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유승호? 또 다른 얼굴을 기대하는 이유
낯섦 너머 또 다른 가능성으로 향하는 유승호. 유승호는 말한다. 그 또한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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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셔츠 모두 Kimseoryong.
오늘 촬영 목표는 유승호의 다른 얼굴을 꺼내보는 것이었어요.
마침 오늘 찍어주신 분위기를 되게 좋아해요. 얼핏 어두워 보이거나, 심오해 보일 수 있는데 그게 좋은 의미로 느껴진달까요? 밝고 활기찬 모습도 좋지만, 묵직하고 과묵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거든요. 하하. 그런 모습을 나름 보여드릴 수 있는 화보가 된 것 같아서 재밌었습니다.
‘유승호의 다른 얼굴’은 드라마 <재벌X형사 2>의 ‘유성원’이 단초가 된 것이기도 해요. 드라마 <보고싶다> 이후 14년 만에 연기하는 빌런이죠?
<보고싶다>의 ‘형준’ 때는 어리기도 했고, ‘사이코패스’ 하면 느껴지는 차갑고 감정이 없는 단편적인 모습에 기대 인물을 그렸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접근부터 감독님과 많은 걸 만들어갔어요. 이를테면 ‘유성원’은 시체에 기묘한 감정을 품는 인물인데, 그 표현 방법이나 주변 사람들을 하나의 물건처럼 낮게 여기는 모습이라든지요. 특히 ‘황 집사’와 있을 때 ‘성원’의 무례함을 많이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작품 안에서 반복되는 습관이나 행동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시청자가 ‘성원’을 보는 장면이 많지 않은 거예요. 그걸 인식시키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과감히 생략한 것도 있어요.
지금이라서 표현할 수 있었던 ‘유성원’의 얼굴도 있나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감정 표현 방식이기도 한데요, 일반적으로 작품에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잖아요. 행복함을 표현할 때 환하게 웃고, 화를 낼 땐 인상을 찌푸리거나 언성을 높이는 것들. 그런데 저는 기분이 좋거나 화가 날 때 밖으로 분출하는 것보다는 속으로 그 감정을 가져가는 방식을 선호해요. 그 방식이 ‘성원’이 감정 표현과 비슷했어요. 아마 ‘성원’이 무언가를 성공하고 실패하는 장면에서 지금 제가 말한 게 어떤 의미인지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동안 작품에서 해보지 않았던 시도라, 하면서도 좋았어요.
재킷 Juun.J. 슬리브리스 톱 Ann Demeulemeester. 팬츠, 앵클부츠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니트 톱 Marine Serre. 레더 팬츠 Courrèges.
그동안 선하고 반듯한 청년의 이미지를 견고히 쌓아왔어요. 배우로서 그 범주를 깨고 싶은 순간도 분명 있었을 것 같아요. 그 마음이 이 작품을 선택하는 결정으로도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네, 너무요. 배우로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건 분명 멋지고 감사한 일이니까요. 어떤 캐릭터든 그 인물이 지닌 선함이나 악함이 형성되는 이유는 굉장히 다양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다양성을 연기해본 것이 아마 <보고싶다> 때가 마지막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재벌X형사 2> 대본을 다 읽기도 전에 하겠다고 말씀드렸죠. 이 작품을 계기로 선한 역할과 악한 역할, 더 나아가 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고를 가진 인물들까지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스스로에게 꽤 높은 기준을 두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아요. 그것이 바뀔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내려두게 됐다는, 최근에 한 말도 기억에 남고요. 내려두고 나니 새롭게 보이거나 느껴지는 게 있던가요?
