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두는 죄가 없다! 에디터의 노브라 일지 2편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한 번 경험하고 나서는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세계가 있으니. 에어팟이 그렇고, 전동 칫솔이 그렇고, 라식 수술도 그렇겠다. 불편한 줄도 몰랐는데, 경험하고 나니 이렇게 편할 수가! 이런 상쾌하고 자유로운 세상이라니, 깨닫게 되는 것. 그런 세상, 여기 또 있다. 바로 노브라 월드다. ::에어팟, 전동칫솔, 라식수술,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설리, 화사, 관종 | 코스모바디,코스모헬스,가슴,유두,브라렛

그렇다. 내게 노브라 세상이 열렸다. 3년 전 여름, 내 가슴 두 쪽으로 사람 팬 적 없으니(‘돈 터치 마이 노브라’ 기사 참고) 나는 내 가슴을 완전히 브래지어 밖으로 놓아주기로 결심한다. 노브라가 얼마나 편한지 경험한 후, 아니다. 브래지어의 삶이 얼마나 갑갑했던 건지 깨달은 이후, 그전의 내가 불쌍할 지경이었다.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가슴을 해방시키니 이전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고민에 맞닥뜨려야 했다. 때는 여름, 얇은 한 겹의 옷도 거추장스러운 한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홑겹의 티셔츠, 아무리 헐렁한 옷이라도 바람 불어올 때마다, 조금이라도 뛰거나 빨리 걷기만 해도 나의 유두는 티셔츠 밖으로 ‘까꿍’ 고개를 내밀었다. 밤에는 어둡다며 방심할 수라도 있었다. 그러나 낮에, 그것도 가감 없이 내리쬐는 태양과 형광등 불빛 아래 있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나만 (그것도 내 유두만) 보는 것 같은 ‘갑자기 분위기 도끼병’에 시달려야 했다. 회사에서 화장실이라도 갈라 치면, 점심 먹으러 나가거나 인터뷰, 취재로 이동할 때마다 내 생각의 과녁은 온통 유두, 유두, 젖꼭지, 젖꼭지로 향했다. 30년 조~금(?) 넘게 살아 오면서 이토록 과대’유두’망상증에 시달린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나의 가슴 두 쪽은 해방됐으나 내 머리 속은 유두 감옥에 갇혀 버린 것이다.결국 가슴에 자유를 준 대신 나는 시선과 싸워야 했다. 내 유두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 이미 한 차례 파트너와 갈등을 치른 후라, 나는 외출 때마다 더더욱 전장에 나서는 전사의 마인드로 무장했다. 잡지사라는조직이 절대 다수 여자들로 이뤄져 있건만, 여자들에게서부터 “어우~”로 시작되는 야유 비슷한 책망을 들었으니까. “어우~ 선배 설마 안 했어요?” “어우~야, 너 오늘 브라자 깜빡했니?” “어우~ 이게 무슨 일이니? 정신이 있니, 없니?” 등등. 남자들에게서는 경멸이라고 해야 할까, 므흣하다고 할까, ‘드러내 말은 못하겠지만 고것 참…’이라는 듯 므흣한 시선을 받아내야 했다.나는 일단 ‘어우 야~’로 시작하는 모든 발화에 툭 치면 나오는 멘트 자판기처럼 셀프 변호로 대항했다. “아니, 일부러 안 한 건데요?” “안 하고 다니면 얼~마나 편하게요?” “밖에서는 잘 안 보던 유두라 낯선 거지, 다들 집에 가면 브라자 풀고 보잖아요?” “이거 실수로 깜빡한 게 아니라, 편해서 제가 선택한 건데요?” 등등. 사실 이런 변호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힘든 건 남자들의 그 므흣한 시선이었다. 내가 당신들 보라고 내놓은 유두 아닌데, 당신들한테 야해 보이려 혹은 경멸하라고 푼 브라자 아닌데, 마치 그러한 시선을 ‘노리고’ 나타난 ‘관종’이라도 된 듯 묘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나는 셀프 검열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딱 달라붙는 옷을 입을 때는 유두 패치를, 흰 옷 입을 때는 가슴이 안 비치면서 유두가 드러나지 않도록 캡 있는 브라를, 중요한 취재나 인터뷰 자리에서는 그래, 생판 노브라는 좀 그렇지…? 내 어깨는 점점 더 움츠려 들었다. 동시에 속으로는 ‘왜?’라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애초 편하고 건강해서 결심한 노브라인데, 나는 왜 자꾸 작아지는가?딱 달라붙는 옷에, 흰 옷에 유두 좀 나오면 어때서? 공식적인 자리 말고 비공식적으로만 괜찮다면, 집에서만 노브라인 이전과 무슨 차이지? 죄다 불편했다. 그러고는 다시 깨달았다. 나의 노브라가 진정으로 자유로우려면 남들의 불편한 시선을 불편해 하는 나와 먼저 작별해야 했다.본질은 하나다. 내 유두는 죄가 없다는 사실! 노선은 정해졌다. 이제 나의 노브라가 불편한 사람들의 불편함에 맞서자. 가슴을 활짝 펴고 ‘안녕? 내 유두랑 하이, 헬로!’라는 태도 장착. 거의 들라크루아의 그림 속, 가슴 풀어 헤치고 민중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도 된 듯한 사명감이 밀려왔다. 자유가 쉽게 얻어진다고 누가 그랬나? 자유는 투쟁하고 쟁취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셀프 검열과 서서히 이별하고 있었다.- 노브라로 3편이나 쓸 줄은 나도 몰랐지만,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