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세 살, 〈특별시민〉 때 처음 잘랐어요. 박경이라는 청년 정치인이라는 역할에 맞는 이미지를 찾기 위해 자른 거예요. 당시 저는 진짜 제가 뭘 원하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는 상태에 있었는데, 잘라보니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죠.
그 후로 지금까지 모든 작품에서 숏컷으로 등장했죠.
그전까지 저는 저 자신과 사람들의 시선 사이에 엇박자가 있었어요. 과거엔 사람들이 선호하는 스타일 대로만 저를 꾸몄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과거 사진을 보면 저도 미니스커트 입고 높은 힐 신고 볼터치하고 그랬어요.(웃음) 모두가 그렇게 했고, 누구도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주지 않았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거울을 보면 화장을 한 제 모습이 부자연스럽고 제게 맞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잘 모를 때는 그냥 제가 미인이 아니라서 그런가 했어요. 내가 별로 안 예뻐서, 살이 쪄서⋯. 저 역시 고정관념에 빠져있던 거죠.
재킷 가격미정 알렉산더 맥퀸 by YOOX. 베스트 3백60만원대 생 로랑 by YOOX. 슈즈 35만원대 8 by YOOX.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나는 민낯이 더 나은데 왜 메이크업을 해야 할까?(웃음) 그 의문이 시초였던 것 같아요. 내가 좋아서 높은 힐을 신고 짧은 스커트를 입고 메이크업을 하는 거라면 상관없지만, 나는 이게 많이 불편하고 어색하구나. 나 자신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리고 내가 지금의 스타일을 원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자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왜 정형화된 모습으로만 나올까. 왜 모두가 화장하고 꾸미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남성 캐릭터는 별다른 메이크업 없이 주름이나 모공이 나와도 캐릭터로서 이해가 되는데 왜 여성에겐 그게 적용이 안 되는 걸까? 진짜 왜 그래야만 하는 거야? 그걸 제가 실험해본 게 〈머니게임〉이었어요.
드라마 〈머니게임〉에서 수트에 단화를 신고 백팩을 매고 출퇴근하는 이혜준 사무관 말이죠.
네. 제가 표현해보고 싶었던 모습을 많이 투영시켰던 역할이에요. 메이크업은 오직 베이스만 하고 머리는 가르마를 타 포마드를 깔끔하게 발랐죠. 혜준이는 자기만의 신념이 확고하고 일하기에 최적인 차림새를 선호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스커트는 입지 않겠다고 확실히 의견을 냈고, 가방도 여러 후보 중 백팩을 골랐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성상을 조금씩 바꿔보고 싶었죠. 그런데 이렇게 입으면 사람들은 말했어요. “왜 옷을 남자 같이 입어?”
편하고 단정하게 입는 거죠. 그걸 남자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한참 뒤떨어진 생각이고요.
그렇죠.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냥 “이게 편하니까, 일하기 좋으니까, 나를 잘 보여줄 수 있으니까”라고 말하는 게 잘 안 통하잖아요. 그래서 그냥 “혜준이라는 캐릭터는 이런 모습이에요”라고 말했어요.
혜준 팬들이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인 걸 아나요?
알아요. 진짜 깜짝 놀랐어요. 이건 제가 오히려 팬분들께 질문을 하고 싶은데, 혜준이는 왜 그렇게 사랑받는 건가요? 어떤 점이 마음을 사로잡았나요?
가죽 재킷 가격미정 베르사체 by YOOX. 셔츠 가격미정 꼼 데 가르송. 선글라스 27만원 젠틀몬스터.
제가 대신 답해 보자면, 그의 올곧음을 사랑하지 않기가 더 어려운 것 같네요. 어떤 상황 속에도 신념을 잃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극중에서 그런 대사가 있죠. “혜준 씨는 어떻게 그렇게 단단할 수 있어요?”
드라마에서 우리가 자주 접할 수 있는 전형적인 정의로운 캐릭터로만 그려지지 않았으면 했어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었죠. 약하지만 강하게, 뜨겁지만 차갑게. 저는 어떤 인물을 연기하든 정말 살아있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거든요.
영화 〈신문 기자〉의 요시오카도 〈블루 아워〉의 기요우라도 〈7인의 비서〉의 박사랑도 화장기 없는 얼굴에 바지 차림이죠. 감독들이 심은경의 의견을 존중해서 녹여낸 면도 있나요?
