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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목해야 할 여성 작가는?

젊은작가상, 이상문학상, 영미 출판사와 억대 판권 계약까지! 지금 가장 핫한 여성 문인 5인.

프로필 by 김미나 2025.03.27

백온유

2017년 장편 동화 <정교>로 MBC 창작동화대상 장편 부문에서 수상하며 등단. 장편소설 <유원> <페퍼민트> <경우 없는 세계> 등을 썼다.

2017년 장편 동화 <정교>로 MBC 창작동화대상 장편 부문에서 수상하며 등단. 장편소설 <유원> <페퍼민트> <경우 없는 세계> 등을 썼다.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오랜 시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본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소설을 공부했기 때문에 그분들 모두가 저의 스승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 이름들 뒤에 내 이름이 놓인다는 것이 여전히 실감나지 않아요.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수상작 <반의반의 반>은 어떤 작품이며, 어떻게 집필하게 됐나요?

표면적으로는 예상치 못한 사건을 겪은 후 가족이 균열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좀 더 파고들어가면 가족이 분열하기 시작한 건 사건 발생 훨씬 이전이고, 인물들은 그동안 진실을 회피하며 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죠. 평소에도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합니다. 가족을 하나의 물질이라고 가정할 때 성분 검사를 해보면 사랑과 증오가 대량으로 검출될 것 같아요. 하지만 책임감이나 관성도 가족을 이루는 입자가 아닐까 생각해요. 사실 예전부터 삼대 모녀가 나오는 소설을 쓰고 싶어서 계속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었어요. 버전이 열 개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반의반의 반>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과 그 이유는요?

중학생 때 ‘현진’과 ‘거머리’(현진의 친구)가 서로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일이 생기자, 선생님이 아이들의 부모님을 학교로 소환합니다. 편부모 가정의 청소년인 ‘현진’은 궁지에 몰리는 느낌을 받죠. 그때 교무실의 문이 열리고 단정한 투피스에 구두를 신은 할머니가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뽐내며 등장하고, 그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에 사람들은 압도당해요. 자칫하면 아이에게 상처로 남을 수 있었던 순간을 인상적인 장면으로 바꿀 수 있어서 쓰는 동안 즐거웠습니다. 아이를 위로하고 지지하고 싶을 때, 대신 때려주고 대신 욕해주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뭘까 항상 고민해요. 자신의 뒤에 있는 어른이 침착하고 품위 있어 보일 때 아이는 가장 안정감을 느끼고 용기를 얻는 것 같아요.

<반의반의 반>을 읽으며 엄마라는 존재는 무조건 모성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건 얼마나 강요된 생각인지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그동안 미디어에서, 한국 사회가 모성애를 강압적으로 요구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한국 사회에서 강요받는 모성애 중 가장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나요?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님 강연에서 들은 내용인데, 과거에는 할머니나 어머니가 무급으로 간병을 도맡았기 때문에 돌봄 노동은 가정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취급돼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정에서 독박 간병을 할 여성 노동인구가 사라진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국가와 사회가 이 문제를 간과할 수 없게 됐죠.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돌봄 노동자들은 여성이라는 것을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한한 희생과 인내를 발휘해야 하는 역할이 필요한 순간에 이 사회는 늘 당연하게 여성을 소환해왔다는 걸 깨닫습니다. 마음이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며 자아 성찰을 하기도 했나요?

자주 했어요. 저는 종종 엄마의 어떤 모습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또 어떤 때는 원망도 해요. 오히려 엄마가 아닌 타인의 잘못은 너그럽게 눈감아주면서 엄마에게는 완벽함과 무결함을 요구하기도 하고요. 과거에 엄마가 저와 당신을 동일시했듯이 저 또한 엄마와 나를 동일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할 때 더 엄격하게 그 행동을 교정하려 들죠. 원망이라는 감정은 기대를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에 좀 질척하고 슬프게 느껴져요. 엄마의 욕망을 인정하는 것, 너무 큰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소설을 쓰며 생각했습니다.

