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트랜스젠더, 정글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Society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트랜스젠더, 정글

몸은 변화한다. 몸에 대한 생각도 계속해서 진화한다. 여기 4명의 여성이 가진 내 몸에 대한 지금의 생각은 그 무엇과도,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것이다.

COSMOPOLITAN BY COSMOPOLITAN 2022.07.13
 
거울 속 당신의 모습을 보면 무엇이 보이는가? 당신의 몸을 부위별로 낱낱이 뜯어 분석하는가? 스마트폰으로 포토샵을 하듯, 스와이프 한 번으로 피부 결을 정돈하고 몸의 굴곡을 더하거나 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스마트폰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필터로 보정한 내 모습과 실제 내 모습을 쉽사리 비교하게 된다. 가끔은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는 아주 귀한 순간도 있을지 모른다.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내 몸 긍정’ 운동 덕에 우리는 지금까지 완벽한 몸의 허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갖고 있는지도. 하지만 자신을 사랑한다는 게 말처럼 쉽진 않다. 몸에 대한 느낌은 계속 바뀐다. 지난달과 이번 달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10분 전과 지금이 다르다. 내 몸에 대한 생각이 변해가는 것은 하나의 여정과도 같다. 우리의 몸은 출산, 수술, 노화를 겪는다. 살이 빠지고, 살이 찐다. 정신 건강과 행복도에 따라 내 몸에 대한 생각 또한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때로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본인이 속으로 느끼는 것이 정반대가 되기도 한다. 식스팩을 드러낸 ‘핫한’ 비키니 사진을 올리는 이들과 살집이 그대로 드러난 ‘보디 포지티브’ 비키니 샷을 올리는 이들이 공존하는 여름이면 내면의 갈등은 더욱 심해진다. 이 글은 그 갈등을 얼마간 풀어줄 해독제다. 그렇다고 살을 찌우라거나, 빼라거나, 실제로는 결점이 아닌 것들을 짚어가며 내 몸의 결점까지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주려는 강의는 아니다. 이 글은 우리가 내 몸에 대해 갖는 생각이 진화해가는 과정에 대한 솔직한 대화다. 이 글은 오늘 당신이 당신의 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괜찮다고 말한다. 

  

“성별이 바뀐 것보다 중요한 건…” 정글

정글은 지난 2021년 5월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트랜스젠더다. 올해 안에 성확정 수술을 목표로 공개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2016년부터 약 5년간 드랙 아티스트로 활동했다. 지금은 트랜스젠더 가시화 파티 ‘트랜스패런트’ 기획 및 운영자, 퀴어 데이팅 앱 ‘잭디’와 패션 브랜드 아크네 스튜디오의 마케터이며, 그 밖에 모델 활동과 여러 창작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브리프, 팔찌 본인 소장품.

브리프, 팔찌 본인 소장품.

몸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좋다. 누구나 몸에 대한 고민이 있다. 어떤 부분은 좋아할 수도 있고, 어떤 부분은 만족스럽지 않으며 불편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나는 근원적으로 내 몸, 특히 젠더와 아주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불협화음과 친해지기 위해 엄청난 고민을 한다. 최근 내게 생긴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트랜지션을 결심하고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면서 내 몸과 화해했다는 거다. 가슴이 나오고 몸의 곡선이 바뀌는 것 때문에 기쁘다기보다는, 변화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거울을 보다 보니 그냥 내 몸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예전에는 거울로 내 몸을 보는 일이 너무 어색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편안해졌다. 사람들은 흔히 몸의 기능적 가치보다 미적 가치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곤 한다. 예를 들어 나는 몸에 비해 종아리가 다소 굵은 편인데, 어릴 때부터 많이 걸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종아리가 너무 좋다. 내 종아리가 아니었다면 그 많은 곳을 가지 못했을 테니까. 요즘 나는 이렇게 매일매일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며 산다. 원래는 20살이 되던 해 트랜지션을 결심했다. 이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하자마자 본가가 있는 부산으로 거의 끌려가다시피 내려가게 됐다. 부모님은 나를 정신과에 보냈다. 다행히도 당시 선생님이 첫 상담 세션에 부모님과 동행하라고 했다. “이제 ‘트랜스젠더’는 질병 분류 목록에 존재하지 않는다. 고치려는 목적으로 온 거면 나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라고 의사 선생님이 못을 박았다. 그때부터 나는 한 번도 남에게 털어놓지 않았던 고민을 선생님께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나는 육체적 친밀감이 전혀 없는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폭력적이기도 했고, 부모님은 늘 밖에서 일을 하셨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남들 앞에서 옷을 벗어본 적이 없었다. 남녀의 차이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없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내 몸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도 있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말랐다”는 얘기만 자주 들었을 뿐, 외모는 물론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키울 기회가 없었다. 20살에 그렇게 트랜지션 시도에 실패한 뒤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았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싫어 조용히 회사만 다녔다. 하지만 회사는 갑갑했다. 회사를 그만둔 지 2주 후, 모아둔 돈을 다 들고 파리로 이주했다. 혼자 이곳저곳 다니며 이상한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났고, 굉장히 특이한 환경에서 상당히 재미있는 선택을 하며 사는 사람도 많이 만났다. 한국을 나와 사는 동안 나는 개인이 어떤 선택을 통해 어떤 삶을 사는지에 대해 관찰할 기회가 많았다. 그때 자연스럽게 나 역시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며 살아갈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1년 후 그야말로 쫄딱 망해 한국에 돌아왔을 때,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드랙을 시작했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여기저기서 날 부르기 시작했다. 드랙에 진지해지면서 동시에 내가 누군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됐다. 드랙을 하며 만드는 캐릭터에 나 스스로를 투영해보게 됐다. 이를테면 그 전까지 나는 화장을 해도 ‘여성스러운’ 화장에는 선을 그었다. 일상에서 화장하는 일은 별로 없었고, 한다 해도 화려하게 색을 바르거나 눈두덩을 시커멓게 칠하는 방식이었다.
 