맞아요. 〈신문 기자〉의 요시오카는 정말 부스스한 모습이었으면 했어요. 기자분들이 실제로 취재를 바쁘게 다니는 걸 보면 그런 모습이 많더라고요. 게다가 그렇게 중대한 나라의 비리를 파헤치는 와중에 메이크업을 곱게 할 정신이 있겠어요?(웃음) 그래서 아예 민낯으로 나왔어요. 〈블루 아워〉의 기요우라는 묘하게 비현실적인 캐릭터라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같은 느낌이 났으면 해서 점퍼슈트를 제가 직접 제안했고요. 〈7인의 비서〉 사랑이는 같은 숏컷이지만 동생 같고 마스코트 같은 느낌을 주려고 앞머리를 내리고 펌을 했죠.
베스트 3백60만원대 생 로랑 by YOOX.
캐릭터마다 이유가 있었고 각자의 배리에이션이 있었군요.
저는 캐릭터에 대해 세세하게 하나하나 다 생각하는 편이에요. 감독님들께 제안을 했을 때 감사하게도 다 받아들여주셔서 반영이 잘 됐죠.
수트는 그냥 기본이 되는 옷이잖아요. 수트 셋업만 입어도 편하면서도 갖춰 입은 느낌이에요. 어디서든 단정하게 입을 수 있고, 핏도 내 몸에 딱 맞게 잡을 수 있죠. 얼마 전에는 스스로에게 주는 생일 선물로 한 브랜드에서 쓰리피스 수트를 맞췄어요. 그걸 입으니 너무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 귀여운 타이도 잔뜩 샀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너무 남자 같이 입는 거 아니냐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웃음) 하지만 이게 제 모습인 걸요. 과거처럼 본래의 저를 잃어가면서 타협하고 맞춰가고 싶지 않아요.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고, 그걸 작품 안팎에서 꾸준히 보여주니까 멋있을 수밖에요.
지금의 스타일을 찾으면서 패션이 좋아진 거예요. 과거엔 나는 옷도 못 입고, 그런 덴 별 관심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패션에 정답은 없고 정형화된 방식으로 따라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서부터 옷 입는 게 재미있어졌죠. 나를 표현하는 한 수단으로 인식하게 된 거예요. 수트만큼 록시크 스타일도 좋아하고, 에디 슬리먼을 좋아해요. 빈티지숍에서 구제옷도 자주 사고, 1960년대 영국 모드족 패션에도 흥미가 많아서 당시를 기록한 책도 사서 읽어요. 지금 입고 있는 셔츠요? 꼼데 가르송이에요.(웃음)
재킷 4백10만원대, 스커트 1백40만원대, 슈즈 1백40만원대 모두 돌체앤가바나.
맞아요. 제가 십 대 때 정말 되고 싶었던 건 록스타였어요. 중학생 때 서태지로 시작해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소닉 유스, 조이 디비전, 펫샵보이즈 등 많은 밴드에 빠졌죠. 고등학생 땐 비틀즈에 심취했는데, 최애곡은 ‘헤이 주드’에요. 언젠가 팬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음악도 패션도, 20세기의 것들에 매혹되는 이유가 있어요?
낡지 않아서요. 아직도 새로워요. 제가 좋아하는 신스팝이나 포스트 펑크록, 모드 패션은 어떤 유행이 와도 변함없이 새롭고 멋있는데, 그것들은 단순히 음악과 패션에 그치는 게 아니라 내세우는 정신,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 태도가 있는 문화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포스트 펑크는 주류문화에 대항하는 언더그라운드록에서 출발했고 모드족은 보헤미안과 반항 정신을 기반으로 한 서브컬쳐죠. 저도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저라는 사람을 이룰 수 있도록 취향을 가지려 해요.
스웨덴 영화 〈렛미인〉. 고등학교 1학년 때 봤는데, 뱀파이어 영화를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로 연출한 게 확 와 닿았어요. 그리고 소년과 소녀 모두 외롭잖아요. 깊게 내려가 그 외로움을 어루만져서 그려낸 영화였어요.
