 만나 얘기했더니, 제 나이가 그럴 때래요. 다 똑같은데 제가 변한 거라고. 누구에게나 자신이 생각했던 게 다 바뀌는 시기가 온다고.
 
무남독녀로 자란 어린 시절엔 어떤 아이였어요?
내성적인 아이. 말도 늦게 텄고, 어디 나가서 뭐 하라고 하면 쑥스러워 혼자 우는 그런 애요. 처음 연기하고 싶다고 했을 땐 가족들이 “네 성격에 절대 못 한다”라고 했어요.
 
왜 연기가 하고 싶었나요?
어릴 때부터 항상 TV를 봤거든요.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이야기가 좋았죠. 배우가 뭔지 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스크린 속에서 뭔가를 해보고 싶다고 느꼈어요. 꿈 같고 별 같은 일로 다가왔죠. 혼자 조용히 은밀하게 키워왔던 꿈이었어요. 설탕 뿌린 직업처럼 달콤하고 빛나 보였죠. 꿈을 꿔본 사람들은 이 심정이 뭔지 다 알 거라고 생각해요.
 
스물넷에 데뷔하기 전까지의 전종서가 궁금해요.
데뷔 전의 저는 철이 없었어요. 예쁜 거, 휘황찬란한 거, 비싼 거, 좋은 곳, 지금은 관심 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았죠. 연기를 시작하고부터는 바뀌었어요. 진짜 더 재미있고 좋은 걸 찾았거든요. 지금 아니면 못 하는 이 작품들이요.
 
올인원 슈트 4백80만원대, 셔츠 1백10만원대, 타이 80만원대 모두 알렉산더 맥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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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배우가 있어요?
어제 밤새 티빙으로 미드 <라이어니스: 특수 작전팀>을 보고 왔거든요. 니콜 키드먼과 조 샐다나 연기가 미쳤어요. 테러리스트를 제거하기 위해 조직 내부에 침투해야 하는 CIA팀의 이야기인데요, 여성 배우들이 잘 하지 않던 역할을 맡아 정말 멋지게 해내요. 특히 조 샐다나는 ‘저렇게 연기를 하고 어떻게 집에 돌아가서 잠들지?’ 싶을 만큼 무시무시하죠. 저요? 저도 촬영하고 돌아오면 각성 상태라 잠을 못 자요. 다 끝나고 몰아서 자죠.
 
단 한 번 예능에 출연한 것을 제외하고는 오롯이 작품으로 자신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유가 있나요?
예능엔 자신도 관심도 없어서요. 저는 늘 “그냥 작품만 하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서 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려 해요.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할 생각이 있어요.
 
무엇이 전종서를 전종서이게끔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나라고 느낄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해요.  
 
드레스, 슈즈 모두 가격미정 페라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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줏대가 확실한 편인가요?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지’라는 생각은 안 해요. 사람들이 좋아해도 내가 재미를 못 느끼면 소용없거든요.
 
대중이 전종서에 대해 오해하거나 편견을 가진 게 있다면?
하하. 저처럼 대중 친화적이지 않은 배우가 있을까요? 그래서 아마 그런 것도 없을 거예요. 다만 거리감이 있다면 그건 작품으로 풀어야죠. 인스타그램은 열심히 합니다.(웃음)  
 
솔직한가요?
전 제가 되게 솔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주변 사람들은 비밀이 많다고들 하더라고요. 얼마 전에도 오래된 친구에게 “너처럼 비밀 많은 애 못 봤어”라는 말을 들었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제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남들에게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근데 에디터님은 솔직하세요?  
 
드레스 2천1백28만원 베르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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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욕망에는 솔직합니다.(웃음)
아, 욕망! 그런 의미에서라면 저도 솔직해요. 하고 싶은 것도, 가고자 하는 것도 분명하죠. 단지 비밀이 많을 뿐.
 
저는 모든 채널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그런 아우라를 간직한 것이 배우답고 멋있다고 느껴요. 제가 시네마 세대여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시네마 세대라는 단어가 나왔네요. 하하하. 하루 중 어떤 시간을 좋아해요?  
밤. 밤은 저에게 자유로운 시간이에요. 깨어 있고 싶을 때까지 깨어 있고, 보고 싶은 거 다 보고, 전화하고 싶은 사람에게 다 전화하고 싶어요. 내일 아침 일찍 나가야 한다고 하면 그 시간을 침해받는 기분이죠.
 
전종서에게 두려움은 어떤 건가요?
무료한 것. <발레리나> 이후의 작품인 <웨딩 임파서블>과 <우씨왕후>도 새로운 전종서의 궤적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회사가 바뀌었는데, 지금 회사는 좀 더 대중과 호흡하길 권하더라고요. 처음엔 ‘왜?’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왜 해?’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결국 대중이 없으면 영화도 없는 거더라고요. 내가 혼자 살 수 없는 사람이듯이. 그래서 ‘대중이 좋아하는 게 뭐지?’를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드레스 3백38만원 블루마린. 메시 롱 장갑, 스타킹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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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멋지다고 생각하나요?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 것. 그런데 그게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 정말 묵 같네, 맹맛이네 싶으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있거든요? 저는 그런 게 멋있어요.  
 
멋없다고 생각하는 건요?
너무 많이 걱정하는 사람. 확신이 없고 의심 많고 걱정하는 사람보단 자신 있게 하는 사람이 근사하죠.  
 
당신은 무엇을 믿나요?
저 사람을 잘 믿어요. 그래서 좋은 일도 좋지 않은 일도 잘 일어나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보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상처받을지라도 믿는 편이 더 좋은 일이 많다고 말하고 싶어요.  
 
비밀 많은 전종서의 비밀 하나만 알려줄 수 있어요?
음, 저는 집에 아이폰이 7개 있습니다. 크기도 색깔도 다른 걸로요!   
 
 

Credit

  • Feature Director 이예지
  • Photographer 윤송이
  • Stylist 이보람
  • Hair 수화
  • Makeup 무진
  • Assistant 박한나
  • Art designer 장석영
  • Digital designer 민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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