화자를 3명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요?

독자가 70대의 ‘영실’, 40대의 ‘윤미’, 20대의 ‘현진’에게 기대하는, 혹은 예상하는 그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70대인 ‘영실’에게는 헌신하는 어머니의 모습, 욕망이 거세돼 삶에 초연한 노인의 모습을 기대할 텐데, ‘영실’이 그 기대를 저버릴 때 독자는 거북함을 느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상상을 전복시키는 인물들을 그려보고 싶었고, 삼대 모녀 모두가 예상을 조금씩 빗나간 행동을 한다면 재밌을 것 같았죠.

3명의 화자 ‘영실’, ‘윤미’, ‘현진’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가족의 의미가 반이 되고, 반의반이 되고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쪼그라들 때, 독자들은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기시감을 느낄 거예요. 어떻게든 ‘의미’라는 것을 건져보려 노력하지만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될 때, 내가 생각했던 가족이나 모성이라는 건 모두 허상이 아니었을까 의심하게 되는 순간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할머니 ‘영실’의 5천만원은 어디로 갔을까요? 작가님이 정해둔 답이 있을까요?

돈을 가져간 사람은 명확해요. 플롯을 짤 때도 정해놓고 썼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범인이 잡히느냐 잡히지 않느냐, 돈이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핵심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내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의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죠. 읽으면 읽을수록 명징해지는 것이 아니라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 범인이 모호해지는 것, 피해자와 가해자, 상처를 주고받는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애매해지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의반의 반>을 쓰며 새롭게 느끼게 된 점이 있다면요?

겉으로 심심하고 조용해 보이는 인물들이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칠 때, 조금 쾌감을 느끼는 저 자신이요. 이 소설에서 ‘윤미’는 어머니인 ‘영실’에게 큰 소리 한번 못 내는 소심하고 수동적인 딸이죠. ‘현진’에게는 헌신적인 어머니이고요. 하지만 인물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굉장히 구제 불능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인물을 만들어낼 때 ‘거봐. 그러니까 사람 만만하게 보지 말란 말이야.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 줄 알고’ 이런 마음이 생겨서 재미를 느낍니다.(웃음) 일상으로도 그 마음을 가지고 오게 돼요. 아무도 만만하게 보지 말자. 더 귀하게 대하고 대접해주자, 이렇게요.

내 소설이 세간의 주목을 받을 때, 어떤 감정이 가장 크게 드는지 궁금해요.

2가지 마음이 항상 충돌하는데, 두 감정 모두 진심이에요. 과분하고 민망해서 숨고 싶다는 마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원하는 마음.

지금 작가님 삶에 가장 큰 물음표는 무엇인가요?

믿음. 가치관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사람과 사회와 역사, 종교를 둘러싼 모든 믿음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해요. 저는 영적인 존재나 초자연적 질서에 관련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좀처럼 믿지 못하는 사람이죠. 타로나 신점 같은 것도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로요.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제가 모르는 어떤 세계를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뒤로한 사람들의 삶에 마음이 동하는 것 같아요. 또 제가 보기에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문제에 대해 목숨을 걸거나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결사적으로 싸우는 사람들도 제게 큰 의문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그 완고함을 상종하기 싫다는 생각이 앞서지만, 그래도 작가로서 연구해보고 싶어요. 어떤 것들이 그들의 믿음을 공고하게 만드는지. 너무 거대한 물음표라 평생을 파고들어도 해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긴 해요. 그래서 재밌어요.

작가로서, 동시대 여성 작가에게 가장 묻고 싶은 질문은 뭔가요?

동시대 여성 작가님들에게 가장 묻고 싶은 질문이라면, 저희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웃음) 소설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여성 소설가만의 고충이 있나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니던 문제가 소설가가 되면서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지나치게 많이 검열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내 행동이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던 부분은 소설가가 되면서 이 문장이 독자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진 않을까, 하는 식으로 이어지게 됐죠. 고충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더 겸허하고 엄정한 자세로 소설을 쓰게 된다는 점에서는 장점이 아닐까 생각해요(이렇게 흘러가는 사고 회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도 될지, 이것도 검열이 아닐지 생각하면서요).