저도 아웃사이더 같은 사람이죠. 나만의 세계에서 공상에 빠질 때도 있고, 오타쿠 같은 기질도 있고, 혼자가 편하니까요. 요새 ‘인싸’라는 말이 유행이잖아요? 인스타그램에 “요즘 인싸들 노는 법”, “인싸들이 가는 식당” 이런 식으로 너무 많이 올라오더라고요. 저는 자꾸 ‘인싸’와 ‘아싸’를 경계짓고 그 기준에 매몰되는 게 싫어요. 사람은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거고 자기 라이프 스타일이 있는 건데 말이죠. 저는 사람은 단정지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형놀이를 안 했어요. 태권도 다니는 걸 좋아했고, 장난감 칼로 칼싸움 하는 걸 좋아했죠. 〈슈퍼 그랑죠〉를 좋아해서 놀이터에 별 모양 그리고, 〈지구용사 백터맨〉이라는 전대물 백터맨 놀이도 많이 했어요. 일종의 역할극인데, 그렇게 몰입해서 노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 눈을 못 마주치는 애였는데, 역할이 부여되면 자신이 생기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연기에 푹 빠진 것 같아요.
재킷 1백59만원, 팬츠 1백19만원 모두 알렉산더 왕. 슈즈 1백20만원 로에베.
돌이켜보면 저는 연기 밖에 없는 삶을 살았어요. 그래서 부러 “저는 연기를 별로 안 좋아해요”라고 말한 적도 있고 “연기를 그냥 일이라고 생각해요”라고 한 적도 있어요. 어떤 면으론 사실이기도 하고요. 연인 사이 같은 거죠. 널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아. 싫고 힘들어도 다시 마주하게 되는 건 결국 사랑하니까 그런 거겠죠. 너무 너무 사랑하고 잘하고 싶으니까. 배우라는 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연기란 〈패왕별희〉에서 장국영이 연기한 두지 같은 심정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20년 동안 연기를 한 배우의 살아있는 말이네요.
저, 아역 배우 연차로 치자면 경력이 짧은 거예요. 박은빈, 이세영 언니 보면 벌써 30년차를 향해가요. 요새 두 언니들이 잘 되는 모습을 보면 너무너무 기쁘고 축하해주고 싶어요. 아역 출신 배우에게 꼭 따라붙곤 하는 말인 징크스나 편견 같은 걸 보란듯이 깼죠. 아역 출신 배우들이 제약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라요.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한 〈써니〉의 성공을 뒤로 하고, 십대의 심은경은 의외의 선택을 했죠. 한창 작품 제안이 쏟아질 때 모든 걸 거절하고 뉴욕으로 유학을 갔어요.
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 한국에 있다 보면 계속 작품만 해나갈 것 같은 거예요. 하지만 인생에는 그게 다가 아니니까, 해외에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 싶었죠. 주변에 좋은 어른들이 많이 계셨는데, 앞으로 계속 배우를 할 거고 지금이 다가 아니니, 넓게 내다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라고 하셨어요.
당신에겐 어떤 면에서 ‘연예인’답지 않은 태도가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먼저 사람이 되라고 항상 강조했어요. 물론 어머니도 제가 배우로서 잘 되는 것에 욕심이 있으셨고 저도 만만치 않았지만, 제가 어떤 선을 넘으려고 할 때마다 저를 적절하게 눌러 주셨어요. “너는 배우이기 전에 지금은 학생이야. 그걸 항상 명심하고 네 나이에 맞게 행동해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재킷 55만원, 셔츠 22만원 모두 더그레이티스트. 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맨땅에 헤딩이었죠. 엄청난 시련이었어요. 말도 안 통하고 못 알아듣겠고 공부도 어렵고. 뉴욕은 정말 큰 대도시였어요. 나는 이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고 아주 작은 존재일 뿐이라는 걸 느꼈죠. 때마침 사춘기도 와서 ‘나는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시기에 음악도 많이 듣고 공연도 자주 보러 다니며 클래식과 재즈에도 심취했는데, 생각해보면 제 취향과 소양을 쌓아준 시절이었던 것 같네요. 유학 경험이 있었기에 일본 활동도 겁없이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수상한 그녀〉로 대박이 났죠. 정말 궁금했던 게 있어요. 어려서부터 박스오피스와 여우주연상을 쓸어 담고 커리어 하이를 찍은 배우가 갑자기 일본으로 갔어요. 언어부터 모든 걸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말이죠. 이런 결정은 어떻게 내렸나요?
