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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만한 남자, 박정민

연기하는 박정민은 글을 쓰고,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린다. 이제는 랩도 한다. <쓸 만한 인간>이라는 책에서 그는 “‘찌질하다’의 반대말이 뭔가? 특별하다? 잘나간다? 바지통 6반으로 줄이고 머리에 젤 바르는 상남자 스타일? 아니, 찌질하다의 반대말은 ‘찌질했었다’라고 할 수 있겠다. 찌질이들이여, 해방구를 찾아라”라고 썼다. 꽤나 흥미로운 남자, 박정민을 만났다.

BYCOSMOPOLITAN2018.06.19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에서 첫 단독 주연, 무명 래퍼 ‘학수’(a.k.a. 심뻑) 역할을 맡았어요. 감독님이 노래방에서 랩하는 박정민을 보고 캐스팅했다고 들었는데.

보셨다고 할 순 없어요. 그분도 취해 계셨기 때문에 거의 환각 상태라…. 하하. 감독님이 저한테 이 역할을 제안하신 이유는 <동주> 찍을 때 서로 굉장히 잘 맞고, 좋았던 게 컸을 거예요. 처음 시나리오 들어왔을 때는 구미가 당겨 한다고는 했는데 쉽지 않더군요. 평소 랩 듣는 거 되게 좋아하고, 노래방 가서 부르는 것도 즐겼는데. 막상 본격적으로 랩을 하려니 확실히 취미로 따라 하는 것과 실제 직업으로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죠. 제가 항상 이런 잘못을 저질러요. <그것만이 내 세상>도 ‘피아노야 뭐 연습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고. 이렇게 벌려놓고 수습하는 안 좋은 습관이 있죠. 


예전부터 래퍼는 글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에 직접 가사를 썼다면서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변산>도 처음에는 랩을 만들어주신 분이 있었는데, 제가 연기하는 ‘학수’라는 인물의 감정이나 정서를 담는 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한번 써볼까요?” 해서 직접 썼어요. 물론 프로 래퍼들처럼 맛있게 쓰진 못하지만, 이 영화에서 랩의 목적은 ‘학수’의 감정을 제대로 관객들에게 전달해주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생각으로 가사를 적었어요.


박정민에 대해 이준익 감독이 이런 칭찬을 했더라고요. “박정민이라는 인간, 존재 자체의 매력이 배우라는 속성에서 불쑥불쑥 뽑아져 나온다. 지성미와 야성미의 밸런스가 정말 잘 잡힌 배우, 균형 감각이 있는 배우다.”

그분은 말을 왜 그렇게 어렵게….(일동 웃음) 그런 칭찬 들으면 기분 좋죠. 근데 누가 보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사를 누가 보고 와서 “너 지성미와 야성미를 갖춘 배우라며?” 하면 전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막 ‘독립 영화계의 송강호’ 이런 말 만들어주셔서 엉뚱하게 기사화되니까. 송강호 선배님이 보셨을 거야, 그거 분명히. 아오, 부끄럽게.



철조망 뒤에서 “저 여기서 뭘 해야 해요?”라고 천진하다가도 어느샌가 자신만의 느낌을 살리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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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박정민은 작품마다 얼굴이 다 다른 것 같다”라는 말을 많이 해요. 이것도 칭찬이죠?

그럴 때마다 제가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제가 유명하지 않아 그렇다고. 하하. 어디서 많이 본 애 같은데 이름은 잘 모르겠고, 그런 거? 아직은 저에 대한 이미지가 고착화된 게 없잖아요. 제가 스타 배우도 아니고. 그래서 관객분들이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도 “요즘 충무로에서 가장 많은 러브 콜을 받는 배우”라는 영화사의 홍보 문구가….

그건 제 또래 남자 배우들이 다 군대를 가 있어서.(일동 웃음) 일 년 전? 아니 <그것만이 내 세상> 개봉한 후 조금씩 시나리오가 더 들어오는 건데, 그동안 같이 작업했던 분들이 ‘이제 정민이한테 이 정도 역할은 맡길 수 있겠다’라고 생각해 역할을 하나씩 주시는 것 같아요. 다행히도 그 와중에 캐릭터가 겹치는 역할이 없었고요. <변산>에서 경쾌한 역할이었다면 다음에 나올 영화 <사바하>는 다른 모습이고, 이제 곧 들어가는 <타짜 3>도 다를 거고요. 운이 좋은 거죠. ‘그래도 데뷔하고 7년 동안 열심히 한 걸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계시는구나’ 싶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2년 전에 산문집 <쓸 만한 인간>을 내기도 했잖아요. 글 쓰는 건 원래 좋아했어요?

