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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 덕후가 '투바투'의 스타일 디렉터 된 썰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스타일 디렉팅을 담당하는 허지인은 업계에서 ‘탐미주의자’라고 암암리에 퍼져 있다. 친구들과 함께 여성 아티스트를 집중 조명하는 잡지를 만들고, 파티에서 DJ로 활약하며,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던 ‘덕후’ 소녀가 아이돌 아티스트의 스타일 디렉터가 됐다. 이제 막 메인스트림에서 자신의 취향을 맘껏 펼치는 그에게 아이돌 스타일 디렉팅이란, 사람들에게서 탐미주의적 본성을 이끌어내는 것.

프로필 by COSMOPOLITAN 2022.11.15
 

TXT 스타일 디렉터 허지인

여성 아티스트 전문 잡지 <헤비매거진>과 여성 DJ 크루 ‘바주카포’의 이력은 지금 그가 TXT의 비주얼을 고민함에 있어 진한 흔적을 남겼다. 그는 TXT를 전무후무한 젠더리스 콘셉트의 아이돌로 가꾸어나가는 중.
비주얼 작업을 하는 사람은 크게 둘로 나뉘는 것 같다. 자기 역시 하나의 아트 피스처럼 꾸미는 사람과 무채색 위주로 입고 다니는 사람들. 당신은 전자인가?
글쎄, 나는 단순하게 옷 입는 걸 좋아하고, 옷 자체를 좋아한다. 외모에 관심도 많고.
 
옷을 콘셉추얼하게 입더라. 그게 재미있던데.
그런 편이다.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나는 이미 내게 주어진 기회를 놓쳐버렸다고 생각한다.
 
어떤 기회를 말하는 건가?
한 번의 삶. 사람마다 단 한 번의 삶이 주어지지 않나. 내가 하는 일은 좋지만 외모와 육체를 망치면서 살고 있다.(웃음) 그래서 몸이든 마음이든 가꾸고 재정비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 있다. 다들 ‘리셋 증후군’에 시달리지 않나. 망했으니 처음부터 다시 살아보자는.
차라리 이럴 거면 아예 망쳐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사주를 보니 내가 <타임스> 표지를 장식할 팔자라더라.(웃음) 내가 명예욕이 진짜 많은 편인데, 사람이 영향력을 가져야 남을 도울 수 있지 않나. 그것 때문에 명예를 중시한다.
 
허지인x금시원, <Two Creatures> photography <헤비매거진>멤버인 사진가 금시원과 함께 두 여성을 모델로 한 작업.

허지인x금시원, <Two Creatures> photography <헤비매거진>멤버인 사진가 금시원과 함께 두 여성을 모델로 한 작업.

우선 당신은 빅히트뮤직에서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이하 ‘TXT’) 스타일 디렉터를 맡고 있으니 망하지는 않은 것 같다.(웃음) 특이한 점은, 빅히트뮤직에 비주얼 디렉터라는 포지션이 없다더라.
빅히트뮤직에서는 아티스트별로 크리에이티브실이 존재한다. 앨범이나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그 안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대주제를 정한다. 그 안에는 비주얼 크리에이티브 팀(VC)이 따로 있고, 거기에서 나는 스타일 디렉팅을 맡고 있다. 나는 VC팀의 제작과 기획 관련 운영자인 프로덕션 코디네이터와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다.
 
‘스타일 디렉팅’이라면 어느 부분까지 관여하는 건가?
앨범 재킷, 뮤직비디오 등의 전반적인 비주얼과 아티스트 개개인의 헤어·메이크업, 스타일링까지 비주얼에 관련한 거의 모든 지점에 관여한다.
 
캐릭터의 애티튜드 같은 것도?
촬영할 때 액팅 노트도 준비해 가고, 현장에서 세부적으로 직접 논의하기도 한다.
 
