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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요리사2 선재스님, 윤주모, 김희은이 말하는 2026 K-한식

한식과 국내 식문화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찬란한 3인의 셰프 선재스님, 윤주모, 김희은을 만나다.

프로필 by 천일홍 2026.02.06

우주를 건강하게 만드는 사찰 음식 선재 스님


마침 함박눈이 왔어요. 이곳은 계절의 변화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지요? 산자락에 있는 곳이니까요. 이곳엔 2018년쯤 자리를 잡았어요. 일과는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아침을 만들어 먹는 것으로 시작해요. 예전에는 눈뜨면 매일같이 강의하러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곤 했는데, 요즘은 그렇지는 않아요. 쉼이 좀 필요하거든요. 창밖으로 마당에 놓인 장독대와 제철 식재료들도 보여요. 사찰 음식을 비롯한 한식은 장이 매우 중요하니 여러 종류의 장을 담가둔 거예요. 식재료들은 밭에서 자란 걸 말리거나 보관하는 거고요. 저는 밭에 따로 물을 주거나 농약을 치지 않아요. 자연이 허락하고 살아남은 강한 놈들만 키우는 거죠. 적적할 때도 있을 법한데요. 혼자 있지 않아요. 깊은 산에 있는 곳이다 보니 산토끼도 종종 찾아와요. 고라니와 노루도 가끔 와서 인사하고 그래요. 어떤 날에는 멧돼지에게 음식을 좀 줬더니 새끼까지 열 마리쯤 데려오더군요.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이하 <흑백요리사 2>)를 통해 알려진 스님과 사찰 음식에 대한 관심이 엄청납니다. 반면, 이 시골 마을에 오니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고요하네요. 스님도 삶의 변화를 느끼나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모르는 사람의 전화도 많이 오긴 해요. 어쩌다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니 저와 제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더라고요. 예전에는 중장년층이나 어르신들이 알아봤다면, 요즘은 청소년들이 알아보는 경우도 많아요. 까르르 웃으며 같이 사진 찍자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수행자니까, 이런 관심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지요.


<흑백요리사 2>는 경연 프로그램입니다. 그런 경쟁에 스님이 참여한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적잖이 놀랐습니다. 출연을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요리사가 아닌 수행자로서 음식과 재료를 대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마트나 백화점에서 파는 장뿐만이 아닌, 장독대에서 숙성해 만든 건강한 장으로 만든 요리 등이 그 예시지요. 세상에는 귀하고 좋은 약인 장과 식재료도 있으니까요. 우리 전통의 맛과 기술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 식문화와 사찰 음식에 대한 이야기죠.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승부에 참여한다는 것에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승부보다는 수행자로서의 본분과 사찰 음식을 비롯한 요리에 대한 철학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어요. 제가 사찰 음식 강의만 30년 정도 했거든요. 대학교에서도 하고, 요리사들 앞에서도 했고, 아이들을 가르친 적도 있고요. 옥동식 씨처럼 <흑백요리사 2>에 출연한 셰프 중에도 제 강의를 들은 분이 있더라고요. 제 강의를 듣고 뉴욕에 가게를 차릴 때 장독대를 만들었다고 했지요. “스님 덕분에 요리사로서의 삶이 변했습니다”라는 말도 들었어요. 저는 수행자로서 식재료에 대한 감사함을 늘 강조하거든요. 쌀 한 톨일지언정 농부의 노고를 88번 거치고, 비바람과 세월을 견뎌 건강한 채로 제게 온 제철 재료라는 점을 잊지 않고, 먹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요리하면 만드는 사람도 행복해질 테니까요.


소복이 쌓인 눈밭에 사람 한 명 오롯이 걸을 수 있을 만큼의 작은 길이 놓여 있었다. 스님은 촬영팀이 방문한다는 소식에 안전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빗자루를 들고 눈길을 만들어두신 듯했다. 그 길을 조심스럽게 따라 오르자, 선재 스님의 사찰 음식 연구소가 나왔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도토리, 버섯, 메주 등 말리거나 보관 중인 식재료들이 옹기종기 있었다. 압도적인 미학의 불교 공예품, 세월이 쌓인 목재 가구와 물건들 사이에서 두리번거리는 촬영팀에게 선재 스님은 향긋한 차를 내어주셨다. 스님의 그 곱고 자상한 성정만큼이나 건강하고 맑은 맛이 특징이었고, 20년쯤 된 숙성 간장으로 우린 차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오셨을 테니 식사도 못 하셨지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주방에서만큼은 날렵하고 정확한 움직임으로 삽시간에 떡국과 김치를 예쁜 그릇과 상에 올려 내어주셨고, 그 맛에는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건강함이 있었다.