즉흥적인 선택이 아닌 오랜 결심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아키라〉, 타카하시 루미코 같은 19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했고 비주얼 록에도 빠져 있었죠. 일본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주변에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지금 회사의 대표님이 우연찮게 그걸 알게 되시고 인연이 된 거예요. 당시의 저는 한국에서 제가 쌓아 놓은 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걸 두고 일본에 가서 활동하는 게 결단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렇게 훌쩍 건너가, 일본에서 드문 사회고발 영화인 〈신문 기자〉로 한국인 최초로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죠. 쉽지 않은 작품을 어떻게 선택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주인공 요시오카의 단단함이 좋았어요.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면서 지녀야 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점에 동했죠. 일본 사회 분위기에 나오기 힘든 정말 이례적인 영화였던 건 사실이지만, 부담스러웠던 건 오로지 일본어였어요. 한 사회의 시민이라면 응당 가져야 하는 신념,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영화였기 때문에 두려울 건 없었어요.
작년엔 일본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식 사회를 봤고, 올해 도쿄국제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으로 나서요. 일본 영화계에서 심은경이라는 이름에 갖는 신뢰가 느껴집니다.
처음 들었을 때 “아니 뭐라고요? 심사위원이요?” 했어요.(웃음) 그만큼 내가 소양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하기로 결심한 건, 영화제는 함께 영화를 즐기고 우리가 처음 영화를 좋아하게 된 그 순간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축제잖아요.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힘, 국경을 넘어 모두를 연결해주는 그 힘을 느끼고 싶어서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얼마나 멋진 세계 각국의 영화들을 보게 될 지 기대가 크고, 이 영화제를 끝마치고 나면 영화인으로서 많이 성장해 있을 것 같네요.
영화 〈7인의 비서: 더 무비〉도 곧 일본에서 개봉하죠? 여성 비서들이 의기투합해 악당을 혼내주는 이야기로 드라마부터 인기를 끌었죠. 영화 〈써니〉 때부터 여성 ‘떼주물’에서 활약해왔어요.
〈아수라〉나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같은 남성 주연의 작품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감사하게도 〈써니〉처럼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에 자주 참여했죠. 〈7인의 비서〉처럼 여자들이 주연인 드라마가 일본에서도 흔치 않거든요. 여성 배우들과 같이 호흡을 맞추고 연대해 나가는 이야기에 참여한 것 자체가 제게는 굉장히 큰 용기를 줬어요. 연기라는 건 고독한 일이거든요. 하지만 〈7인의 비서〉나 〈써니〉를 연기하는 건 모두가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거구나, 외롭지 않을 수 있는 일이구나 느낄 수 있던 순간들이었어요. 최근 여성 서사 작품이 많이 나오는데 파고드는 작품이 있는 한편, 이렇게 대중적이고 쉽게 볼 수 있는 작품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킷 55만원, 셔츠 22만원 모두 더그레이티스트. 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일본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한국보다 여권이 낮다고 들었는데 그런 건 어때요? 여성 배우로서 일하기 힘든 점은 없나요?
일본도 되게 많이 바뀌고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참 보수적이고 여성을 그려내는 시각에서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네’ 싶은 점도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굉장히 열려 있기도 해요. 이를테면 제가 이렇게 입고 다니는 패션을 일본에선 개성으로서 존중해주죠.
일본은 패션에 있어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더라고요.
그렇죠. 그냥 너는 너, 나는 나라고 생각한달까요? 개성 있는 스타일이더라도 유별나다고 하지 않고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하죠. 한국에서 저는 제 패션에 대해 너무 중성적인 스타일만 고수하지 말고 다르게도 입어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는데 일본에서 그런 이야기는 단 한번도 들어본 적 없어요.
아웃사이더. 숫기 없는 사람. 지극히 평범한 사람.
사람들이 심은경에게 갖는 편견이 있나요? 아역 때부터 이어진 선한 인상 때문에 착하게만 보진 않아요?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착해보인다는 사람들도 있죠. 예전엔 그렇게 나를 보는 게 좀 싫었거든요. 왜 나를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그래서 SNS에서 저에 대한 표현을 솔직하고 과감하게 했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앤디 워홀이 그런 말을 했잖아요. “나를 알고 싶으면 내 작품을 보라”고. 그 안에 내가 있다고. 저도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저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요. 하지만 작품에는 확실히 제가 들어있으니까, 작품으로 봐주세요.(웃음)
저도요. 제발 저를 써주시면 안 될까요?(웃음)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를 정말 좋아하는데, 거기 나오는 요한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아직까지 심은경에겐 그런 이미지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겉으로 보여지는 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편견을 조금만 내려놔주세요. 저 잘할 수 있어요.(웃음)
〈헤어질 결심〉을 극장에서 네 번 보면서 사랑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서 ‘선생님’이 “사랑은 죄악”이라고 하잖아요. 어릴 적 그걸 읽었을 때 화살에 관통된 기분이었어요. 그 문장이 지금까지도 제게서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그걸 잘 표현한 영화가 〈헤어질 결심〉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나를 붕괴시키고, 나만 생각하고 봐줬으면 좋겠고, 영영 미결로 남고 싶은. 그게 계속 마음을 쳤어요.