여성을 비롯해 더 다양한 주제와 시각, 소수의 목소리를 투영한 작품이 세상에 나오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더 많은 작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문창과에 입학했던 2013년만 해도 한국 소설에서 퀴어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그리 흔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주인공이 퀴어인 소설에 너무나 익숙해졌죠. 다양한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여성 작가들이 소수자의 이야기를 써낸다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세상은 적응하는지도 모르게, 어느 순간 적응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소설이란?

어떤 소설을 읽으면 제가 그 세계에 잠시 살다가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저는 그 세계를 빠져나왔지만, 그래도 다른 인물들은 앞으로도 그 세계에서 무사 평안하기를 기원하게 되는, 그런 소설이요. 일상을 살다가도 문득 그 소설 속 인물들의 안위를 궁금해하며 잘 살아야 할 텐데, 생각하죠. 독자가 그 세계에 젖어 들게 하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으로서, 작가로서 품은 야망은 무엇인가요?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는 시를 썼고 20대 중반에는 동화를, 20대 후반에는 청소년 소설을, 요즘은 한국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시기마다 조금 더 집중해서 쓰는 분야가 있기는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놓지는 않았죠. 학기 중에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자주 만나고 학기가 끝나면 도서관에서 성인 독자들을 만나요. 올해는 처음으로 초등학생 독자들도 만날 기회가 생겼는데, 이렇게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을 만나는 작가가 많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유년기에 저를 만난 독자가 책을 놓지 않고 청소년기로 넘어갈 수 있다면, 그리고 청소년기에 제 책을 읽은 독자가 성인이 되어서 다시 제 책을 찾아준다면, 그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 같아요.

강보라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티니안에서>를 통해 등단. 그 전까지는 공연 잡지, 영화 잡지, 남성지 등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코스모폴리탄> 피처 디렉터를 역임했다.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티니안에서>를 통해 등단. 그 전까지는 공연 잡지, 영화 잡지, 남성지 등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코스모폴리탄> 피처 디렉터를 역임했다.

젊은작가상 수상 소감을 부탁드려요.

. 매거진에서 에디터로 일하는 동안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매해 빠짐없이 챙겨보았는데요, 표지에 제 이름이 등장하는 날이 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때는 상을 받기는커녕 지금처럼 소설을 쓰게 될 줄도 몰랐으니까요. 이래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인가 봅니다. 젊은작가상을 수상하기엔 좀 과하게 오래 산 느낌이긴 하지만요.(웃음)

매거진 에디터로 오래 일을 했고, <코스모폴리탄> 피처 디렉터를 역임하기도 했죠. 이 커리어가 작가로서의 인생에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도 궁금해요.

20~30대 시절 저에게 매거진 에디터는 여간해선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게 하고, 웬만해선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해주는 마법 같은 직업이었어요. 그 이력의 끝이 <코스모폴리탄> 디렉터였다는 것도 제게는 큰 자부심이고요. 다시 태어나도 주저 없이 선택할 만큼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재능 있는 후배들에게 바통을 넘겨주어야 할 때 같아요.

수상작 <바우어의 정원>은 어떤 작품이며, 어떻게 집필하게 됐나요?

개인적인 연유로 한동안 활동을 쉬어야만 했던 배우 ‘은화’가 연극 오디션을 보는 하루를 담은 소설입니다. 오래전 공연 잡지 기자로 일하면서 연극배우들의 오디션 현장을 취재할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요, <바우어의 정원>을 쓸 당시 골몰하던 하나의 질문인 “상처는 반드시 치유되어야 하나?”를 구체화할 배경을 고민하던 중,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게 됐어요. 배우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 연극 오디션 특유의 자기 고백적 성격이, 소설의 내적 주제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바우어의 정원>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과 그 이유는요?