소복이 쌓인 눈밭에 사람 한 명 오롯이 걸을 수 있을 만큼의 작은 길이 놓여 있었다. 스님은 촬영팀이 방문한다는 소식에 안전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빗자루를 들고 눈길을 만들어두신 듯했다. 그 길을 조심스럽게 따라 오르자, 선재 스님의 사찰 음식 연구소가 나왔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도토리, 버섯, 메주 등 말리거나 보관 중인 식재료들이 옹기종기 있었다. 압도적인 미학의 불교 공예품, 세월이 쌓인 목재 가구와 물건들 사이에서 두리번거리는 촬영팀에게 선재 스님은 향긋한 차를 내어주셨다. 스님의 그 곱고 자상한 성정만큼이나 건강하고 맑은 맛이 특징이었고, 20년쯤 된 숙성 간장으로 우린 차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오셨을 테니 식사도 못 하셨지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주방에서만큼은 날렵하고 정확한 움직임으로 삽시간에 떡국과 김치를 예쁜 그릇과 상에 올려 내어주셨고, 그 맛에는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건강함이 있었다.


사찰 음식 명장 1호, 르 코르동 블루를 비롯한 세계적인 요리 학교 및 기관에서의 강연, 사찰 음식 관련 도서 집필 등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인데, 참가자로서 누군가에게 평가받는다는 건 어땠나요?


출연을 결정하니 누가 제게 그러더라고요. “탈락하면 어떡하시려고요?” 제가 그랬죠, 괜찮다고. 요리를 평가하는 건 심사위원 두 사람(백종원, 안성재)의 입맛이지, 그게 제 음식과 맞지 않다고 실망할 필요 없으니까요. 저는 어린아이도 좋아하고, 누구에게나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것에 집중할 뿐이에요. 평가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저는 경쟁도, 1등이 되는 것에도, 상금에도 관심이 없었어요. 그 모든 성과는 셰프로서 생존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 가져갈 몫이라 여겼죠.


육류와 생선은 물론이고 오신채를 쓰지 않는 사찰 음식을 다룬다는 점에서, <흑백요리사 2>의 다른 출연자들에 비해 불리한 조건으로 참가한 셈이에요.


불리하다는 생각은 가져본 적 없어요. 강연을 위해 어느 나라에 가서 요리해도 저는 실패한 적이 없거든요. 저는 누구라도 제 음식으로 설득할 자신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제 음식은 스스로 행복한 동시에 남도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하거든요.


<흑백요리사 2>에서 세미파이널까지 올라, 100명의 셰프 중 최종 6위라는 성과를 냈습니다. 반면에 경연마다 상대가 이기길 바란다고 말씀한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승부라면 욕심날 법도 한데요.


옥동식 씨도, 김희은 씨도, 다른 셰프들도 다들 열심히 했으니까요. 팀전으로 요리를 같이 하고 함께 탈락했을 때 희은 씨가 속상해하더라고요. 그러다 저와 1:1 대결을 하게 되자 제가 그랬어요. “희은 씨, 이번에는 꼭 이기세요. 함께 사 온 재료도 원하는 거 다 가져가도 돼요.” 그리고 저는 남은 재료 몇 개로 요리를 만들어 심사를 받았죠.


사찰 음식은 때때로 채식과 혼동되곤 해요. 선재 스님이 말씀하시는 사찰 음식의 정의가 궁금합니다.


사찰 음식은 온 우주의 생명을 존중하고, 모든 생명이 행복해야 나 또한 행복하다는 부처님 가르침의 연장선이에요. 그래서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고 식재료를 구해 요리하는 것에서 시작하죠. 예를 들면 닭이 좁은 닭장에 갇혀 성장 촉진제를 맞으며 낳은 달걀이 과연 건강할까요? 닭도 행복해야 건강한 달걀을 낳겠지요. 불교는 사찰 음식에 단순히 고기를 쓰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깨끗하고 건강한 재료와 식문화를 이야기하는 거죠. 그래서 단순한 채식과는 완전히 달라요. 만드는 사람인 수행자의 마음도 담기고, 그 정신과 문화는 음식과 연결되니까요.