사실 심은경의 필모그래피를 봤을 때 로맨스에 크게 관심이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틀린 추측이었네요.
한때는 관심이 없었죠. 경험도 별로 없고, 그만큼 무르익지 않았다고도 생각했고, 저 스스로가 멜로에 적합하지 않다고도 생각했고요. 그런데 멜로 연기를 꼭 농익어야 할 수 있는 건가? 의사 자격증이 있어야 의사 연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웃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최근 촬영을 마친 영화 〈별빛이 내린다〉를 택한 거예요. 사무치는 사랑을 하는, 순애보를 펼치는 캐릭터입니다.(웃음) 열정적이고 행복했던 현장이었어요.
그럼요. 하고 싶어요. 그런데 참 어려운 게 제가 가볍게는 만나는 게 안 되는 사람이에요. 어른이 되어갈수록 서로를 얼마나 알고 만나는 걸까, 이런 저런 고민이 깊어지더라고요. 관계에 있어 정말 신중한 편이에요. 어릴 때부터 저는 남에게 상처주거나 피해주는 게 싫었거든요. 가벼운 말이나 행동으로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더 신중해지는 것 같아요.
저랑 정반대인 사람들이요. MBTI로 치자면 완전 E. 하지만 나이 들수록 혼자서도 잘 놀아요. 혼자 놀기를 터득했죠. 예전에는 나는 외톨이라는 생각에 속상했는데,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스스로를 공부하면서 이제는 외로움을 즐기게 됐어요. 생각에 잠겨서 천천히 호흡하는 시간이 좋아요. 그걸 바탕으로 타인을 만나면 좀 더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죠.
역시 음악을 듣죠. 그러면서 산책하면 좋아요. 한국에 있을 때는 전철 타고 서울 숲에 자주 가고, 일본에 있을 때는 메구로 강 주변을 걷거나 야나카라는 동네에 가요. 나쓰메 소세키를 비롯한 문호들이 살던 고즈넉한 작은 마을이에요. 좋아하는 산책로입니다.
심은경은 아역 배우로부터 성인 배우, 미국 유학, 일본 활동, 스타일 변화, 여러 번의 터닝포인트를 거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며 걸어왔어요. 어떤 힘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두려워서 그런 것 같아요. 혜준이처럼요. 도태될까 봐 두렵고, 한계에 마주칠까 봐 두렵고, 그런 자신에게 매몰될까 봐 두려워서. 그런 두려움을 직면하면 고민과 우울에 잠겨 드는데, 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고 보면 결국 그냥 또 해 나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살아있는 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계속 움직이면서 나아가야 해요.
머리를 자르고 싶지만 자르지 못하고, 화장을 하지 않고 싶지만 하는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처음엔 잘 안 될 수도 있어요. 스스로에게 압박을 주면 오히려 사방이 벽으로 막혀요. 그 대신 계속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에게 천천히 변화할 시간을 주는 거예요.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는다면,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언젠가 당신에겐 에스파가 록스타라고 했었죠. 뉴진스 같은 신인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갈아타진 않았나요?(웃음)
아니요, 저는 아직 본진에 있습니다. ‘Blcak Mamba’를 들은 순간부터 지금까지.(웃음) 에스파는 가사가 굉장히 직설적인데, “우린 넥스트 레벨, 다음 단계로 가”라든가 “일어나”라든가, 록 같지 않아요? 악기만 놓으면 런어웨이즈 같은 록밴드 같달까요. 어릴 때부터 SMP를 좋아하긴 했습니다.(웃음) 물론 뉴진스 분들도 획기적이죠. 요즘 스튜디오를 빌려 디제잉을 해보고 있는데, 에스파는 테크노와 드럼 베이스의 곡들을 믹스하고, 뉴진스는 하우스나 힙합 베이스의 곡들을 믹스해서 틀어요. 하다보니 재미가 붙어서 한도 끝도 없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