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커플의 자취방 사수 프로젝트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연인 사이에 둘 중 한 명이 자취를 시작하면 데이트의 패턴이 바뀐다. “라면 먹고 갈래?”라는 고전적인 멘트도 필요 없다. 으레 잠자리를 펴고 누우면 그대로 1박 대실이 가능한 호텔로 바뀐다. 애인이 있어도 나의 공간을 사수할 수 있을까? 리얼 커플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커플, 자취방, 사수, 데이트, 공간,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 커플,자취방,사수,데이트,공간

“자고 가면 안 될까?”여자 친구도 나도 독신 생활자다. 각자의 집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때로 집이 데이트 장소가 될 때도 있다. 평소 레시피를 익혀둔 음식을 해 먹거나, LP를 들으며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밤이 오고, 헤어질 시간이 되면 약간의 갈등이 빚어진다. “자고 갈까?” 이유는 매번 다르다. 좀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어서, 멀진 않은 곳이지만 집에 가기 귀찮아서 등등. 또 다른 이유는 섹스 때문이다. 사랑을 나눈 후에 껴안고 자는 따뜻함 말이다. 20대 때 나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사랑의 교과서로 생각했다. 남자 주인공 ‘토마시’는 나의 롤모델이었다. ‘토마시’에겐 원칙이 있었다. 섹스는 해도 절대로 상대와 함께 잠을 자진 않는다는 것. 이 소설의 신봉자였던 나는 뭣도 모르고 ‘토마시’의 원칙을 따라 했다. 상대가 원할 때조차 잠은 따로 자는 게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세월이 제법 흐르고 함께 잠드는 즐거움을 알게 된 후에 밝혀진 게 하나 있다. 상대의 관점에서 나는 함께 자기 힘든 인간이었다는 것. 나는 코를 심하게 골고 잘 때 땀을 많이 흘린다. 아무리 퀸 혹은 킹 사이즈의 베드에서 자더라도 이런 자가 옆에서 함께 자고 있는 건 곤혹스러운 일일 수 있다. 다행히도 잠들면 ‘업어 가도 모르는’ 상대를 만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현재의 여자 친구는 잠귀가 밝고 예민하다. 그래서 매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좀처럼 ‘자고 가는 것’을 허락받을 수 없다. 처음엔 좀 섭섭했다. 함께 자는 행복을 위해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는 여자 친구의 태도에 대해. 그러나 그게 ‘약간’의 희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섭섭함은 완전히 사라졌다. 생각해보니 내가 20대 시절 ‘토마시’의 원칙을 따라 했던 건 그냥 겉멋이 아니라 상당히 현명한 행동이었다. 드르렁거리며 상대의 잠을 설치게 해 다음 날 하루 종일 피곤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새벽이면 찾아오는 방귀를 이불 속에서 공유하지 않기 위해 억지로 일어나거나 그 소리를 가리기 위해 화장실에서 세면대의 물을 틀어 또 다른 소음 공해를 만들어낼 일도 없었다. 자고 일어나서 ‘떡진’ 머리 등 연인들이 서로 봐서 좋을 거 없는 그 밖의 모습을 노출시킬 필요도 없다. 사실 커플이 각자 자취하는 경우 처음엔 칫솔을 갖다 놓다가 다음 날 함께 출근하기 위해 옷가지를 갖다 놓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반동거’ 상황이 되곤 하는데,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결혼하면 지겹도록 겪을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커플이 만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 그런 생리적 해프닝을 공유하지 않느냐며 놀라기도 하는데, 그건 부부나 가족의 영역이다. 그런 것을 통해 정이 쌓이거나 더 친밀해진다는 이야기도 근거가 없진 않지만 그저 선택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전근대 시대의 연인처럼 내외하는 건 아니다. 함께 자는 것처럼 특별히 좋은 일을 일상 속에서 낭비할 순 없다. 여행을 간다거나, 기념일처럼 특별한 순간에 그 카드를 사용하는 게 좋다. -조원희(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