더불어 사찰 음식의 담백함을 모르는 이들은 “맛을 내지 않는다”라는 오해도 합니다. 이런 편견에 대해서는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은가요?


‘맛없는 음식’이 아니라, 무(無)맛이 아름다울 때가 있지요. 예를 들어 맑은 물은 자극적인 거 하나 없이 맑고 좋은 맛이 나잖아요. 그야말로 천연의 맛이죠. 사찰 음식이 추구하는 맛도 그런 거예요. 인위적인 게 아니라 자연이 준 식재료의 맛에 불필요한 것을 더하지 않은 음식이니까요. 우리는 물마다 다른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선물과 같은 미각이 있으니, 사찰 음식이 선사하는 본래의 맛을 알아가는 것도 좋은 깨달음이 될 거예요.


‘마라탕’, ‘두쫀쿠’ 등 몹시 맵거나 단 음식이 끝을 모르고 유행합니다. 사람들이 그런 자극적인 맛을 찾는 이유는 뭘까요?


글쎄요. 욕구불만이 생기게 만드는 세상이라 그런 걸지…. 그보다 중요한 건 그런 입맛에 맞춰 자극적으로 만들고 상업적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불교에서는 음식을 만들 때 갖춰야 할 조건이 있어요. ‘삼덕(三德)을 갖추고 육미(六味)를 조화롭게 해야 한다.’ 어떤 의미인가요?


삼덕 중 첫 번째는 청정(淸淨)이에요. 재료를 깨끗이 씻는 것뿐 아니라 재료에 불필요한 첨가제나 비료 등을 주면서 키운 건 청정하지 않다는 뜻이 있어요. 그리고 유연(柔軟). 물리적으로 먹기 좋게 부드럽게 만든다는 의미이자, 그 대상이 노인부터 아이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유연하게 조리한다는 뜻이지요. 마지막은 여법(如法)입니다. ‘법에 맞게’라는 뜻으로, 재료를 얻고 요리로 만드는 과정 그리고 먹는 태도까지 올바른가에 대한 물음이지요. 욕심내어 재료를 과도하게 채취하지 않았는지, 감사하게 먹었는지, 이 모든 과정이 윤리적이어야 하니까요. 육미는 짠맛, 단맛, 신맛, 매운맛, 쓴맛, 떫은맛이 조화롭게 상에 올라왔는가에 대한 물음이죠. 한 가지 맛에 치우치지 않고, 몸에 자극적이지 않으며, 먹고 난 뒤에도 편안한 상태를 추구하는 거예요.


사찰 음식은 한식이기도 해요. 스님이 생각하는 한식만의 매력도 궁금합니다.


한식은 5천 년이 넘는 굉장히 오랜 역사가 있어요. 게다가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에 산도 많아 지역마다 다른 식재료가 자라고, 저마다 다른 장을 활용한 요리가 특징이지요. 게다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로서 제철 재료도 계절마다 다른데, 제철 재료는 자연이 계절에 맞게 사람의 몸에 꼭 필요한 영양분을 품고 있다는 특징이 있어요. 겨울에는 몸을 따듯하게 해주는 식재료를, 여름에는 또 그에 맞는 재료가 자연에서 옵니다. 그리고 지역 음식은 물론 사찰 음식과 그 역사를 함께한 궁중 음식 같은 요리도 있고요. 긴 역사만큼이나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음식이라는 점도 한식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식에는 한국인의 민족성이 보이기도 합니다. 대체로 양이 많고, 여러 반찬이 상에 올라오지요. 역사를 돌아볼 때, 전통적 한식에서 우리가 현재 잃어버린 건 뭔가요?


우리는 24절기에 맞춰 그때그때 몸에 필요한 식재료를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 먹는 전통이 있었어요. 그런데 점점 그런 요리가 줄어든 게 아쉬울 따름이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의 침략으로 인해 억지로 잃게 된 것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이라도 이런 문화를 지키며 장을 만드는 장인부터 떡을 쑤는 분, 술을 빚는 명인, 전통 그릇을 만드는 분들의 지혜가 후손들에게도 계승되고 더 널리 알려지면 좋겠어요.