‘정림’이 동료들과 담배 피우는 모습을 ‘은화’가 차 안에서 몰래 훔쳐보는 장면을 가장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실은 이 장면을 쓴 이유를 저도 잘 모르겠거든요. 굉장히 무책임한 말이지만요. 소설에는 작가 자신도 모르는 미스터리한 장면이 하나쯤 있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이야기를 완벽하게 통제하려 들수록 소설적 재미도 그만큼 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내가 쓴 소설이 세간의 주목을 받을 때, 어떤 감정이 가장 크게 드는지 궁금해요.

제 소설이 주목받은 경험이 많지 않아 대답하기가 조심스러운데요, 제가 쓴 소설이 어딘가에 발표되고 이런저런 평가를 거쳐 어엿한 책의 형태로 나올 때쯤에는 제가 그 이야기에서 이미 빠져나온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여름에 산꼭대기에서 혼자 “야호” 하고 외쳤는데 겨울에 소파에서 귤을 까먹다가 느닷없이 ‘야호’ 하는 메아리를 들은 기분이랄까요?(웃음) 지금처럼 평소보다 많은 메아리가 들릴 때는 사실 약간 두렵기도 해요. 하지만 대체로 기쁘고 짜릿합니다. 저의 간절한 구조 신호가 마침내 어딘가에 가닿은 듯한 기분도 들고요. 문득 궁금해져 찾아보니 ‘야호’는 독일의 조난 구조 신호인 ‘요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네요. 다음부터는 ‘야호’ 대신 ‘요후’를 외쳐봐야겠습니다.

영감의 원천이 있다면요?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일상에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제 몸에 자석처럼 우르르 달라붙어요. 책이나 영화는 물론이고 버스에서 엿들은 아이들의 대화나 길거리에서 받은 전단지의 문구 같은 것도요. 저는 영감보다 재료라는 말을 즐겨 쓰는데, 평소에는 멍하게 지내다가도 마감이 가까워져 오면 그렇게 몸에 달라붙은 자석 중 생각지도 못한 어떤 것이 불현듯 소설의 재료가 되곤 해요.

곳곳에 심긴 소재들이 차가운 인상을 줍니다. 이전 소설들에선 ‘여름’이라는 계절감이 잘 드러났죠. <바우어의 정원>에선 눈보라 치는 겨울을 배경으로 한 이유가 있나요?

소설의 주된 배경을 차 안으로 설정하고 나니, 제가 바꿀 수 있는 환경적 요소가 많지 않았어요. 그처럼 단조로운 환경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차원에서 무의식중에 폭설로 얼어붙은 도로를 떠올린 듯하고요. 저는 소설을 쓰면서 심상적 풍경이나 이미지를 자주 떠올리는 편인데, 눈보라 치는 겨울을 배경으로 쓰다 보니 자연히 흰색의 이미지가 도드라졌어요. ‘은화’의 흰머리는 사실 그것과 연결해서 나온 설정이에요.

<바우어의 정원>을 쓰며 새롭게 느끼게 된 점이 있다면요?

소설은 언제나 나의 예상을 벗어난 곳에 제멋대로 착지한다는 것. 그 엉뚱하고, 때로는 위험천만한 불시착이 곧 소설 쓰기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것.

<바우어의 정원> 속 여성 화자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구체적인 메시지보다는 어떤 추상적인 느낌을 독자와 공유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예술을 통해(혹은 예술의 소비를 통해) 무의식의 상처를 의식화하는 감각이라든가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소외감, 겉으로 발화되기 어려운 여성의 상처가 그와 비슷한 결을 지닌 다른 여성의 상처와 만났을 때 일어나는 찰나의 섬광 같은 것들이요.

새틴 바우어처럼 작가님도 광적으로 수집하는 것이 있나요? 거기서 오는 만족감은 무엇인가요?

