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2030 여성이 연애하지 않는 이유

지금 MZ 세대에게 연애가 힘든 이유는 백만 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하는 '반박 불가'한 이유를 찾아서!

프로필 by 김미나 2025.06.08

한적한 주말 오후, 동네 카페에 갔다가 소개팅으로 추정되는 두 남녀를 보았다. 비교적 좌석이 가까워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됐다.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공기, 서로의 대화에 집중하며 중간중간 내뱉는 호응과 긍정의 끄덕임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책에 얼굴을 묻은 채 뻔뻔하게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사소한 부분도 크게 칭찬하는 남자와 그럴 때마다 부끄러워하며 수줍게 웃는 여자.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봤다.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사람의 얼굴. 카페를 나오며 생각했다. ‘저들은 훗날 이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만큼 완벽한 때는 없다. 연애의 시작점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긴장과 설렘, 그리고 상대에게 빠지게 되는 아주 찰나의 순간. 그 순간을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흥미진진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연프(연애 프로그램)’에 미쳐 있는 걸까? 연애 자체보다 ‘연애를 관찰하는 재미’가 더 크니 말이다. 바야흐로 연프 과열 시대다. <나는 솔로> <하트시그널> <솔로지옥> 같은 정석의 연애 프로부터 혈육의 연애를 도와주는 <연애남매>, 점술가들의 로맨스를 그린 <신들린 연애>, 남자들이 한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연애하는 <남의연애>까지, 취향도 콘셉트도 가지각색이다. 더 자극적이면서, 독특한 소재의 연애 프로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고백하자면, 처음에는 이런 연애 프로의 과열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내 연애도 바빠 죽겠는데, 왜 남의 연애까지 봐야 하는 거지? 그러다 우연히 퇴근길 지하철에서 유튜브 숏츠에 뜬 <환승연애> 시즌 2 클립 영상을 보게 됐다. 밈으로 유명해진 “우리 스물한 살에 만났는데, 벌써 스물아홉이야~“가 흐르는 순간, 나는 별안간 권상우의 소라게가 되었다. 마치 그들의 서사에 지분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떨어지는 눈물을 애써 감추는 내 얼굴을 맞은편 유리창을 통해 발견했을 때… 인정해야 했다. 남의 연애에 이렇게 과몰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러고 보니, 이해가 됐다. 연애 프로만큼 부담 없이 연애의 설렘과 감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 또 있을까? 현실 연애보다 덜 부담스럽고, 더 자극적이며 대리 만족은 물론 판타지까지 채워주는데, 이런 완벽한 연애가 또 어딨담?

TV 세상 속 남녀들은 연애 중이지만, 정작 현실 세계 속 사람들은 연애를 하지 않는다. 0.78이라는 충격적인 출산율에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 조앤 윌리엄스가 머리를 싸매며 “와우!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하는 밈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연애도 안 하는데, 애를 낳을 리가. 통계는 이를 방증한다. 한 데이터 컨설팅 업체에 따르면, 2024년 기준 2030 미혼 남녀 중 ‘현재 연애하고 있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62.4%였다.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혼자가 편해서’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고, 다음으로는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기 어려워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어서’, ‘만날 기회가 없어서’, ‘귀찮아서’ 등이 뒤를 이었다. 요즘 사람들이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는 사회적 요인과 더불어 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예전에는 연애에서 결혼, 출산으로 가는 루트가 보편적이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아이 대신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딩크족’이나 자발적으로 결혼하지 않는 ‘비혼’이 요즘 세대의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식을 낳지 않을 건데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고, 결혼할 필요가 없으니 연애할 필요도 크게 못 느끼는 것이다. 게다가 취미가 다양해지고 개인화되면서 연애가 주던 도파민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즐길 거리가 많아졌다. 주위만 둘러봐도, 혼자서도 다양한 취미 활동과 자기 계발을 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꾸려가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 딱히 외롭지도 않고, 가끔 친구들을 만나며, 혼자 노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감정 소모가 없다. 이 안락한 삶을 버리고 굳이 연애라는 비효율의 세계로 진입할 이유가 도무지 없는 것이다.