스타일리스트랑은 확실히  다른 일로 들린다.
스타일리스트는 우리의 기획을 직접 구현해주는 역할이다. 내가 빅히트뮤직에  입사하고 얼마 안 돼 스타일리스트가 바뀌었는데, 손발이 잘 맞아 거의 2년을 함께하고 있다.
 
하긴, 스타일리스트와의 호흡이 무척 중요할 것 같다.
조심스럽지만, 스타일리스트라고 해서 다 스타일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특히 TXT의 경우 콘셉트를 잘 이해하고 나와 소통하며 디테일한 부분을 잘 구현해줄 수 있는 분이어야 한다. 의상이나 소품, 헤어스타일로도 숨어 있는 메시지를 표현하고 싶어서다.
 
당신이 정의하는 스타일링이란 무엇인가?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지금 셔츠를 입고 있는데, 여기에 갑자기 트랙 팬츠를 입었을 때의 느낌, 내가 실제 매치한 것처럼 드레이퍼리한 스커트를 입었을 때의 느낌이 굉장히 다르잖나. 어느 것이 더 좋은 스타일링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무엇을 매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오는 것이다. 느낌이 팍 오는 그림이 있고, 그다지 감흥이 없는 그림이 있듯 스타일링도 그렇다.
 
<혼돈의 장: FREEZE> 앨범 콘셉트 포토, ‘boy’ 버전.

<혼돈의 장: FREEZE> 앨범 콘셉트 포토, ‘boy’ 버전.

지금까지 TXT 비주얼을 담당하면서 가장 열띤 반응을 이끌어낸 작업물은 무엇인가?
팬들의 반응이 가장 좋았던 건 정규 2집 <혼돈의 장: FREEZE> 앨범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중에서도 ‘월드’ 버전 콘셉트 포토가 특별하다. 내가 TXT 멤버들을 실제로 만나며 받은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려 했다. 그 전에도 TXT에 관심이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굉장히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소년들인데, 한편으로는 무력하고 쉽게 상처받을 수 있는 섬세한 감수성이 있는 듯했다. 그 이미지를 토대로 떠올린 단어가 ‘누더기 왕자’였다.
 
동화 속에 실제로 있는 캐릭터인가?
아니다. 그냥 생각난 거다. 분명 왕실의 복식, 제복 같은 걸 입었는데 너덜너덜하고 어딘가 다친 것 같은 사람. 그 콘셉트에서 시작해 사진도 찍고, 군무 의상의 방향성, 무대의상까지 연결해 TXT만의 이미지를 명확히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고 본다. 당시 신규 팬덤 유입이 굉장히 늘었다고 들었다.
 
제복과 누더기, 왕자와 잊힌 제국의 간극이 팬들의 마음을 흔들다 못해 붕괴했을 것 같다.(웃음)
실제 팬들도 ‘망국의 왕자들’이라고 표현하더라. 의상에 정말 공을 많이 들였다. 제복은 실제 해외에서 빈티지 무대의상을 공수해와 직접 리폼했다. 웨딩드레스를 찢어 연준 씨 몸에 둘러 옷을 만들어주기도 했고.
 
멤버 개인별로 개성이 다른데, 각자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도 생각하나?
사실 멤버 모두가 다 수용성이 좋은 편이다. TXT에서 내가 시도하는 비주얼 컨셉트나 스타일은 전형적인 이미지의 남자 아이돌 그룹이 소화하기 쉬운 스타일은 아니다. 애초에 기획단계에서 ‘젠더’는 제하고 생각하기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력 있는 비주얼을 기획하려 한다. 그걸 정말로 납득하고 체화해야 표현할 수 있으니까. 멤버들이 정말 잘 해주고 있다.
 
‘Frost’ official MV <혼돈의 장: FREEZE> 수록곡. 스타일 디렉팅을 맡았다.

‘Frost’ official MV <혼돈의 장: FREEZE> 수록곡. 스타일 디렉팅을 맡았다.

