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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수 꽃이 피었습니다!

한평생 흔들림 없이 배우라는 한 가지 꿈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일. 비로소 서은수라는 꽃이 피어날 때.

프로필 by 김미나 2024.07.26
반지 Marc Jacobs.

반지 Marc Jacobs.


“여전히 연기를 짝사랑하는 느낌이에요. 너무 사랑하는데, 연기도 저를 그만큼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달까요. 상대보다 제가 더 알고 싶어 안달 난 느낌. 그래도 괜찮아요. 평생 짝사랑해도 될 만큼 좋거든요.”

여름 좋아해요?
겨울보다는 여름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예쁘잖아요. 모든 게 더 선명하고.
이소라와 김동률의 노래를 즐겨 듣고, 앙리 마티스의 푸른 그림을 좋아하며, 종종 전시회를 찾는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서정적인 순간을 즐기고, 여름을 선망하는 사람이 아닐까 짐작했어요.
그런 것 같아요. 오늘 촬영 때 제가 입은 옷 곳곳에 꽂은 빨간 꽃 있죠? 글로리오사라는 꽃인데, 한동안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해뒀을 만큼 가장 좋아해요. 제 취향을 알고 준비해주셨나 했지 뭐예요.(웃음) 종종 혼자 운전해서 꽃시장에 가는 것도 좋아하는데, 손이 큰 편이라 이만큼 사다 거실에도 두고, 방에도 두고 그래요.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만약 스스로 화보를 기획한다면 어떤 사진을 찍고 싶어요?
오늘 같은 화보를 찍을 것 같아요. 과하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고 꽃을 소품으로도 쓰고요. 오늘 촬영하며 느낀 건 화보 촬영과 영화·드라마 촬영은 다르다는 거예요. 화보 촬영 카메라 앞에서는 콘셉트에 따라 다른 어떤 면면을 보여주게 되는데, 연기할 때는 캐릭터에 빠져서 다른 생각이 안 나고 집중하거든요.
최근 출연작이자 지난 5월 종영한 드라마 <수사반장 1958>의 ‘이혜주’를 모델로 화보를 기획한다면 어떻게 찍고 싶어요? 촬영 당시 헤어와 의상을 비롯한 스타일링에 관한 의견도 낼 만큼 적극적이었다고 들었어요.
혜주를 위한 화보라면 필름 카메라로 밝고 따듯한 느낌으로 찍고 싶어요. 혜주는 다른 이들을 품어주는 온화한 사람이거든요. 지금까지 제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투명하고 순수한 인물이었을 정도로요.

드레스 Jinsun. 귀고리, 반지 모두 Maisonalt. 슈즈 Roger Viv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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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인물인 혜주의 역할에 잘 어울린다는 칭찬으로 “1950년대가 ‘퍼스널 컬러’인 배우”라는 얄궂은 댓글이 있더군요. 이런 말은 어떻게 다가와요?
하하하. 칭찬인데, 기분 좋죠. 배우에게 “자연스러워 보인다”라는 말만큼 감사한 호평이 없으니까요. 예전부터 “고전미가 있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기분이 참 좋았어요. 옛날 배우 선배 중 그 시대 특유의 단아하고 아름다운 매력을 갖춘 분들이 있잖아요. 한편으로는 ‘요즘 스타일의 배우’라는 말보다 기쁜 것 같아요.
<수사반장 1958>은 1971년부터 무려 18년 동안 880회 차 방영됐고, 최고 시청률 70%를 넘어선 한국형 수사물의 시초라고 불리는 작품의 프리퀄 시리즈예요. 한편으로 프리퀄이란 이야기와 캐릭터가 도달해야 하는 명확한 지점이 있는 셈인데, 그런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로서 창의성과 익숙함 사이에서의 고민도 있었을 법해요.
시대적인 드라마라 말해도 무방한 작품의 프리퀄 드라마인 만큼 부담도 있었죠. 이혜주는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라 새로 만드는 기분도 있었다면, 원작에도 등장한 캐릭터를 연기한 다른 선배 배우들은 달랐을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작품인 만큼 더 책임감을 갖고 임했고,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하고자 사력을 다한 것 같아요.
이혜주는 1950년대 배경의 시대극에서는 흔치 않은 여성 캐릭터예요. 직접 연기한 배우로서는 어떻게 다가왔나요?
강인하고, 임기응변에 능하고, 눈치도 빠른 인물이에요. 제게는 부족한 면이 풍성한 캐릭터라 연기하면서도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저는 혜주와 다르게 조심스러운 편이거든요. 고민도 많고,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하는데, 혜주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선택을 믿고 나아가는 화끈하고 털털한 성격의 인물이죠.

셔츠, 스커트, 귀고리, 슈즈 모두 Gu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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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는 뭔가요?
제 첫 꿈이 ‘세일러문’이고 그다음이 배우거든요.(웃음) 그만큼 어렸을 때부터 배우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간 것 같아요. 어린 마음에도 TV와 스크린에 나오는 배우들이 너무 멋져 보였어요. 그렇게 동경으로 시작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배우가 되겠어!’라는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예요. 물론 제가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한 적은 있지만 한 번도 다른 꿈을 꾸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바라던 배우가 돼보니 어떻던가요?
신기했죠. ‘내가 이렇게 멋진 선배 배우들과 함께한다니!’라며 매일이 감격의 나날이었달까요. 제 드라마 데뷔작이 <질투의 화신>(2016)인데 비중은 크지 않은 작품이었어요. 그런데 그 작품의 첫 촬영 날, 첫 신이 공효진 선배님과 함께하는 장면이었는데, 긴장도 되고 실수할까 봐 로봇처럼 대사가 나오도록 달달 외워서 갔죠. 그렇게 운 좋게 데뷔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비중이 큰 역할도 맡게 됐고, 지금까지 왔어요. 여전히 배우로서 카메라 앞에 서는 것 자체로 기쁜 마음이에요.
독립영화 <살인의 시작>(2014)으로 데뷔해, 올해 데뷔 11년 차예요. 실감 나요?
(화들짝 놀라며) 어머, 말도 안 돼요.
드라마 데뷔작인 <질투의 화신>부터 계산하면 올해 데뷔 9년 차입니다.
벌써 그렇게 됐군요. 우와….
어떻게 다가오는지 물으려고 했는데….
생각을 안 해봐서인지 시간이 더 빠르게 느껴져요.