브리프, 팔찌 본인 소장품.

브리프, 팔찌 본인 소장품.

‘여성스러워 보이는 일’을 스스로 억눌렀다. 그런데 드랙을 하면서 비로소 그 경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트랜스로 사는 게 왜 틀린 거지?’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다. 어느 순간에는 ‘드랙을 왜 하지?’라는 질문도 하게 됐다. 오랫동안 드랙을 하며 지친 것도 있었고, 드랙이 나 스스로의 목소리가 아닌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려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주로 야밤에 클럽에서 공연을 하다 보니 유심히 보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느끼기도 했다. 이 정성을 다른 곳에 쏟아부으면 어떨까 싶었다. 어떤 계기도 있었다. 트랜지션을 시작한 뒤, 아주 가끔 드랙 공연을 하던 시기였다. 어느 날 사람들 만나는 자리에 화장을 하고 나갔는데 누군가 내게 “오늘 공연하고 왔어?”라고 물었다. 내 행동, 내 정체성의 모든 것이 ‘퍼포먼스’로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랙은 내 인생을 바꿨지만, 그렇게 드랙과 거리를 두게 됐다. 트랜지션을 시작했을 때는 개인적으로 정말 힘든 2년을 보내고 난 뒤였다. 내 몸과 살아가는 것이 너무 싫어 싸울 기력조차 없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트랜지션을 선택했던 것 같기도 하다. 주변에서는 “가슴부터 넣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디 어디만 고치면 되겠다” 하는 말을 자주 했다. 나 역시 질문을 던지게 됐다. 나는 “왜?”라는 질문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굳이 기술을 이용해서 내 몸을 특정한 형태로 바꿔야 하나? 몸이 바뀌면 좋은 점도 있겠지만, 진짜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수술을 하고, 가슴 사이즈를 키우고,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몸의 곡선을 갖게 된다 해서 내가 가진 열등감이나 불안감이 사라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모든 트랜스들에게 트랜지션을 권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내 몸 그대로 살 권리가 있고, 원하면 기술의 혜택을 받을 권리도 있다. 그야말로 선택하거나, 하지 않거나의 문제다. 흔히 사람들은 누군가를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으려 하면 안 된다고 한다. 그 점에 대해 나 역시 이견이 없었다. 게이인 남성들과 연애를 했지만 내 정확한 정체성에 대해 얘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늘 깊은 관계로 이어질 수 없었다. 8년 정도 연애를 안 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의 애인을 만났다. 나는 이따금 스스로에게 자조적인 말을 툭툭 던진다. 그럴 때 애인은 그러지 말라고 말해준다. 그 생각을 하면 울 것 같다. 한 번도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 없으니까. 애인과 처음 침대에 누운 날, 마치 10대 청소년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우리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와 나는 다행히 마음을 열고 차근차근 대화를 시작했다. 내게 트랜지션은 그렇게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경험이 됐다. 나는 아주 늦긴 했지만, 완벽한 타이밍에 트랜지션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시선도 많이 받았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시간도 있었고, 내 몸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으며, 내 몸이 변하는 과정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으니까. 오늘 내가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을 수 있는 것은 내 몸을 정말 사랑해서가 아니다. 내 몸이 너무 아름다워서도 아니다. 나 자신을 제일 힘들게 만드는 건 스스로를 부정하고 억누르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스스로 가정하고, 그걸 기준으로 끊임없이 나를 단속하는 일 말이다. 그것만 벗어나면 한결 괜찮다. ‘극복’이라는 단어는 쓰고 싶지 않다. 뭔가 이겨내고 쟁취하는 것 같아서. 안 그래도 힘든 세상에 또 싸울 필요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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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Feature Editor 김예린/ alice snape/ jade biggs
    Photographer 윤보람/ alexandra cameron
    translator 박수진
    Hair Jake Oakley(말린 앤더슨)/ Laura Chadwick(루시 밸)
    Hair Jake Oakley 오지혜(정은혜/ 정글)
    Makeup Jake Oakley(말린 앤더슨)/ Thembi Mkandla(루시 밸)
    Makeup Jake Oakley 유혜수(정은혜/ 정글)
    Stylist Maddy Alford(말린 앤더슨/ 루시 밸)/ 이병호(정은혜/ 정글)
    Assistant 김미나/ 김지수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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