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린(이하 ‘하린’) 소재부터 환경에 해롭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 번 사용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았죠. 그러다 보니 동식물성 폐기물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전은지(이하 ‘은지’) 인간이 버린 잉여 생산물을 활용한 거죠. 버려진 재료지만 다 자연에서 온 것들이잖아요. 좀 더 의미 있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재료를 정하는 방식이 궁금해요.
은지 길에 버려져 있는 재료를 보고 영감을 얻기도 해요. 기사를 읽다가 “요즘 이게 쓰레기로 많이 나온대” 하면 “그래? 그럼 이걸로 만들어보자!” 하고 대화를 나누며 바로 실행에 옮기기도 하고요.
하린 대표작인 ‘템페라’ 시리즈는 오리알 노른자로 만든 캔들 홀더 등의 오브제 연작이에요. 지인분이 제약회사에서 오리알로 알약 만드는 작업을 하시거든요. 공장에서 오리알 노른자가 많이 폐기된다며 한번 써보라고 주셨죠. 그걸 저희는 냉큼 받아 사용했고요.
늘 새로운 소재에 도전하다 보니, 제품을 완성하기까지 엄청난 공부가 필요할 것 같아요.
하린 저희 둘 다 워낙 겁이 없는 스타일이에요. 디자이너가 도면만 그리고, 스타일링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죠. 경계를 두지 않고 일단 아이디어가 나오면 한번 시도해보는 거예요.
은지 논문을 정말 많이 참고해요. 논문이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훑으면서 힌트를 얻는 정도죠. ‘우유는 단백질이니까 분해가 될 거고, 이 재료는 굴 껍데기와 미네랄 파우더를 합쳤으니 광물에 좀 더 가깝겠구나’ 하면서요. 물론 매일같이 실패를 겪죠. 재료마다 다루는 방식이 정말 제각각이거든요. 치대보기도 하고, 눌러보기도 하고, 쥐어짜보기도 해요. 흙이나 물에 담가 분해하는 과정을 실험하기도 하고요
하린 이렇게 완성한 재료를 분쇄한 뒤 반죽으로 만들어 몰드에 넣어 굳히고, 모양을 다듬어요. 제일 판매가 많이 된 건 굴이나 조개껍데기에 달걀 껍데기를 섞어 만든 ‘오이그(Oygg)’ 시리즈예요.
모든 과정을 함께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역할을 분담하나요?
하린 전반적인 과정은 함께하지만 그 안에서 저는 디자인에 좀 더 초점을 맞춰요. 굴 껍데기가 재료라면 원재료의 느낌을 좀 더 살려 굴 모양으로 그릇을 만든다거나, 달걀 껍데기가 들어갔다면 달걀 모양으로 화병을 만드는 식으로요. 어떻게 보면 좀 더 아름다워 보일 수 있을지 생각하는 거예요. 반면 은지는 접근법이 달라요. 더 과학적이고 이성적이에요
은지 저는 이 재료가 이런 제품으로 구현될 수 있을지, 가공 방법을 고민해요.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거죠. 오브젝트 디자인 전공 특성상 3D를 주로 다루다 보니 제작 과정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너무 몰입하다 보면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할 때가 있어요. 방향성이 헷갈릴 때도 있고요. 서로가 그 균형을 유지하면서 잘 잡아주고 있죠.

하린 사실 우리나라 브랜드는 제품을 대량생산해 찍어내는 경우가 일반적이잖아요. 그렇게 해야만 회사가 지속 가능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하죠. 하지만 애초에 공장에 맡겨 수천 개의 제품을 만들고, 매출을 내는 게 저희 목적이 아니에요. 대신 작은 산업체나 공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긴 해요. 쓰레기를 얻어야 하니까요.(웃음) ‘위켄드랩’을 브랜드나 스튜디오라고 흔히 부르지만 저희 스스로는 작가주의적인 성향이 더 강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독일에서, 은지는 스위스에서 유학했는데 그때 다른 학생들과 각종 스튜디오의 작업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이런 소재로 이런 물건을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거든요. 그 메시지를 위켄드랩을 통해 국내에도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죠
은지 폐기물을 사용해 제품을 만들다 보면 또 폐기물이 나오잖아요. 직접 만들다 보니 재료도 계속해서 다시 쓰고 활용할 수 있더라고요. 분쇄하며 나온 가루를 다 모아뒀다가 테라조 무늬를 만들 때 재사용하기도 하고, 색을 낼 때는 모아둔 자투리 재료를 쓰기도 해요. 찌꺼기를 모아 합쳐보기도 하고, 실험해놓은 것을 널어놓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디어도 많이 얻죠. 버리는 과정에서도 자연스럽게 제로 웨이스트 철칙을 지키게 되고요.