특별히 수집하는 물건은 없고요, 일상의 기이한 순간들을 모으는 아주 하찮은 습관이 하나 있긴 해요. 친구와 타로점을 보러 갔다가 “예술에는 전혀 소질이 없으니 술장사를 하라”는, 정확히는 “‘봉구비어’를 오픈하라”는 충고를 받았던 일 같은…. 그런 사연들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고 소설이 안 풀릴 때 가끔 들여다봐요. 막상 큰 도움을 받은 적은 없는 것 같지만요.

2030 여성에게 추천하고 싶은 동시대 여성 작가의 문학이 있다면요?

20~30대는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시기였는데요,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인생 선배인 동시대 여성 작가들의 문학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나 시그리드 누네즈, 엘레나 페란테 같은 작가들의 소설이요.

지금 작가님 삶에 가장 큰 물음표는 무엇인가요?

미래의 세대는 세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작가로서, 동시대 여성 작가에게 가장 묻고 싶은 질문은 뭔가요?

안녕하세요. 다들 무사하시지요? 저기요, 제 말 들리시나요? 요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여성 소설가만의 고충이 있나요?

음… 마땅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네요. 아마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등단 이후 문단에서 꽤 많은 분을 만났는데, 다들 페미니즘 이슈에 민감하고 의식 수준도 굉장히 높아 오히려 제가 긴장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어쩌면 제게는 그것이 여성 소설가로서의 고충일지도요.(웃음)

더 다양한 주제와 시각, 소수의 목소리를 투영한 작품이 세상에 나오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한국 문학이 다양성을 확보하려면 우선 독자층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소설이 지금보다 더 활발히 해외에 번역돼야 하고요. 무엇보다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겠죠.

좋은 소설이란?

정직한 소설.

여성으로서, 작가로서 품은 야망은 무엇인가요?

어릴 때 즐겨 먹던 신천 ‘해주냉면’처럼 가늘고 길게 가는, 그럼에도 일평생 매운맛을 잃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김하나 & 황선우

김하나는 광고 회사 TBWA코리아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으며 <말하기를 말하기> <금빛 종소리> 등을 썼다. 황선우는 <더블유 코리아> 피처 디렉터로 일했으며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등을 썼다. 두 사람은 함께 팟캐스트 <여둘톡: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를 진행하고 있다.

김하나는 광고 회사 TBWA코리아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으며 <말하기를 말하기> <금빛 종소리> 등을 썼다. 황선우는 <더블유 코리아> 피처 디렉터로 일했으며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등을 썼다. 두 사람은 함께 팟캐스트 <여둘톡: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를 진행하고 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가 영미 판권 수출 계약을 통해 해외로 진출하게 됐죠. 축하드립니다!

김하나(이하 ‘김’)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전 지구적인 흐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돼 기쁩니다. 황선우(이하 ‘황’) 영미권 에세이를 왕성하게 읽어온 독자이자 한국어로 글을 쓰는 작가로서 인풋과 아웃풋의 방향을 역전시키는 경험이 짜릿해요.

여자 둘이 산다는 새로운 가족의 정립은 해외 여성들에게도 신선한 토픽이긴 합니다만, 한국 가부장제와 관련된 소재는 영미 독자들이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가령 ‘사위’와 같은 표현이요.

김·황 아마도 며느리와 사위의 차이에 관한 부분은 그렇겠죠? 하지만 영미 편집자들의 반응을 보면 공감의 폭이 훨씬 더 큰 듯합니다. 영국 펭귄랜덤하우스 자회사 더블데이 대표인 수재너 웨이드슨은 “영국의 수많은 사람이 여성의 우정, 권리와 연대 강화를 기념하는 책으로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매력적으로 여기리라 확신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미국 하퍼콜린스 산하 에코의 데보라 김 편집자는 이렇게 말했죠. “저는 이 책이 미국에서 대중적이고 광범위하게 어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가족, 연대, 헌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와 관련한 반응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이 있다면요?