영화과 들어가려고 자기소개서도 쓰고, 혼자 시놉시스도 쓰고, 계속 글이란 걸 쓰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쓰고 싶은 글이 뭔지 찾았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좀 더 고상하고, 어렵고, 막 수식이 많은 글이 멋있어 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거 너무 멋이 없는데?’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제가 당시에 보던 영화나 책도 일상적이고, 수식이 많지 않고, 장난스러운 이야기였거든요. 영화는 <아는 여자> 같은 거 즐겨 봤고, 박민규 작가님 소설 좋아해요.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한데 거기에 다다르는 과정이 굉장히 가볍고 장난스러우면서 특이하고, 상상력을 초월하는 글이잖아요. 그게 굉장히 멋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형용사도 최대한 배제하고, 문장 짧게 쓰고, 좀 더 리듬감 있는 글을 써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영화 <파수꾼> 블로그에 글을 쓰고, 우연히 잡지에 에세이 기고를 하게 되고, 그러면서 제가 좋아하는 글의 성질을 알게 된 거죠.


지금 다시 책에 썼던 글 보면 어때요?

형편없어요. 하하. 물론 그 속에도 저만 아는 좋아하는 글이 있어요. 그런 글은 정말 금방 써요. 30분이면 ‘바라락’ 쓰고 퇴고도 안 하죠. 이번 <변산> 랩도 뭔가 막 맞추려고 많이 고민한 것보다는 그냥 바라락 쓴 게 더 좋더라고요. 확실히 ‘그분’이 오실 때 쓴 게 좋은 것 같아요.



연필과 수첩을 들고 끄적거리를 즐긴다.

슬리브리스 톱 12만7천원 키미제이. 팬츠 6만2천원 네스티팜.


<쓸 만한 인간>을 읽으면서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던 게 “‘찌질했다’의 반대말은 ‘잘나간다’, ‘특별하다’도 아니고 ‘찌질했었다’”라는 표현이었어요. 그걸 바라락 쓰지 않았을까?

그걸 바라락 썼죠. 하하.


박정민이 제일 찌질했을 때는 언제예요?

(단숨에) 중학교 때요. 성격이 소심해 화는 나는데 반항할 순 없고. 그때는 온갖 강요밖에 없는 시기잖아요. 체벌도 있었고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공부 열심히 해라”, “사고 치지 말아라”, “담배 피우지 마라”… 그런 강요가 너무 싫은데 거부할 용기가 없으니까 억지로 누르면서 살았던 시절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어깨도 굽고, 그때 생긴 라운드 숄더가 아직도 저를 괴롭히고….


웃으면 안 되는데, 웃어버렸네요. 하하. 근데 그렇게 억누르지 않아도 되잖아요. 반항도 많이 할 때인데?

유독 많이 눌렀어요, 제가. 원치 않게 책에 파묻혀 살았던 시기인 것 같아요. 제가 진짜 우리 반 애들 중에서 가방이 제일 무거웠을 거예요. 문제집부터 참고서, 교과서를 10권 넘게 가지고 다녔으니까. 원래 활발한 친구들은 가방이 팔랑팔랑 가볍잖아요. 참, 아예 안 가지고 다니나?


공부를 되게 잘하고 싶었어요?

아니요. 그냥 엄마한테 혼나니까. 목적이 없는 공부였어요. 어쨌든 공부를 해야 나중에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말에는 공감해요. 갑자기 “나 판사가 너무 하고 싶어졌어!” 하는데 수능이 9등급이면 할 수가 없잖아요. 당시 제 입장에서는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지만 해야만 했고, 실제로 외모도 되게 찌질했어요. 정말 신기한 게 학교에서 지들끼리 막 싸우다 분이 안 풀리잖아요? 그럼 꼭 와서 나를 때려요. 그렇다고 제가 왕따도 아니었는데, 그냥 옆에서 싸움 구경하고 있으면 지들끼리 “으씨!” 하다가 갑자기 저를 때리는 거예요. 그럼 어떡해요? 맞지.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창문 뒤에 선 그의 아스라한 눈빛.

셔츠 가격미정 우영미. 데님 팬츠 7만9천원 디클립.


웃으면 안 되는데, 또 웃어버렸어요. 푸하. 박정민은 연애할 땐 어떤 스타일일지도 궁금해요.

연애 스타일은 나이가 먹을수록 바뀌더군요. 모든 걸 다 갖다 바치는 연애를 하다가 너무 다 잃으니까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회복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더라고요. 그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워 ‘이제는 좀 그러지 말아야겠다’ 결심은 하죠. 옛날에는 사랑이 굉장히 중요했는데…. 지금도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제가 하는 일에 지장을 주는 사랑은 건강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글은 지금도 계속 쓰나요?