멤버들이 처음부터 잘 수용했던 건가?  아니면 맞춰가는 과정이 있었나?
‘우리는 전형적인 왕자를 보여주는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계속 전했고, 우리는 남들이 다 하는 걸 하는 팀이 아니라는 걸 피력했다. 멤버들이 사고가 유연한 편이다.  TXT가 정말 남다르다고 느낀 일이 있다. <뮤직뱅크>에서 상반기 결산 무대로 콘셉트를 제시해주고, 거기에 맞춰 분장하고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있다. 당시 <뮤직뱅크> 쪽에서 빌런이나 히어로 같은 콘셉트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나와 VC팀 멤버들이 할리퀸 콘셉트를 제안했는데 멤버들이 받아들였다. 게다가 TXT  멤버들은 정말 그 공연을 진심으로 즐겼다.
 
멤버들과 직접 대화하는 일이  많은가?
보통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브리핑을 하지만, 그 외에도 멤버별 의상을 피팅할 때, 헤어스타일을 바꿀 때 틈틈이 소통한다. ‘이 옷을 입을 땐 이런 표현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 등등의 메시지를 촘촘하게 전달한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기획한 콘셉트를 잘 이해하고 있다. 이런 팀을 만난 게 내 입장에서는 행운이다.
 
빅히트뮤직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당신을 <헤비매거진>의 편집장으로만 알았는데.
나는 내가 직접 크루를 모으고 기획하는 게 늘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회사 생활은 6~7개월 정도 해봤는데 힘들더라. 그 뒤에 스타일리스트로 제안이 많이 들어왔고, 비주얼 디렉팅 관련해 커미션 작업을 많이 하게 됐다. 동시에 <헤비매거진> 창간도 했고, 쉴 틈 없이 시간을 보내던 차에 업계에 있는 지인과 얘기를 나누다가 “빅히트에서 비주얼 쪽으로 인원을 뽑는다”라며 한번 지원해보라는 말을 들었다. 포트폴리오를 넣었는데, 다행히도 좋게 봐주셨다. 애초에 TXT와 잘 맞을 것 같았다고 하더라.
 
어떤 점이 그렇게 보인 걸까?
나는 언더그라운드에서 DJ로 활동했고, 서브컬처에 관심이 많다. 내가 경험한 것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내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직접 여쭌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그 점이 아닐까?
 
 
<혼돈의 장: FREEZE> 앨범 콘셉트 포토, ‘world’ 버전.

<혼돈의 장: FREEZE> 앨범 콘셉트 포토, ‘world’ 버전.

실제로 그런 게 이뤄지나?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웃음) 반응이 아주 없지는 않다. 실제 해외에서 이모(emo) 컬처를 향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바이럴되는 걸 인터넷에서 목격했다. ‘LO$ER=LO♡ER’ 활동할 때 특히 반응이 많았다.
 
그렇군. 나도 ‘누더기 왕자’에서 이모 컬처를 조금 떠올린 것 같다.
그때는 마니악한 요소도 물론 많았지만 K팝적 요소도 분명 있었다. 이를테면 K팝에서 ‘왕자’를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지 않나.(웃음)
 
얘기를 듣다 보니 하이브에 낸 포트폴리오에 무엇을 담았는지 궁금해진다.
<헤비매거진> 외에도 개인 작업을 정말 많이 했다. 서울의 매력적인 아티스트들을 모아 촬영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아마 엔터테인먼트사에 지원하는 사람의 포트폴리오라 보기는 어려웠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마이너한 취향이 드러났을 테니까.
 
대학교에서는 패션을 공부했나?
맞다. 라이선스 패션 매거진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하기도 했다. 메인스트림의 패션 매거진은 어떻게 만드는지 너무 궁금했다. 학부생 때도 독립 패션 잡지를 1년 넘게 만든 적 있을 정도로 매거진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0X1=LOVESONG’ official MV 환상적인 무드의 뮤직비디오. <혼돈의 장: FREEZE> 수록곡. 스타일 디렉팅을 맡았다.