2026년 새해가 밝았어요. 올해는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요?


올해는 해야 할 숙제가 좀 있겠지요. 더 많은 사람이 음식의 소중함을 알면 좋겠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행복하고, 그 행복이 약이 되어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면 좋겠어요.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어떤 음식을 만들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숙제는 이거예요. 세상의 모든 식재료에 감사하고 그 모든 게 행복하게 공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교육하고 함께 나아가는 것.



주모가 사랑으로 빚은 술과 음식 윤나라 셰프

‘셰프’와 ‘주모’, 두 호칭 중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나요?

단연 주모죠. 이건 직업적인 호칭을 넘어, 제가 나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더 가까워요. 주모라는 말에는 이상하게도 제 삶의 태도가 고스란히 들어 있거든요. 벌써 8년째 ‘윤주모’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는데, 그 시간 동안 저는 이 단어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것 같아요.


요즘은 ‘셰프’라는 호칭이 훨씬 보편적인데도요?

저 또한 요리를 직업으로 하니 그렇게 불릴 수 있죠. 셰프라는 말은 굉장히 정확한 직업명이잖아요. 기술과 전문성을 상징하고, 시스템 안에서의 역할도 분명하죠. 그런데 그 호칭으로 불릴 때마다 저는 늘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마치 제 삶의 일부만 설명되고 나머지는 빠져 있는 느낌? 반면 주모라는 말에는 생활이 묻어 있어요. 술과 음식뿐 아니라 공간, 손님, 시간 같은 것이 다 포함돼요. 옛날 주막의 주모를 떠올리면, 단순히 음식만 만드는 존재가 아니었잖아요. 길을 가다 쉬어야 하는 사람도 손님으로 받아들이고, 사정도 들어주고, 손님의 하루를 맡아주는 사람이었죠. 저는 그 이미지가 너무 좋았어요.


주모라는 이름이 삶의 태도를 만들어주기도 했나요?

오히려 그 이름에 맞게 사는 과정에서 태도가 만들어졌다고 느껴요. 주모로 불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빨리 결과를 내려 하지 않게 됐고, 음식을 대할 때도 ‘잘 만들어야 한다’보다 ‘어떤 상을 손님에게 내놓을 것인가’를 더 많이 고민하게 됐죠. 손님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어요. 소비자가 아니라, 잠시 함께 머무는 사람이랄까요? 그 사람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이 공간에 들어왔는지를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주모라는 말에는 그런 상상력이 따라와요.


<흑백요리사 2> 출연 이후 일상에도 변화가 컸을 것 같아요.

변화는 분명 있었어요. 예상했던 방향과는 조금 달랐고요. 방송 이후 미국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도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있었어요. 이 프로그램이 한국 안에서만 소비된 콘텐츠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죠. 그 전까지는 ‘한국 시청자에게 어떻게 보일까’만 고민했는데,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제 요리를 보고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낯설면서도 인상 깊었어요.


해외 반응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나요?

한국 분들은 주로 제가 만든 음식 그 자체에 대해 질문하세요. 이건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디서 먹을 수 있는지, 집에서도 가능한지 같은 질문들이죠. 그런데 해외 분들은 제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요. “당신이 재료를 대하는 방식이 감동적이었다”, “그 존중의 마음이 나에게 큰 울림을 줬다” 같은 메시지들이었어요. 처음엔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됐어요. 언어도 다르고, 음식 문화도 다른데 그게 어떻게 전달됐을까 싶었거든요.


요리가 언어를 넘어선 순간이었겠네요.

맞아요. 황탯국은 어떤 사람에게는 낯설 수 있는 음식이에요. 그 낯섦을 넘어 공감이 전달됐다는 건, 결국 요리의 결과물보다 그 과정과 태도가 보였다는 뜻이겠죠. 그 경험 이후로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어떤 태도로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제 일을 좀 더 긴 호흡으로 보게 됐죠.


<흑백요리사 2> 출연을 결심한 이유도 궁금해요.

제 가게는 작은 편이에요. 화려한 다이닝도 아니고, 미디어에 익숙한 공간도 아니죠. 그래서 방송에 나간다고 해서 삶이 극적으로 바뀔 거라는 기대는 없었어요. 다만 전통주와 한식을 함께 하는 사람으로서, 100명의 셰프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저 같은 사람이 하나쯤 있어도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요리는 이런 방식으로도 가능하다’는 또 하나의 선택지를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특히 보여주고 싶었던 장기가 있었나요?