김하나의 어머니는 책을 읽으신 후 “너희는 내가 젊을 때 꿈꿨던 방식대로 살고 있구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저희보다 어린 세대인 한국·일본·중국 여성들로부터 이 책이 자신의 바이블이 됐으며 인생을 바꿔놓았다는 고백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현재 작가님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나요? 부족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책에 “이 동거 생활의 만족도는 최상급이다”라고 썼었는데 지금의 만족도는 확실히 그보다 더 높습니다. 부족한 것은 시간이에요. 이 책은 저희 삶의 가능성을 크게 넓혀놓았고, 그 때문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함께 팟캐스트 <여둘톡: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를 하게 되면서 생활과 업무에서 공유하는 부분이 더 늘어났고, 덕분에 만족도가 더 커졌습니다. 둘 다 일을 좋아하고, 김하나는 같이 놀 때뿐 아니라 일할 때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거든요. 요즘은 각자 읽고 쓰고, 공부와 운동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며 대화를 나누는 우리 집이 마치 함께 만든 도서관이자 문화센터 같다고 말하곤 합니다. 우리가 같이 구축한 이 삶이 무척 마음에 들어요. 부족한 부분은 오직 여행입니다. 나이 든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집을 오래 비우지 못하거든요.

해외 독자들이 가장 좋아할 것 같은 에피소드는 뭔가요?

김•황 수재너 웨이드슨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판권을 구매하기 전에 샘플 번역 텍스트를 읽고 ‘내가 결혼 안 해봐서 아는데’ 에피소드가 정말 좋았다고 했습니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고 언급한 구절을 그대로 소개하고 싶어요.“그러니까 결혼 적령기를 넘긴 여성들이여, 혹시 ‘나에게 정말 문제가 있나?’,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문제인가?’ 이런 의심이 들 때면 의심해보자. 고요한 가운데 마음이 흔들리는 것인지, 혹은 바람을 불어대는 존재가 지금 내 주변에 있지 않은지.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스쳐 지나는 존재라면 적절히 무시하면 되고, 혹시 가까운 이라면 불편함을 일방적으로 견디는 대신 진지하게 정색해서 상관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해보자. 원만한 사회생활보다 내 자존감이, 어떤 타인과의 인간관계보다 나 자신과의 관계가 중요하니까. 무엇보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딘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증거는 세상에 많은 결혼한 (그리고 무례한) 사람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

'여둘’처럼 동거를 고려 중인 여성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동거에 앞서 꼭 체크해야 할 리스트 3가지도 궁금합니다.

김·황 ‘둘만 같이 살아도 단체 생활이다.’ 학교나 회사에서 자연스럽게 그러듯이 원만한 공동생활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상대를 존중하고 자기 욕심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체크리스트는 생활비로 어느 정도를 지출하는가, 스트레스와 긴장을 어떤 방식으로 해소하는가, 물건을 얼마나 소유하고 어떻게 관리하는가. 마지막 한 가지는 저희도 미처 체크하지 못해 지금까지 가장 많이 싸우는 원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조립식 가족으로 살기에 가장 불편한 점과 개선됐으면 하는 정책이 있다면요?

김•황 운전 경력이 수십 년인 두 사람이 차를 같이 쓰는데, 자동차보험료 견적을 내보니 같은 조건인데도 부부인 경우보다 수십만원 더 비싸더군요. 통신사 요금제 가족 결합도 안 되고, 병원에서 수술받을 때 서로 보호자가 되지도 못합니다. 세금 공제나 주택청약 등의 혜택도 받지 못하죠. 혈연과 혼인 관계 바깥에서 생겨나고 존재하는 조립식 가족들에게도 기본적인 복지가 가닿아야 합니다.

만약 해외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면, 동거인과 살아보고 싶은 곳이 있나요?

하와이. 몇 년 전 동거인과 함께 다녀온 그곳의 온화함을 자주 떠올립니다. 런던. 문화적인 밀도가 높은 곳에서 더 공부하고 경험하며 각자의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팟캐스트도 원격으로 계속할 수 있겠죠.