물론, 나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연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애가 잘 맞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연애가 맞지 않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테니까. 스스로를 잘 돌보며 혼자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 역시 매우 독립적이며 멋지다고 생각한다. 연애 대신 일이나 취미, 가족이나 친구 관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삶도 분명 가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연애를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연애만큼 인간의 근간을 가장 깊이 흔드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가장 솔직하고 본능적인 동시에 가장 취약해진다. 하루의 리듬이 상대의 말 한마디나 사소한 태도에 뒤흔들리는 경험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진한 감정의 농도다. 한 사람과 진심으로 감정을 주고받고, 진정으로 연결되는 경험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감정의 층위를 만들어준다. 이것은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서 느끼는 애정과는 또 다른 차원의 감정이다.

연애를 하면 온갖 감정을 맛보게 된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쪼잔하며 형편없는 사람인지 깨닫게 되는 동시에, 한순간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행복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느끼는 순수한 기쁨은 생의 경이로움을 불러오고,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면 세상 어떤 고난과 풍파가 닥쳐도 모두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용기마저 생긴다. 연애는 그렇게 삶의 모든 색깔을 선명하게 만든다. 평범한 일상도 특별하게 만들고, 사소한 순간에도 큰 의미를 부여한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한순간 10대로 돌아간 듯 풋풋한 설렘과 떨림을 느끼게 해주는 게 연애 말고 무엇이 또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연애는 대체로 피곤하다.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고받게 되고, 기대만큼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시간과 돈이 들고, 때로는 견고하게 쌓아 올린 일상을 한순간에 망가뜨리기도 한다.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준 이유는 연애를 통해 느끼는 감정들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설렘과 질투, 기대와 실망, 삶의 충만함과 순수한 행복, 슬픔과 분노 등 다채로운 감정을 오롯이 한 사람과 나누며 알게 되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못 견디는 사람인지, 연애는 항상 나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했다.

이전의 상처나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연애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해한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지나왔으니까. 어쩌면 그들이 기억하는 연애는 아프고, 지치고, 후회로 얼룩진 ‘흑역사’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랑이 틀렸던 것은 아니다.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그 사랑이 가짜였던 것도 아니고, 아팠다고 해서 그 시간이 의미 없던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때의 우리는 분명 최선을 다했고, 애썼고, 한순간일지라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상대를 위해 온전히 애썼던 마음과 시간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다. 그래서 연애를 다시 시작하는 일은 지난 상처를 지워내는 일이 아니라, 그것들을 고스란히 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라 말하고 싶다. 이전의 연애가 나를 망가뜨렸다면, 다음 연애는 나를 회복시킬 수도 있다. 사랑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오지 않고, 같은 결말을 반복하지도 않는다. 연애를 한다는 건 결국 다시 한번 용기를 내는 일이다. 내가 줄 수 있는 마음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걸 믿고, 누군가의 진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다.

좋은 연애는 분명 존재한다. 서로를 소모하지 않고, 내가 ‘나’답게 존재할 수 있는 관계. 매일이 설레지 않아도 괜찮고, 특별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사이.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듯 자연스럽게 머무르고, 함께 나아지는 사랑은 존재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연애를 이어가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잘 살고 있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다양한 사랑의 얼굴을 읽는다. 형태는 각기 다르지만, 그들에겐 분명 공통점이 있다. 함께 있음으로써 서로의 삶을 조금 더 괜찮게 만들어준다는 것. 물론 그런 관계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않을 뿐이다. 매번 죽일 듯이 싸우고, 실망하고, 다시 만나고, 울고, 웃는 과정을 통해 관계는 더 단단해진다. 연애는 완벽한 타인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거창할 필요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보여주면 될 뿐이다.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는 말했다. 어릴 땐 모피 코트를 입고 지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인 줄 알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고. 누군가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야말로 진짜 사치라고. 연애는 욕망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연애가 지속되며 우리에게 남는 건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깊은 안정감이다. 그 안락함은 좋은 연애에서만 누릴 수 있는 사치이자 특권이다. 우리에겐 잠을 같이 잘 수 있는 단짝이 필요하다. 한 이불을 덮고 말없이 등을 맞대며 서로의 온기를 확인해줄 단짝. 다시, 연애 시대다.

WRITER _이봄(프리랜스 에디터)

Credit

  • Editor 김미나
  • Writer 이봄(프리랜스 에디터)
  • Illustration By Limoo
  • Art Designer 김지은
  • Digital Designer 김지수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