소줏고리로 술을 내리는 과정이요. 요리와 주조를 동시에 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고된 일이에요. 둘 다 시간과 집중을 요구하고, 어느 하나도 대충 할 수 없거든요. 저는 그 두 가지를 분리하지 않고 살아왔어요. 요리를 하면서 술을 생각하고, 술을 빚으면서 음식의 온도를 떠올려요. 그게 제 삶의 리듬이었고, 숨기고 싶지 않았어요. 주모니까요.


경연에서의 모습도 결국 삶의 연장선이었겠네요.

맞아요. 경연장에서는 연출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재료를 고르는 손, 시간을 쓰는 방식, 선택의 기준 같은 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잖아요. 저는 그냥 그동안 살아온 대로 했을 뿐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편안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는다면요?

패자부활전이요. 그때는 정말 집에 갈 준비를 하고 황태를 챙겨 갔어요. ‘여기까지구나’라는 마음이었죠. 그리고 임성근 선생님과 함께 했던 미션도 기억에 오래 남아 있어요.


그 경험이 특별했던 이유는요?

혼자 업장을 운영하는 사람은 정말 외로워요. 누가 옆에서 봐주거나, 방향을 점검해주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한식 경력 40년의 선배 요리사와 한 공간에서 같은 목표로 요리한다는 건, 요리 이상의 의미였어요. ‘아, 내 고민이 헛된 게 아니었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고, 그게 큰 위로로 남았죠.


재킷 L’H.A.S. 블라우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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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의 셰프를 가까이서 본 경험은 어땠나요?

압도적이었어요.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하는 멋진 셰프고요. 하지만 대부분 처음 만나는 분들이었어요. 라운드가 올라갈수록 남는 분들은 정말 요리로 살아온 사람들이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걸 배웠어요. 요리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이자 태도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죠.


준결승까지 오르며 책임감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여기까지만 보여주자’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여기까지 온 김에, 가진 걸 다 쓰고 내려가자’라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결과와 상관없이, 제 선택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게 중요했어요. 그게 열심히 한 자신에게 바치는 예의라 생각했거든요.


지금의 일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려주세요.

2019년에 해방촌에서 ‘윤주당’을 열었어요. 전통주와 한식을 함께 내는 공간이었죠. 코로나19를 지나오면서 정말 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그 시간 덕분에 제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더 분명해졌어요. 이후 2024년에는 운니동에 양조장 겸 스튜디오를 열었고, 낮에는 술 빚는 법을 가르치고, 밤에는 요리를 했어요. 몸은 고되지만, 하루의 리듬이 분명해서 마음은 오히려 단단해졌죠.


윤주모가 말하는 전통주의 매력은 뭔가요?

전통주는 기다림의 술이에요. 누룩, 온도, 습도, 계절. 이 모든 게 맛을 결정하거든요. 마음처럼 빨리 되는 게 거의 없어요. 그래서 더 겸손해져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되죠. 이 과정 자체가 저한테는 큰 배움이에요.


요리 미식 트렌드의 변화도 체감하나요?

예전에는 빠르고 자극적인 것이 주목받았다면, 요즘은 천천히 쌓인 맛을 이해해주는 분들이 늘었어요. 이 일을 10년 넘게 하면서, 이제야 제 속도로 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가장 큰 변화예요.


윤주모의 요리를 한 단어로 말한다면요?

사랑.


술은요?

술은 낭만이죠. 이것들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기술과 재료를 활용해도 제 요리는 완성되지 않아요.


앞으로 윤주모의 계획이 있다면요?

술을 빚고, 음식을 만들고, 그 시간을 함께 나누는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또한 주모라는 존재가 또 다른 삶의 방식으로 남았으면 해요. 빠르지 않아도 괜찮고, 크지 않아도 괜찮은 삶. 저는 그걸 계속 증명하며 살고 싶어요.