지금은 ‘브런치’라는 사이트에 에세이를 쓰고 있고요.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글은 계속 써요. 시나리오나 시놉시스도 쓰고요. 제가 정말 해보고 싶은 건 인터뷰예요. 나중에 시간 되면 전국을 유랑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인터뷰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저는 항상 질문에 대답만 하잖아요. 그것도 재미있는데 제가 궁금한 걸 물어보고도 싶어요.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고. 사람마다 정말 천차만별의 생각을 하니까요.


배우는 어쨌든 화면을 통해 외모로 뭔가를 표현해야 되는 직업이잖아요. ‘기차게’ 잘생기고 싶다는 욕심도 혹시 있어요?

아이, 잘생긴 분들 부럽죠. 너무너무 부럽죠. 예를 들어 <안투라지> 같이 했던 서강준 같은 경우 정말 미남이잖아요. 우리끼리 “그냥 카메라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연기네, 얘는. 너무 잘생겨서” 그랬는데. 그게 제 얼굴에 대한 불만은 아니고, ‘쟤는 살면서 얼마나 편할까?’라는 생각을. 하하. 그분들도 나름 고충이 있겠죠? 전 제 얼굴이 정말 아무런 특징이 없어 또 좋기도 해요. 평범하니까. ‘어떤 역할을 해도 무던하게 녹는 건 있겠지’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어요. 


박정민 배우는 지금 청춘인가요?

아직도 청춘…에 가깝죠. 제가 스무 살 때 했던 생각이 서른둘인 지금이랑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어쨌든 살아오면서 겪는 것들 때문에 깎이는 게 있을 거고, 덧붙여지는 게 있을 테니까, 딱 떼어놓고 보면 뭔가 좀 변한 게 있겠죠? 20대 초반을 돌이켜보면 좀 생각 없이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시간 쪼개서 진짜 되게 많은 일을 했거든요. 누가 공연 제안하면 기꺼이 하고, 무대 만드는 거 도와달라면 도와주고, 편집해달라 그럼 편집해주고. 그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됐을 수도 있지만, 뭔가 좀 느껴가면서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냥 죽어라 열심히만 했던 것 같아요. 


의자 하나만 있어도 다채로운 표정을 낼 줄 아는 남자다.

티셔츠 35만원 겐조. 트레이닝팬츠 13만9천원 푸마. 슬리퍼 26만9천원 파르팔라 by 유니페어.


그러니까 또 청춘이기도 하겠죠.

그렇죠. 오히려 학교 다닐 때는 ‘학교에서 배우는 게 다야! 다른 건 다 거짓말이야’라는 꼰대 마인드가 있었거든요. 근데 나와 보니까 정말 현장에서 배우는 게 어마어마해요. 그러니까 결국 학교에서 연기를 배운 사람들은 이런 싸움을 하는 것 같아요. 배웠던 걸 현장에서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가의 싸움.


연기와 전혀 상관없는 걸 전공한 사람들도 소위 ‘기똥차게’ 연기하니까요.

네. 어떻게 그렇게 하지? 정말 존경해요. 배우지도 않았는데 그냥 부딪쳐 너무 잘하시는 분들을 보면 ‘저 깡은 보통 깡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 절대 그렇게 못 하거든요. 뭔가 배우지도 않았는데 막 덤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그래서 배역 맡을 때 그렇게 지독하게 배우나 봐요. <그것만이 내 세상> 피아노도 그렇고, 이번 <변산>에서 랩도 그렇고요.

저는 제가 안정이 되고, 편안할 정도로 준비가 돼야 할 수 있거든요. 주변에서는 저보고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하는데, 전 그렇게까지 해야 재능을 타고난 분들이 툭 하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인 거예요. 어렸을 때는 굉장히 이성에 기대서 살던 사람이었거든요. 감정이라는 게 억눌려 있었으니까 본능적으로 툭툭 연기하는 사람들에 비해 배우를 할 수 없는 타입의 인간인데, 카메라 앞에서 ‘이거 어떻게 해야 되지?’ 계산하고 헤매는 짓을 하지 않으려면 전 사전에 진짜 많은 준비와 생각을 해야 하는 사람인 거죠. 아마 죽을 때까지 이렇게 해야겠죠.


저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에세이에서 글이 끝날 때마다 “결국 다 잘될 겁니다”라고 주문처럼 썼잖아요. 정말 다 잘될까요?

앗, 저도 동의하지 않아요. 말이 안 되죠. 어떻게 다 잘되겠습니까? 저도 그 문장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래도 그 말에 힘을 받는다는 분들이 계시니까. 아마 다시는 이런 책을 쓰지 않을 거예요. 쓴다면 엄청난 비극을 쓰겠죠. 막 퇴폐적이고…. 그땐 제 이름을 빼고 내겠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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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Photographer KIM CHARM
  • Feature Editor SUNG YOUNG JOO
  • Stylist 구은주
  • Makeup 류현정
  • Hair 오종오
  • Assistant 전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