레더 재킷 Versace. 귀고리 Tom Wood. 반지 Numb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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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일을 10년간 한 건데, 어떤 소회일지 물으려고도 했어요.
여전히 짝사랑하는 느낌이에요. 연기를 너무 사랑하는데, 연기도 저를 그만큼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달까요. 더 잘하고 싶고, 더 깊이 알고 싶은데, 그 사랑이 당장 채워지지 않아요. 물론 행복함도 느끼고, 좋은 마음이 더 큰데, 이 마음이 가득 채워지지 않는 기분이랄까요. 상대보다 제가 더 알고 싶어 안달 난 느낌. 그래도 괜찮아요. 평생 짝사랑해도 될 만큼 좋거든요.
현재 배우로서 자신에게 몇 점을 주고 싶어요?
그래도 10년간 나름 열심히 했으니까, 100점 만점이면 40점을 주겠어요. 아, 점수가 좀 짠가요? 괜찮아요. 100점이 될 때까지 더 열심히 할 거거든요.
배우로서 어떤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해요?
큰 산 하나 넘고 잠시 쉬고 있는 상황. 올라야 할 높은 산이 눈앞에 보이니 다시 오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단계. 분명 힘든 여정이겠지만, 두렵지 않고 기대되는 느낌이랄까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목적지가 뚜렷해서 지치지 않고 잘하자고 다짐하곤 해요.
보통 짝사랑을 하고 있다거나,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하면 슬프게 들릴 법도 한데, 이상하게 은수 씨의 말은 그렇지 않네요.
어렸을 때부터 꿈꾼 일을 하고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배우는 작품마다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잖아요. 다른 성격의 사람이 돼보는 일이자, 평소 안 하거나 못 하는 말도 할 수 있고, 그에 맞게 스타일도 변하는데, 이런 모든 삶의 변화가 매력적이에요. 저는 사람을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받기도 하는 편이라, 촬영장에서 좋은 기운을 받을 때도 많아요. 이렇게 얘기를 하다 보니 알겠어요. 얼른 다음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
더 해보고 싶은 캐릭터도 있나요? 한 인터뷰에서는 액션 연기를 꼽은 적 있어요.
액션 연기도 좋아요. 요즘에는 온전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사랑도 하고, 시련도 겪고, 그런 드라마가 있는, 한편으로 일상적인 그런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몇 년 전부터 국내 영화, 드라마도 장르가 부쩍 다양해졌어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도 있고, 좀비물과 판타지물을 비롯한 SF 장르 작품도 더러 나왔죠. 반면 땅에 발을 붙이고 걷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룬 멜로 작품의 수는 현저히 줄기도 했고요. 배우로서 이런 흐름은 어떻게 다가와요?
온전히 사랑 이야기만 다룬 작품의 수가 확 줄은 건 느껴요. 그만큼 사람들이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를 즐기는 시대구나 싶고요. 저는 배우로서 작품을 장르로 나누기보다, 대본을 보고 연기할 캐릭터가 흥미로우면 전력을 다하는 편이에요. 일상적이고 편안한 감상을 주는 작품도 좋지만, 제게 SF는 아직 안 해본 장르고 무궁무진한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
배우로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영화<마녀 Part2. The Other One>(2022) 상영 당시가 선명하게 기억나요. 배우로서 그렇게나 많은 칭찬과 따듯한 댓글을 받아본 게 처음이었거든요. 사랑받고 있다는 걸 크게 느꼈어요. 그런 칭찬이 터닝 포인트가 돼 저를 더 나아가게 한 것 같아요.

티셔츠 Golden Goose. 팔찌 Tom 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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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좋아하는 배우도 있나요?
너무 많아서 어떤 분의 이름을 먼저 말해야 하나 싶은데요, 전도연 선배님을 참 좋아해요. 오래전부터 롤모델이기도 하고요. 최근 선배님이 출연한 연극도 보고 왔는데 극장을 꽉 채운 선배님의 카리스마를 보며 또 반했어요.
6년 전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 꿈이 많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말한 적 있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욕심이 더 많아진 사람인 것 같아요.(웃음) 그때보다 배우로서 더 간절해졌고, 잘하고 싶은 마음도 더 커졌거든요. 모든 기회가 다 소중하게 느껴질 만큼요. 그만큼 책임감도 커졌고, 생각도 많아졌어요. 하지만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해야 할 일을 멋지게 잘해내도록 주어진 일을 차근차근 열심히 하고 있어요.
목표는요?
먼 미래를 계획하는 편은 아니에요. 다만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자는 마음은 있죠. 올해 초에는 ‘좋은 작품을 만나 열심히 하자’라고 기도했는데, <수사반장 1958>을 만나며 이뤄졌어요. 이제는 다음에 주어질 일에 최선을 다해 잘해보고자 해요.

티셔츠 Golden Goose. 팔찌 Tom Wood.

티셔츠 Golden Goose. 팔찌 Tom Wood.

Credit

  • Contributing editor 양보연
  • Editor 김미나
  • Photographer 신선혜
  • Hair 조은혜
  • Makeup 최시노
  • Stylist 최세나
  • Art designer 김지원
  • Digital designer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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