한국의 식문화를 재해석하는 일 김희은 셰프


하루아침에 화제의 인물이 됐어요. 유명해지면 주변이 달라진다고도 하던데, 이런 큰 관심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죠. 크게 불편한 건 없는데, 앞으로도 바르게 살아야겠다 생각하게 돼요.(웃음)


<흑백요리사 2>가 김희은 셰프에게 남긴 건 뭔가요?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방송에 나가면 얻을 것과 잃을 것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그러다 셰프로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출연을 결정했죠. 저는 백수저로 출연했잖아요. 촬영 초반에 위층에서 흑수저 요리사 80인의 치열한 조리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게 많아요. 한식, 일식, 중식 등 열정 넘치는 다양한 셰프가 있더라고요. 저 또한 셰프로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됐고, 신선한 자극이 됐어요.


제자이기도 한 ‘아기 맹수’ 김시현 셰프와의 요리 대결도 있었어요. 당시를 돌아보면 어떤가요?

시현이가 출연할 줄 몰랐어요. 그래서 방송에서 “시현아, 너 왜 여기 있니?(웃음)”라고 물었던 것도 진심이었죠. 개인적으로 1:1 대결 때 시현이와 붙고 싶지 않았어요. 서로 다른 셰프와 대결해서 이기고 함께 더 높이 올라가길 바랐거든요. 이번에 다시 보니 어찌나 멋진 셰프가 됐던지, 뿌듯했어요.


유독 기억에 남은 대결을 꼽는다면요?

선재 스님과의 대결. 1:1 대결 미션 직전까지 스님과 한 팀이었는데, 팀전에서 졌더니 스님과 대결하는 구도가 됐잖아요. 한 팀일 때는 서로 존중하고 응원하며 즐겁게 요리했는데 갑자기 승부를 겨루게 되니 어찌나 놀랐는지 몰라요.


<흑백요리사 2>를 돌아보면 아쉬운 점도 있나요?

제 요리 세계와 철학을 더 많이 보여주지 못한 거? 미슐랭 1스타 오너 셰프기도 하고, 업계에서는 알려졌지만 대중적으로는 그렇지 않았으니 셰프로서 제 모습을 더 보여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어요. 저만의 가치관과 메시지가 담긴 요리, 그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해 터득한 조리 기술들 등 더 보여주고 싶은 게 많죠. 하지만 괜찮아요. 직접 운영하는 파인다이닝 ‘소울’을 통해 선보이고 있거든요.


파인다이닝 ‘소울’은 어떤 철학으로 운영하는 곳인가요?

2019년에 남편이기도 한 윤대현 셰프와 함께 문을 연 한식 파인다이닝이에요. 남편은 이탈리아 요리를 베이스로 하는 셰프인데, 한식에서 출발한 저와 교집합에 있는 디시를 선보이고 있죠. 저와 대현 셰프의 색을 적절하게 믹스한 음식을 추구한달까요? 말하자면 ‘코리안 컨템퍼러리’고, 한국의 식문화를 저희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있어요. 단순하게 보면 ‘퓨전 요리’인데, 저희는 그보다 더 깊은 뿌리의 전통적인 한국 식문화에 서양식 요리의 면면을 활용한 ‘터치’를 더하고자 해요. 궁중 음식처럼 ‘고급 요리’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대상이 친근한 김치볶음밥을 근사하게 재해석하는 게 될 수도 있죠.


약 4년간 미슐랭 1스타를 유지해온 과정에서 ‘소울’이 가장 자신 있게 지켜온 기준은 뭔가요?

어떤 모범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랄까요? 저희는 직원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사명감과 소명 의식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저희와 함께 일했던 셰프가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이 친구 ‘소울’ 출신인 걸 보니 일 잘할 것 같아”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요.


최근 새로 개발한 메뉴도 있나요?

‘토마토쌈장’이요. 오늘 촬영 소품으로 토마토를 가져오셨던데, 어찌나 반갑던지요.(웃음) 토마토쌈장은 저희 메인 반상에서 고기를 쌈 싸 드실 수 있게끔 준비한 요리예요. ‘소울’의 철학대로 감칠맛 있고 비교적 짜지 않은 저염 쌈장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 생각으로 직관적이고 침샘을 자극하는 맛을 위해 토마토를 더하게 됐죠.


일상적인 한식 한 접시와 파인다이닝 한식 한 디시는 어떻게 다른가요?

누구나 아는 맛만 추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파인다이닝에서 지불하는 식사 비용에는 음식을 포함한 모든 서비스 및 경험 비용이 포함된 건데, 그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거죠. 예를 들면 제육볶음을 선보이더라도 새로운 맛과 향신료, 소스를 더할 수도 있고요.