내려놓는다는 건 아마 불가능한 일일 거예요.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어요. ‘나에게 두는 기준을 내려놓고, 나를 칭찬해준다는 건 스스로를 느슨하게 만드는 일일 수도 있겠다.’ 원래 전 잘 사는 게 목표였거든요? 그러니까 그 ‘잘’이라는 게 돈을 아주 많이 벌거나, 대단히 유명한 배우가 되는 게 아니라, 모든 면에서 그냥… 잘하고 싶었어요. ‘잘’의 기준이 되게 높았던 거죠. 저 스스로를 낮추고, 칭찬도 해주지 말고 밀어붙여야 내가 더 열심히 하고, 그래서 발전할 수 있는 주문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려두겠다고 했지만, 사실 모르겠어요. 그저 생각에 생각만 더해질 뿐이죠. 아마 내일이 되면 어떤 사건을 만나서 스스로 기준을 확 낮추게 될지도 몰라요.(웃음) 그러니까 앞으로 제가 마주하게 될 일들을 헤쳐나가면서 지켜보려고요. 조금씩 제 생각도 바뀌어가겠죠. 가끔은 스스로 느슨하게도 만들어주면서요.(웃음)
하하, 맞아요. 제일 좋은 건 그 둘을 왔다 갔다 하는 거죠. 잘하려고 노력하고, 어떤 점은 스스로 잘했다고 인정도 해주면서. 첫 필름 사진전 <BLUE : HOUR 대해 불완전함에 빛과 사이, 어둠 찬란한>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어요. 지금쯤이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나요?
시간이 좀 빠듯한데요.(웃음) 사진 셀렉은 거의 다 끝났고, 지금은 사진을 어떤 크기로 인화할지, 포토북 구성은 어떻게 가져가는 게 좋을지 한창 정리하는 중이에요.
재킷 Kimseoryong.
어때요? 그동안은 카메라 앞의 모습을 보여왔다면, 이번엔 카메라 뒤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유승호의 시선을 공유하게 됐어요.
아, 이제 내가 몇 년 차인데~ 이제 욕은 먹기 싫다!(일동 웃음)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것에 예전만큼 스트레스를 받진 않는데요, “사진 너무 잘 찍었다”는 칭찬은 못 듣더라도 적어도 “너무 별로인데?”라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더라고요. 물론 제 부족함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사진전을 재미있게 보실 수 있게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전시장에 누구도 유승호의 사진을 평가하러 오진 않을 거예요.
맞아요. 똑같은 이야기를 저한테 해주셨어요. 그러니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고요. 하지만 또 인간의 욕심이 있지 않습니까? ‘이건 그래도 잘 찍었다고 해주시지 않을까?’(웃음) 이런 기대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도 해요. 그래서 최대한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어보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카디건 Acne Studios.
얼마 전 다녀온 몽골에서의 사진도 전시장에 걸릴 예정이죠. 몽골은 어땠어요?
사실 몽골이라는 나라를 여행 갈 생각은 한 번도 못 했어요. 여행 하면 보통 화려한 도시나 관광지를 떠올렸거든요. 그러다 몽골을 자주 가는 지인 형을 따라 가게 됐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나라였어요. 여행하면서 하루는 실제 유목민들이 지내시는 게르에서 묵었는데,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그분들을 보면서 ‘이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대체 뭘까?’ 하는 생각에 빠졌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야크의 젖을 짜고, 그 젖으로 음식을 만들고, 오후엔 잠시 쉬다가 또다시 양을 몰고, 또 어느 날은 게르를 이동하죠. 고요하게 반복되는 그들의 일상 안에 있으니 ‘내가 너무 대단한 것만 좇으려고 했나?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자 했던 게 나를 힘들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싶더라고요. 그들의 삶이 부러우면서도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죠. 그리고 재밌었던 일이 하나 있었어요! 자연 한가운데 있다 보니까 와이파이 안테나가 딱 하나 뜨더라고요. “지도도 봐야 되는데, 너무 답답하다~” 하고 있었더니 원주민 아저씨가 스타링크를 가지고 와주신 거예요! 바로 와이파이 안테나가 세 줄 뜨는데, 진짜 너무 신기했어요.(웃음) 그리고 한 분은 갑자기 오토바이를 꺼내시더니, 오토바이로 양을 몰기 시작하시는 거예요. ‘부왕부왕’ 하면서 양을 모는데 그 극과 극인 모습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특히 스타링크가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하하.
오토바이로 양을 모는 원주민의 사진도 볼 수 있는 건가요?(웃음)
아, 이게 너무 아쉬운 게 스타링크가 열리자마자 인터넷 하기 바빠서 사진 찍을 생각을 못 했어요. 대신 6일 동안 몽골의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곳의 자연과 유목민분들, 동물들의 삶을 최대한 많이 담았어요. 화려한 미국의 일상과 완전히 대비되는 모습의 사진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미국에선 인물 사진도 찍었다고 했죠. 앞으로는 어떤 사진을 찍고 싶어요?