‘친환경’이라는 큰 틀 안에서 ‘비거니즘’과 ‘제로 웨이스트’는 맞닿아 있죠. 소비자들은 비건 제품이 제로 웨이스트이기를, 새활용 제품에 동물성 재료를 쓰지 않기를 기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은지 흔히들 생각하는 ‘비건’이라는 정의에는 맞지 않을 수 있어요. 일단 위켄드랩에서는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동물성 폐기물을 이용하는 만큼, 동물을 1차적으로 착취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점에서 구분된다고 생각해요.
하린 이미 이런 폐기물이 배출되고 있는 사실을 뻔히 아는데 동물성 재료라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환경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무조건 비건이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이미 버려지는 폐기물에 포커스를 두고 방향성을 맞춰나갔어요. 다만 동물권이 좀 더 지켜지는 쪽으로 산업이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늘 있죠.
앞서 작가주의 스튜디오라 말했지만, 수익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나요?
은지 재료뿐만 아니라 사실 일하는 방식도 명확하게 경계를 두지 않아요. 같이 협업하자고 연락 주시는 분들이 저희에 대해 생각하는 이미지에 따라 하는 일이 달라지거든요. 저희를 디자이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과 일을 하게 되면 디자이너가 되고, 작가라고 생각해주시는 분들을 만나면 작가가 되죠. 재료가 흥미롭다며 찾아오시는 분들에겐 제조업자가 되고요.
하린 요즘은 ‘올라운더’의 시대잖아요. 저희끼리는 농담 삼아 N잡러라고 얘기하기도 해요. 경제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분야를 확장해나가다 보면 수익성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 믿고 있어요.
두 분이 각자 유학 중에 주말마다 화상회의를 하며 작업을 구상해 ‘위켄드랩’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고 들었어요
은지 이젠 이름을 바꿔야 할 지경이에요. ‘풀타임랩’으로요.(웃음)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많아 정말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올해는 어떤 프로젝트가 예정돼 있나요?
은지 6월에는 디자인 마이애미에 참여하고, 9월에는 리움 미술관에서 전시를 해요. 디자인 마이애미에서는 한국에서 잊혀가는 자수, 자개, 한지와 같은 공예를 모티브로 작업하려고 해요. 장인분들을 직접 찾아뵙고, 공방에서 나오는 폐기물도 살펴보고 있죠. 오늘만 해도 강원도에 한지 장인을 찾아뵈러 가야 해서 이렇게 아침 8시부터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고요.(웃음) 저희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성’은 환경만을 의미하지 않아요. 하고 있는 모든 작업이 ‘지속 가능성’이라는 테마로 묶이죠. 이 작업 역시 환경도 환경이지만, 이런 공예 문화가 잊히지 않고 쭉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하게 됐어요.
작업만큼이나 두 분의 일상도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른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하린 별거라고 하기엔 참 민망하지만 분리수거를 나름 강박적으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마트나 가게에 갔을 때 봉지는 전혀 받지 않아요. 포장도 하지 않고요. 사실 어제도 은지와 냄비를 들고 순두부찌개를 사러 갔었는데, 짧은 거리긴 했지만 많이들 쳐다보시더라고요. 또 취향 같기도 한데, 둘 다 빈티지를 너무 좋아해요. 소위 말해 남의 손을 탄 물건들을 좋아하죠.

하린 특별한 계기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너무 당연했어요. 하굣길에 아이스크림 먹고 길에 막대기를 버리는 친구를 보면서 속으로 ‘왜 저래?’ 하며 눈살을 찌푸렸던 기억이 나요. 저희 세대가 모두 약간의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매일 뉴스에서 절망적인 환경 지표를 보게 되니까요. 그 작은 충격이 모여 모든 행동에 점점 의식을 갖게 된 거죠.
은지 이 부분이 잘 맞아 함께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둘 다 디자인을 전공했고, 어차피 평생 디자인을 하며 살게 될 텐데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환경에 덜 해로웠으면 싶었죠. 그러다 보니 지금은 열심히 쓰레기를 찾아다니고 있네요.(웃음)
두 분의 이런 의식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은지 그건 과장된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추구하는 건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전달하는 거예요. 스토리텔링이죠. “세상에 이런 소재도 있어!”, “이 물건 달걀 껍데기로 만든 거야! 웃기지?” 하며 사람들에게 대화거리가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거요.
하린 그게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호수에 자갈을 던지면 파동이 일어나잖아요? 그 파동을 일으키는 게 저희의 목표예요. 세상에 ‘위켄드랩’이라는 작은 자갈을 한번 던져보는 거죠. 저희가 던져서 생긴 그 파동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각과 이야깃거리를 던져줄 수 있는 좋은 물음표가 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