‘0X1=LOVESONG’ official MV 환상적인 무드의 뮤직비디오. <혼돈의 장: FREEZE> 수록곡. 스타일 디렉팅을 맡았다.

당신이 친구들과 창간한 여성 아티스트 전문 잡지 <헤비매거진>이 늘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왜 이름은 ‘헤비’라고 지었나?
<헤비매거진>의 브랜딩을 내가 거의 했다. 아티스트의 작품을 계속 소개하면서 쌓아나가면 아카이빙이 무거워지지(heavy) 않을까 싶기도 했고, 일본어에서는 ‘헤비’라고 하면 ‘뱀’을 뜻한다. 성서에서는 뱀이 여자에게 열매를 먹으라고 유혹해 죄를 짓게 만든 존재다. 나는 수많은 여성 아티스트를 죄인처럼 여기는 것이 안타깝다. 남성 아티스트들은 여기저기서 조명을 받는데, 여성 아티스트들은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왕 죄인이 된 거, 조금 더 죄를 지어보자 싶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맘껏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착한 여자는 천당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라는 말이 떠오른다.(웃음)
SNS 포스팅에도 뱀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이 정말 많다. 팝업 전시를 할 때도 뱀 모양 소파를 만들었다.
 
그 시절의 작업이 지금도 영향을  미치나?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그 모든 게 쌓여서 지금 이 일을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계속 내가 좋아하던 언더그라운드 신과는 손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친구들도 계속 만나고, 파티도 가고, 음악 들으러 다니고.
 
음악과 만화책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려졌는데, 작업하면서 가장 큰 인풋이 되는 것이 뭔가?
예전 인터뷰에서도 말한 적 있는데, 나는 무조건 텍스트다. 글 중에서도 질이 좋은 글귀. 주로 책을 이것저것 동시에 쌓아두고 아무 때나 읽는다. 어떤 글귀 한두 줄에 내 생활양식과 가치관이 바뀌기도 한다. 그러니 분명 작업에도 영향을 끼칠 거다.
 
원래 다독하는 사람들이 책을 여러 권 동시에 본다.
이미지 만드는 게 일이다 보니, 그림이나 영상을 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지만 별로 끌리지 않는다. 특히 영상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느낌이다. 영화 외에는 거의 보지 않는다.
 
공감한다. 사실 텍스트가 먼저지, 영상이 텍스트를 대체할 순 없으니까.
설명이 많은 콘텐츠가 싫다. 그나마 그림이나 사진은 영상보다는 직접적인 설명이 적다고 느껴서 많이 본다. 또 사진보다는 그림, 조형물 위주다. 음악에도 정보량이 많다고 느껴질 때는 가사 없는 연주곡 위주로 듣는다.
 
클래식이나 재즈 같은 건가?
그것도 듣고, 일렉트로닉도 듣고, 레이브 음악도 듣고.
 
요즘 제일 많이 듣는 건?
최근에 비요크가 <Fossora>라는 앨범을 냈는데, ‘아토포스’라는 곡이 개버(Gabber) 장르다. 원래 서브컬처 레이브에서 트는 (책상을 쿵쿵쿵 치며) 그런 곡이다. 굉장히 반복적이고, 공격적인 장르인데 비요크는 그 장르를 너무 우아하게 풀어냈더라. 신기했다.
 
음악은 언제부터 그렇게 파고 들었나?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하는 말이, 록 좋아하는 사람은 중학생 때 간택받는다는 거다.(웃음) 나는 14살쯤이었던 것 같다. 일본 애니메이션 오프닝의 대부분이 록이기도 하다. 록의 변화 과정을 따라 나도 다양한 장르를 알게 됐고, 디제잉을 배웠다. ‘키세와’라는 DJ와 같이 듀오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바주카포라는 그룹의 시초다.
 