몽골에 다녀오고 느낀 건 앞으로 더 여행을 많이 가야겠다는 것이었어요. 다른 나라의 일상과 인물을 담는 게 특히 재미있었거든요. 이번 사진전을 준비하면서도 사진을 찍는 방법, 사진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부분이 있어요. 그런 걸 적용해서 사진을 찍는다면 앞으로 더 재미있는 사진이 나오리라 기대해요.
어떻게 바뀌었어요?
필름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잖아요. 그래서인지 저도 어떤 피사체든 필름을 아껴서 딱 한 번 찍고 말았거든요. 그런데 전시를 주관해주시는 대표님께서 “한 피사체를 여러 번 찍어보세요” 그러시는 거예요. 그 말이 생각나서 속는 셈치고 여러 번 찍어봤는데, 정말 사진마다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내가 이걸 모르고 있었다는 걸 정말 크게 느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피사체를 찍는 아이 레벨을 다르게 두게 됐다는 것. 보통 일상에서 귀여운 강아지를 만나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많이 찍잖아요. 그런데 한 피사체를 여러 번 찍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가 아이 레벨을 낮춰 앉아서 찍게 되더라고요. 그 단순한 걸 저는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앉아서 찍으니까 너~무 다르게 보이고, 느낌이 재미있게 바뀌는 사진들도 있다는 걸요. 이제 알았으니 앞으로는 더 다양하게 이것저것 재미있게 찍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궁금해요. 앞으로 제가 어떤 사진을 찍게 될지!
재킷 Juun.J. 반지 모두 Tom Wood.
물건을 굉장히 오래 쓰더라고요. 여러 콘텐츠에서 몇 년이 지나도 같은 물건을 쓰는 승호 씨를 보면서 반성 많이 했습니다.(웃음)
그게 어디서 시작된 거냐면요! 저는 일단 옷에 관심이 없어요. 이 일을 하는 이상 최소한 예의는 지켜야겠다는 마음에 가끔 하나씩 사는데요, 놀랍게도 지금 입고 있는 이 옷도 얼마 전에 산 거예요.(웃음) 그리고 전 다큐멘터리를 워낙 좋아하는데, 환경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옷에는 관심이 없으니, 물건을 오래 쓰는 게 개인으로서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고요. 내가 지킬 수 있는 건 지키면서, 최대한 덜 쓰는 것만으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게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쓴 지갑인데요, 오래 쓰니 군데군데 찢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1만5천원짜리였나? 지갑을 새로 샀는데 너무 손에 안 익는 거예요. 내 지갑이 아니고 꼭 다른 사람의 것처럼 느껴져서 다시 이 지갑으로 돌아왔어요. 이제야 좀 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물건도 오래 쓰고, 연기도 어느새 삶에서 가장 오래 함께한 일이 됐어요. 유승호에게 무언가를 오래 좋아하고 지킨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어떤 큰 뜻을 지니고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제 옆에서 오랫동안 함께해온 것들은 나를 ‘나’답게 만들어준다고 느껴요. 누군가에겐 그저 낡은 물건일 수도 있지만, 그 시간들이 비로소 나로 있게 만들어주거든요. 또 그것이 보람으로 돌아오기도 하고요.
재킷, 셔츠, 팬츠, 벨트, 커프스, 슈즈 모두 Prada. 안경 Low Gender. 양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아이러니하게도 이 화보엔 ‘나다움’과 거리가 있는, 낯선 얼굴을 담았네요.(웃음) 유승호가 아직 만나지 못한, 그래서 궁금한 유승호의 다른 모습이 있나요?
예전에 연극 <킬링시저>를 할 때 정말정말정말 힘들었어요. 많이 힘들지만 내 손에서 끝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치열하게 무대에 올랐던 기억이 나요. 당시엔 진짜 솔직히 너무 힘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때만큼 스스로가 빛나는 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기회가 된다면 어떤 작품에 푹 빠져서 그 인물로 치열하게 연기하는 모습을 다시 한번 보고 싶어요.
‘유승호’로선요?
음… 글쎄요. (눈을 감고 한참 생각하다) 어려운데요. 잘 먹고… 잘 사는 것?
Credit
- 피처 에디터 천일홍
- 포토그래퍼 장기평
- 헤어 엄정미(PRANCE)
- 메이크업 달래(PRANCE)
- 스타일리스트 박지영
- 어시스턴트 정주원
- 아트 디자이너 안영은
- 디지털 디자이너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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