지금 작가님의 삶에 가장 큰 물음표는 무엇인가요?

이 대답을 하고 있는 지금은 3월 초인데, 대통령이 대체 언제 물러날 것인지가 가장 궁금합니다. 나이 든 여성들은 어디로 가는가? 삶의 많은 영역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 다양하게 들려와야 한다고 느낍니다. 특히 어느 정도 균질해 보이는 젊은 시절을 지나 고유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여성들의 변화에 관심이 있고, 그들의 경험과 지식이 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기혼자와 미혼자 모두에게 공감을 주었죠. 과거로 돌아가도 타인과 함께 사는 결정을 하시겠습니까? 지금의 동거인이 아니더라도요.

아마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당시 외로움을 많이 탔거든요. 하지만 황선우와 함께 사는 삶만큼 즐겁지는 않았겠죠? 김하나가 아니었다면 계속 혼자 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좀 더 어지럽고 물건이 많고 심심한 집에서 혼자….

여성을 비롯해 더 다양한 주제와 시각, 소수의 목소리를 투영한 책이 세상에 나오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김·황 그런 훌륭한 책들이 이미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독자’입니다. 한국에는 주의 깊게 읽고 담론을 퍼뜨리는 독자들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동시대 여성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김·황 저희 팟캐스트에서 늘 강조하는 이야기입니다. ‘나대라!’, ‘여자는 풍채’, ‘인생은 기세다.

앞으로 ‘여둘’로서, 작가로서의 야심이 각각 궁금합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후속작인 <여자 둘이 일하고 있습니다> <여자 둘이 먹고 있습니다> 등의 ‘여둘’ 시리즈 에세이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저희는 듀오 ‘서울사이버음악대’로 음악 연주도 하고 있는데, 올여름에 제 책 <아무튼, 리코더>가 나오고 나면 전국의 동네 책방으로 북토크 겸 연주 투어를 다니려 합니다. 세계 고전문학을 국내에 소개했던 <금빛 종소리>처럼 한국문학을 세계에 소개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예소연

2021년 단편소설 <도블>로 등단했다. 그 후 첫 장편소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 <그 개와 혁명>이 수록된 소설집 <사랑과 결함>을 발표했다.

2021년 단편소설 <도블>로 등단했다. 그 후 첫 장편소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 <그 개와 혁명>이 수록된 소설집 <사랑과 결함>을 발표했다.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최연소 작가입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사실 지금까지도 그렇게 큰 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고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기쁘게 차차 제가 해야 할 것들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축하를 많이 받아서 행복합니다.

수상작 <그 개와 혁명>은 어떤 작품이며, 어떻게 집필하게 됐나요?

<그 개와 혁명>은 아버지 ‘태수씨’를 간병하는 ‘수민’이 ‘태수씨’를 위해 작은 혁명 같은 장례식 프로젝트를 도모하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병원에서 아버지를 간병하며 쓴 소설이에요. 소설을 쓰는 내내 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고, 그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오히려 제 마음은 더 단단해진 것 같습니다.

<그 개와 혁명>은 집필 후 다시 꺼내 보기 힘들 정도로 아픈 소설이라고 했죠. 읽으면 여전히 마음이 저릿한 장면이 있다면요?

병원 꼭대기에 있는 옥상정원이라는 곳에 올라가 족욕을 하는 장면이요. 서로가 잠시라도 쉬기 바라는 마음이나 애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섞여 있는 장면이라 아직도 마음이 저릿합니다. 사실 저는 아버지에게 족욕을 시켜주고 싶어 무리해서 아버지를 옮기다가 넘어지시게 한 적이 있어요. 정말 큰일날 뻔했는데 아버지는 저한테 화도 한 번 내지 않고 괜찮다고만 했어요. 제가 너무 미안해하는 것이 걱정돼서 아픈 척도 못 하던 아버지를 잊을 수 없어요.

<그 개와 혁명> 속 ‘수민’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딱히 없어요. 그냥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 정도만 소설 속에서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중요한 가치일 수도 있고, 그 사람은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평생 동안 갖은 애를 쓰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인유두종 바이러스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겠죠?