다시 시각으로 돌아와서, 당신이 최근 본 가장 신선한 비주얼은?
신선하다기보다, 좀 재미있게 본 건 있다. 영국 아티스트 제인 에덴의 ‘비행’이라는 작품 몇 점. 서로 다른 종의 생명체가 교합한 것 같았다. 평소 하이브리드 생명체나 캐릭터에 관심이 많은데, 그걸 심지어 거기에 스팀 펑크 무드를 더했다. 그 지점이 재미있었다. 그 외에는 그다지 없다. 누군가에게는 내 작업물이 그렇겠지만, 가끔은 대부분의 비주얼이 피로하게 느껴진다.
 
허지인x금시원, <Two Creatures> photography <헤비매거진>멤버인 사진가 금시원과 함께 두 여성을 모델로 한 작업.

허지인x금시원, <Two Creatures> photography <헤비매거진>멤버인 사진가 금시원과 함께 두 여성을 모델로 한 작업.

그럴 수 있다. 나도 평소에 잡지 잘 안 본다.(웃음)
많은 것들이 결국은 어딘가로 회귀하고, 무언가를 디벨롭한 버전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더욱 누군가의 시선을 사로잡을 신선한 비주얼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곤 한다.
 
유난히 의식하게 되는 아티스트나 작업물이 있나?
정말 웃긴 건, K팝 비주얼을 직접 찾아보지는 않지만 누군가 “이거 흥미로운데?” 하며 보여주면 그때부터 의식하게 된다.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 자체를 견제하게 되니까.
 
경쟁심과 성취욕이 강한 편인가?
그런 것 같다. 자기 전에 우연히 본 비주얼이 너무 괜찮아서 잠을 못 잔 적도 있다. 난 이미 기회를 놓쳤고, 더 좋은 걸 만들 수 없다고 느낀다.(웃음)
 
타이밍이 적절한 질문인지 모르겠는데,(웃음) 당신은 천재형인가, 노력형인가?
고민을 많이 해봤는데, 천재의 정의부터 따져야 한다. 노력해서 인풋을 하거나 아카이빙하지 않아도 저절로 무언가 보이거나 들리는 게 천재라면, 나는 천재다. 그런데 천재가 천재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하는 일은 대중 예술이니까. 내 분야에서 순수 예술을 하려 들면 그건 천재가 아닌 거다. 내 눈에 저절로 보이고 들리는 것들을 많은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천재라고 본다.
 
지금까지 한 작업 중에 단 하나의 작업물로 당신을 대표한다면?
없다.(웃음) 내가 한 작업이 오롯이 나만의 작업물이 아니니까. 나를 대표한다고 단언할 수 있는 작업물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일단 지금은 내가 집중하는 TXT라는 팀 자체가 나를 대표하는 작업이자 아티스트다.
 
당신은 대중적 아티스트의  비주얼을 만드는 일을 한다. 사랑받는, 잘 팔리는 비주얼의 공통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사랑받는 비주얼과 잘 팔리는 비주얼에는 차이가 있다. 애초에 다르다. 내 생각에 사랑받는 비주얼은 좀 더 마니악한 감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보는 순간 흉부에 뭔가 바짝 차오르고 피부가 짜릿짜릿하면서 몸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게 될 때가 있지 않나? 사랑받는 비주얼은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그렇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가 아예 어렵거나, 아니면 반대로 정말 장황하게 설명할 수 있다. 반면에 잘 팔리는 비주얼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적당하게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다만 잘 팔린다는 건, 계속 보고 싶게 만드는 중독성이 있다는 거다. 내 경우 가끔 사랑스러운 비주얼이 닳을까 무서워 아껴 보는 때도 있다. 너무 오버하는 것처럼 들리나?

Credit

  • editor 김예린
  • Photo by 송시영
  •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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