그런 요리 철학은 ‘소울’과 같은 건물에서 운영 중인, 미슐랭 빕 구르망을 받은 식당 ‘에그앤플라워’에서도 유효한가요?

식문화를 재해석하는 저희만의 요리 철학은 같아요. 파인다이닝 ‘소울’이 한식 베이스에 이탈리아 요리의 터치가 들어간 음식을 선보인다면, ‘에그앤플라워’는 그 반대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토마토 파스타, 알리오 올리오, 크림 파스타 등 익히 알려진 파스타 요리는 없어요. 대신 저희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요리의 DNA 중 3분의 1은 한식의 무언가를 더했죠.


요리에 있어 기술적인 완성도와 감각적 표현 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나요?

요리마다 다른 것 같아요. 한 가지 분명한 건 저희가 선보이는 요리는 충분한 공감과 직관적인 맛을 추구한다는 거예요. 미학과 감각은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지만, 그 직관적인 맛의 통쾌함은 모두가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셰프로서 ‘완벽한 한 접시’란 어떤 상태라고 생각해요?

어떤 요리든 그걸 만든 셰프의 기분과 상태가 먹는 사람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대단한 기술로, 값비싼 식재료를 활용해 만들어도 셰프가 하기 싫은 마음으로 만든 요리는 손님도 알아챌 테니까요. 그래서 주방의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체계적이고 각자 일에 집중하는 태도는 물론 모두 즐겁게 일하는 자리가 되면 좋겠어요.


성별이 셰프의 요리 세계에 영향을 준다고 느낄 때도 있나요?

오랫동안 셰프로 일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여성 오너 셰프가 현저히 적더라고요. 얼마나 적으면 매체들이 ‘여성 셰프 특집’으로 인터뷰를 제안하는 경우가 많을까 싶고요. 제가 있는 곳에서 열심히 했을 뿐인데, 어느샌가 여성 셰프들을 대표하는 자리에 가게 되기도 하고요. 그만큼 파인다이닝 쪽에서 살아남는 여성 셰프가 적다는 뜻인데, 출산과 육아 때문일 수도 있겠죠. 여성 셰프는 섬세하고, 남성 셰프는 좀 더 카리스마 있다는 어떤 선입견이 있을 수도 있고요. 한편으로는 하루에 13~14시간씩 주방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 곳이라는 점도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식 시장과 미식 산업이 지금 가장 변화하는 부분은 무엇이라 생각해요?

팬데믹 이후 요식업계에 침체기가 온 적도 있고, 한동안 신입 셰프가 되려는 사람의 수도 현저히 줄어 채용난을 겪기도 했어요. 그러다 넷플릭스에서 <흑백요리사>가 나왔고, 여러 요인이 합쳐져 한국의 미식 시장도 다시 상승세를 타게 됐죠. 하지만 여전히 생각보다 한식을 지향하는 이가 적긴 해요. 조리 학교에서 한식학과가 사라지는 경우도 많고요. 여러모로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요.


한식이 파인다이닝 무대에서 가장 많이 받는 오해나 편견은 무엇이 있을까요?

한식 다이닝은 고리타분하다?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게 ‘고급 한정식’을 추구하는 식당이 워낙 많다 보니 그런 이미지로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잘못된 건 없죠. 다만 한식 파인다이닝은 고급 한정식과 다르다는 게 더 알려지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그런 면에서 ‘소울’은 지금 저희가 추구하는 바를 앞으로도 굳게 믿고 나아가려고 해요. 저희가 잘하면 팬덤도 더 커질 거고, 그러다 보면 한식만이 가진 매력을 특별하게 소개하는 다이닝이 될 거라 보거든요. 김희은답고, 솔직하게.


앞으로 김희은 셰프와 ‘소울’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건가요?

한식에서 장은 매우 중요하잖아요. 그 장을 저희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이 또한 멋진 한식이라는 걸 더 알리고 인정받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유명세를 좇는 게 아니라, 선하고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셰프를 꿈꾸지만 형편이 어려워 요리를 배울 수 없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고, 독거노인을 비롯한 취약 계층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고요.

Credit

  • 프리랜스 에디터 양보연
  • 사진 테드 민
  • 에디터 천일홍
  • 아트 디자이너 장석영
  • 디지털 디자이너 장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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