이 소설을 읽으며 죽음, 유한함에 대해 골몰하게 됐습니다. 작가님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어요. 그보다는 남겨진 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편이고요. 그래서 죽음과 유한함보다는 이별과 상실에 대해 더 생각합니다. 제가 남겨진 사람이라 그런가 봐요.

<그 개와 혁명>을 쓰며 새롭게 느끼게 된 점이 있나요?

어떤 한 대상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깊은 감정과 마음을 길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쓴 소설이 세간의 주목을 받을 때, 어떤 감정이 가장 크게 드나요?

기쁘고 무섭습니다. 제 소설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게 되는 건 제가 평생 바라왔던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이 소설들이 제 섣부른 가치 판단의 결과에 불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 부끄럽고 무섭기도 합니다.

영감의 원천이 있다면요?

저는 후회를 많이 하는 사람인데, 어떤 일을 후회하다 보면 그것에 대해 사과를 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게 되기도 합니다.

소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딱히 없었다는 말, 후회가 밀려올 때면 사과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게 된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작가님에게 쓰는 행위란? 그 동력은 어디서 기인하나요?

내가 쓴 소설을 누군가 읽어준다는 생각을 하면 참 기뻐요. 책을 통해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만나 어느 순간을 공유하는 일이 대단하게 느껴지거든요. 저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작가님 앞에 닥친 ‘혁명’은?

탄핵...? 함께 광장에 모여 서로의 의지를 다졌던 시간은 그 자체로 소중하지만, 그로 인해 새로운 역사를 함께 쓸 수 있다면 더욱 기쁠 것 같아요.

작가로서, 동시대 여성 작가에게 가장 묻고 싶은 질문이 있나요?

자기만의 루틴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계속하다 보면 정말 습관처럼 하게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매일 몇 자씩 꼭 쓰는 작가님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쓸 게 없어도 쓰다 보면 써지는 것인지 그것도 참 신기해요.

최근 재미있게 읽은 동시대 여성 작가의 문학은 무엇인가요?

강보라 작가님의 <바우어의 정원>을 참 절절하게 읽었습니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어느 순간만큼은 공명하게 되는 사람 사이의 이야기가 잘 표현돼 있어 너무 좋았어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여성 소설가만의 고충이 궁금합니다.

여성 소설가만의 고충이라기보다는 지정 성별이 여성이다 보니 남성 화자를 쓰는 것에 어려움이 있기는 합니다. 다양한 화자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그러려면 많이 읽고 쓰는 수밖에 없는 것 같네요.

여성을 비롯해 더 다양한 주제와 시각, 소수의 목소리를 투영한 작품이 세상에 나오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제가 늘 고민하는 문제인데요,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저는 항상 그 너머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표면 너머의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구체성을 부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 자체로 공부가 많이 요구되는 일이기에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그렇기에 공부할 여유 시간이 되는 작가가 많아지는 게 가장 필요하겠네요.

좋은 소설이란?

개인적으로 여백이 있는 소설을 참 좋아합니다. 저는 그 여백으로 말미암아 아주 많은 것을 상상하게 되고 가끔은 그게 참 소설 읽기의 정수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저는 늘 적절한 여백 만들기에 실패하는 사람이지만요.

이전 인터뷰에서 노년에 관심이 많다고 했습니다. 작가님은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가요?

진보적인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쉬이 타인을 판단하지 않는 할머니, 상황에 맞게 변화를 멈추지 않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여성으로서, 작가로서 품은 야망은 무엇인가요?

올해는 열심히 단편을 쓰고 내년에는 기필코 장편 쓰기에 도전해보겠습니다. 재미있는 소설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Credit

  • Editor 김미나
  • Photo By 정멜멜(김하나&황선우) / 김준연(예소연) / 송시영(강보라) / Publisher(책)
  • Art Designer 장석영
  • Digital Designer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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